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검색을 사용해 보세요
검색창 이전화면 이전화면
최근 검색어
인기 검색어

소득공제 청년패스
근본 없는 민주주의
에르네스토 라클라우를 읽자
현우식
빨간소금 2026.06.25.
베스트
사회비평/비판 top100 2주
가격
23,000
10 20,700
YES포인트?
1,150원 (5%)
5만원 이상 구매 시 2천원 추가 적립
결제혜택
카드/간편결제 혜택을 확인하세요

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해외배송 가능?
  •  문화비소득공제 가능

이 상품의 태그

상세 이미지

책소개

목차

책을 펴내며
프롤로그

1부 한국 사회는 어떻게 라클라우를 읽어 왔는가
1. 1990년대 초반: 마르크스주의 이후의 길을 찾다
2. 2000년대 후반: 포스트민주화 시대의 돌파구
3. 라클라우 읽기가 남긴 문제들

2부 라클라우 사상의 뿌리와 핵심 개념
4. 1960년대 아르헨티나 사회운동의 기억
5. 두 가지 사상적 뿌리
6. 다섯 가지 핵심 개념

3부 라클라우 사상의 내재적 해석: 존재론적 차원
7. 1970년대: 마르크스주의 인식론을 넘어서
8. 1980년대: 포스트마르크스주의 존재론의 탄생
9. 1990년대 이후: 보편성을 향한 새로운 접근

4부 라클라우 사상의 내재적 해석: 존재적 차원
10. 라클라우의 인민적 주체성 이론
11. 라클라우와 무페의 급진민주주의 이론
12. 라클라우와 무페의 급진민주주의 전략

5부 라클라우 사상을 어떻게 재해석할 것인가
13. 헤게모니 실천으로서의 사회학
14. 자유민주주의와 포퓰리즘
15. 정치 이론과 전략의 재해석

에필로그

찾아보기

저자 소개 1

제주에서 태어나 청소년기를 보냈다. 부푼 꿈을 안고 서울로 향했으나, 기대와는 다른 현실을 경험하고 다시 제주로 돌아왔다. 이후 제주대학교 사회학과 대학원에서 공부하며 연구자의 길을 선택했다. 라클라우 연구로 시작했지만, 정치사상, 정치사회학, 정치 비평을 넘나들며 말하고 쓰는 일을 이어 가고자 한다. 라클라우 사상은 이 모든 작업을 관통하는 정치를 바라보는 관점을 제공해 주었다. 제주대학교에서 정치사상을 가르치고 있으며, 서교인문사회연구실의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에르네스토 라클라우》(커뮤니케이션북스, 2025)를 함께 썼다.

현우식의 다른 상품

품목정보

발행일
2026년 06월 25일
쪽수, 무게, 크기
380쪽 | 482g | 140*210*18mm
ISBN13
9791191383713

책 속으로

이 책은 일반적인 이론/사상 연구의 문법과 달리, 라클라우의 특정 저작이나 개념에 천착하기보다 1960년대부터 2010년대에 이르는 사상 전반을 체계적이고 종합적으로 설명하는 데 중점을 둔다. 이러한 서술 전략을 채택한 이유는 앞으로 한국에서 사상을 다양하게 해석하고 활용하기 위해서는 일종의 준거점이 필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프레드릭 제임슨(Fredric Jameson)의 표현을 빌자면, 이 책은 라클라우 사상에 대한 일종의 “인식적 지도 그리기(cognitive mapping)”라고 할 수 있다.
--- p.20

라클라우의 사상은 알튀세르와 그람시로 대표되는 서구 마르크스주의 전통뿐 아니라 다양한 비마르크스주의 철학과 이론의 영향을 받는다. 이러한 영향은 특히 1990년대 이후의 작업에서 뚜렷하게 드러난다. 라클라우는 자신의 사상이 20세기 서양철학에서 전개된 반본질주의 운동으로부터 깊은 영향을 받았다고 강조한다. 반본질주의 운동은 분석철학, 현상학, 구조주의 철학 전통에서 핵심 개념들의 형이상학적 토대를 탈구축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이 운동은 사물 자체에 매개 없이 직접 접근할 수 있다는 직접성의 환상(illusion of immediacy)을 비판하고, 실재에 대한 모든 접근이 언어와 담론을 통해 매개된다고 강조한다.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전통적으로 실재를 재현하는 이차적이고 부차적인 차원으로 여겨지던 언어와 담론은 실재를 구성하는 일차적이고 근본적인 차원으로 재정립된다.
--- p.104

