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검색을 사용해 보세요
검색창 이전화면 이전화면
최근 검색어
인기 검색어

가격
19,000
10 17,100
YES포인트?
950원 (5%)
5만원 이상 구매 시 2천원 추가 적립
결제혜택
카드/간편결제 혜택을 확인하세요

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국내배송만 가능
  •  문화비소득공제 가능

석천[錫川] 김종수 설교집

이 상품의 태그

책소개

목차

프롤로그
언제 어디서나 학생(學生) _ 황현수

추모의 글
마지막을 사신 목사님 _ 이석주

고故 김종수金琮洙 목사 발자취

석천 설교집(2013년도)

주현절
참회 (시 32:1-7)
신앙, 상식의 지혜 (잠1:10-19; 막 4:26-29)
내가 내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할 줄을 알지 못하셨습니까? (눅 2:41-52)
많이 사랑하였기 때문이다 (눅 7:36-50)

사순절
네가 언제까지 내 앞에서 교만하게 굴려느냐? (출 10:1-20)
지식과 사랑 (고전 8:1-13)
너는 신을 벗어라 (출 2:11-15; 3:1-12)
고난, 사람됨의 값 (출 4:22-23; 갈 6:7-9)

부활절
아무에게도 아무 말도 못하였다 (막 16:1-8)
나다운 나 (삼상 17:38-51)
무엇이 사람을 타락시키는가? (창 3:1-19)
아이를 내게 데려 오너라 (막 9:14-29)

성령강림절
아나니아와 삽비라를 생각하며 (창 2:20-25; 행 5:1-11)
그 녀석의 꿈이 어떻게 되나 보자 (창 37:18-20)
교회의 말조차 듣지 않거든 (마 18:15-20)
그들은 우리의 밥입니다 (민 14:1-9)
따로 외딴곳으로 (막 6:30-32)

창조절
풍요 속 잊어버린 것 (신 8:11-20)
은혜를 허무는 교만 (잠 16:18-20; 고전 15:9-11)
하늘이 열리고 (눅 3:21-22)
신 벗긴 자의 집안 (창 38:6-26; 신 25:5-10)

대림절
무엇이 보이느냐? (막 8:22-26)
그대로 한 뒤에야 하나님이 기도를 들어주셨다 (삼하 21:1-14)
아기가 있는 곳에 별이 멈추었다 (마 2:1-12)
마지막이 가까이 왔습니다 (벧전 4:7-11)

서평 . 감상

말씀이 아니고서는 하나님은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다 _ 김원배
우리가 잃어버린 ‘신앙의 참모습’에 대한 통찰 _ 허호익
삶의 성찰로 다듬어진 하늘의 메시지_ 송미정

에필로그
석천의 ‘설교’ _ 김경희

석천을그리는사람들(명단)

저자 소개 2

연세대학교에서 공부하고, 대치교회 식구들과 10년을 지냈고, 하늘샘교회 첫 살림에 함께했다. 그리고... 목포산돌교회 식구들과 11년 7개월을 함께 하고 2023년 6월 28일, 영원 속에 잠들다.

김종수의 다른 상품

석천을그리는사람들

관심작가 알림신청
 

품목정보

발행일
2026년 06월 18일
쪽수, 무게, 크기
336쪽 | 152*224*30mm
ISBN13
9791176110426

책 속으로

여러분, 우리가 교회에 다니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당연히 죄의 문제 때문입니다. 어떤 분들은 죄에 대해 말하기도 듣기도 싫어합니다. 목회자가 죄와 고난의 문제에 대해서만은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세상살이 피곤하고 골치 아픈데 여기까지 와서 그런 이야기를 듣느냐고 귀찮아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에서 죄 문제를 뺀다면 무슨 할 말이 있겠습니까?
여러분, 어떻습니까? 제가 여러분에게 “괜찮다. 세상 살다 보면 이런 죄, 저런 죄 짓기 마련이다. 하나님께서 그 마음을 모르겠냐?” 하고 위로하면 좋겠습니까? “주님의 십자가로 우리 죄가 모두 사해졌다. 주님의 보혈로 다 씻어 주었으니 마음 평안히 이제 세상으로 가라. 죄는 모두 다 주님께서 담당하셨다”고 말하면 위로가 되겠습니까? 세상에 그런 싸구려 은혜가 어디 있단 말입니까? 결코 싸구려 은혜는 있을 수 없습니다.
---pp.29-30

