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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개장의 용도
구유로舊遊路 강가/Ganga 수호자 규칙의 세계 나쁜 물 천사들(가제) 해설 | 유토피아는 아닌 것들 - 이소 작가의 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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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가 미지근한 숨을 내쉰다. 보배야, 부르는 목소리는 너무 작아 내 머릿속에서 들려오는 것 같다.
네가 여기까지 걸어온 덕에 우리가 이걸 볼 수 있는 것 같아. 달이 손을 놓듯 태양으로부터 떨어져 나온다. 별 대신 흰빛이 머리 위로 쏟아진다. 우리는 다시 한낮 속에 서 있다. 아이섀도와 립스틱으로 반짝이는 얼굴의 여자들이 나를 본다. 나는 비밀을 들킨 사람처럼 웃는다. --- pp.83-84 「구유로舊遊路」 중에서 무조가 내 목에 양 손끝을 올렸다. 엄지와 검지로 경동맥을 짚었다. 숨 참아. 그가 말했다. 나는 눈을 감았다. 쇠처럼 차가운 손끝이 목울대를 누르고, 이내 그리운 하얀 점들이 나타났다. 눈보라가 불어오고 있었다. 이 풍경과 마주할 때마다 늘 떠올리던 생각이 또 한 번 솟았다. 이게 끝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이 조용하고 안전한 곳에 쭉 머물 수 있다면…… 선우야. 무조가 말했다. 너 정말 그러지 좀 마. 나는 눈을 떴다. 흰 점들은 온데간데없고, 두 손을 늘어뜨린 무조만 서 있었다. 넌 전부터 그랬지. 그가 말했다. 너는 참 쉽게 포기해. 포기할 상황이 오기만을 기다리는 사람 같아. 무조는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그러지 않으면 안 돼? --- pp.155-156 「수호자」 중에서 나는 위로 삼아 내 규칙 위반의 역사를 말해주기로 했다. 초등학생 때 빨간 펜으로 이름을 쓰다가 할머니에게 호되게 맞고서 공책을 버렸던 경험, 애인에게 운동화를 사 줬다가 이튿날 차였던 일, 어른이 되어서도 몇 번이나 선풍기를 켠 채로 잠들 뻔하다 경련하듯 깨어났던 기억 등등. 차마 말하지 못했지만 십대 시절에는 문턱을 밟고 중얼대기도 했다. 난 지금 노인들의 목을 밟고 있어, 내 보호자들의 목 말이야. “이런 일들을 저질렀어도 난 여태 살아 있잖아. 원래 다들 틀려가며 배우는 거야.” --- p.181 「규칙의 세계」 중에서 얘들아, 제대로 떠올려봐. 너희가 거리에서 서로를 찾아낸 날 있잖니. 내가 태어난, 발명되었던 날 말이야. 그날 너희는 완전히 새로운 문을 열었다고 생각했잖아. 유성영화를 많이 보지 않아서인지 천사의 말씨는 묘하게 어색하다. 목소리 또한 갈라져 있다. 기이하게도 그 모든 요소가 죽기 직전 발악하는 천사의 태도에 잘 달라붙는다. 너흰 나아질 거야. 천사가 속삭인다. 같이 살 방법도 더 많이 배울 거야. 너흰 좋은 사람들이고, 서로를 이미 좋아해보았으니까. 연인은 반응하지 않는다. 각자 눈을 비비거나 머리카락을 헝클어뜨릴 뿐이다. 천사는 집요하다. 그는 연인 주위를 빙글빙글 돌며 말한다. 난 기억해. 너희도 기억하지? 서로가 좋은 사람인 걸 깨달은 순간 말이야. 그 전까지는 그런 사람을 달라고 기도도 했잖아. 연인이 운다. 천사가 말한 기억들이 그들을 엄습하는 듯하다. 우는 연인을 본 천사는 우뚝 멈춰 선다. 달그락거리는 날갯짓 소리가 멎는다. --- p.269 「천사들(가제)」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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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신물神物이 벌려둔 세계 저편의 틈
