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펴내면서 _6
들어가며 _8 제1장 생명치료와 생명철학 우주 평화와 인간의 행복을 갈구하는 법화사상 _23 생명치료의 근본 목적 _26 말법 중생구제는 법화경 가르침 뿐 _29 실패하는 이유 안 되는 이유 _35 정신세계를 바라보는 생명철학 _39 숙업을 바꾸는 것은 불교 철학밖에 없다 _42 부정부패는 생명의 고장 때문 _45 색향미미(色香美味)의 양약(良藥)이 어떠하냐? _47 3천 년 전에도 생명의 병을 고쳤다 _50 일불승(一佛乘)이 대우주 양의(良醫) _53 진정한 선진국과 선진국민이 되는 길 _56 생명철학을 왜곡해서는 안 돼 _60 업병도 사라지게 하는 기도 _63 정신계가 건강하지 않으면 육신도 병이 든다 _66 생명치료는 36.5도의 소우주를 만드는 것 _69 마음의 때를 벗겨 거울을 찾는 것이 생명치료 _72 법화경은 생명철학(1) _77 법화경은 생명철학(2) _80 법화경은 생명철학(3) _84 법화경은 생명철학(4) _87 법화경은 생명철학(5) _91 법화경은 생명철학(6) _94 불행을 밀어내고 행복을 찾게 하는 힘 _96 과학이 발전하면 위대한 불법은 증명된다 _99 과거세의 탁업(濁業)을 당겨 명복(冥伏)하는 것이 수행 _103 불력과 법력의 주파수를 모르는 수행 _109 숙명은 소리 없이 공덕은 소문 없이 _112 법화경은 삼세를 가르치는 스승 _115 다보여래가 말법 법화경의 증인 _118 법보(法寶)가 생명을 치료한다 _123 불법은 ‘내 탓’을 가르치는 생명철학 _126 법화경 비방의 죄업과 찬탄의 업보를 가르침 _128 삳다르마푼타리카수트라의 실체를 밝히다 _138 성불하는 지혜는 과연 무엇인가? _143 미진(微塵)의 점(點) 펼치면 대우주 생명 _146 일념삼천의 법문은 생명철학의 대명사 _149 5시8교(五時八敎)에 나타난 불전(佛典) _153 생명세계의 번뇌를 가르치는 팔풍(八風) _158 권지품제13의 20행의 게언(偈言)은 재가승에게 준 것 _163 갱사수명(更賜壽命)의 공덕 _167 원겸어업(願兼於業)의 정신 _170 악멸(惡滅) 선생(善生)이 공덕 _174 불법의 불이(不二)사상 _178 여래비밀(如來秘密) 신통지력(神通之力) _183 십사비방(十四誹謗) _186 무의왈신(無疑曰信) _190 선(善)의 일념삼천과 악(惡)의 일념삼천 _193 사겁(四劫)의 성(成)주(住)괴(壞)공(空) 원리 _196 부처님 복과십호(福過十號) _200 삼장사마(三障四魔)의 불도수행 방해 작용 _203 불경보살(不輕菩薩)이야말로 인성(人性)교육의 표상 _208 삼세(三世)의 생명은 생사불이(生死不二)(1) _212 삼세(三世)의 생명은 생사불이(生死不二)(2) _216 금강불괴의 일념으로 난(難)을 뛰어넘자 _220 불안(佛眼)으로 바라본 삼재(三災)와 칠난(七難) _222 가족에게는 이해타산을 버리는 생명으로 _226 생명의 꽃을 피우기 위하여 _229 제2장 인생은 업보의 고뇌 숙업은 역사처럼 계속 흐른다 _235 동생천 동명천에서 배운다 _238 거역할 수 없는 운명이 왔을 때는 받아들여야 _241 업(業)을 바꾸면 일체가 변한다 _245 신(神)의 선택을 거부한다 _248 이기주의 생명에 불행이 숨어있다 _253 숙습(宿習)이 나의 앞길을 가로막는다 _256 스스로 만들고 괴로워하는 삼악도(三惡道) _260 생명그릇과 복운(福運) _263 외가(外家)가 중요하다는 것은 _266 태아에서 나타나는 성격과 식성(食性) _269 사악(四惡)이 오래가면 불치병이 온다(1) _273 사악(四惡)이 오래가면 불치병이 온다(2) _278 사악(四惡)이 오래가면 불치병이 온다(3) _282 