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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의 품은 언제나 좋은 냄새가 났다
할머니의 마지막을 함께한 손녀의 기록
김선작
설렘(SEOLREM) 2026.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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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추천사. 5
프롤로그 요안나 할머니에 대하여. 7

Ⅰ 나를 이룬 것의 기록
1 해님이 나만 따라와. 17
2 할머니는 부재중. 23
3 자주 아팠던 이유. 28
4 할머니의 귀염성에 대하여. 35
5 동지, 때로는 전우. 41
6 어느 사고 염려 전문가의 고백. 48
7 롤러스케이트와 스키, 그리고 큰사람. 55
8 그 사이의 자리. 63
9 할머니의 손님. 70
10 키운 보람이 있는 손녀. 77
11 할머니가 대체 뭘 알아?. 83
12 같은 일을 겪는 사람들. 90

Ⅱ 할머니가이상해졌다
13 할머니가 이상해졌다. 101
14 노인을 돌보는 노인들. 109
15 먼 세대의 마지막 통화. 118
16 생애 마지막에 가는 곳. 125
17 어떤 것은 길하고 어떤 것은 불길하다. 132
18 유리 벽 너머의 할머니. 139
19 그날 밤 아홉 시의 일. 146

Ⅲ 흔적과 기억과 시간
20 이상한 장례식장. 157
21 모두 기도하라. 169
22 할머니의 묘원에서. 177
23 꽃분홍색 외투와 돋보기안경. 184
24 할머니의 비밀 서랍. 191
25 시간이 만든 것들. 197
26 할머니가 빚어둔 것들이. 204

에필로그 살면서 꼭 해야 할. 214

저자 소개 1

어린 시절부터 할머니와 한집에 살며 수년간 도시 노인의 삶을 지켜보고 함께했다. 할머니가 준 사랑으로 세상을 배우고 자라 지금은 한 아이를 키우는 엄마이자, 청소년들에게 국어와 문학을 가르치는 선생님으로 살아가고 있다. 세상을 떠난 할머니와 그의 삶으로부터 배운 것들을 많은 이에게 전하고 싶어 글을 쓰기 시작했다. 떠난 사람의 마음이 글을 통해 전해질 수 있다고 믿는다. 브런치스토리 @sunj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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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6년 08월 01일
쪽수, 무게, 크기
216쪽 | 146*209*20mm
ISBN13
9791167853202

책 속으로

할머니가 다칠 수 있다는 걸 미리 알았다면 빨래를 널지 말라고 칭얼거리며 보챘을 거고, 아마 할머니는 내 말을 들어주었을 거다. 사고나 이별 같은 것이 예고 없이 찾아오기 마련이라는 걸 알게 되니 이미 나는 다 자라 버린 후였다. 그 후로도 할머니는 예고 없이 자주 입원했다. 늙어 갈수록 할머니는 아팠고 입원하는 기간도 점차 길어졌다. 할머니가 없는 집에서 그분이 남기고 간 구멍은 분명 할머니의 몸집보다 거대했었다. 마치 싱크홀이 뚫린 것처럼 휑한 공허가 집 한복판에 있었다. 시간이 지나며 그 구멍은 할머니의 작은 체구만 해졌다가 할머니의 체구보다 작아졌다가, 어느덧 할머니가 계시지 않아도 모든 것이 그대로 유지될 만큼 작아졌다. 자주 아픈 할머니가 짐처럼 느껴지다 퍼뜩 밀려오는 자기혐오를 맞닥뜨릴 때, 사람의 빈자리가 느껴지지 않는 것만큼 슬픈 일이 어딨을까 생각했다. 그래서 아무래도 괜찮을 줄로 알았던 것이고 그 할머니가 영영 떠나 버린 지금은…. 그가 다시 돌아올 수 없게 되어서야 할머니가 남긴 구멍이 물리적 공간이 아닌 나의 마음에 나 있다는 걸 깨닫는다.
---p.27

할머니가 앓아눕는 빈도는 해가 갈수록 잦아졌다. 그래서 누군가는 이렇게 말했다. “할머니가 자식들 보고 싶으면 저러시나 보다. 어린애들이 저래. 나 좀 쳐다봐 줘, 하고 갑자기 아프고 그러는 거야. 할머니도 어린애가 되나 보다.”할머니의 고유한 성품인 다정함과 자애로움이 흔들림 없이 유지됐던 건 불행 중 다행이었다. 현명함은 조금씩 흩어지는 것 같았지만, 할머니는 여전히 따스하고 다정했다. 그게 사라진다면 할머니를 더는 할머니라고 생각할 것 같지 않았다. 소진해 가는 기능처럼 할머니가 지녀온 성품도 그 끝이 닳아 갈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걸 입 밖으로 내면 정말로 그렇게 될까 봐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p.34

