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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산도 2
풍몽 땅의 넋 1 땅의 넋 2 땅의 넋 3 지팡이 1 종자의 뜰 4장. 천마시풍 인혈지혈(人穴地穴) 구름 속의 반달 아지발도 천마시풍(天馬嘶風) 지팡이 2 이 들녘 왕손의 속삭임 등극 바람왕의 시대 5장. 천장지비 삶의 자리 인간의 자리 세월의 숨 꿈의 현실 파적(破笛) 생사의 매듭 빛이 오는 곳 그 길에서 어둠의 빛 풍광의 덫 돌아오는 문 풍광일야 정조춘몽 작가의 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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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혈 대부분이 경사도 5도 정도에서 일어난다고 감안한다면, 우리나라 상당수 산소가 시신이 없는 빈 무덤일지 모른다는 충격적인 사실은 일찍이 예조 정 좌랑의 말이 아니더라도 그는 알고 있었다.
구 부정은 주위를 세심히 살펴나갔다. 토양은 비가 오면 많이 팽창하는 점토질이 아니었으므로 분명히 멀지 않은 곳에 시신이 있을 것이라는 판단에서였다. 그가 지목한 곳에 시신은 없었다. ---「의문의 돌」 중에서 -도야지처럼 살이 찐 네 모습이 보이지 않느냐? 아바마마의 호통이 있을 때마다 이선(李愃:나중의 사도세자)은 몸을 떨었다. …… 싫다. 나도 싫다. 돼지처럼 뒤룩거리는 나의 모습이 싫다. 그래서 아바마마는 고기를 멀리하고 일부러 보리밥을 먹으며 백성을 위하는 체하는 것인가? 그 위선이 싫다. 그 위선이 싫어. 선왕(경종)을 죽이고 씨를 훔쳐 이씨의 왕관을 쓴 그 모습이 싫다. 내가 이씨라는 것이 죽기보다 싫은 이유가 그 때문이다. 이인좌! ‘왕조의 씨가 바뀌었으니 바로잡으라.’는 선의 왕비의 밀령을 받아 난을 일으킨 이인좌! 여기가 어디쯤이더라? 아직도 빙애 곁으로 가려면 먼 것인가? 이선(李愃: 나중의 사도세자)은 어깨가 떨려옴을 느꼈다. 왜 이렇게 어의가 무거운가? 이 옷이 왜 이렇게 무거운 거야? 거대한 소나무 가지 위에서 올빼미가 울었다. 가자. 빨리 가서 그녀에게 이 버거운 어의를 벗겨달라고 하자. 그녀가 타 주는 생강차 한 잔을 마시고 그녀의 무릎을 베고 눈을 감고 꿈을 꾸자. 내가 만조백관을 거느린 왕이 되는 꿈이나 꾸자. ---「춘설」 중에서 2권 치자 꽃잎에 맺힌 이슬방울이 곱다. 해가 뜨기 전에 늘 나와보던 곳이었다. 궁을 둘러싼 담장 밑. 몇 송이 피어난 치자꽃에 맺힌 이슬이 아침 햇살에 비치면 그것은 황금빛으로 빛났다. 세상에 이보다 더 맑은 것이 있을까? 밤은 늘 귀를 막는 것으로 시작되는 나날이었다. 휘령전 쪽에서 들려오는 비명은 담장을 넘어 세손의 처소인 강녕전까지 뱀처럼 기어들었다. 그런데 아침이면 이렇게 맑은 이슬이 맺히다니. 그날 밤을 어떻게 잊을까? 그날 밤의 소리는 달랐다. 그것은 비명이 아니라, 차가운 물이 비단 자락을 찢으며 내는 것 같은 불길한 파장이었다. ---「땅의 넋 3」 중에서 -아, 아버지! 구한섭의 눈에 불이 일었다. 그는 무서운 눈길로 아들을 노려보다가 칼날을 들어 올렸다. 그 순간, 아들의 얼굴에 싸늘한 조소가 번졌다. 그 조소를 내려다보는 구한섭의 그림자가 얼핏 흔들렸다. 그사이에 구영식이 벌떡 일어나 문을 향해 뛰었다. 구한섭의 칼날이 아들의 목을 향해 곡선을 그리며 나아갔다. 머리가 툭 하고 피를 뿌리며 지도 위로 떨어져 굴렀다. 목을 잃어버린 구영식의 몸이 푸들푸들 떨다가 풀썩 앞으로 고꾸라졌다. 그 소리 때문인지 가까이에서 인기척 소리가 났다. 김후명이 날쌔게 구영식의 머리를 밀어버리고 지도를 움켜쥐었다. ---「지팡이 1」 중에서 풍수. 그것이 무엇이었던가? 그 속에서 이 세상을 보았고 세상을 안는 법을 배웠다. 너와 내가 하나 되는 법을 배웠고 풍수를 통해 사랑과 눈물을 배웠다. 풍수를 통해 증오와 거짓을 배웠으며 풍수를 통해 비정한 복수와 용서를 배웠다. 그것은 누구도 밟을 수 없는 삶이었으며 이 세상의 풍광이었다. ---「정조춘몽」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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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의 말
