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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 상상력 이론의 선구자들
1부 / 상상력 상상력의 철학 상상력의 질서와 분류체계 2부 / 원형 원형과 상징 원형적 사고 3부 / 신화 신화비평과 신화분석 신화와 문학신화 결론 / 새로운 상상력을 위하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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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력 없이 다음 시대로 도약할 수 있을까
서구 지성사에서 ‘상상력’은 오랫동안 신뢰할 만한 구석이 없는 기능 정도로 취급받아왔다. 하지만 이성의 세계가 오기 전, 신화적 세계의 주인공은 상상력이었다. 어쩌면 신화적 세계를 걷어낸 ‘이성’의 주도면밀한 기획 하에 상상력은 이성의 타자로, 그것도 ‘무규칙’, ‘불규칙’이라는 단어가 들러붙어 이성을 더욱 빛내주는 타자로 전락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곰곰 생각해보면 우리는 우리 이전 세대들의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던 세계에서 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다음과 같은 질문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상상력 없이 다음 시대로 도약할 수 있을까?’, ‘새로운 발견의 순간에 빛을 발한 것은 과연 이성의 합리적 추론뿐인가?’, ‘상상력의 도움 없이 이성만으로 운영되는 세계는 과연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상상력 철학의 선구자 카를 구스타프 융 이성이 인류의 특성임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이성이 인류의 사고방식을 지배한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그보다 훨씬 더 긴 시간 동안 인류는 신화적 상상력의 세계 속에서 살았다. 정신분석학자 카를 구스타프 융은 자신의 정신분석학 이론에서 인간의 ‘집단무의식’을 ‘원형’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했다. 의식의 세계 그 아래에서 의식을 끝없이 추동하는 그 무엇의 세계가 존재한다는 그의 주장은 의식 또는 이성의 세계 저편에 존재하는 인류 보편의 신화적 세계를 꿈꾸게 해주었다. 이 때문에 그를 정신분석학자로만 보아 상상력 철학의 계보에서 빠트리는 것은 큰 오류이다. 새로운 철학으로서의 상상력을 발견한 가스통 바슐라르 ‘몽상의 철학자’ 가스통 바슐라르의 이력은 과학철학자에서 시작한다. 어느 날 강의를 하던 중 한 학생의 도발적인 질문에 “사람은 살균된 세계[이성만으로 운영되는 세계]에서는 행복할 수” 없다는 점을 깨달은 그는, 창조의 원동력으로서의 인류의 상상력에 관심을 돌린다. “의지(volonte) 이상으로, 생의 비약(elan vital) 이상으로 상상력은 정신의 생산력 그 자체이다. 심리의 차원에서 우리는 우리의 몽상에 의해서 창조되어 있는 것이다.”, “상상력은 초인간성(surhumanite)의 능력이다. 인간은 그가 초인(超人)인 정도에 따라 그만큼의 인간이 되는 것이다. 인간 조건을 넘어서게 하는 경향들의 총체에 따라 인간을 규정해야 한다.”는 등의 언설을 남긴 그는, 인류에게 흙, 물, 공기, 불의 특성을 지닌 상상력의 세계가 존재한다는 ‘사원소론’을 제시하고, 상상력의 세계와 과학의 세계가 서로 뒤섞여서는 안 된다는(상상력의 세계를 보호하기 위한 의도적인 구분) 주장을 펼쳤다. 인류의 존재 안에서 상상계의 질서를 찾아낸 질베르 뒤랑 스승 바슐라르의 상상력 철학을 계승한 질베르 뒤랑은 스승의 한계를 비판하면서 자신만의 상상력 철학 체계를 하나하나 세워나간다. 그는 우선 바슐라르의 사원소론이 지닌 자민족 중심주의를 비판하는 데서 시작한다. “물질 원소에 고취된 몽상에 관한 그의 괄목할 만한 연구에서 바슐라르는 눈(雪)을 잊었다. 이는 상파뉴 출신의 인사(人士)에게 심각한 망각은 아니다.” 알프스나 알레스카 지역의 사람들의 경우 눈과 관련한 상상력 세계가 무궁무진하고 동양의 상상 세계는 이와는 또 다른 요소들로 이루어졌다는 지적을 하면서, 뒤랑은 인류 자체에서 상상계의 근거를 찾는다. 다른 무엇보다 다양한 ‘몸짓’들이 인류에게 가장 근원적이라는 결론에 이른 그는, 자세를 유지하기 위한 몸짓(자세 지배반사), 영양을 섭취하기 위한 몸짓(영양 섭취 지배반사), 성적인 몸짓(짝짓기 지배반사) 등 인류의 세 가지 기본 몸짓을 정리한다. 그리고 그에 대응하는 상상계의 법칙으로 ‘분열형태 구조’, ‘신비 구조’, ‘종합 구조’라는 상상계의 기본 도식을 세운다. 인류의 행복을 위한 상상력 그렇다면 이들은 왜 이토록 상상력에 매달렸을까? 바로 20세기 역사의 비극 때문이다. 상상력이 거세된 건조한 이성은, 마치 자본이 그러한 것처럼, 자체의 법칙만을 따라 질주하기 마련이고 그 와중에 인류는 단지 도구적 존재로 소외되고 만다.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지식들보다는 가치 있는 의미들로 충만한 세계, 인류는 그 세계에서 진정한 행복을 누릴 수 있지 않을까? 융, 바슐라르, 뒤랑 외에 이 책에서 소개된 샤를 모롱, 레이몽 트루송, 앙드레 시가노스 등의 비평가들이 상상력 철학과 그 결과물들을 신화, 상징, 문학에 접목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이러한 시도들을 이성의 독재에 대한 일정한 반작용으로 볼 수도 있지만, 인류가 이성과 상상력이라는 두 발로 땅을 짚고 설 때, 그리하여 의미의 세계가 제 목소리를 낼 때 인류의 비참이 되풀이될 가능성이 낮아진다는 것만은 분명 사실이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지금 “모든 땔감을 다 사용하여 불을 지펴야” 할 필요를 느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