젖은 발로 뭍에 남기는 선명한 모험의 족적 제 안에 들어온 자를 그가 닿고자 하는 곳으로 순간 이동 시켜주는 소설 속 ‘자개장’처럼, 표제작 「자개장의 용도」는 소설집 가장 첫머리에 위치하여 책을 펼친 독자를 함윤이의 매혹적인 소설 세계로 안내한다. 이 자개장은 비일상적이고 기이한 면모를 지닌다는 점에서 「규칙의 세계」의 ‘거울’과 포개어진다. 둘은 모두 고아한 장식으로 꾸며져 있고, 매끄러운 표면에 무언가를 비추어내며, 공간과 공간을 매개하는 일종의 통로 역할을 수행한다. 다만 이러한 사물들의 초월적인 능력은 인물들을 함부로 또는 손쉽게 다른 차원으로 데려다 놓지 않는다. 자개장과 거울은 자신의 앞에 선 이들을 돌연히 끌어당기거나 집어삼키는 대신 직접 문을 열어젖히고 손을 내미는 자에게만 지금 여기 너머의 풍경을 내보인다. 고로 소설에서 두 사물의 쓰임새는 원래부터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을 손에 쥔 인물들에 의해 결정된다. 「자개장의 용도」의 ‘나’와 「규칙의 세계」의 셰어하우스 식구들은 각 사물의 신비로운 힘을 포기하지 않고 그것과 함께하기를, 또 그 뒤에 따라붙는 염려와 책임을 감당하기를 선택한다. 자개장과 거울이 의존이나 파괴가 아닌 반려의 대상이 될 때 둘은 두려운 이물異物이 아닌 근사한 비기?器로 변모하며, “비밀이 무엇인지 조금쯤 이해하게”(「자개장의 용도」, p. 44) 된 주인들은 한층 더 용감한 모습으로 거듭난다. 신묘한 두 사물의 반사면을 경유하며 피어오른 용기는 「강가/Ganga」의 ‘나’와 「나쁜 물」의 ‘나’에게 닿아 그들로 하여금 지금껏 외면해온 내면의 물속으로 뛰어들도록 추동한다. 두 소설 속 ‘나’는 작품의 초입에서부터 비행기와 고속버스를 타고 먼 거리를 이동하며 낯선 여정을 감행하지만, 그들의 진정한 모험은 ‘갠지스강’과 ‘나쁜 물’의 수면 위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마주할 때 시작된다. 「강가/Ganga」의 ‘나’가 “오래 기다린 죄책감”(p. 122)을 쏟아내게 되는 것은 자신의 새 이름을 스스로 지었을 때나 남자를 샀을 때가 아니라 갑작스레 강에 빠져 온몸을 적시고 난 뒤이고, 「나쁜 물」의 ‘나’는 “안에서 솟구치는 질문들의 거품을” 수그러들게 하는 대신 “그 안으로 직접 들어”(pp. 247~48)감으로써 노래를 멈추지 않던 현관문 뒤의 존재들과 대화를 시도한다. 빼내버리고 싶던 물에 몸을 담가 침잠하고 축축한 손으로 그 아래 가라앉아 있던 부채감을 건져 올림으로써 그들은 비로소 물 밖으로 걸어 나온다. 너를 지킴으로써 나를 지탱하는 우정은 미약하지만 강인한 천사의 마음을 닮았다 한데 모여 살거나 한철을 같이 지낸 이들이 만남과 헤어짐을 겪는 장면을 섬세하게 그려내는 함윤이의 소설은 ‘나’를 소중하게 아끼는 친구의 마음을 통해 소중히 여겨야 마땅한 ‘나’를 발견하도록 이끄는 ‘우정’이라는 정서에 집중한다. 기절 놀이 중 목이 졸려 머릿속이 아득해지는 느낌을 “썩 나쁘지 않”(p. 127)다고, “이게 마지막이라면 그것도 괜찮다”(p. 139)고 생각했던 「수호자」의 ‘나’를 삶 쪽으로 “붙잡고 끌어”내는 것은 얼핏 자기 자신을 쉽게 방기하지 말아달라는 친구 ‘무조’의 말이나 뒷덜미에 붙은 귀신의 악력인 듯 보인다. 그러나 ‘나’가 “온 힘을 다해 헤엄쳤고 물 밖으로 빠져나왔”다는 룸메이트들의 서술은 그가 실은 “아주 절박”(p. 140)하게 살고자 했기에 스스로 살아남았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우정을 통과하며 확인된 이 ‘살고자 하는’ 마음은 점차 ‘잘 살고자 하는’ 힘센 마음으로 발전한다. 오직 도보로만 국경을 횡단해 넘어가면 친구가 건강해질 수 있다는 바보 같은 믿음을 행동에 옮기도록 만들고, 아무도 없이 텅 빈 습지마저도 축제의 무대로 바꿔놓는다. 진창과 바닥에서도 우정을 나눠 가진 이들은 은빛으로 반짝이는 아이섀도처럼, 누구에게나 웃으며 손을 흔들어주는 연예인처럼 빛난다. 우정을 따라 걷는 “오래된 친구의 길”(p. 49) 위로 종종 찬바람이 감돌 때면 함윤이의 소설 속 인물들은 “따뜻한 거”(「구유로舊遊路」, p. 86)를 챙겨 먹으며 “목도리를 턱까지 두”른(「수호자」, p. 160)다. 살기 위해, 살아서 친구를 제대로 맞이하고 또 떠나보내기 위해 스스로 돌보며 영영 사라지지 않을 귀한 마음들을 되뇐다. ‘너’와 ‘나’의 안녕과 행복을 바라는 모든 마음을 읊조리는 입술에서 새어 나오는 보얀 입김을 함윤이는 ‘천사’라고 부른다. 애틋한 호명 아래 천사로서 현현한 우정은 공기 중을 떠돌며 따스한 숨으로 친구들의 몸을 조금 더 덥힌다. 