할머니도 태어나 할머니가 되기까지 분명 소녀의 시간을 거쳤을 것이다. 할머니의 옛날 사진에는 시대를 뛰어넘는 ‘고움’이 있었다. 주름살이 하나도 없지만, 표정 또한 없는 그 얼굴은 고모와 쌍둥이처럼 닮아 있었다. 사진 속 할머니가 말하거나 움직이는 것을 고모에 대입하여 상상하면 재미있었다. 할머니는 사랑스럽고 겁 많은 소녀였을 것이다. 재미있는 일이 생기면 높게 호호호, 깔깔깔 웃었을 테고, 친구가 속상해하는 일에 함께 욕해 주는 든든한 지원군이었을 테다. 어쨌든 귀여웠을 것 같다. 귀여운 건 시대를 불문하고 최고다.
---p.40

할머니는 할아버지 밥만이라도 챙겨야겠다며 냉장고에 있는 반찬 통을 그대로 꺼내 놓고 밥상을 차렸다. 할머니가 만들지 않은 할머니의 밥상. 할아버지는 다 먹고 난 그릇을 수돗물에 스치듯 흔들며 설거지했다. 두 사람의 식사 자리가 끝나면 음식물 찌꺼기가 그대로 묻어 있는 그릇들이 선반에 즐비했다. 그 또한 노화의 흔적이었고, 나는 강제로 마주하는 노화의 흔적이 질리고 슬펐다.
---p.51

할머니는 거리낌 없이 스포츠를 즐기는 내 모습도 좋아했다. 태권도 학원에서 몸 쓰는 것에 익숙해지자 가족에게 롤러스케이트를 선물 받았다. 롤러스케이트는 당시 잘 나가는 초등학생의 필수품이었기에 나는 그걸 탈 때마다 즐거웠고, 할머니는 그걸 타는 내 모습을 보고 무척 즐거워했다. 롤러스케이트를 신고 공터를 누비고 있으면 할머니는 멀찍이서 지켜보며 가끔 “잘 탄다.”, “멋있다.”라는 식으로 추임새를 넣으며 응원해 주었다.
---p.57

할머니는 마치 주문처럼 당신의 소망을 몇 번이나 속으로만 되뇌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소망은 마지막으로 입원하기 전날까지 계속된 새벽 기도에서도 이어졌을 것이다. ‘손녀가 큰사람 되게 해 주세요, 큰사람 되게 해 주세요.’ 하고. 나름대로 세상을 겪고 회복하고 일어서 본 지금까지도 그 말이 내 마음에 새겨져 있는 것을 보면 말이다. 그 말 앞에 부끄럽지 않게 살고 싶다는 소망 또한 할머니가 남긴 것일 테고.
---p.62

틀니를 뺀 할머니 입은 ‘옹’하는 모양새로 오므라졌다. 유리컵에 담가 놓은 틀니가 만화 속 괴짜 과학자의 연구실에 놓인 실험 표본처럼 보였다. 그걸 입속에 끼우는 장면도 신기했다. “할머니, 그거 다시 해 봐.” 내가 장난스럽게 요청하면 할머니는 딱 한 번씩만 더 보여 주었다. 할머니는 틀니 때문에 산해진미를 먹어도 그 맛을 모르겠다 했지만, 그와 함께 위장 기능이 약해져 애초에 그런 것을 맘껏 먹을 수 없었다. 몰래 방문하는 기술자 대신 전문의의 도움을 받아야 할 때가 오고 만 것이다.
---p.72