사악(四惡)이 오래가면 불치병이 온다(4) _286 빙의 현상은 육도윤회를 보여 주는 높은 가르침(1) _291 빙의 현상은 육도윤회를 보여 주는 높은 가르침(2) _296 빙의 현상은 육도윤회를 보여 주는 높은 가르침(3) _299 빙의 현상은 육도윤회를 보여 주는 높은 가르침(4) _302 빙의 현상은 육도윤회를 보여 주는 높은 가르침(5) _305 늘어나는 신경정신계 질환 _308 마음을 내려놓으면 50% 치료 효과 _312 초자연적인 현상을 업보로 받아들이고 기도해야 _316 불법으로의 생명치료(1)우울증과 불면증 _321 불법으로의 생명치료(2)빙의 현상 _326 불법으로의 생명치료(3)사고방식의 변화 _330 생명의 창고가 비어있으면 정신계 질병이 온다 _333 빙의 걸린 시간만큼 정신적인 성장이 느리다 _338 현재의 내 모습은 숙업 숙습의 결과 _342 악업(惡業) 탁업(濁業)을 가르친 법화경 _346 임종으로 끝나지 않는 삼세의 업보 _349 갱사수명 대자대비의 공덕 _353 숙명에 얽매이다 보면 때를 놓친다 _357 찰나에 나타나는 일념삼천의 고뇌와 복 _362 공력(功力)을 모르면 부처님을 알 수 없다 _372 내면의 세계가 풍요해야 행복하고 아름다운 인생 _376 자신과 너그럽게 타협하지 말아야 한다 _381 불법의 가르침은 도리와 상식이다 _385 낮은 가치관을 높게 만드는 실천이 기도 _389 진정한 수행은 자신을 낮추는 것 _393 3천 년 전의 남녀 평등사상 _397 나를 찾는 수행, 나는 누구인가? _401 임종을 가르치는 불법의 도리 _405 눈 뜬 수행으로 세상을 밝게 해야 _409 수행이란 숙습의 사고방식에서 벗어나는 것 _413 끝맺는 말 _418 마무리 맺는 말 불법의 3대 불변의 법칙은 숙업, 윤회, 인연이다. 종교나 사상과 철학에 상관없이 받아야 하는 인간만의 고뇌다. 인간의 운명은 자신이 만든 선악의 결과물인 업보에서 어느 누구도 비켜갈 수는 없다. 그러나 사회는 이런 불변의 법칙을 무시하고 쉬운 방법을 찾아 방황하고 있다. 불교는 미신과 같은 차원이 아니지만 현실은 불교라는 테두리에 아무 것이나 집어 넣고는 부처님의 공덕과 연결시켜 공짜만 바라는 신앙으로 저급하게 만들어 버리고 말았다. 자신이 만든 탁한 업보를 자신이 바꿀 수 있음도 불구하고 이런저런 망발로 부처를 핑계로 부정한 일을 벌이고 있는 실정이다. 불법은 헌법과 같이 하라는 것과 하지 마라는 것의 구별을 먼지 하나도 들어갈 틈이 없을 정도로 조밀하게 가르치고 있다. 그러나 불교에서조차 법화경과 부처님을 방석 밑에 깔고 앉아 인간이 대행을 하고 있다. 이를 바로 잡지 못하면 인간은 불행으로 들어가고 개인은 물론 가족들이 힘들어지게 된다. 말법의 시대에는 악귀에 당하는 인간이 많아져서 인간성 말살의 불행이 넘쳐난다고 하였다. 이제 불법에서 하라는 것을 알리고 하지마라는 것을 집어 치우게 하는 법화경의 정신과 공덕을 알려야 한다. 법화경 보살도는 모든 인간이 행복해 지는 유일한 방법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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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자신의 업보를 깨닫는 것
