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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후쿠자와 유키치가 바라본 ‘대일본제국헌법=교육칙어’ 체제
1. 후쿠자와, 『문명론의 개략』을 스스로 배신하다―「일본 국회의 유래」, 「국회의 전도」 2. ‘대일본제국헌법=교육칙어’에 대한 찬미와 긍정 제2장 ‘대일본제국헌법=교육칙어’의 수용까지 후쿠자와의 발자취 1. 후쿠자와의 충효사상―유교주의 반대론의 내용 2. 초기 계몽기 후쿠자와의 한계와 변화의 징후 3. 보수사상의 확립―중기의 후쿠자와 유키치(1877~1894) 4. ‘대일본제국헌법’에 이르는 발자취―흠정·프로이센형·의회 권한 제한 5. ‘교육칙어’로 가는 길 6. ‘제국헌법=교육칙어’ 체제 확립 이후 후쿠자와의 발걸음 제3장 초기 계몽기 후쿠자와의 사상―“하늘은 사람 위에 사람을 만들지 않고”에 대한 재검토 1. 사상사 연구의 방법―마루야마 마사오의 경우 2. “하늘은 사람 위에 사람을 만들지 않고 사람 밑에 사람을 만들지 않는다고 한다” 3. 『학문의 권장』 초편의 자유론―고초동통의 강박교육론 4. 『학문의 권장』의 자유와 평등론―질록처분 반대의 건의서 5. 초기 계몽기 후쿠자와의 국가관·인생관―‘천부국권=국부인권’적 내셔널리즘 제4장 후쿠자와 유키치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근대 일본 최대의 보수주의자, 그 맨얼굴을 보다 1. 후쿠자와 유키치의 맨얼굴 2. 사상가 후쿠자와 유키치는 ‘전향’한 것인가 3. 마루야마 마사오의 후쿠자와 유키치 평가―사상가의 주체적 책임에 대한 일관적 무시 4. 근대 일본 최대의 보수주의자 후쿠자와 유키치 제5장 자료편―마루야마 마사오가 무시한 후쿠자와 유키치의 중요 논설 Ⅰ. ‘『문명론의 개략』=후쿠자와의 원리론’이라는 주장의 파탄을 보여주는 근거들 Ⅱ. ‘대일본제국헌법=교육칙어’ 체제 찬미와 적극적 긍정 Ⅲ. ‘대일본제국헌법=교육칙어’ 체제 관련 사상적 발자취 Ⅳ. ‘대일본제국헌법=교육칙어’ 체제 성립 이후의 후쿠자와 유키치 |
Jyunosuke Yasukawa,やすかわ じゅのすけ,安川 壽之輔
李香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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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근대의 스승’ 그 맨얼굴을 폭로한다
―“전형적인 시민적 자유주의자” vs “일본 최대의 보수주의자, 자본계급의 수호자” 백성을 “바보와 병신”이라 칭하며 종교로 마취시키라 일갈했던 후쿠자와 유키치. 배움을 지닌 가난한 백성이 가장 위험한 존재라며 자본가들의 각성을 요구했던 후쿠자와 유키치. 국권확장의 한 길에서 마지막 한 사람까지 천황의 말 앞에 쓰러져 죽어야 한다고 외쳤던 후쿠자와 유키치. “하늘은 사람 위에 사람을 만들지 않고 사람 밑에 사람을 만들지 않는다”는 그럴듯한 말에 취해 후쿠자와의 허상에 사로잡혀 있는 한, 일본은 왜 전쟁국가로 치달아야 했는지 진정한 통찰과 반성은 불가능하다! 저자 야스카와 쥬노스케는 전후민주주의세대의 허위의식을 통렬하게 비판하면서, 그들이 ‘일본 근대화의 스승’으로 떠받들었던 후쿠자와 유키치의 ‘가면’을 벗기는 데서 진정한 일본의 ‘전후’를 시작하고자 한다. 1970년작인 『일본 근대교육의 사상구조』를 시작으로 후쿠자와 유키치와의 ‘대결’을 시작한 그는 이후 네 권의 저작을 내놓으며 후쿠자와의 모든 텍스트를 무기로 후쿠자와라는 ‘신화’를 깨부수는 긴 싸움을 수행하고 있다. 이 책은 후쿠자와 유키치의 아시아 멸시와 침략주의를 거침없이 파헤쳤던 『후쿠자와 유키치의 아시아 침략사상을 묻는다』에 이어 국내에 두 번째로 소개된 야스카와의 저서로서, 후쿠자와 유키치 사상 전반에 걸친 무논리성과 기회주의, 약육강식과 지배권력 옹호의 후안무치한 맨얼굴을 폭로하고 있다. 일본 학계의 천황이라 불리는 마루야마 마사오, 현대일본의 사상적 리더는 왜 ‘후쿠자와 신화’의 선동가가 되었나 일본에서 후쿠자와 유키치가 근대를 선취한 위대한 계몽사상가로 추앙받고 있는 데는 마루야마 마사오의 몫이 지대하다. 