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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홍과 광해군
조여항
동녘 2001.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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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1. 조식과 정인홍의 만남
2. 개혁의 바람이 불다
3. 기축옥사
4. 임진왜란
5. 의병대장 정인홍
6. 화의론
7. 전란 이후
8. 선조의 전위
9. 광해군 집권기의 개혁 정치
10. 인조반정

저자 소개

저자 : 조여항
경남 함안에서 출생하였고, 경상대학교 영문과 및 동 대학원 철학교육과를 졸업했다. 현재 자영업에 종사하고 있으며, 역사 인물에 대한 연구에 힘을 쏟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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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01년 03월 31일
쪽수, 무게, 크기
348쪽 | 462g | 크기확인중
ISBN13
9788972974284

책 속으로

정인홍이 조식의 문하에서 공부하던 당시는 문정왕후를 비롯한 윤씨들의 폭정으로 전쟁이 일어났을 때를 제외하면 조선조를 통틀어 백성들의 생활이 가장 비참했던 시대였다. 대외적으로는 왜구가 떼를 지어 제주도를 침략해서 살육과 강도질을 일삼았으며, 어떤 때는 왜선 60 여 척이 선단을 이루고 다니면서 남해 연안을 분탕질하고, 심지어 중국의 남경까지도 자신의 안방처럼 드나들고 있었다.

이런 시대적 분위기 속에서 사림세력은 이른바 '4대 사화'로 큰 희생을 치르면서도 굽히지 않고 세력을 키워 나가고 있었다. 정인홍의 시대에 이르러 지식인 사회는 크게 세 부류로 분화되고 있었는데, 조정에 몸을 두고 봉건 체제와 신분제 강화를 꾀하는 이기론자로 현실 안주적인 이언적, 이황 등이 있었고, 벼슬에 나가되 출처를 중시하며 정치적 개혁을 주도하고자 한 이준경, 노수신 등이 다른 한 편에 있었으며, 또 재야에 처하면서 정치적 개혁 세력을 길러 내고자 했던 조식, 성운 등이 있었다.

조식은 출처관이 분명한 이준경, 노수신 등과는 교류했으나 현실 안주적인 이언적, 이황 등과는 인간 관계를 허여하지 않았다. 왜구의 노략질 뿐만 아니라 문정왕후와 윤씨들의 폭정 속에 탐관오리와 서리의 토색마저 가세해 민생은 날이 갈수록 피폐해졌고, 참다못해 일어난 임꺽정의 난 등 민중의 소요로 사회는 더욱 불안에 휩싸이게 되었다.

--- p.132

명나라까지 단숨에 밀어붙일 것 같았던 왜군의 기세는 명나라 군대의 참전과 조선 수군 및 의병의 활약으로 군수품 보급에 장애가 생기면서 평양에서 주춤거리고 있었다. 거기에 날씨도 매서운 겨울로 접어들고 있었다. 그러나 왜군에게 가장 골칫거리는 뭐니뭐니해도 의병이었다. 명나라 군과 수군은 어느 정도 정보 파악도 되는 데다 자신들이 이동하거나 공격하지 않으면 손실을 입을 염려가 없었으나, 의병들은 시도 때도 없이 나타나 공격해 와 심리적으로 큰 불안을 안겨 주었기 때문이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조직적으로 활동하는 의병은 고령, 성주 지역의 정인홍 부대와 의령의 곽재우 부대였다.

왜군은 평양에서 실리를 모색했다. 명나라도 왜가 자기 나라에까지 침략해 올까 두려워 참전은 했지만, 벽제관 전투에서 패한 뒤 자국의 군사들이 희생되는 것을 감수하면서까지 애써 싸우려고 하지 않았다. 명군이나 왜군은 모두 적당한 선에서 휴전을 하는 것이 상책이라고 내심 생각하고 있었다. 왜는 조선의 한강 이남 땅을 할양받는 조건을 제시하면서 명나라와 교섭을 벌였고, 명은 국가 재정의 궁핍과 국내 사정으로 조선 땅을 넘겨 주더라도 전쟁을 빨리 종결짓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pp.175~176

출판사 리뷰

조선 중기인 16세기 조선 유학은 퇴계 이황과 남명 조식이 양대 산맥을 형성하고 있었다. 이황이 안동을 중심으로 제자들을 키워내고 있을 때 조식은 합천을 중심으로 인재를 양성하면서 독특한 학풍을 세웠다. 특히 조식은 만년에 지리산에 은거하면서 정인홍, 최영경 등 수많은 인재를 배출하여 지리산은 안동과 더불어 유학의 중심지로 자리잡았다. 조식은 학문을 추구하는 방향에서 이황과 달랐다. 조식이 실천을 중시한 반면 이황은 이론화에 치중하였다. 또 조식은 성리학에 얽매이지 않고 천문 지리, 의학, 노장 사상 등을 두루 섭렵하였다. 의리와 명분에 입각한 실천을 중시하는 조식의 학풍은 훗날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제자들에 의해 더욱 빛을 발하였다. 조식의 제자들은 서부 경남 각지에서 의병을 일으켰는데, 그 가운데서도 유명한 인물이 정인홍, 곽재우, 이로, 오운, 조종도 등이다. 특히 정인홍은 조시의 수제자로서 이이첨 등과 함께 광해군을 도와 사회 개혁에 나서다가 인조반정 이후에 역적으로 처형되었다. 이때 조식과 정인홍의 저술들이 불태워지거나 유실되어 그들 사상의 전모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후대에 정인홍을 높이 평가한 인물은 단재 신채호이다. 신채호는 사회 개혁의 정신을 정인홍에게서 찾으려 하였다. 신채호는 건강이 악화된 후 홍명희에게 보낸 편지에서 구체적으로 구상중이던 '정인홍 약전'이 자신의 죽음과 함께 땅에 묻히는 것을 매우 애석해 했다. 최근 들어 학자들 사이에서 조식과 광해군을 재평가하는 움직임이 있지만 자료 부족과 아직까지 지속되는 학파와 가문의 문제 때문에 정인홍에 대한 연구는 거의 없는 상태이다.
리뷰 총점 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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