불교를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불경을 공부하는 곳인가? 아니면 공덕을 얻는 곳인가? 또 아니면 천도재로 귀신을 해결하는 곳인가? 이리저리 생각하여도 미신 같은 느낌이 드는 곳인가? 고리타분한 곳인가? 무엇을 달라고 비는 곳인가? 종교라는 기준에서도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불교의 현실이다. 그것은 불경이 많아서도 아니고 부처라는 불상도 아닐 것이다. 불법을 조화롭게 접목하지 못하고 설명하지 못하고 실천하지 못하기 때문에 불교가 혼란스럽고 번잡하게 이루어져서 지금에 이르렀다. 가르침은 단순한데 현실은 복잡하게 펼쳐져 있기 때문에 공덕이라는 의미만 자리를 잡은 것 같다. 불교는 인간의 업보를 가르치고 있다. 이유는 업보가 곧 인간의 행복을 가늠하는 잣대가 되기 때문이다. 업보가 왜 행복의 잣대가 되는 것인가? 업보 속에는 인간이 추량할 수 없는 선과 악이 담겨져 있기 때문이다. 법화경에는 인간의 업보를 밝히고 업보를 바르게 하는 비법이 숨겨져 있다. 업보를 치료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인생이 좀 더 행복해진다는 것이다. 이것을 생명치료라고 하는 것이다. 법화경은 생명철학이다. 삼라만상이 가지고 있는 근본 사상에서 생명을 움직이는 철학이고 특히 인간이 가지고 있는 정신세계는 법화경 양약(良藥)만이 치료가 되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가르치고 있다. 그러므로 불교는 이런 생명철학을 가지고 인간을 위한 등대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 인간이 사는 세상은 좀 더 화목하고 편안한 인생을 살 수가 있다. 왜 인간으로 태어났는가에 대한 의문을 던져 주는 생로병사는 이미 석존께서 의문을 가지고 몸을 던져 깨달은 것이고 이를 바탕으로 얻은 것이 인간이 가지고 있는 업보라는 것이다. 치료의 목적을 제시한 것이 생명철학이고 결과를 밝힌 것이 법화경이며 치료하는 것이 수행이라는 것이다. 법화경은 행복을 위한 처방전이다. 인생이라는 것은 업보에 따라 살게 되므로 이를 고치지 않으면 가지고 있는 업보대로 살게 된다는 것이다. 불교라는 위대한 철학을 재조명하고 인생의 등대로 삼아 고민만 하는 인생에서 벗어나라고 석존께서는 가르쳤다. 생명치료는 모든 사람에게 해당된다. 누구는 되고 누구는 안 된다는 논리가 아니다. 모든 사람들이 평등하게 적용받는 보편타당한 상식의 공덕이다. 불교를 미신처럼 바라보는 시각에서 벗어나 우주를 바라보는 시야를 가져야 부처도 보이고 업보도 보이고 인생도 보인다. 자신의 업보가 어떤 것인지를 알아 인생에 도움이 되는 기회로 삼는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 2. 일념삼천 법문이 곧 업보 불법에서 가르치는 일념삼천의 법문은 인간의 업보를 풀어서 밝힌 것이다. 자신의 업보를 살펴보는 사람은 인생을 그만큼 아는 것이 된다. 불법을 알면 세상 이치를 안다고 했을 정도로 중요하다. 오대양 육대주의 인간이 70억 명이다. 그중에서 한 사람의 업보가 자신인데 이것을 생명 상태로 말하면 십계가 근본이 된다. 불행한 사람은 삼악(三惡)이나 사악(四惡)이 많은 것이다. 가장 불행한 사람에게도 보살의 생명 상태는 있지만 좁쌀만큼도 안 되고 지옥이나 아귀, 축생, 수라의 생명이 많아서 복이 없는 것이다. 업보는 “불변”이다. 업보는 삼세에 걸쳐서 나타나는데 과거세 업보의 결과는 현재에 나타나고 현재 업보의 결과는 미래에 나타난다. 그래서 불법에서는 삼세의 업보를 가지고 가르치므로 의심이 들겠지만 과학적이고 이치에 맞는 가르침이기 때문에 생명철학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아주 현실적이고 인간의 모습을 세밀하게 관찰하여 밝히고 있다. 석존은 사상가이고 철학자이고 우주학을 전공한 인문학의 대부라고 해도 아무런 손색이 없다고 바라본다. 