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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개장의 용도
구유로舊遊路 강가/Ganga 수호자 규칙의 세계 나쁜 물 천사들(가제) 해설 | 유토피아는 아닌 것들 ㆍ 이소 작가의 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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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신물神物이 벌려둔 세계 저편의 틈
젖은 발로 뭍에 남기는 선명한 모험의 족적 제 안에 들어온 자를 그가 닿고자 하는 곳으로 순간 이동 시켜주는 소설 속 ‘자개장’처럼, 표제작 「자개장의 용도」는 소설집 가장 첫머리에 위치하여 책을 펼친 독자를 함윤이의 매혹적인 소설 세계로 안내한다. 이 자개장은 비일상적이고 기이한 면모를 지닌다는 점에서 「규칙의 세계」의 ‘거울’과 포개어진다. 둘은 모두 고아한 장식으로 꾸며져 있고, 매끄러운 표면에 무언가를 비추어내며, 공간과 공간을 매개하는 일종의 통로 역할을 수행한다. 다만 이러한 사물들의 초월적인 능력은 인물들을 함부로 또는 손쉽게 다른 차원으로 데려다 놓지 않는다. 자개장과 거울은 자신의 앞에 선 이들을 돌연히 끌어당기거나 집어삼키는 대신 직접 문을 열어젖히고 손을 내미는 자에게만 지금 여기 너머의 풍경을 내보인다. 고로 소설에서 두 사물의 쓰임새는 원래부터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을 손에 쥔 인물들에 의해 결정된다. 「자개장의 용도」의 ‘나’와 「규칙의 세계」의 셰어하우스 식구들은 각 사물의 신비로운 힘을 포기하지 않고 그것과 함께하기를, 또 그 뒤에 따라붙는 염려와 책임을 감당하기를 선택한다. 자개장과 거울이 의존이나 파괴가 아닌 반려의 대상이 될 때 둘은 두려운 이물異物이 아닌 근사한 비기?器로 변모하며, “비밀이 무엇인지 조금쯤 이해하게”(「자개장의 용도」, p. 44) 된 주인들은 한층 더 용감한 모습으로 거듭난다. 신묘한 두 사물의 반사면을 경유하며 피어오른 용기는 「강가/Ganga」의 ‘나’와 「나쁜 물」의 ‘나’에게 닿아 그들로 하여금 지금껏 외면해온 내면의 물속으로 뛰어들도록 추동한다. 두 소설 속 ‘나’는 작품의 초입에서부터 비행기와 고속버스를 타고 먼 거리를 이동하며 낯선 여정을 감행하지만, 그들의 진정한 모험은 ‘갠지스강’과 ‘나쁜 물’의 수면 위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마주할 때 시작된다. 「강가/Ganga」의 ‘나’가 “오래 기다린 죄책감”(p. 122)을 쏟아내게 되는 것은 자신의 새 이름을 스스로 지었을 때나 남자를 샀을 때가 아니라 갑작스레 강에 빠져 온몸을 적시고 난 뒤이고, 「나쁜 물」의 ‘나’는 “안에서 솟구치는 질문들의 거품을” 수그러들게 하는 대신 “그 안으로 직접 들어”(pp. 247~48)감으로써 노래를 멈추지 않던 현관문 뒤의 존재들과 대화를 시도한다. 빼내버리고 싶던 물에 몸을 담가 침잠하고 축축한 손으로 그 아래 가라앉아 있던 부채감을 건져 올림으로써 그들은 비로소 물 밖으로 걸어 나온다. 너를 지킴으로써 나를 지탱하는 우정은 미약하지만 강인한 천사의 마음을 닮았다 한데 모여 살거나 한철을 같이 지낸 이들이 만남과 헤어짐을 겪는 장면을 섬세하게 그려내는 함윤이의 소설은 ‘나’를 소중하게 아끼는 친구의 마음을 통해 소중히 여겨야 마땅한 ‘나’를 발견하도록 이끄는 ‘우정’이라는 정서에 집중한다. 기절 놀이 중 목이 졸려 머릿속이 아득해지는 느낌을 “썩 나쁘지 않”(p. 127)다고, “이게 마지막이라면 그것도 괜찮다”(p. 139)고 생각했던 「수호자」의 ‘나’를 삶 쪽으로 “붙잡고 끌어”내는 것은 얼핏 자기 자신을 쉽게 방기하지 말아달라는 친구 ‘무조’의 말이나 뒷덜미에 붙은 귀신의 악력인 듯 보인다. 그러나 ‘나’가 “온 힘을 다해 헤엄쳤고 물 밖으로 빠져나왔”다는 룸메이트들의 서술은 그가 실은 “아주 절박”(p. 140)하게 살고자 했기에 스스로 살아남았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우정을 통과하며 확인된 이 ‘살고자 하는’ 마음은 점차 ‘잘 살고자 하는’ 힘센 마음으로 발전한다. 오직 도보로만 국경을 횡단해 넘어가면 친구가 건강해질 수 있다는 바보 같은 믿음을 행동에 옮기도록 만들고, 아무도 없이 텅 빈 습지마저도 축제의 무대로 바꿔놓는다. 진창과 바닥에서도 우정을 나눠 가진 이들은 은빛으로 반짝이는 아이섀도처럼, 누구에게나 웃으며 손을 흔들어주는 연예인처럼 빛난다. 우정을 따라 걷는 “오래된 친구의 길”(p. 49) 위로 종종 찬바람이 감돌 때면 함윤이의 소설 속 인물들은 “따뜻한 거”(「구유로舊遊路」, p. 86)를 챙겨 먹으며 “목도리를 턱까지 두”른(「수호자」, p. 160)다. 살기 위해, 살아서 친구를 제대로 맞이하고 또 떠나보내기 위해 스스로 돌보며 영영 사라지지 않을 귀한 마음들을 되뇐다. ‘너’와 ‘나’의 안녕과 행복을 바라는 모든 마음을 읊조리는 입술에서 새어 나오는 보얀 입김을 함윤이는 ‘천사’라고 부른다. 애틋한 호명 아래 천사로서 현현한 우정은 공기 중을 떠돌며 따스한 숨으로 친구들의 몸을 조금 더 덥힌다. 그 “미묘한” 온기가 “천사 덕이라는 사실을 모르”면서도 어슴푸레 미소 짓는 이들의 걸음을 독자는 내내 응원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그들 곁에 머물며 “관계에서 태어난”[「천사들(가제)」, p. 259] 천사가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