라클라우가 말하는 사회의 불가능성이란 사회를 자기 규정적인 총체성(self-determining totality)으로 전제하는 관점의 폐기를 의미한다. 어떤 사회적 실천도 총체성의 내재적 논리나 본질로부터 자연스럽게 도출되지 않으며, 이미 주어진 실체의 표현으로 환원되거나 반복의 원리에 따라 완전히 포섭될 수 없다. 사회를 불가능한 것으로 간주하는 한, 사회적 실천은 접합적이며 헤게모니적인 실천일 수밖에 없다.
--- p.170

라클라우는 어떤 정치 운동이 포퓰리즘인지 아닌지를 묻는 것 자체가 이론적으로 잘못된 전제로부터 출발한다고 지적한다. 등가 논리와 차이 논리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정치 운동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포퓰리즘을 특정한 정체성을 가진 정치 형식이라기보다, 모든 정치적 실천이 일정 부분 수반할 수밖에 없는 헤게모니 구성 방식으로 이해해야 한다. 따라서 “포퓰리즘은 정치와 동의어”이며 “포퓰리즘의 종말은 정치의 종말”이다.
--- p.247

일반적으로 ‘radical’을 한국어로 ‘근본적’ 또는 ‘급진적’으로 번역하며, radical democracy 역시 ‘급진민주주의’로 번역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이러한 번역은 민주주의에 어떤 ‘근본’, 즉 고정된 이념, 최종적 목표, 본질적인 토대가 있다는 인상을 줄 위험이 있다. 라클라우와 무페는 민주주의를 본질적이고 확고한 토대 위에 구축된 체제로 이해하지 않는다. 이들에게 민주주의는 언제나 우연하며 예측 불가능한 정치적 조건에서 구성되고 재구성되는 과정으로만 존재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급진민주주의’라는 번역어는 민주주의의 비결정성, 불완전성, 그리고 열린 구성의 가능성을 충분히 포착하지 못한다. 따라서 급진민주주의 전략의 반본질주의 문제설정을 더욱 명확하게 드러내기 위해 radical democracy를 ‘근본 없는 민주주의’로 번역하고자 한다. 이 표현은 다소 역설적으로 들릴 수 있으나, 바로 그 역설을 통해 민주주의의 ‘근본 없음’을 드러내려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 p.344

말하자면 이 책은 독자들에게 자신의 모습을 라클라우라는 거울에 비춰 볼 것을 제안하는 셈이다. 공공연한 ‘적’을 비판하기는 쉽다. 그러나 그동안 자명하다고 믿어 왔던 자신의 규범과 가치를 의심하고, 우리가 서 있는 토대가 실은 아무런 근본이 없는 불안정한 지반임을 인정하는 것은 매우 더디고 고통스러운 과정이다. 하지만 바로 그 ‘근본 없음’을 직시하는 용기만이 민주주의를 그 어떤 절대 권력도 독점할 수 없는 비어 있는 장소로 되돌려 놓을 수 있다. 누군가에게는 이것이 마치 원점으로 돌아가자는 허무한 제안으로 느껴질지 모르겠다. 여전히 라클라우 사상의 ‘쓸모’가 무엇이냐고 묻는 사람들에게는 실망스러운 대답일 수도 있다. 하지만 정해진 길이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때, 비로소 우리는 매 순간 정치를 새롭게 기획해야 하는 자유를 얻는다. 돌아가는 것 역시 새로운 길을 걷는 것이다. 더디고 고통스러운 길일 수 있지만, 독자들에게 라클라우를 읽으며 그 길을 함께 가자고 제안하고 싶다.

--- p.357

출판사 리뷰

지금 왜 민주주의의 ‘근본 없음’을 주장하는가

책의 제목이기도 한 ‘근본 없는 민주주의’는 ‘Radical Democracy’에 대한 저자의 번역어다. 여기서 ‘근본이 없다’라는 표현은 부정적인 의미가 아니다. 저자는 에르네스토 라클라우의 사상을 빌려, 민주주의의 토대나 사회적 정체성은 미리 고정되어 있지 않다는 ‘반(反)본질주의적’ 성찰을 제안한다. 즉, 사회의 마주침과 정치는 봉합되거나 완결될 수 없는 개방적인 과정이며, 어떤 것도 선험적으로 결정되어 있지 않다는 뜻이다. 기존의 정치가 ‘계급’이나 ‘역사적 필연성’, 혹은 ‘인간 본성’과 같은 단 하나의 주춧돌 위에 사회를 건설하려 했다면, 라클라우는 그러한 주춧돌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환상임을 폭로한다.