이것은 모두 할머니에게 매 순간 친절하고 다정하기 위한 나의 노력이다. 할머니를 위한 일은 미루지 말고 지금 당장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와 할머니 앞에 남은 시간이 얼마나 될지 알 수 없으므로 현재를 낭비할 수 없었다. 나는 ‘이 세상에 할머니를 꼭 붙들어놔 주세요.’라는 기도 대신 ‘할머니가 평온하게 눈 감게 해 주세요.’라는 기도를 한 지 오래였다. 퉁명스럽게 받아친 대화가 할머니와의 마지막 대화가 된다면 평생 마음의 짐으로 남을 것 같았다. 할머니와 시간을 보내고 헤어질 때, 이제 가 보겠다고 인사할 때마다 나는 그 얼굴을 눈에 담으려고 노력했다. 현관문을 열면서 말로만 하는 인사가 아닌, 눈을 맞추고 미소를 주고받으며 하는 인사를 해야 마음이 편했다. 그래서 한편으로 나는 자신 있었던 것 같다. 앙금으로 남은 것이 하나 없이 할머니를 훌훌 잘 보내줄 수 있을 거라고.
---p.82

할머니의 유일한 반응은 ‘너도 힘들겠구나.’ 였다. 감정을 다 정리하고 그저 열심히 할밖엔 방법이 없음을 받아들이며 다음 일을 하기 시작했을 때였다. 어떤 조언도 충고도 없는 말 한마디가 도리어 큰 위로가 되었다. 날카로운 말을 뱉고 한참을 후회하며 자책하던 차에 할머니는 투박한 손으로 내 마음을 어루만져 주었고, 나는 거기에 기대어 한숨을 돌린 다음 다시 뚜벅뚜벅 나아갈 수 있었다. 할머니가 없으면 어떡하지. 할머니의 툭툭한 손이 없어지면 어떡하지. 할머니에게 절대 사라지지 말아 달라고 빌고 싶은 날들이었다.
---p.89

할머니는 산후 둘째 날에 가족들과 함께 나를 보러 왔다. 몸을 많이 움직이고 싶지 않아서 입원실 침대에서 사람들을 맞았다. 얼른 이 시간을 끝내고 한숨 자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할머니는 침대 오른쪽으로 와서 내 손을 꼭 잡았다. “내 새끼, 고생했다.”그 말을 듣는데 이제껏 말라 있던 눈가가 찌르르 울리더니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할머니는 “고생 다 해놓고 왜 울어.” 하면서 같이 울었다. 엄마를 봐도 남편을 봐도 흐르지 않던 눈물이 온통 다 쏟아졌다. 갓 태어난 아기는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작고 연약했다. 세게 안으면 다칠까 봐, 잘못 안으면 품에서 떨어질까 봐, 손끝부터 팔꿈치까지 모두 덜덜 떨렸다. 아이를 키우며 앞으로 해야 할 일들, 다가올 날들이 두려웠다. 그리고, 끝내 입 밖으로 꺼내지는 못했지만, 할머니께 고맙고 미안했다. 쉴 새 없이 아이를 낳고 기른 할머니가 존경스러웠다. 나는 할머니와 같은 일을 겪은 사람이 되어 버렸다.
---pp.94~95

할머니와 대화할 때는 최대한 밀착해 앉아야 했다. 가까이서 말해야 할머니가 그나마 알아들었다. 할머니의 질문에 크게 손짓하며 답하기 시작했다. ‘할머니, 저 밥 먹었어요’를 말하고 싶으면 손을 가슴에 대서 ‘나’를 표시하고 이후 밥을 떠먹는 시늉을 하며 “먹었어요.”를 말하는 식이었다. 입 모양과 표정도 크게 쓰며 말했다. 이 요란한 대화 방식에는 큰 에너지가 들었다. 그러나 할머니 앞에서 늘어놓는 나의 하루와 동선과 인상적이었던 것들에 관한 이야기는 사실 그 내용 자체를 전달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고 대화에 특별한 정보라고 할 것이 없었다. 할머니는 그저 말할 상대가 필요한 것일 뿐, 그게 꼭 나일 필요도 없었다. 점차 서로가 이 대화에 지쳐가는 것이 느껴졌다.
---p.102

할머니의 마지막 입원 무렵에는 몹쓸 전염병이 온 세계를 휩쓸고 있었다. 그 탓에 잦은 병원 면회가 차단됐다. 멀쩡한 사람이 대학병원에 드나드는 것이 금기시되었고 보호자 출입 카드는 한 장만 제공됐다. 늙은 자식들은 입원한 할머니를 자주 볼 수 없었고 줄줄이 딸린 손주들 또한 자기 살기 바쁠 뿐 할머니를 굳이 떠올리거나 챙기지 않았다. 엄마는 ‘이 고생은 그냥 나한테서 끝내고 싶다’라는 생각이 커서 내가 할머니 면회를 가지 못하는 것에 안도했다. 그러면서도 한 장 받은 출입 카드를 아빠와 서로 주고받으며 열심히 할머니를 챙기러 다녔다.
---p.114

