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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적 진실의 실종 비평과 연구에 대한 바성 캐주얼의 시학 의미론적 정의를 위하여 자기 모방·대량생산·형식홀대 뒤돌아보는 예언자 서경 혹은 서정적 풍물 서라벌과 질마재 사이 2. 20세기의 막바지에서 서양의 인문학 인문학적 노력을 위하여 고전의 매혹 정전의 이모저모 왕도는 없다 3. 어느 심미적 이성의 초상 생각하는 보헤미아인 우화이 세계 세기말의 감상(感傷) 여행 4, 한국의 현대비평 문학사와 가치평가 |
YU,JONG-HO,柳宗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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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륭한 문체란 <제자리에 놓인 적절한 말>이라고 영어 산문의 대가 스위프트는 정의하였다. <최상의 어순 속에 놓인 최상의 말>이란 것은 시인 코울리지의 시의 정의이다. 사실 고전적 성취에 이른 시와 문체는 대체로 이와 같은 정의 안에 포괄된다고 보아 크게 틀리지 않는다. 다만 적절함이나 최상의 강도가 성취의 높낮이에 따라 차이를 보여주는 것일 터이다. 제자리에 놓인 적절한 말은 다른 말로 대체될 수 없는 말이라는 것고 같은 뜻이 된다. 제자리에 놓인 적절한 말을 확인하고 그 대체 물가능성이 빚어내는 팽팽한 긴장을 음미하는 것은 사실 시 읽기가 제공하는 가장 큰 즐거움의 하나다. 외국시를 원어로 읽으면서 갖게 되는 자신감의 결여나 망설임은 이 대체 불가능성의 인지와 확인이 미심쩍고 능력 밖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어쨌건 소리와 뜻 사이의 긴장과 조화를 살피면서 제자리에 놓인 적절한 말을 인지하고 그 적정성에 탄복하는 것은 곧 그 시를 이해하는 것이 되고 그러한 한에서 즐기는 것과 이해하는 것은 별개의 것이 아니다. 즐기지 않고 이해할 수 없으며 이해하지 않고 즐길 수가 없다는 지나간 연대의 시인의 말은 순환어법이 수사학이 아니라 향수 과정의 생생한 증언이어서 형식주의라고 논파될 성질이 아니다. --- pp. 71-7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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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고전적 성취에 이른 시와 문체는 대체로 이와 같은 정의 안에 포괄된다고 보아 크게 틀리지 않는다. 다만 적절함이나 최상의 강도가 성취의 높낮이에 따라 차이를 보여주는 것일 터이다. 제자리에 놓인 적절한 말은 다른 말로 대체될 수 없는 말이라는 것과 같은 뜻이 된다. 제자리에 놓인 적절한 말을 확인하고 그 대체 물가능성이 빚어내는 팽팽한 긴장을 음미하는 것은 사실 시 읽기가 제공하는 가장 큰 즐거움의 하나다.
외국시를 원어로 읽으면서 갖게 되는 자신감의 결여나 망설임은 이 대체 불가능성의 인지와 확인이 미심쩍고 능력 밖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어쨌건 소리와 뜻 사이의 긴장과 조화를 살피면서 제자리에 놓인 적절한 말을 인지하고 그 적정성에 탄복하는 것은 곧 그 시를 이해하는 것이 되고 그러한 한에서 즐기는 것과 이해하는 것은 별개의 것이 아니다. 즐기지 않고 이해할 수 없으며 이해하지 않고 즐길 수가 없다는 지나간 연대의 시인의 말은 순환어법이 수사학이 아니라 향수 과정의 생생한 증언이어서 형식주의라고 논파될 성질이 아니다. --- p.7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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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종호 선생의 평론집『서정적 진실을 찾아서』는 1995년에 출간된『문학의 즐거움』이후에 발표된 글들을 모은 것이다.
익히 알려져 있듯이 유종호 선생은 1950년대 말부터 반 세기가 넘도록 한국 현대문학의 현장을 올곧게 지켜온 평론의 대가이다. 그는 한국문학의 현실에 대한 세심한 관심에 뿌리를 둔 명쾌하고 날카로운 비평으로 우리 문학의 굳건한 버팀목이 되어왔다. 이번 평론집은 그간의 평론집에서 표출되었던 선생의 문학론을 아우르면서 왜곡된 우리의 문학 교육에 대한 근본적인 처방을 제시하고 있으며, 인문학의 위기에 대한 담론이 만연한 오늘날 문학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모색을 겸하고 있다. 유종호 선생은 기본적인 작품 이해조차 결여된 고담준론을 배격하고, 비평은 기본적으로 개별 작품에 대한 철저한 이해에서 시작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발판으로 차근차근 <서정적 진실>을 찾아나간다. 그가 말하는 <서정적 진실> 찾기는 시 자체의 가치와는 관련 없는 문학 외적 논평에서가 아니라 텍스트를 빠트림 없이 향수하는 데서 시작된다. 서정시의 장은 한 글자의 차이가 세계의 명멸을 빚어내는 미시적인 감각과 지각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또한 언어 조직의 세목을 음미하면서 시의 빼어난 아름다움을 인지하는 것이 곧 시편의 이해이기 때문에 투박한 번역시로는 서정적 진정성을 직접적으로 체험할 수 없다는 사실도 짚어내고 있다. 그는 이렇게 진지한 태도로 독자들에게 흔히 맛볼 수 없는 평론 읽기의 즐거움을 또 한번 안겨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