이처럼 결정된 근본이 없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절망이 아닌, 도리어 역동성과 희망의 가능성을 열어준다. 고정된 정답이나 가야 할 길이 명확하게 정해진 세상을 바라는 이들, 혹은 정치를 이미 정해진 철칙을 수행하는 과정으로만 보는 이들에게 라클라우 사상은 유효하지 않거나 위험하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자명하다고 믿어 왔던 자신의 입장을 성찰하고, 근본적인 토대가 없는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이면서도 실망하지 않는 이들에게 이 책은 좋은 나침반이 된다. 지금 시대에 ‘근본 없는 민주주의’가 필요한 이유는 낙관적이고 희망적인 태도로 현실에 개입해 새로운 출발을 고민할 수 있는 ‘정치의 가능성’을 옹호하기 때문이다. 토대가 없기에 오히려 우리는 새로운 정치를 만들어 나갈 수 있다.

20세기 반본질주의 철학이 도달한 성취를 정치학의 언어로 통합하다

이 책을 관통하는 라클라우 사상의 핵심 기둥은 ‘반본질주의’다. 저자는 라클라우가 구축한 반본질주의 정치가 하늘에서 갑자기 떨어진 것이 아니라, 20세기를 뒤흔든 철학적·지적 혁명의 흐름을 이어받은 결과물임을 증명한다. 흔히 라클라우의 사상적 배경을 루이 알튀세르나 에티엔 발리바르 같은 프랑스 마르크스주의 내부의 비환원론적 이데올로기 논쟁에서 찾으려 하지만, 그뿐 아니라 라클라우의 사유가 더 넓은 현대 철학의 영토와 맞닿아 있음을 짚어 낸다.

특히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의 언어 게임 개념이 라클라우의 반본질주의 체계에 끼친 영향에 주목한다. 비트겐슈타인이 언어의 고정된 본질이나 보편적 중심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언어는 단지 구체적인 맥락과 실천 속에서 유동적으로 작동할 뿐이라고 보았듯이, 라클라우 역시 사회와 정치를 고정된 중심이 없는 열린 언어 게임의 과정으로 파악했다. 고전 마르크스주의처럼 주체의 성격을 단 하나의 본질(계급)로 환원할 수 없다는 선언은 바로 이러한 20세기의 철학적 전회와 궤를 같이한다.

여기에 깊이를 더하는 것이 바로 지그문트 프로이트와 자크 라캉으로 이어지는 정신분석학과의 연관성이다. 라클라우는 사회가 완전히 봉합되거나 안정될 수 없는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 라캉의 ‘결여’와 ‘실재’ 개념을 적극 도입했다. 인간의 주체성이 본래 결여를 품고 있기에 끊임없이 욕망을 통해 다른 기표들을 쫓아다니듯이, 사회적 구조 역시 채워질 수 없는 근원적 결여(탈구)를 마주하고 있다는 것이다. 적대 세력에 맞서 ‘등가의 사슬’을 묶어내는 정치적 상상력이나 특정 기표를 중심으로 집단적 정체성이 강렬하게 결집하는 현상은 이처럼 사회적 주체들의 심층에 자리 잡은 무의식적 욕망과 결여를 자극하는 정신분석학적 메커니즘을 통해서만 설명될 수 있다.

결국 이 책은 라클라우의 반본질주의가 마르크스주의 내부의 성찰을 넘어, 비트겐슈타인의 언어철학과 라캉의 정신분석학이라는 20세기 지적 전위들이 도달한 성취를 정치학의 언어로 가장 정교하게 통합해 낸 결실임을 보여준다.

단편적 연구를 넘어 ‘라클라우 사상의 인식적 지도’ 그리기

한국 사회에서 라클라우의 이름이 수용된 지는 어느덧 30년이 넘었지만, 그간 독립된 단일 주제의 학위논문이나 단행본 분량의 체계적인 연구는 전무하다시피 했다. 기존의 국내 연구나 소개서들은 대개 라클라우와 샹탈 무페의 공저이자 대표작인 『헤게모니와 사회주의 전략』이나, 그의 후기 사상을 대변하는 『포퓰리즘 이성』의 일부 내용을 단편적으로 다루거나 타 사상가와 비교하는 방식에 그쳤다. 따라서 사상 전반을 관통하는 뼈대와 맥락은 늘 공백으로 남아 있었다. 반면, 『근본 없는 민주주의』는 특정 저작이나 단편적 개념에 매몰되지 않고 1960년대부터 2010년대에 이르는 라클라우의 사상 전반을 체계적이고 종합적으로 설명한다. 저자는 프레드릭 제임슨의 표현을 빌려 이 책을 라클라우 사상에 대한 일종의 “인식적 지도 그리기”라고 규정한다.