사람들이 이런 업보를 말하여 주면 믿지 않는다. 그러나 곰곰이 가르침을 배워 보면 자신의 업보를 짐작하게 되므로 복에 없는 욕심을 부리지 않고 열심히 노력하게 된다. 업보는 인연, 재물, 건강, 수명, 명예, 성격, 사고방식, 사상, 철학 등 모든 것이 각각으로 일어나고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복합적으로 일어나고 나타나기 때문에 복잡하다. 똑같은 업보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없다고 했다. 나보다 나은 사람은 복이 많은 것이고 못한 사람은 복이 적다고 보면 답이다. 인물도 성격도 부모도 형제도 부부도 모두 업보에서 이루어져서 현재에 나타나는 것이므로 불평한다고 업보가 바뀌는 것은 아니다. 더 놀라운 것은 사주에 맞추어서 분만하는 사람도 있다. 모두가 자신이 만든 업보에 의해서 복이 있고 없고, 건강하고 못하고, 잘 살고 못 살고, 좋은 가정이고 불행한 가정이고, 태어나고 죽는 것조차 업보에서 일어난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어리석은 생각을 하는 것이다. 이런 것을 깨달은 석존께서는 인간의 불행을 막을 방법이 무엇일까 하고 깨닫고 찾은 것이 부처의 불력과 법체의 법력이다. 이 모두가 우주에서 일어나고 나타나는데 사람들은 이를 배우지 못하였다. 인간의 업보를 깨달은 석존께서는 이미 만들어져 나타나는 업보를 없앨 수는 없지만 잠재우는 방법이 있음을 밝혔다. 이를 법화경에서 가르치고 있는데 이를 분별하여 일념삼천의 법문으로 해설한 것은 천태대사와 묘락대사다. 이렇듯 불교는 인간에게 없어서는 안 될 철학이고 가르침이다. 현명한 사람은 받아들일 것이고 무지한 사람은 버릴 것이다. 이것 또한 각자의 업보에서 나온다고 했다. 3. 불가사의한 법화경 양약 법화경 여래수량품제16에는 양의(良醫)가 만든 양약(良藥)에 대한 가르침을 밝히고 있는데 이 양약이 불가사의하다는 것이다. 그 종류는 무량이고 성분은 불변이며 제조 방법도 사람에 따라 다르게 만들므로 백천만억 가지나 된다. 재미있기도 하고 호기심도 생기고 의문도 들지만 현재 불교에서는 들을 수도 없고 들어 보지도 못한 가르침이다. 좋은 의사는 사람의 한 가지 병만 고쳐주는 것이 아니라 몇 가지의 병을 고쳐주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종교적인 개념으로도 사상과 철학으로도 또 수행이라는 잣대로도 도저히 이해되지 않고 더군다나 허공을 향하여 부처님 명호 12자만 입으로 소리를 내는데 어떻게 여러 가지의 불가사의한 일들이 일어나는지 그만큼 끝이 보이지 않는 것이 법화경 부처님의 양약이다. 이를 의심하면 사람들은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고 하겠다. 천도재나 굿으로 해결하려는 사람들은 법화경 양약을 의심부터 하는 환경이 되어 버렸다. 가난하고 병들고 복이 없는 사람에게는 악을 빼고 선을 집어넣고, 성질이 불같은 사람에게는 지옥계를 빼버리고 인계를 집어넣고, 남의 말을 잘하는 사람에게는 수라계를 빼고 천계를 집어넣고, 욕심이 많은 사람에게는 아귀계를 빼고 보살계를 집어넣고 이렇게 모든 정신계 분야도 양의는 각각에 맞는 처방을 내려 치료를 하게 된다. 빙의나 신기, 신병의 문제도 사람에 따라 처방도 치료 방법도 다르고 신경정신계 병도 사람에 따라 치료가 달라진다. 또 업병 중에 신경성이라는 병이 가장 빠르게 치료가 된다. 빙의나 신기의 사람은 건강에 더 문제가 많다. 불면증에 우울증에 의타심이 강하며 가족들이 힘들어지기도 하지만 양약은 많은 효능을 가지고 있다. 