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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대지의 명당에서 영혼의 도선사로, 40년 배웅의 길을 열며PART 1. 붉은 황토가 가르쳐준 지혜1. 대지의 품에서 배운 생사의 이치2. 영적 가계(家系)에서 길러낸 수행의 힘3. 전문가의 길, 기본에서 법도(法)를 정립하다4. 수행의 길, 흙의 마음을 읽는 눈을 뜨다PART 2. 40년 실무로 닦은 배웅의 길1. 염습(殮襲)과 입관(入棺): 육신을 신(神)으로 모시는 예법2. 발인(發靷)과 운구(運柩): 하늘길을 여는 소리와 문양3. 매장(埋葬)과 하관(下棺): 대지(大地)와 육신이 하나 되는 발복의 기술4. 풍수(風水)와 조성(造成): 땅의 마음을 읽고 명당(明堂)을 짓는 안목5. 다비(茶毘)와 화장(火葬): 불의 꽃으로 피어나는 해탈의 기술PART 3. 잃어버린 명당, 어떻게 복원할 수 있나?1. 무너진 풍수와 편리주의의 덫2. 세계의 지혜, 타산지석으로 삼다3. 명장의 해법: 화장 시대의 명당 설계PART 4. 깡통장례를 넘어 영성 독립으로1. 굴절된 역사와 규격화된 죽음2. 장례 문화의 재발견3. 동기감응을 위한 복원 노력4. 시신(屍身) 없는 죽음과 ‘깡통장례’의 비극5. 영혼을 부르는 의례, 초혼장(招魂葬)을 짓다PART 5. 상주가 되어 완성한 천년의 의례1. 아버지를 하늘로 쏘아 올린 영성 대축제 ‘무무불재’2. 명장의 손끝으로 완성한 ‘정석 장례’의 실전 매뉴얼에필로그. 40년 명장의 길을 돌아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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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루가 된 죽음 앞에 서서: ‘처리’가 아닌 ‘모심’을 향한 고해성사김진태(장묘풍수명장)산 자들의 편리를 위해 죽은 자들은 지하실 냉장고로 숨어들었다. 4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장묘와 풍수, 제의의 현장을 지켜오며 내가 목격한 것은 서글프게도 ‘효(孝)의 증발’이었다. 우리는 지금 고인을 모시는 것이 아니라, 죽음을 ‘처리’하고 있다.대한민국은 세계 유례없는 화장(火葬) 대국이 되었다. 국토는 좁고 관리할 손길은 부족하니 화장은 피할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일지 모른다. 하지만 문제는 화장 그 자체가 아니다. 화장 이후 우리가 행하는 ‘파괘(破壞)’의 행태다. 유교 문화권인 중국, 일본, 베트남 중 오직 우리만이 화장한 유골을 다시 가루 내어 형체를 완전히 없애버린다.분골(粉骨). 뼈를 가루로 만드는 그 순간, 조상과 후손을 잇는 영적 수신 체계인 ‘육방체계(六方體系)’는 처참히 무너진다. 형체가 사라진 죽음 앞에서 후손은 어디에 마음을 누이고, 어디를 향해 절을 해야 하는가. 가루가 된 고인은 산 자의 기억 속에서도 그렇게 빠르게 휘발되어 간다.현대 장례식장은 거대하고 화려해졌으나, 그 안에서 정작 ‘고인’은 소외되어 있다. 고인의 몸체는 차가운 지하실 안치실에 격리되고, 유족들은 별도의 분향소에서 영정 사진과 화려한 조화, 즉 ‘가체(假體)’만을 마주한다. 이를 나는 ‘별실별단(別室別壇)’이라 부른다. 고인이 계시지 않는 곳에서 사진을 향해 곡을 하는 이 기이한 풍경이 과연 제의의 본질인가. 편리함이라는 달콤한 유혹에 빠져 우리는 죽음을 박제하고, 고인을 시설 속에 수납해 버리는 반(反)예절의 길을 걷고 있다.내가 40년 실무를 통해 ‘초혼장(招魂葬)’과 ‘몸체 중심의 의식’을 그토록 강조해 온 이유는 단 하나다. 죽음은 끝이 아니라 영속적인 연결이기 때문이다. 화장을 하더라도 고인의 체계를 갖추어 모셔야 한다. 가루가 아닌 ‘인격적 존재’로 대우할 때, 비로소 제례는 살아나고 효의 근본이 바로 선다.편리함은 사람을 게으르게 만들고, 게으름은 정성을 갉아먹는다. 이제는 멈춰 서서 물어야 한다. 지하실 냉장고에 갇힌 고인에게 우리가 바치는 절이 진정 누구를 위한 것인지를. 가루가 되어 사라지는 것은 고인의 뼈만이 아니라, 어쩌면 우리 민족의 뿌리와 따뜻한 정서일지도 모른다.국가와 국민에게 간절히 호소한다. 이제 ‘시설 중심’의 장묘 행정에서 벗어나 ‘예우 중심’의 장묘 문화를 회복해야 한다. 고인을 다시 제의의 중심으로 모셔 오는 일, 그것이 40년 동안 장묘 현장에서 땀 흘린 한 노(老) 장인이 세상에 남기고 싶은 마지막 고언(苦言)이자 충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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