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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속 철학 풍경
마네·마그리트·푸코, 현대성의 기획자들
김분선
그린비 2026.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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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들어가는 말 5
감사의 글 8

1 은폐된 시선, 푸코와 벨라스케스 15
캔버스 안과 캔버스 밖의 교차된 시선
말할 수 없는 회화
거울에 은폐된 관념, 시대, 관계들

2 문자와 그림, 푸코와 마그리트(1) 33
기호와 이미지가 연속되는 이중 잠금장치
문자와 이미지, 이중 잠금의 해제
연속된 이미지의 배반

3 회화를 지배하는 원칙의 파기, 푸코와 마그리트(2) 55
텍스트와의 종속 관계를 파기하는 이미지
사유하는 관람자에게 허용된 틈새
말의 자리를 대신하는 이미지

4 공간들, 푸코와 마네(1) 79
캔버스 위로 펼쳐진 낯선 공간들
은폐함으로 드러나는 분할된 공간
거울에 은폐된 관념, 시대, 관계들

5 인물들, 푸코와 마네(2) 99
인물의 모호성
관계의 모호성
시선의 모호성

6 사건들, 푸코와 마네(3) 115
재현하지 않음으로 재현하기
진실과 은폐
캔버스 너머의 존재들

7 마네의 현대성, 푸코와 마네(4) 135
감상자의 자리
거울과 재현, 재현과 거울
변형된 재현의 코드

8 푸코의 공간: 헤테로토피아 161
유토피아, 디스토피아, 헤테로토피아
유토피아의 거울상을 재현하는 헤테로토피아
변칙된 공간이 주는 불안

9 푸코의 시간: 헤테로크니아 181
시간 속에서 구현되는 공간, 헤테로적 시간
분할적이면서 영속적인 시간의 경험
불안이 재생산되는 자기의 시간

10 현재성의 기획자들: 마네, 마그리트 그리고 푸코 197
현재적 공간의 기획자, 에두아르 마네
현재적 시간의 기획자, 르네 마그리트
현재의 철학을 여는 기획자, 미셸 푸코

미주 219
참고문헌 221

저자 소개 1

무엇이 행복한 삶인가에 대해 맹렬히 고민하고 있고 행복한 삶보다 의미 있는 삶을 살고자 철학을 연구하고 있다. 중앙대학교 철학과에서 학사와 석사를 마치고 동 대학원에서 「푸코의 배려 주체와 자기 배려의 윤리(Foucault’s care subject and Ethics of self-care)』(2017)로 박사 학위를 마쳤다. 현재 중앙대, 홍익대, 숭실대에서 철학을 가르치고 있다. 한국해석학회 연구이사, 한국인터넷윤리학회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주요 논문으로 「푸코의 윤리학 기획』, 「자기 배려주체의 공간, 헤테로토피아』, 「포스트 휴먼 시대, 인간 지위에 대한 고찰』, 「담
무엇이 행복한 삶인가에 대해 맹렬히 고민하고 있고 행복한 삶보다 의미 있는 삶을 살고자 철학을 연구하고 있다. 중앙대학교 철학과에서 학사와 석사를 마치고 동 대학원에서 「푸코의 배려 주체와 자기 배려의 윤리(Foucault’s care subject and Ethics of self-care)』(2017)로 박사 학위를 마쳤다. 현재 중앙대, 홍익대, 숭실대에서 철학을 가르치고 있다. 한국해석학회 연구이사, 한국인터넷윤리학회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주요 논문으로 「푸코의 윤리학 기획』, 「자기 배려주체의 공간, 헤테로토피아』, 「포스트 휴먼 시대, 인간 지위에 대한 고찰』, 「담론의 형성 방식에 내재된 차이와 차별의 문제』, 「자기 배려 윤리의 논점에서 본 ‘분노’』, 「생명관리정치에서 죽음관리정치로』 등이 있다. 연구 영역은 프랑스 현대 철학 및 현대 응용 윤리이고 <쾌락과 욕망의 윤리학>에 대한 집필을 기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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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6년 07월 07일
쪽수, 무게, 크기
224쪽 | 140*210*13mm
ISBN13
9791194513773

책 속으로

푸코는 〈시녀들〉에서 여러 가지 문제를 발견한다. 그는 ‘확인 불가능한’ 것들, 즉 모호한 문제들을 파악하며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푸코는 화가의 위치를 분석하면서 어떤 한순간 관람자가 된 푸코 자신이 다른 영역으로 빠져나와 있다고 표현한다. 푸코가 발견한 확인 불가능한 순간은 아마도 바로 지금, 우리와 화가의 교차된 시선이 마주하는 그 순간일 것이다.
--- p.18

마그리트는 칼리그람의 형식을 따르는 방식으로 칼리그람의 규칙을 깨부수고 있다. (…) 그렇다면 우리는 낯선 허공에 대고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고 소리치는 것과 같이 허공에 쓰인 의미문을 읽고, 그것을 이미지와 합치시키는 자체적 노력을 열심히 하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 이렇게 볼 때, 파이프를 지시하는 문장과 한 캔버스에 자리 잡은 파이프의 형상은 우리를 혼돈에 빠뜨리려고 화가가 설정한 익살맞은 속임수의 한 요소일 뿐이다.
--- pp.42-43