특히 저자는 라클라우 사상의 핵심을 ‘존재론적 차원’과 ‘존재적 차원’이라는 두 가지 층위로 구분해 책 전반에 입체적으로 녹여낸다. 저자는 마르틴 하이데거 철학의 영향을 받아 정립된 초월론적인 ‘존재론적 차원(정치적 존재론)’을 통해, 사회적 주체와 정치가 구성되는 근원적인 원리와 조건들을 파고든다. 그리고 이에 머물지 않고, 우리가 발 딛고 있는 구체적인 현실이자 경험적 영역인 ‘존재적 차원(정치 이론과 전략)’을 결합한다. 책은 이 두 가지 차원을 씨실과 날실처럼 엮음으로써, 라클라우 사상이 단순히 추상적 사유에 그치지 않고 구체적인 정치적 실천과 전략으로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서술한다. 이처럼 존재론적 층위와 존재적 층위를 종합적으로 다룬 접근은 기존 한국 사회가 라클라우 사상을 경제결정론 비판의 맥락에서만 협소하게 읽었던 한계를 넘어선다.

‘담론환원주의’와 ‘정치적 상대주의’라는 통념을 넘어서

이 책의 1부는 “한국 사회는 어떻게 라클라우를 읽어 왔는가”라는 질문으로 시작된다. 저자가 라클라우의 이론을 본격적으로 이야기하기에 앞서, 이처럼 낡아 보이는 ‘한국에서의 수용사’를 짚고 넘어가는 이유는 국내 비판적 인문사회과학 지식사회의 뿌리 깊은 지적 관행과 패러다임이 라클라우에게 덧씌운 통념을 걷어내기 위해서다. 한국 학계에서 라클라우 사상은 제대로 된 연구가 이루어지기도 전에 정치 구도 속에서 곡해되었다. 가장 대표적인 족쇄가 바로 ‘담론환원주의’와 ‘정치적 상대주의’라는 비판이었다.

비판자들은 라클라우가 ‘모든 것은 담론이다’라고 선언하자, 그가 물질적 현실이나 경제적 구조, 혹은 민중의 구체적인 고통을 무시하고 오직 언어적 세계나 텍스트의 세계로 정치를 환원시켰다며 ‘담론환원주의’의 낙인을 찍었다. 그러나 저자는 라클라우가 말한 담론이 협소한 언어가 아니라 물질적 실천과 사회적 제도 전체를 포괄하는 의미화의 체계임을 꼼꼼하게 규명해 낸다. 동시에 사회의 절대적인 객관적 토대가 없다는 주장은 허무주의적 ‘정치적 상대주의’로 오도되기도 했다. 하지만 저자는 라클라우가 고정된 정답의 부재를 선언한 이유가 규범의 파괴가 아니라, 도리어 선험적 토대가 없기에 우리가 현실에 개입해 새로운 출발을 고민하며 민주적인 헤게모니를 스스로 책임지며 만들어 가야 한다는 사실을 역설하기 위함이었음을 밝혀낸다.

이 책은 이러한 비판들이 라클라우를 마르크스주의 수호라는 정파적 관점에서 성급하게 밀쳐내기 위해 발생한 오해였음을 지적한다.

포스트마르크스주의 역사상 가장 급진적인 시도의 재해석

이 책은 라클라우의 사상을 고전 마르크스주의의 경제결정론과 계급환원론을 근본적으로 극복하려 했던 포스트마르크스주의의 길 위에 위치시킨다. 마르크스주의 역사에서 라클라우의 사상은 기존 이론의 몇 가지 오류를 수정하거나 보완하는 수준을 넘어, 마르크스주의의 존재론적 토대 자체를 ‘탈구축’하려는 이론적 전환점이자 대담한 시도였다.

라클라우는 1970년대 알튀세르 학파의 비환원론적 이데올로기 설명에서 출발했으나, 토대가 상부구조를 최종심급에서 결정한다는 논리는 단호히 거부했다. 1980년대 들어 그는 무페와 함께 고전적 역사유물론이 지닌 본질주의적 목적론을 종식시켰다. 나아가 1990년대 이후에는 단순한 마르크스주의 비판을 넘어, 우리 삶을 규정하는 ‘정치적인 것의 일반적 존재론’으로 사유를 넓혔다.

이 책은 노동과 생산이라는 경제적 영역에 지나치게 의존하며 스스로를 가두었던 기존 마르크스주의의 한계를 해체하고, 정치적 실천이 가질 수 있는 자율성과 역동성을 확보하려 했던 포스트마르크스주의 역사상 가장 급진적인 시도를 오늘날의 언어로 재해석하고 있다.

리뷰/한줄평0

리뷰

첫번째 리뷰어가 되어주세요.

한줄평

첫번째 한줄평을 남겨주세요.

20,700
1 20,7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