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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명자 _청춘
김곳 _민주주의, 그게 다 뭐랍니까 김명옥 _짐승같이 끌려간 시간 김미령 _잔물은 봄바람에 헤적일 때에 김수우 _비늘 김요아킴 _그해, 기미년 시월 김점미 _그날의 하굣길 김정희 _탯줄 김지녀 _어떤 이름 김지숙 _나는 아무것도 아닌 아무개였다 김해경 _아! 시월 김형로 _두 번의 계엄 사이 민달 _사라진 증인 박윤규 _붉고 따스한 박정애 _들불을 놓다 서정원 _가을날, 봄꽃 피다 석민재 _오후의 항구는 왜 오래 흔들리는가 신정민 _자유의 종 안민 _잿빛지대 저편 원양희 _백포白布를 찢고 나오는 여자 이규열 _지금, 여기 이은주 _아버지의 이름은 정선우 _기록되지 못한 그날들 정안나 _첫시월 정익진 _지국총 지국총 정진경 _붉은 눈물 진명주 _민주주의는 고인 물을 먹지 않는다 차고비 _시월의 강 채수옥 _민주 황길엽 _세상을 바꾼 위대한 투쟁 시집 해설 _고명철(문학평론가) 역사적 서정: ‘부마민주항쟁’, 향진과 갱신하는 민주주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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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의 계엄 사이
― 황선용 김형로 그는 복숭아 나무 아래 잠들었습니다. 아무런 표식이 없는 평석 하나에 둘러친 벽돌이 그의 작은 유택이었습니다. 망정못[池] 옆 무심히 흘러가는 구름 보는 일, 불쑥불쑥 고개 드는 트라우마 지그시 누르는 일, 똬리 튼 악몽의 뱀을 달래는 일. 생전 그의 일이 무성한 풀로 일어서고 있었습니다. 그의 생은 두 번의 계엄으로 정리되었습니다. 부마항쟁 당시 계엄과 2024년 12월의 계엄. 첫 계엄은 그의 정신과 육체를 고문으로 망가뜨렸고 두 번째 계엄은 무균실의 그를 마지막까지 갉아먹었습니다. 끝내 이기지 못하고 억산에 기댄 그는 아름다운 복숭아꽃을 피워놓았습니다. 동지들에게 다디단 복숭아를 물리는 것 그것이 그의 마지막 꿈이었으니까요. 항쟁은 자주 영웅 서사에 빠집니다만 그는 늘 뒤에 있었습니다. 그는 서면서림의 직원으로 부마민주항쟁의 단초를 연 깨어있는 시민이었고, 변혁운동가였습니다. 허나 스스로 몫을 주장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민주 정부가 들어선 것을 보고 갔다 생각하니 위안은 됩니다. 도화 아래 아름다움 다투는 일 부질없지만, 아름답다고 진부하게 씁니다. 이 작은 마음이 모여 강을 이루었고 항쟁이 되었다고. 한 시절 정의롭기는 쉬워도 끝까지 지키기는 어렵습니다. 마지막까지 김수영의 「풀」을 읽었다지요. 그는 복숭아 씨 같은 단단한 꿈을 꿀 것입니다. 바람보다 먼저 일어서는 풀들 말입니다. 〈시작노트〉 황선용(1955-2025)은 부마항쟁 당시 서면서림의 직원이었다. 그는 평소 우리 사회의 모순에 일찍 눈을 뜬 지식인이었다. 그는 조태일의 「국토」나 김지하의 「오적」을 등사하여 대학생들에게 나눠주었고 당시에는 철저하게 판금된 월북 시인 정지용의 시도 구해 읽었다. 대학생들 사이에는 자연히 황선용이라는 이름이 회자되었다. 그중에는 훗날 『한라산』을 쓴 이산하라는 시인도 있었다. 그의 일생은 두 번의 계엄 사이에 있다. 첫 계엄은 부마민주항쟁 당시의 계엄이었고 두 번째는 윤석열의 불법 계엄이었다. 첫 계엄은 그에게 갖은 고문으로 몸과 마음에 평생 지우지 못할 상처를 입혔고 두 번째 계엄도 병상의 그에게 큰 트라우마를 안겼다. “세 사람이 한 조가 되어 물고문을 했습니다. 하나는 올라타 물을 붓고 하나는 머리를 잡고 또 하나는 손가락만 쳐다보고….” “자백할 게 있으면 손가락을 까딱해.” 경찰들은 혹독하게 물고문을 했다고 한다. 숨이 끊어질 듯한 그 고통을 그는 평생 간직하고 살았다. 그는 말년에 경북 청도에서 복숭아밭을 일구었다. 다디단 복숭아의 과육을 동지들의 입에 물리고 싶었을 것이다. 자식에게도 늘 ‘국민이 주인’이라고 가르쳤다. 올곧은 그의 길에 존경을 보내며 1979년 10월 15일 부산대 유인물 배포 사건의 주역 황선용 선생의 명복을 빈다.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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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크지 시움>이 ‘부마민주항쟁 기림시집’을 기획한 의도는 1979년 10월 16일에 일어난 부마민주항쟁을 ‘지금-여기’의 민주주의로 소환함으로써 그것의 역사적 진실을 추구하고 지속적으로 갱신되어야 할 민주주의의 고갱이를 성찰하기 위해서다.
우리는 항쟁 과정에서 유신독재의 국가폭력에 의해 삶이 무참히 유린되고 짓밟혀 생목숨을 잃었거나 살아 있어도 흡사 죽은 것과 다를 바 없었던 부마민주항쟁 주체의 희생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부마민주항쟁 주체들은 ‘어떤 이름’, 즉 불특정 다수의 정치적 정동을 지닌다. 여기에는 학생, 노동자, 도시 빈민, 최하층민, 상인, 회사원, 지식인, 공무원 등 민주주의 삶을 누려야 할 모든 존재들이 망라돼 있다. 무엇보다 시인들이 부마민주항쟁 관련 사료를 읽고 그 역사의 현장을 답사하면서 ‘그때-거기’의 항쟁에 대한 역사적 실감을 시적 재현으로 형상화하는 것은 ‘지금-여기’에서도 쉽게 사그라들어서는 안 될 반민주주의를 향한 항쟁의 역사적 서정으로서 시를 쓰는 일이다. - 고명철 (문학평론가, 광운대 교수 해설 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