그 “미묘한” 온기가 “천사 덕이라는 사실을 모르”면서도 어슴푸레 미소 짓는 이들의 걸음을 독자는 내내 응원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그들 곁에 머물며 “관계에서 태어난”[「천사들(가제)」, p. 259] 천사가 된다. 작가의 말 어릴 적부터, 그러니까 십대 초반 즈음부터 작가가 되길 바랐다. 고로 책을 낸다면 후미에 무슨 말을 적을지 수차례 상상했다. 구체적인 내용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여러 이름을 호명하는 감사의 글이 대부분이었다는 사실은 떠오른다. 일종의 건배사 같은 글들이었다. 막상 책이 나올 때가 다가오니 ‘작가의 말’ 쓰기는 어렵고 곤혹스러운 일이 되었다. 지난 몇 달간 이 글을 회피해왔고, 딱히 쓸 말이 없다고도 느꼈다. 하지만 정말로 쓸 말이 없는가 묻는다면…… 아닐 것이다. 지금의 나는 겁먹었고, 두려움과 똑바로 눈 마주치기에는 또 괴로운 탓에, 쓸 말이 없다고 말하는 쪽을 택한 듯싶다. 언젠가부터 글 쓰는 일, 형체가 없고 무게도 모르겠는 내 속의 무엇을 언어로 꺼내는 일의 무서움을 깊이 체감하고 있다. 내가 쓴 글자들은 내가 없는 자리에까지 간다. 때로는 인쇄된 상태로, 때로는 이진 데이터로, 때로는 내가 모르는 언어로 옮겨진 채, 때로는 누군가의 목소리를 타고. 좋게 말하면 손오공이 머리카락을 뽑아 만든 분신들 같다. 다만 이 분신들은 내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나와 닮았는지조차 가끔은 잘 모르겠다. 설령 내가 그들 존재를 후회하게 되더라도 일을 저지른(글을 쓴) 이상 돌이킬 수 없다. 글자들은 나보다 빠르며 더 멀리 나아간다. 그 사실이 기쁜 만큼 두려운 나는 쓸 말이 없다, 하는 후렴구나 왼다. 그와 동시에 나는 지난 세월 내내 남들의 분신들로부터 큰 도움을 받았다. 본문에서 언급한 여러 소설과 시, 영화와 만화, 드라마(시트콤)와 노래, 그 외에도 하고많은 창작자가 만든 분신들. 그것들을 만든 이들이 자랑스러워하는지 후회하는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그들의 분신 덕택에 삶의 많은 지점을 통과할 수 있었다. 거짓된 이야기와 태어난 적 없는 인물 들이 나를 먹여 살렸다. 키워주었다고 말해도 좋겠다. [……] 아…… 결국 건배사 같은 글을 쓰고 말았다. 면구한 마음이 든다. 나는 쓸 게 없다,라고 되뇌면서도 자리만 주면 신이 나는 사람인 것이다. 앞으로도 여러 자리를 분신들과 함께 채울 수 있다면 좋겠다. 역시 신날 성싶다. 이왕 건배사처럼 쓴 김에, 이 책을 읽어주신 분들에게 온 마음 다해 감사드린다. 모쪼록 이 소설들이 나보다 더 나은 방식으로 여러분을 지지해주길 바란다. 그럼으로써 우리가 서로에게 어떤 자리를 마련해줄 것이라고 믿는다. 이 책은 지금 이 글자와 만나는 분에게 바친다. 예상했겠지만 누구에게 책을 바친다는 말 또한 어린 시절 상상의 주요 소재 중 하나였다(책 첫머리에 적히곤 하는, ‘○○에게’ 같은 것 말이다). 오늘의 나는 바칠 게 있어 기쁘다. 2025년 가을과 겨울 사이에서, 함윤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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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친구들과 이야기하다 마가 뜨면 누군가가 말했다. “귀신 지나간다.” 함윤이의 소설을 읽다 보면 때때로 등골이 오싹해진다. 매끄럽고 스타일리시한 문장 사이 갑자기 입을 다물게 하는 아교를 발견한다. 이 아교는 함윤이라는 장인의 인장이다. 문장 바깥의 삶이 있다는 걸 알려주는. 그 삶의 우연성 앞에 겸허해지겠다는. 눌어붙은 흔적에서 미래의 예지를 발견하는 예언자처럼 조용히 더듬으며 생각한다. 문장 이상의 요철을. 삶의 예외성을. 그리하여 완전함을. 탄산처럼 불규칙하게 튀어 오르는 그것. 조용히 숨죽이고 바라보게 되는 물방울. 예상치 못한 침묵과 떠오르는 얼굴을 귀신이라고 할까? 아니, 천사라고 하자. - 이희주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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