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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긴이 앞글 7
옮긴이 일러두기 39 프랑스어판 일러두기 42 I. 광기의 언어 45 프랑스어판 편집자의 말 47 광인들의 침묵 51 광기 안의 언어 83 II. 문학과 언어 113 프랑스어판 편집자의 말 115 첫 번째 강연 117 두 번째 강연 154 III. 사드에 대한 강의 203 프랑스어판 편집자의 말 205 첫 번째 강연 208 두 번째 강연 240 프랑스어판 편집자 서문 297 문학에 관한 푸코 작업 일람 314 미셸 푸코의 간략한 생애 319 인명 색인 320 내용 색인 3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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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실린 총 6편의 글은 푸코 문학시기의 시작점이라 할 1963년~1964년(I, II부) 및 마지막 시기인 1970년(III부)의 것들이다. 그러나 『문학의 고고학』의 백미는, 물론 자신만만하면서도 재기 넘치는 아름답고도 정교한 문체로 젊은 거장의 도래를 알리는 I부, 정치하고도 탄탄한 논리적 구조로 독자를 승복시키며 사드의 문학적 의의를 다루는 III부도 중요하지만, 푸코가 ‘문학’에 대한 관념을 단 한 번 유일하게 직접적으로 다루면서 스스로의 문학에 대한 ‘전복적?위반적’ 정의를 제출하고 있는 II부라 해야할 것이다.
『문학의 고고학』은 II부를 이루는 두 편의 ‘문학에 대한 강의’만으로도 출판될 가치가 충분하다. 『문학의 고고학』을 여는 I부 ‘광기의 언어’는 1963년 1~2월에 방송된 두 편의 라디오 방송이다. 방송은 먼저 제작을 맡은 장 도아트가 푸코를 소개하면서 간단한 대화를 나누고, 이어서 푸코가 강연을 진행하는 식으로 이루어진다. 라디오 방송의 이점을 십분 살려 강연의 중간중간에는 셰익스피어의 『리어왕』,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 1735년 아르스날 수용소의 감금일지, 디드로의 『라모의 조카』, 사드와 관련하여 샤랑통 수용소의 의사가 보낸 편지, 아르토와 그의 편집자인 리비에르 사이의 편지 등 푸코가 직접 고른 텍스트들이 성우들에 의해 낭독된다. 첫 방송 ‘광인들의 침묵’은 1961년의 저작 『광기의 역사』의 연장선상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정신분석은 광기에 대한 이성의 독백’이라는 근본적 관점을 따른다. 광기가 비정상적 병리상태로 인식된 것은 광기가 자연적이고 생물학적인 것으로 가정되는 자연과학적?의학적 이상(異常) 현상이기 때문이 아니라, 18세기 말 이후 이루어진 광기에 대한 대상화 과정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대상화 과정, 곧 광기를 ‘비정상적’ 병리현상으로 설정하는 과정은 동시에 이성이 스스로를 ‘정상적인’ 것으로서 정립하는 과정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광기와 이성은 서로서로에 대한 여집합으로서 규정되는데, 이러한 광기와 이성의 배타적인 상호 실체화 과정이 오늘날 서구 근대 이후의 특징적 현상인 광기와 이성의 분할을 낳았다. 특히 등장하는 텍스트들 중에서도 셰익스피어의 『리어왕』은 특권적 지위를 갖는데, 이는 이 작품이 오늘날에는 사라진 하나의 현상, 곧 ‘광인 스스로가 말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광인은 스스로 말하지 못하는 자이며, 누군가에 의해 대변되어야 하는 자, 누군가가 그의 말을 해독해주어야 하는 자, 결코 스스로는 온전히 자신의 말을 이해하지도 자신의 뜻을 펴지도 못하는 자로서 이해된다. 