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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인열전 1
내 비록 환쟁이라 불릴지라도 반양장
유홍준
역사비평사 2001.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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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1. 연담 김명국
2. 공재 윤두서
3. 관아재 조영석
4. 겸재 정선
5. 부록 : 남태웅의 「청죽화사」의 해제 · 번역 · 원문

저자 소개 1

Yu Hong-june,兪弘濬

1949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서울대학교 미학과, 홍익대학교 대학원 미술사학과(석사),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동양철학과(박사)를 졸업했다. 198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미술평론으로 등단한 뒤 미술평론가로 활동하며 민족미술인협의회 공동대표, 제1회 광주비엔날레 커미셔너 등을 지냈다. 1985년 2000년까지 서울과 대구에서 ‘젊은이를 위한 한국미술사’ 공개강좌를 십여 차례 갖고 ‘한국문화유산답사회’ 대표를 맡았다. 영남대 교수 및 박물관장, 문화재청장, 한국학중앙연구원 이사장을 역임했으며, 명지대 미술사학과 교수 정년퇴임 후 석좌교수로 있다. 평론집으로 『80년대 미술의 현장
1949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서울대학교 미학과, 홍익대학교 대학원 미술사학과(석사),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동양철학과(박사)를 졸업했다. 198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미술평론으로 등단한 뒤 미술평론가로 활동하며 민족미술인협의회 공동대표, 제1회 광주비엔날레 커미셔너 등을 지냈다. 1985년 2000년까지 서울과 대구에서 ‘젊은이를 위한 한국미술사’ 공개강좌를 십여 차례 갖고 ‘한국문화유산답사회’ 대표를 맡았다. 영남대 교수 및 박물관장, 문화재청장, 한국학중앙연구원 이사장을 역임했으며, 명지대 미술사학과 교수 정년퇴임 후 석좌교수로 있다.

평론집으로 『80년대 미술의 현장과 작가들』, 『다시, 현실과 전통의 지평에서』, 『정직한 관객』, 답사기로 『나의 문화유산답사기』(국내편 1~10, 일본편 1~4), 미술사 저술로 『조선시대 화론 연구』, 『화인열전』(전2권), 『완당평전』(전3권), 『유홍준의 한국미술사 강의 1』 『추사 김정희』 등이 있다.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저작상(1998), 제18회 만해문학상(2003)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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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01년 03월 31일
판형
반양장 ?
쪽수, 무게, 크기
384쪽 | 712g | 153*224*30mm
ISBN13
9788976960160

책 속으로

흔히 예술가들의 천재성이란 남들은 도저히 쳐다볼 수 없는 높은 경지를 저 혼자만이 도달하는 기량을 의미하는 수가 많다. 그러나 단원은 그런 류의 천재가 아니었다. 그는 남들과 나누어 쓸 수 있는 폭 넓은 공감대를 갖고 있었다. 단원 김홍도는 보통 예술적 천재들이 지닌 부정적 측면, 괴팍하고 고집 세고 이기적이고 방자한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그는 탁원한 기량을 과시하는 천재가 아니라 자신의 천재성을 남들과 분유하고 공유할 수 있는 양식을 창출하는 데 발휘했던 것이다. 따라서 그는 미켈란젤로나 모차르트 또는 추사 김정희 같은 천재와는 전연 다른 성격의 천재였고, 성품 또한 그들처럼 오만하거나 독선적이지 않았다, 대중과 그처럼 교감할 수 있는 자세였기에 그의 예술은 인간적인 가장 인간적인 것이었고, 또 조선적인 가장 조선적인 것이 될 수 있었다. 그것이 단원이라는 화인의 위대한 예술가 상이다.....

--- pp.317~318

겸재(謙齋) 정선(鄭敾, 1676~1759)의 예술에 대해서는 당대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변함없는 명성과 찬사와 존경의 예찬이 이어지고 있다. 겸재가 이룩한 예술 세계에서 가장 돋보이는 것은 진경산수라는 장르를 개척하고 또 그것을 완성한 것이다. 그는 중국풍의 그림을 답습하던 종래 화가들의 관념산수에서 벗어나 우리나라 산천의 아름다움을 직접 사생하여 이를 감동적으로 표현함으로써 진경산수의 창시자가 되었고, 또 그것은 후대에 두고 두고 깊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 그리하여 겸재의 진경산수는 줄곧 민족적 산수화풍으로 이해되고 한국적 산수화풍의 창시자로 평가되어 왔다,

진경산수의 사회적 배경은 조선 후기 숙종 · 영조 연간에 일어난 사회 · 문화 · 예술 전반의 사조와 맥을 같이하는 것으로, 사상에서 실학의 대두, 문학에서 한글소설 · 판소리의 등장과 사설시조의 유행, 그림에서 현실을 소재로 담은 속화(俗畵)의 탄생과 맥락을 같이하는 것으로 그 모두를 '리얼리즘시대'의 산물로 이해해왔으며, 그런 인식 틀은 지금도 많은 학자들이 동의하고 있다.

그런데 근래 겸재의 진경산수를 다른 각도에서 보는 두 가지 견해가 강력하게 대두되고 있다. 하나는 최완수를 비롯한 이른바 '간송학파'들이 겸재의 진경산수를 율곡에서 완성된 조선 성리학이 노론의 정치적 이념으로 구현된 조선중화주의(朝鮮中華主義)의 산물이라 주장한 것이고, 또 하나는 홍선표, 한정희, 고연희 등 홍익대 출신 중견 · 신진 학자들이 진경산수는 명나라 때의 <황산도(黃山圖)> 같은 실경산수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러한 새로운 학설은 겸재의 예술을 새로운 각도에서 해석하는 데 나름대로 큰 공헌을 했다. 그러나 이 두 학설 모두 적지 않은 과장과 오해가 있었다.