우리가 신앙생활, 믿음 생활을 하겠다는 것은 결코 도깨비방망이로 소원을 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생활의 결단은 값을 치르겠다는 결단입니다. 축복이니 은혜니 하는 것을 횡재로 치부하는 것이 아닙니다. 책임과 보답의 값을 치르는 것입니다. 값을 치르는 신앙, 바로 이것이 십자가 신앙입니다.
여러분, 혹 우리의 신앙이 하나님을 속이는 결과를 초래하지는 않았습니까? 혹 우리의 얄팍한 계산이 하나님이 아니라 우리 자신을 속이는 결과를 가져오지 않았습니까? 하나님은 인간의 속임수에 넘어가지 않습니다. 적게 심은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은 자는 많이 거둘 뿐입니다. 문제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적고 많음이 아닙니다. 무엇을 심었느냐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무슨 열매가 맺기를 바랐느냐는 것입니다. 혹 심으면서 다른 것이 나기를 기대하지는 않았습니까?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뜻의 성취라는 열매보다는 오히려 제 욕심을 기대하지는 않았습니까?
---pp.112-113

불행은 여기에 있습니다. 내 삶이 아닌 다른 사람이 봐주는 삶을 살려고 하는 데 불행이 있습니다. 나를 나로 평가해 주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남이 만든 기준에 평가받기를 원합니다. 여기에서 나다운 나는 점점 사라집니다. 나다운 나를 추구하지 않고, 나와는 전혀 다른 것일지라도 남들이 바라는 가치를 맹목적으로 추구하게 됩니다.
여러분, 우리의 실패와 절망이 바로 이런 데에서 나온 것은 아닙니까? 남이 만든 가치 기준에 내 삶을 억지로 맞추어 사느라고 허둥대다 내 인생을 잃어버리지는 않습니까? 키에 비해 침대가 작다고 침대에 맞춰 다리를 자르는 어리석은 일을 저지르고 있지는 않습니까?
---p.131

역경과 고난 속에서 꿈을 저버리지 않고 오히려 그 고난이 꿈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역사임을 깨달으며 살아간 요셉의 놀라운 믿음, 그 믿음이 오늘 우리가 이 예배를 통해 가져야 할 꿈임을 기억하십시오. 고난 속에 비친 그 꿈에서 우리는 무지갯빛 영롱한 하나님의 사랑이 억수같이 쏟아지는 소나기 후에 드러난 의미임을 고백합니다.
인생살이의 아픔이 꿈을 다지시는 하나님의 농사라는 것을 안다면, 소나기 후의 무지갯빛 인생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의 눈입니다. 이 믿음의 눈을 뜬다면 고난 속에서 영광을, 죽음 속에서 부활을 볼 수 있습니다.
---p.182

30년 전만 해도 정말 가난한 생활을 하였습니다. 절대 빈곤의 시절이었습니다. 배고파 죽어 가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 절대 빈곤의 시대가 막을 내렸습니다. 최근 세계 불황과 함께 어렵다고 하지만, 옛날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지구상에서 우리처럼 잘 먹고 잘 입는 나라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지난 경제 성장은 세계 사람들이 부러워할 정도입니다.
그럼에도 지난 시절에 비해 지금이 행복하고 만족스럽다고 말하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왜 그럴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절대 빈곤의 시대는 지나갔지만, 더 무서운 상대 빈곤의 문제에 직면해 있기 때문입니다. 절대적 빈곤의 불평과 원망보다 훨씬 무서운 것이 상대적 빈곤의 불평과 원망입니다. 요즘에는 배가 고프다고 보채는 아이들은 없습니다. 옆집 아이가 가진 것을 못 가져 떼를 쓰는 아이들뿐입니다. 남보다 더 잘 누리고 즐기지 못하는 것에 대한 상대적 박탈감이 주는 원망이 있을 뿐입니다.
---pp.224-225

여러분은 가정에서 무엇을 먼저 봅니까? 집의 평수를 봅니까? 아니면 집의 고급 가구가 먼저 눈에 들어옵니까? 무엇이 시급합니까? 자라나는 아이, 땀 흘리는 남편, 수고하는 아내를 먼저 보아야 합니다. 생명을 보아야 합니다. 생명을 보는 데서 인간은 성숙한 존재가 됩니다. 예언자 이사야는 이사야 11장 1절 이하에서 아기 예수 메시아의 탄생을 이렇게 예언합니다.
… 지극히 평범한 이새의 가족에게서 메시아가 올 것이라는 예언입니다. 분명 한 작은 싹에서 메시아가 출현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작은 싹이지만 생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본문 9절이 말하듯 별들이 머문 곳―동방박사들이 좇아간 그 별이 머문 곳―, 그곳에 바로 생명다운 생명, 참 생명이 있었습니다. 별을 좇아가는 사람들이 결국 도달한 곳이 이제 막 태어난 작은 생명이 있는 곳이었습니다.
---p.299