오래 입원 중이던 할머니의 얼굴은 어땠을까. 병원 다인실에서 옆자리 할머니와 과일을 나누어 먹고 가벼운 농담이라도 주고받을 수 있으면 좋았을 것이다. 그게 할머니의 ‘원래 모습’에 가까웠을 테니까. 여기저기 전화하여 신세 한탄을 늘어놓는 모습이어도 괜찮았을 것이다. 평소에 그러는 분이 아니니 모두 할머니의 상황을 이해해 주었을 테니까. 다만 홀로 우두커니 앉아 있는 모습만은 아니길 바랐다. 내가 오래 기억하게 될 할머니의 마지막 얼굴이 끝없이 이어지는 실내 생활에 숨이 막혀 노랗게 뜬 그 얼굴이라면, 현관문을 쾅 닫던 나 자신을 용서할 수 없을 것 같았다. 할머니에게 미안했지만, 그보다 더, 나를 향한 혐오감을 걷어 내고 싶었다.
---p.126

할머니와 마주 보았지만 정작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잘 떠오르지 않았다. 작별 인사를 하려 했으나 나만 느끼는 어떤 감정을 할머니에게 퍼붓는 꼴이 될까 봐, 그래서 할머니를 더욱 편찮게 할까 봐, 그러면 안 될 것 같았다. 나는 할머니에게 ‘사랑해’라고 말하는 대신 할머니를 안거나 손을 꼭 붙잡는 식으로 마음을 표현하곤 했었는데, 그날 침대에 묶이다시피 한 할머니 앞에서는 차마 그럴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렇다고 지켜보는 사람이 많은 가운데 할머니께 사랑한다고 말하자니 굉장히 멋쩍을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내가 느끼는 감정들을 거르고 걸러 잘 낫고 나와서 다시 만나자고 말했다.
---p.130

유리 벽 너머의 할머니라도 마지막으로 보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한다. 나는 당연히 나를 닮은 아이를 데리고 함께 갔을 것이다. 귀하게 여기는 존재를 보이며 할머니 마음에 온기를 심어 드리고 싶었다. 귀엽고 사랑스러운 것을 보면 머릿속이 화사해지며 하루를 견딜 힘이 나니까 말이다. ‘아이가 커 가는 것을 한번 보세요. 이제는 노래도 잘 부르고 할 줄 아는 말도 많아졌어요.’ 수화기가 없어도 나의 마음은 유리 벽 너머 할머니께 전해졌을 거다. 할머니의 굳은 얼굴에는 미소가 떠올랐을 것이고, 그리고, 할머니는 분명 조금 더 살다 가셨을 것이다.
---p.144

구급차에는 두 아들이 동행하고, 나머지 가족들은 택시를 타고 장례식장으로 이동했다. 할머니의 임종을 지키고 싶어 한 사람이 이렇게나 많았는데 결국 누구도 그분의 곁을 지키지 못했다. 할머니가 자신의 끝을 외롭게 받아들이고 있을 때, 나는 지금은 만나지도 않는 동료들과 웃고 떠들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시답잖은 농담을 나누고 언짢게 구는 상사나 후배를 욕하려고, 바쁘고 활기 있는 사람들과 좋은 에너지와 생기를 주고받고 싶어서, 나는 그 시간에 할머니를 잠시 잊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도 결코 잊을 수 없는 유일한 사람이던 할머니는 결국 혼자서 세상을 떴다.
---p.153

할머니를 모시고 화장터에 간 날, 온종일 이슬비가 흩뿌렸다. 화장터 직원들은 기계적으로 대기 번호표를 주고 유골함의 종류를 설명하고 할머니를 모신 관을 날랐다. 고작 며칠 만에 장례 산업 종사자들의 무심한 모습에 익숙해졌다. 그들에게 타인의 죽음이 별 의미가 아니란 걸 받아들여야 했다. 그래야 마음이 편했다. 한참을 기다려 할머니 차례가 되자 모든 가족이 화장로 앞에 모였다. 가족들이 있는 공간과 화장로 사이에는 두꺼운 유리 벽이 있어 안쪽에서 나는 소리를 전혀 들을 수 없었다. 화장로의 문이 열리는 소리나 불이 이글거리는 소리 중 무엇 하나 들리지 않았으나, 대신 나는 엄마가 어깨를 들썩이며 우는 소리를 들었다. 엄마는 화장로 문이 닫힐 때까지 할머니께 인사하듯 손을 흔들며 울었다.
---p.167