우리는 마네의 공간에서 보이는 것들은,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보고 싶어하는 다소 관음증적인 욕망을 자극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비밀의 공간을 찾는 동안 우리는 한 가지 중요한 마네만의 공간 특성을 알게 되었을 것이다. 바로 분할된 공간들은 연속적이지 않으며, 공개적으로 보이게 그려진 1층의 장면은 아주 일부만을 우리가 파악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이로 인해 우리는 정작 보이지 않는 2층 공간에 대한 의문을 품게 된다는 사실 말이다.
--- pp.92-93

〈올랭피아〉에서 마네의 고약함은 인식보다 발빠른 욕망을 끄집어내는 도구로 여인의 몸을 택했다는 점이다. 그것도 가장 자극적이고 직접적인 육체를 보여 주는 도발적이고 당당한 시선의 올랭피아의 모습으로 말이다. 예상치 못한 인물과의 만남, 보고 싶지 않은 나의 내면의 발빠른 욕망, 감추고 싶은 것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오는 순간들, 지각의 발은 욕망보다 늦어서 조명 앞에 모든 것이 드러난 이후에야 뒤늦게 자신의 모습을 자각하게 되는 것이다. 마네는 우리를 다시 한번 희롱하고 있다.
--- pp.110-111

푸코는 단지 마네의 다소 장난스럽고 창의적인 기법에 취해 마네의 공간을 살피고 평을 하는 것이 아니다. 그는 철학적 관점에서 마네의 그림을 조망하고 있다. 마치 미래인인 듯 사유하는 마네와 만나면서 어느새 마네의 공간 속에 서 있는 것이다. 푸코가 보는 마네의 그림은 공간의 불균질성을, 중첩되고 분할된 공간의 형태로 그대로 보존하여 재현한 그림이다. 그런 배경에서 마네의 그림은 단지 거울상에 대한 재현이 아니다. (…) 어찌 보면 마네는 재현을 재현함으로써 실제를 표현한 것인지도 모른다.
--- p.159

푸코는 낯선 여행지, 어린아이의 인디언 천막, 다락방, 손님이 찾아드는 사랑방을 헤테로토피아의 예시라고 말한다. 그런데 이러한 푸코의 예는 헤테로토피아의 독특한 특징을 파악하 게 한다. 낯선 여행지, 인디언 천막, 다락방, 사랑방은 모두 우리 일상에서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이다. 그런데 이 모든 공간은 고정된 공간으로 활용되는 안정적 공간이 아니다. 즉 일상적 활동을 통해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현실적 공간이지만, 늘 그곳에 있는 그런 공간은 아니다.
--- p.167

박물관은 역사의 기록 창고가 아니라 많은 ‘시간 분할자’들의 시간을 한데 묶어 둔 ‘다른 시간’의 ‘다른 공간’이다. 박물관은 그 자체로 헤테로토피아이면서 동시에 헤테로크니아적 경험을 열어 준다. 특히 박물관과 도서관은 헤테로적 시간을 한데 모아 헤테로적 공간에 재배치한 것으로, 영속적 질서를 구현했다는 특징이 있다. 현재와 미래, 현재와 과거, 현재와 현재 그 어디쯤에 중첩된 채 남겨진 시간이 바로 헤테로크니아이다(9. 푸코의 시간:
--- p.190

푸코는 우리의 삶이 램프처럼 아름다울 수는 없느냐고 묻는다. 그리고 예술가들이 전문적으로 예술 작품을 만들 듯이, 우리의 삶도 그럴 수는 없는지 묻는다. (…) 푸코는 왜 우리의 삶이 램프처럼 아름답기를 바랐을까? 아마도 그가 생각한 램프는 언제든 불을 밝힐 때 그 의미를 구현하는 현재성을 표현한 것이 아닐까? 푸코가 기획한 아름다운 삶은, 불을 밝힌 램프처럼 자기 삶을 밝히는 현재의 순간들로 가득 채워 구성되는 그런 그림일 것이다.

--- pp.215-216

출판사 리뷰

그림을 완성하는 것은 누구인가

캔버스 밖에서 시작되는 철학

우리는 그림을 관람하는가,
아니면 완성하는가

그림은 언제 완성되는가. 화가가 마지막 붓질을 마치는 순간일까, 액자에 걸려 미술관 벽에 놓이는 순간일까, 아니면 누군가 그 앞에 멈춰 서서 자기만의 시선으로 그림을 다시 보기 시작하는 순간일까. 『그림 속 철학 풍경』은 이 낯설지만 근본적인 질문에서 출발한다. 이 책은 벨라스케스, 마그리트, 마네의 그림을 해설하거나 푸코의 철학을 쉽게 풀어 설명하는 데 머물지 않고, 그림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 자체를 하나의 철학적 사건으로 바꾸어 놓는다. 우리는 그림을 관람하는가, 아니면 완성하는가.