---pp.186~188

[한국회화사에서 관아재의 위치]

그는 그림이 세상에 공헌하는 바, 인간의 정서 함양에 기여하는 바를 정확히 인식하며 글과 시가 할 수 없는 것을 그림이 해낼 수 있다고 믿으며 그림을 그렸다. 그는 그림이란 현실 속에 있어야 한다는 투철한 사실정신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그가 그린 인물은 화보 속의 인물이 아니라 대개 현실 속의 인물이었으며, 나아가서는 서민들의 삶을 애정어린 시각으로 그린 속화를 많이 그렸다.

--- p.180

[한국회화사에서 관아재의 위치]

그는 그림이 세상에 공헌하는 바, 인간의 정서 함양에 기여하는 바를 정확히 인식하며 글과 시가 할 수 없는 것을 그림이 해낼 수 있다고 믿으며 그림을 그렸다. 그는 그림이란 현실 속에 있어야 한다는 투철한 사실정신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그가 그린 인물은 화보 속의 인물이 아니라 대개 현실 속의 인물이었으며, 나아가서는 서민들의 삶을 애정어린 시각으로 그린 속화를 많이 그렸다.

--- p.180

출판사 리뷰

왜 '화가(畵家)'가 아니고 '화인(畵人)'인가?
20여 년 전 저자는 반 고흐나 피카소 같은 서양화가보다 겸재 정선이나 단원 김홍도 같은 우리 화가들의 일생에 관한 지식이 더 적었던 우리의 무심한 현실을 반성하면서, 한국미술사 공부의 일차적인 과제를 우리 미술사에 큰 족적을 남긴 인물들에 대한 전기 쓰는 것으로 삼았다. 학창시절 이탈리아 르네상스시대에 바사리가 지은 {미술가 열전­가장 유명한 화가, 조각가, 건축가들의 일생}(1568)을 읽고 큰 감명과 충격을 받았던 것이다. 그 책에는 위대한 예술가가 자기 예술을 완성하기 위하여 지불해야 했던 작가적 집념과 인간적 고뇌가 감동적으로 서려있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에게는 그런 책이 없었다. 더구나 전기로 엮을 만한 화가가 없는 것이 아니라, 그런 노력이 없었던 현실을 깨닫고는 조상들에게 미안하고 저자 스스로에게 너무나 부끄러웠다. 그래서 그는 뒤늦게 대학원에 진학하여 한국미술사를 전공하면서 그 전기 쓰는 작업을 학문의 1차 과제로 삼았다.

그래서 석사학위 논문으로 [능호관 이인상의 삶과 예술]을 써냈다. 그리고 이때부터 저자는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화가 10여 명의 전기를 쓸 생각을 가졌다. 오세창의 『근역서화징』, 유복렬의 『한국회화대관』, 이동주의 『우리나라의 옛 그림』, 안휘준의 『한국회화사』는 이 작업의 길라잡이였다. 그리고 그는 기회가 닿는 대로 문헌자료와 실작품을 조사했다. 마침 1980년에 들어서면서 각종 도록이 속속 출간되고 미술관·고미술 화랑의 전시회가 전에 없이 많이 열리기 시작했다. 『표암유고』, 『관아재고』 같은 중요한 화가들의 문집도 영인 출판되었다. 그리고 저자는 {계간 미술}에 입사하여 <한국의 미> 시리즈에 대한 편집을 맡게 되면서 자료조사에 더없이 좋은 기회를 갖게 되었다.

그렇게 10여 년 동안 자료를 수집하던 중에 남태응의 [청죽화사]와 이규상의 {일몽고}라는 18세기의 귀중한 회화사료도 찾아냈다. 이 글들에는 조선시대 화가들의 삶을 복원하는 데 결정적인 자료가 많이 들어있었던 것이다. 이때부터 저자는 평전을 쓸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고, 1990년 봄부터 계간 {역사비평}에 "조선시대 화가들의 삶과 예술"을 연재하기 시작했다.

연담 김명국, 공재 윤두서, 능호관 이인상, 호생관 최북, 현재 심사정, 관아재 조영석, 단원 김홍도, 추사 김정희, 겸재 정선 등 자료가 갖추어진 화가부터 길면 긴 대로 짧으면 짧은 대로, 쓰며 쉬고 쉬며 쓰기를 계속하기를 장장 10년, 2000년 봄호까지 9명의 전기를 완성했다.

『화인열전』(1·2)은 이 연재물을 모아 다시 엮은 것이다. 그렇다고 연재했던 것을 그대로 옮긴 것이 아니라, 그 사이에 나온 학계의 연구성과를 반영하여 대대적인 수정·보완작업을 거쳐 완전히 改稿했다. 최근 10년 동안 한국회화사 연구는 비약적으로 발전하여 많은 연구업적들이 쏟아져 나왔기에 모든 글들이 거의 새로 집필하다시피 되었고 원고 분량도 크게 늘어났다.

이리하여 저자는 마침내 20년 전 스스로에게 지운 학문적 과제이자 조상에 대한 마음의 빚이었던 우리 '미술가 열전'을 펴내게 되었다. 부디 이 책이 '인간학으로서 미술사'이라는 개념을 확대하는 새 지평을 열고, 우리나라 화인들의 사상과 철학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고, 우리 옛 그림을 사랑하고 자랑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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