사랑은 경계 없음, 나와 타인의 경계가 사라져 그 사람의 기쁨과 고통이 온전히 내 것으로 느껴지는 상태다. 내가 울고 웃던 모든 순간에 할머니는 조언하거나 충고하는 대신, 그저 함께 있어 주었다. 삶에 그런 사람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운인지. 사랑은 경계 없음, 존재의 경계조차 허물어 버리는 것이다. 서로가 어디에 있든지 마음만은 함께 있다. 할머니를 떠올릴 때마다 할머니에 대한 글을 쓸 때마다 당신이 나와 함께 있다고 생각했다. 할머니의 몸이 좁다란 상자에 갇혀 흙이 되어 사라진들, 당신이 남긴 사랑의 마음마저 사라질 리는 없으니까. 할머니에 대한 추억을 길어 올릴 때마다 희미해져 가던 할머니의 흔적이 다시 다채로운 색을 얻을 것이다. 그러면 할머니는 외롭지 않을 것이고, 나 역시 그럴 것이다.

---p.213

출판사 리뷰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나는 할머니의 노화를 가장 가까이에서 목격한 사람이다.
한 사람이 저물어 감을 보며 오래도록 이별을 준비했다.
나의 할머니는 자녀 여섯과 손녀 둘을 자기 손으로 키워 낸 사람이다.
도시에서 늙도록 살다 간 노인이다. 그리고 나를 이루고 있는 것들을 만들어 준 사람이다.
할머니의 부재를 그대로 바라볼 수 있을 때, 비로소 할머니가 남긴 것들을 쓸 수 있게 되었다.

추천평

우리는 모두 얼마만큼의 내리사랑으로 이루어진 존재들일까요? 작고 연약한 모습으로 세상에 태어난 우리는 저마다 누군가의 내리사랑으로 보살펴집니다. 그리고 세상에 두 발 딛고 일어서지요. 이 책은 다정하고 자애로운 할머니가 손녀에게 남기고 간 사랑 이야기입니다. 손녀는 그녀의 몸 안에 여전히 남아 흐르고 있는 할머니 내리사랑이 흩어지지 않도록 할머니와의 시간을 기록했습니다. 기록마다 남아 있는 사랑의 흔적에 목이 메기도, 눈시울이 붉어지기도 합니다.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 서둘러 전화를 걸었습니다. 저에게 내리사랑을 전해 준 분에게요. 희미했던 사랑이 선명하게 떠올라 따뜻해지던 순간이었습니다. - 이다희 (『순종과 해방 사이』, 『초등 첫 문해력 신문』 저자 이다희)
‘할머니’라는 단어만 떠올려도 마음 깊숙한 곳에서 뜨겁고 뭉글한 것이 올라온다. 작가는 할머니와 함께한 사랑의 시간을 구체적인 감각으로 독자에게 전해 준다. 죽음과 이별의 경계에서 머뭇거리고 안타까워하는 마음, 할머니의 말과 물건을 고이 간직하며 기억을 붙잡고 싶어 하는 마음을 정제된 언어로 담아내고 있다. 이 책은 자신에게 무한한 사랑을 쏟은 존재에 대해 쓴, 가장 슬프면서 아름다운 삶의 기록이다.   - 조은혜 (『키친 테이블 독서』 저자, 고등학교 교사)
그리움을 만질 수 있다면, 활자에 온기를 불어넣을 수 있다면 꼭 그녀의 글과 같지 않을까? 이 책은 사랑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흘러가며 어떻게 영원히 기억되는지에 대한 가장 따뜻한 증명이다. 나를 길렀고 나를 변화시켰고 나를 살게 한 사람, 때론 나조차도 미워했던 나의 있는 그대로를 사랑해 준 사람, 더 이상 내 곁에 없어도 영원히 나의 일부일 사람. 마지막 페이지를 넘긴 바로 지금, 그 사람에게 달려가련다. 더 늦기 전에 쑥스러워 묻어둔 말을 전하련다. 사랑합니다. 내 곁에 있어 주어 고맙습니다. - 정소연 (초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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