푸코는 『말과 사물』의 첫 장을 벨라스케스의 〈시녀들〉로 연다. 한 화가가 캔버스 앞에 서 있고, 공주와 시녀들, 난쟁이와 개, 어렴풋한 거울 속 국왕 부부가 한 공간에 놓여 있다. 그런데 화가는 그림 속 인물만이 아니라 캔버스 밖의 관람자를 본다. 그 순간 관람자는 그림을 바라보는 자에서 그림 속 빈자리를 채우는 참여자가 된다. 푸코가 이 그림에서 발견한 것도 바로 그 빈자리였다. 그곳은 아무것도 없는 공백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시선과 권력, 재현의 질서가 교차하는 자리이다. 그림은 그 빈자리를 끝내 메우지 않은 채 우리를 기다린다.

보이는 것과 말해지는 것 사이,
마그리트가 흔든 재현의 질서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마그리트의 〈이미지의 배반〉 앞에서 우리는 익숙한 혼란을 경험한다. 파이프가 그려져 있지만, 그림 아래에는 파이프가 아니라고 적혀 있기 때문이다. 눈은 파이프를 보는데, 언어는 그것을 부정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믿어야 할까. 『그림 속 철학 풍경』은 이 오래된 질문을 단순한 언어유희나 초현실주의의 역설로 설명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미지와 언어가 서로를 지시하고 흔드는 틈새에서 철학이 시작된다고 말한다.

푸코가 마그리트에게서 발견한 것은 그림과 말의 대립이 아니라, 둘 사이에 남겨진 열린 공간이다. 그림은 말의 설명이 아니고, 말 역시 그림의 정답이 아니다. 둘은 서로를 배반하면서도 새로운 의미를 생성하고, 그 빈틈을 관람자의 사유가 메운다. 저자는 이 과정을 따라가며 우리가 무엇을 보고 무엇을 안다고 믿는지를 끊임없이 의심하는 태도가 바로 철학임을 설득력 있게 보여 준다.

현대는 그림 속에서 시작된다
마네가 일으킨 시선의 전환

이 책의 중심에는 마네가 있다. 푸코는 마네를 근대 회화의 혁신가를 넘어 ‘현대성의 기획자’로 위치 지운다. 저자는 그 이유를 마네의 공간과 인물, 사건을 따라 차근차근 설명한다. 그의 캔버스에서 공간은 더 이상 안정적인 원근법에 머물지 않고, 인물들의 관계 역시 분명하면서도 끝내 모호하게 남는다. 그림은 하나의 장면을 보여 주면서도, 그 장면을 바라보는 우리의 위치를 끊임없이 뒤흔든다.

푸코는 바로 이 지점에서 현대성의 시발을 본다. 현대성이란 새로운 시대를 선언하는 거창한 구호가 아니라, 세계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이 더 이상 하나의 중심에 머물 수 없다는 자각이다. 마네의 그림은 우리를 향해 시선을 돌리고, 우리는 더 이상 그림 밖에 머물 수 없게 된다. 현대성은 그렇게 하나의 시대가 아니라, 관람자의 자리가 바뀌는 순간 비로소 시작된다.

현재를 다시 그리는 푸코,
삶이라는 미완의 캔버스

벨라스케스가 관람자를 그림 속으로 불러들이고, 마그리트가 이미지와 언어 사이의 틈을 열어 보이며, 마네가 관람자의 자리를 뒤흔들었다면, 푸코의 사유는 마침내 그 시선을 우리 자신의 삶으로 돌려놓는다. 저자는 푸코의 ‘헤테로토피아’와 ‘헤테로크니아’라는 개념을 통해, 공간과 시간이 하나의 질서로 고정된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분할되고 중첩되며 새롭게 구성되는 것임을 보여 준다. 그림 속 거울과 캔버스, 시선과 공간은 더 이상 미술의 요소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세계를 경험하고 이해하는 방식 자체를 드러내는 철학의 언어가 된다.

“모든 사람의 삶이 예술 작품이 될 수는 없을까? 왜 램프나 집은 예술 대상이 되어야 하지만, 우리의 삶은 그럴 수 없는 것인가?” (푸코, 1982)

그렇다면 『그림 속 철학 풍경』이 도착하는 곳은 어디일까. 종착지는 미술관도, 철학사의 한 장면도 아니다. 그곳은 지금 이 순간, 우리가 살고 있는 삶이다. 우리는 하나의 세계를 살아간다고 믿지만, 우리의 삶은 서로 다른 시선과 관계, 기억과 시간이 끝없이 교차하는 거대한 캔버스 위에 놓여 있다. 저자는 푸코의 입을 빌려 다음과 같이 묻는다. 우리의 삶 역시, 또 다른 응시를 기다리는 하나의 미완의 캔버스는 아닐까. 결국 이 책이 다시 그리는 것은 그림이 아니라, 지금 우리의 시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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