물론 이는 단적으로 이성에 의한 광기의 식민지화이며, 이를 식민주의자에 의한 원주민의 지배, 남성에 의한 여성의 지배, 어른에 의한 아이의 지배, 곧 지배자에 의한 피지배자의 지배로 읽으면, 오늘날 광기의 모습이 결코 자연적인 의학적 현상이 아니라, 오히려 의학이라는 역사적?학문적 장치에 의해 구성된 하나의 정치적?사회적 현상, 곧 권력 현상임을 이해할 수 있다. 『광기의 역사』가 말하는 대로, 광인의 광인화는 오랜 시간에 걸쳐 이루어진 의학에 의한 광기의 도덕화, 광기와 죄책감의 상호 결부 작용과 더불어 이루어진 사회적?정치적 절차가 만들어낸 하나의 효과이며, 이는 18세기 말 이래 ‘정신의학’의 학문으로서의 설립과정과 다른 것이 아니다. I부의 두 번째 강연 ‘광기 안의 언어’ 역시 『광기의 역사』의 근본주장을 벗어나지 않는다. 강연에서는 미셸 레리스의 『지우기』와 『식물의 정사』, 18세기의 시적 알파벳 놀이, 장피에르 브리세의 『신의 학문 또는 인간의 창조』, 장 타르디외의 「하나의 말을 또 다른 말로」, 앙토냉 아르토의 인용 등이 등장한다. 첫 번째 방송이 광기와 의학 그리고 문학의 관계를 다루었다면, 두 번째 방송은 광기와 언어 그리고 문학의 관계를 다룬다. 푸코가 인용한 텍스트들은 예외 없이 ‘말놀이’(jeude mots, word play) 규칙에 대한 형식적 변형을 통한 문학적 작품들이다 (이런 종류의 작품들을 다른 언어로 번역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에서이 부분의 번역은 옮긴이로서는 실로 곤혹스러운 일이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면에서 이 두 번째 방송은 ‘모든 언어 문화권에는 문학적 내용에 집중하는 작가들과 문학적 언어 곧 형식 자체에 집중하는 작가들이 있으며, 나는 늘 후자 쪽으로 관심이 기울어졌다’ 푸코 자신의 말을 입증해주는 좋은 사례이다. 이는 물론 언어의 내용과 형식이 따로있으며 자신의 관심이 형식 쪽으로 기울어졌다는 말이 아니라, 언어의형식적 구조 자체가 곧 문학의 실내용을 구성한다는 이른바 넓은 의미의 ‘형식주의적’ 문학관에 가깝다(물론 이는 푸코가 고전적 의미의 ‘형식주의자’라는 말이 아니라, 문학에 관한 1960년대 푸코의 사유에 광의의 형식주의에 포함될 수 있는 요소가 존재한다는 의미이다). 1963년은 오랜 기간에 걸친 언어학, 구조주의, 기호학, 형식주의에 대한 푸코의 독서가 빚어낸 영향이 겉으로 드러나는시기이며, 이러한 ‘푸코적 형식주의’는 문학을 ‘스스로를 벗어나는 방식으로만 스스로의 형식을 축하게 되는 언어의 작용이 빚어내는 일련의 효과’로 바라본다. 이런 면에서 당시 푸코의 문학관은, 이 시기 푸코의 두 주요한 참조대상들로서, 바깥(dehors)의 사유를 말하는 블랑쇼와 위반(transgression)의 글쓰기를 말하는 바타유의 사유에 강력히 영향 받은 것이다. 한계경험(experience-limite)으로 대표되는 위반과바깥의 사유는 안에 대한 바깥, 타부의 위반으로 이해되면서 사유하는 주체의 탈주체화(desubjectivation du sujet pensant)라는 ‘전복적 아방가르드’의 윤리를 이끌어낸다. 문학이란 바로 이러한 기존의 언어놀이에대한 위반과 바깥의 한계경험, 그리고 탈주체화, 탈이성화된 주체, 곧 광기와의 협업이 발생시키는 효과이다. 바슐라르에 대한 푸코 자신의 말대로, 작가는 ‘게임의 규칙을 어김으로써 자신의 문화를 함정에 빠뜨리는 사람’이다. 이런 의미에서 이 시기 푸코의 문학관은 기존의 지배적 언어 놀이에 대한 ‘형식주의적’ 혹은 ?훗날 ‘(포스트)구조주의적’이라 불리게 될 ?하나의 실험 곧 일탈을 통해 펼쳐지는 전복적 아방가르드의 문학관이라고 말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