사람의 재능이나 재주도 잘 나타나게 만들고 생각이나 판단에 문제가 있는 것도 양의는 양약으로 바르게 해 준다. 양의의 처방전이 통하는 곳은 단 한 곳 재가승가원 생명치료희망쉼터 뿐이다. 중생구제는 양의의 양약 처방만이 가능하다. 4. 사상과 철학으로서의 법화경 법화경을 가지고 귀신을 해결한다는 것은 석가모니께는 부끄러운 일이다. 법화경을 현대적으로 말하면 평화와 행복을 위한 위대한 사상과 철학이다. 중생이 앉아 악귀를 몰아내는 수행의 기도를 하고 있으니 죄송한 마음 그지없다. 귀신이나 빙의 문제는 어찌 보면 항하(恒河-인도 갠지스 강)의 모래 중 한 알 정도에 불과하다. 국가를 움직이는 사람에게는 헌법이라는 위임된 법이 존재한다. 이 법을 좋게 사용하느냐 아니면 나쁘게 사용하느냐는 인간 세계를 행복하게 하느냐 아니면 불행하게 만드느냐의 기준이 된다. 이러한 것은 힘없는 중생이 하는 것이 아니라 힘을 가지고 있는 지도자가 하는 일이다. 그러므로 한 사람이 가지는 훌륭한 사상과 철학은 국가도 바꿀 수가 있다는 것이다. 인간이 존재하고 있는 한 악과 선의 사상과 철학은 공존할 것이며 우주가 멸망하고 인간이 멸망한 것은 지금까지는 자연의 섭리에 있었지만 앞으로는 잘못된 인간의 사상과 철학이 인간을 불행하게 하는 원인이 될 것이다. 세계는 바야흐로 핵무기의 해체를 위하여 달리고 있다. 자연에 의한 재앙보다는 인간에 의한 재앙이 더 위험하다는 것이 공통된 생각이다. 생명을 변혁시키는 사상과 철학은 법화경에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법화경에는 인간의 평등사상, 인간을 근본으로 하는 인본사상인 인간주의가 자리를 잡고 있으며 인간의 절대 행복이라는 민주주의도 자리를 잡고 있다. 한 사람에게 좋은 사상과 철학을 가르치는 것이 곧 인간 스스로 행복으로 가는 길이다. 인간이 인간에게 해 줄 수 있는 가장 가치 있는 일이다. 법화경의 사상과 철학은 불행한?사람이 없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러나 지구에는 엄연히 4대 종교가 자리를 잡고 있지만 전쟁으로 사상으로 인간의 불행은 끊이지 않고?있다. 불교의 사상과 철학이 위대하다는 것은 불교로 인하여 아직까지 전쟁으로 인간을 불행하게 한 일은 없었기 때문이다. 세계적인 석학, 인문학을 배운 사람이면 법화경의 사상과 철학에 대하여 입을 다물지 못할 정도로 극찬을 하고 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우리는 불법의 불가사의를 알지 못하고 있다. 천도재보다 못한 것이 법화경이 되고 말았다. 작게는 개인의 행복을 위하여 크게는 인간의 평화와 행복을 위하여 법화경은 유포되고 나아가야 한다는 것은 3000년 전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이런 법화경을 눈앞에 두고 아직도 입을 다물고 있다면 스스로 행복을 찾지 못하는 어리석은 사람이 될 뿐이다. 미래를 향한 시계는 지금도 돌아가고 있다. 시계를 멈출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 책은 진정한 행복과 건강의 길잡이가 될 것이고 인간 운명의 정답을 가르쳐 준다. 석가모니의 법화경 사상과 철학은 고장 난 인간의 생명을 치료하고 이 책에서 대우주 법화경 부처와 인간이 만난다. 말법 인간 구제의 유일한 희망이고 법화경이 전하는 생명치료 불가사의 공덕을 맛본다. 생명철학으로 인간의 업보를 밝힌 중생을 향한 석존의 사자후! 부처가 되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