오늘날 설교자들이 이러한 창조적인 갈등과 씨름을 통해 설교를 창출하는 창조적 노력을 포기하기 때문에, 설교에 생명력이 없고 성도들의 삶을 변화시키는 영향으로 나타나지 않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오늘날 한국교회 강단의 현실에서 석천처럼 성서의 말씀이라는 씨줄과 소용돌이치는 세계의 현실이라는 날줄이 교차하는 창조적 몸부림 속에서 비단 옷감을 짜내는 설교를 하는 목회자들이 거의 사라진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며, 석천을 본받는 후배 목사들이 많이 나오기를 기대합니다.
---p.321

이번 설교집은 ‘부끄러움’에 대한 성찰로 그 문을 엽니다. 남다른 예언자적 통찰력을 가진 김종수 목사는 현대 사회의 가장 큰 비극을 죄에 대한 가책과 부끄러움이 마비되어 가는 현상에서 찾습니다. 대형 부정부패를 저지르고도 당당한 이들의 모습과 대비하여, 인간의 인간됨은 자신의 잘못을 깊이 알고 부끄러워할 줄 아는 ‘도덕적, 영적 존재’가 되는 데 있음을 역설합니다. 이것은 학력, 재력, 권력과 아무 관계가 없다고 했습니다. “최고의 지식은 우리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아는 것이다”라는 성 어거스틴을 인용합니다. 아무리 많은 것을 알고 있다 하더라도 내가 부끄러운 죄인이라는 것을 모르면 그는 무식한 사람이라는 것이요, 그에게 구원의 은혜는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pp.325-326

목사님의 삶을 통과한 묵직한 언어들은 공감과 배려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믿음의 선배들이 대면했던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자신을 내어주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은 우리를 사랑과 평화로 안아 주십니다. 철저하게 ‘너’로만 존재했던 우리에게 자신의 품을 허락하십니다. 불안과 두려운, 배제의 세계에서 우리는 사랑을 노래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평화를 몸소 보이기를 원합니다. 타자에게 그어졌던 선을 지우고 환대의 메시지를 전합니다. 그렇게 당신의 설교는 설교를 넘어 고백이 되고, 우리의 고백으로 변합니다.

---p.332

추천평

어린 시절 친구들과 야산에 올라 캐 먹던 칡뿌리가 생각납니다. 씹을수록 달큼하게 목을 적시던 그 즙은 허기와 갈증을 단박에 씻어 주었습니다. 석천이라는 삶과 영혼을 투과하여 나온 이 말씀들은, 한여름 뙤약볕을 시원하게 식혀 줄 진한 칡뿌리 맛과도 같습니다.
- 황현수 (대기리교회 목사, 석천을그리는사람들 대표)

김종수 목사님은 그의 마지막을 몰랐습니다. 하지만 목사님은 늘 매일매일을 마지막 안에 있는 오늘로 사셨습니다. 그 마지막 원고를 오늘 다시 보며 그분의 마지막 삶을 나의 마지막 삶으로 살아내고자 합니다. 김종수 목사님의 마지막 살기요, 나의 마지막 살이입니다. 그는 언제나 우리의 삶 가운데 마지막 삶으로 살아있습니다.
- 이석주 (하늘샘교회 장로)

김종수 목사님의 설교에는 바로 그것이 있습니다. 영혼을 흔들어 깨우는 힘이었습니다. 요나가 머물렀던 물고기 배 속의 어둠 같은 깊음, 고요 그리고 그곳에서만 가능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한 자가 뭍으로 뱉어진 뒤 외치지 않을 수 없는 운명에서 비롯된 힘이랄까요. 건성으로 외쳐도 니느웨 온 도성의 모든 생명을 참회하게 하는 그 힘 말입니다. 그리고 선포하는 순간만큼은 모든 것을 하나님의 권한에 맡기고 그저 통로로 존재하는 무책임의 자유⋯, 목사님은 그 설교의 기쁨을 갈수록 더욱 갈망하셨습니다. - 김경희 (동안교회 목사, 석천을그리는사람들 총무)

리뷰/한줄평0

리뷰

첫번째 리뷰어가 되어주세요.

한줄평

첫번째 한줄평을 남겨주세요.

17,100
1 17,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