후쿠자와 유키치의 수많은 저작들 가운데 입맛에 맞는 문장들을 취합하여 문맥과 상관없이 해석하고, 그와 맞지 않는 사실들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함구해버린 반쪽자리 연구였지만, 그것은 ‘마루야마 마사오’라는 이름의 권위에 힘입어 확고부동한 ‘정설’의 지위를 유지해왔다. 이 책의 필자 야스카와는 “일본에도 이렇게 위대한 민주주의 사상의 선구자가 있었다는 신화를 만들어 사회민주화를 장려하고자” 했던 마루야마의 선의를 한편 인정하면서도, “이런 정치적 의욕과 희망이 뒤섞인 안이하고 값싼 학문 연구로는 현실의 일본사회를 변혁할 수 없다”고 단호히 배격한다. 또한 ‘거짓된 신화’의 성립을 위해 마루야마로부터 무시당했던 후쿠자와의 발언들을 분야별, 시대순으로 일목요연하게 정리하여(제5장 자료편: 마루야마 마사오가 무시한 후쿠자와 유키치의 중요 논설) 마루야마가 만들어낸 허상과 대결시킴으로써 가장 학술적인 방식으로 ‘전후책임’을 짊어지려 하고 있다. 동시에 야스카와 쥬노스케의 다음과 같은 뼈아픈 지적은 일본 학계는 물론이요, 마루야마 마사오로부터 직접 사사하거나 그의 영향하에 학업을 이룬 한국인 연구자들에게도 그대로 해당된다. “후쿠자와의 사상과 정치관 분석을 크게 그르친 데 대한 학문적 책임은 일차적으로 명백하게 마루야마 마사오에게 있다. 그런데 그 마루야마는 패전 이듬해 1946년에 「초국가주의의 논리와 심리」를 발표하면서 일약 ‘시대의 총아’가 되고 ‘전후민주주의’를 대표하는 학자·사상가로 부상한 인물이다. 만약 누군가 마루야마의 후쿠자와론을 『후쿠자와 전집』에 나오는 후쿠자와 자신의 언설과 주의 깊게 대조하여 고찰했다면 이 책에서 해명한 마루야마의 허구를 쉽게 눈치챌 수 있었을 텐데, 아무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 결국 마루야마의 ‘명성’과 학문적 ‘권위’에 무릎을 꿇고 마루야마의 후쿠자와 오독을 추종해버린 전후일본을 대표하는 많은 저명한 연구자들도 그 학문적·사회적 책임을 면할 수 없다는 뜻이다.” 후쿠자와 유키치, 일본 극우파의 스승으로 다시 호명받다 ―아베 신조가 후쿠자와로부터 배우려고 하는 것 현재 일본에서 후쿠자와 유키치를 가장 드높게 찬양하는 이들은 아베 신조 수상과 전 일본유신회 대표 이시하라 신타로 등 ‘극우’ 정치가들이다. 아베 수상은 2013년 2월 말, 재선 이후 첫 시정방침 연설 [강한 일본을 창조한다]에서 후쿠자와 유키치의 “일신독립해야 일국독립하는 것”이라는 말을 인용하면서 말문을 열었다. 이 “일신독립해야 일국독립”한다는 말은 마루야마 마사오에 의해 “메이지 전기의 건전한 내셔널리즘”을 대표한다고 포장되었지만, 후쿠자와 자신이 전하고자 한 의미는 바로 “국가를 위해서는 재산을 잃는 것뿐만 아니라 하나밖에 없는 생명을 내던져도 아깝지 않다”는 국가주의적인 “보국의 대의”였다. 헌법 개정을 통해 국방군 창설을 이끌어내고자 하는 아베 신조가 전쟁국가의 침략주의 사상가였던 후쿠자와 유키치를 호명하는 것은 실로 후쿠자와의 사상에 충실한 ‘완벽한’ 인용이자, 중대한 사건이었다. 한편 아베의 동지인 이시하라 신타로는 2012년 말 중의원선거 가두연설에서 “여러분, 독립자존의 정신이 중요합니다!”라고 외치기도 했다. 후쿠자와가 말한 바 ‘독립자존’이란 자진해서 “만세일계의 제실”에 “충의”를 다하고, “자연히 발생하는 지극한 충정”으로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을 의미했다. 바야흐로 후쿠자와 유키치는 마루야마의 오독을 답습하고 있는 동아시아 시민사회의 ‘오해’를 뒤로 하고, 그의 진정한 사상적 계승자들과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바로 이런 시기에 일본이 전쟁국가로 회귀하지 않도록, 진정한 전후책임을 각성하고 동아시아 평화에 기여할 수 있도록 견제하기 위해서라도 일본 시민사화는 물론이요 동아시아 3국의 건강한 시민들의 각성이 필요하다. 후쿠자와 유키치는 과연 어떤 인물이었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