이 소설을 쓰기 전부터 풍수는 내 삶의 오래된 화두였다. 사람들은 풍수를 산세를 읽고 혈자리를 찾는 일쯤으로 생각하지만 내게 풍수는 그런 것이 아니었다. 풍수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 삶 그 자체였다. 우리를 품고 있는 땅이었고 우리 곁을 스쳐 가는 바람이었고 우리 삶 속으로 흘러가는 물이었다. 인간은 결국 그 안에서 태어나고 살아가고 죽어간다. 정점에 이른 인간을 다룰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나는 때때로 내가 그들을 지나치게 미화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에 사로잡힐 때가 있다. 그러나 작업을 멈출 수 없는 이유 또한 분명하였다. 인간은 본래부터 모순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쓰이는 자나 쓰는 자나 결국 그 모순의 과정을 통하여 풍광에 이른다. 이번 역시 정조를 쓰면서 그의 좋은 면만 보았던 것은 아니었다. 정조는 이기의 끝을 보여준 인간이었다. 복수에 사무친 존재였고 이기와 이상이 한 몸 안에서 동시에 들끓는 사람이었다. 오죽했으면 제 할아비를 흉지에 밀어 넣고 제 아비는 천하의 길지에 밀어 넣었겠는가. 그렇게 보면 그는 지극히 소인배적 원심의 사나이이기도 했다. 그렇다고 인간의 모순을 혐오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 위선과 비열함, 자기기만 속에서도 우리는 때때로 설명하기 어려운 어떤 장엄함을 발견하게 된다. 위험하기도 하고 매혹적이기도 한 그 무엇 말이다. 정조는 뒤주라는 비좁고 어두운 공간에서 시작하여 규장각이라는 찬란한 지성의 전당을 세웠고 천만년 백성의 삶터가 될 화성을 일구어낸 사람이었다. 나는 바로 그 원심을 그리고 싶었다. 그를 단순한 성군이나 복수자로 가두지 않았을 때 비로소 그의 근본을 볼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물론 그리는 과정에서 약간은 근사하게 포장되기도 하리라. 문학은 때로 인간의 상처를 풍광으로 바꾸고 모순을 장엄함으로 바꾸며 비극을 아름다움으로 바꾸는 힘을 지니고 있다. 문학은 단순한 도덕 교과서가 아니다. 위험한 매혹까지도 끝내 들여다보려는 행위. 그러므로 독인 줄 알면서도 결국 마시게 되는 것이다. 정조만큼 풍수에 깊이 천착한 왕도 드물 것이다. 역대의 왕들 또한 풍수를 중히 여겼으나 수원 화성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정조의 풍수는 단순한 신앙이나 취미의 차원을 넘어서 있다. 그것은 세상을 움직이기 위한 하나의 정치였고 시대를 바꾸기 위한 도구였다. 그 거대한 꿈의 중심에는 한 가족의 비극이 놓여 있었다. 이들의 관계를 들여다보고 있으면 인간의 삶이란 과연 이치만으로 설명될 수 있는가 묻게 된다. …중략… 이번에 정조를 쓰면서 다시 인간을 보았다. 권력과 명분, 사랑과 증오, 이상과 욕망 사이에서 끝없이 흔들리던 한 인간을 보았다. 그 속에서 오래전의 나 또한 함께 보았다. 그리하여 이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작은 희망이 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세상의 이치는 소설의 쉼표처럼 늘 반듯하게 흘러가지 않는다. 그 불완전한 흐름 속에서도 인간은 끝내 자기 삶의 길을 묻고 또 물으며 살아간다. 이 소설은 바로 그 질문의 기록이다. 정조라는 그릇을 통해 풍수의 넋을 다시 한번 더듬어 보고 그것을 새롭게 저장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