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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1부 빚지기2부 빚치기에필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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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 금(金), 해칠 잔(?). 돈(錢)은 무기다.”‘돈’으로 환원되어 숫자로 정의되는 가치들 조부는 알래스카에서 연어 배를 갈라 번 목숨값으로 가족의 평수(상가 건물과 집)를 지어주었고, 그의 딸 미경은 그 성의 벽돌을 뽑아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는 딸 수진(주인공)을 위해 백화점에서 카드를 긁는다. 그리고 대학 졸업 후 광고회사를 다니던 수진은 “누구의 검열도 받지 않는 문장, 내 마음대로 ‘은’을 쓰고 ‘를’을 갖다붙여도 아무도 지랄하지 않는 나만의 완벽한 영토”를 만들어줄 노트북을 사기 위해 생애 처음으로 카드를 만든다. 두번째 결제는 광고주가 그녀의 카피에 긋던 색깔과 같은 빨간 립스틱이다. 이제 카드는 엄마의 마법이 아닌 수진의 자부심이 되고 미래를 꿈꿀 발판이자 스스로를 위로하기 위해 택시를 타고 명품을 사고,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는 또다른 “마법”이 된다. 내가 빚을 진 것도, 정민에게 털린 것도 사실은 내가 너무 순수했기 때문이었다. 사람을 믿지 않고서는 시를 쓸 수 없으니까. 세상을 사랑하지 않고서는 문장을 지을 수 없으니까. 프라다 백을 사면서도 나는 순수했다. 일하는 여성의 혁신, 나일론을 놓칠 순 없으니까. 디올 구두를 신으면서도 나는 고결했다. 뉴룩이 여성 해방의 역사라는 걸 아는 사람만 아니까. 내가 당한 사기는 내 인격의 결함이 아니라, 시인이 가져야 할 숙명적인 예민함이 치른 대가였다. (본문 121쪽) 그렇게 해서 매월 14일, 어김없이 성실하게 돌아오는 결제일을 위해 빚과 맞짱 뜨는 수진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수진은 “매일 손가락을 묶고 숨을 참으며” 또다른 소비 참사를 간신히 막아내고, “이자만큼 성실하게” 시를 쓰고, 성실하게 아르바이트를 하고, 성실하게 잔고를 체크하고, 앱테크를 통해 1원, 10원, 100원을 끌어모으고, 자체 승인으로 미래의 유산까지 미리 가불해 빚을 갚는다. 10년 우정의 배신이나 할아버지의 죽음 앞에서도 14일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도착하니까. 피해갈 수 없는 그 시간과 맞짱을 뜨는 동안 수진의 말발은 더욱 현란해지고, 문장은 점점 더 날카로워진다. 가족은 여러 번 수진의 구조 요청을 도왔다. 119처럼. 112처럼. 아낌없이 출동했다. 수진아 이번엔 내가 죽는다 내가, 하고 아빠도 엄마도 동생도 울었다. 수진도 알겠어 하고 울었다. 진심이었다. 그 순간만큼은. 반복됐다. 알겠어. 울음. 입금. 알겠어. 울음. 입금. 알겠어. 울음. 입금. 악어도 이 정도로 울면 탈수로 죽는다. (본문 167쪽) 실소를 날리고 냉소를 가두는, 기존 블랙코미디 문법에 대한 전복 주인공은 매달 조금의 배려도 없이 찾아오는 결제일 하루를 위해 바치는 “이자만큼 성실”한 한 달 동안, 세상을 관찰하고, 사물에 의미를 부여하고, 자신에게 닥친 곤란마저 엉뚱한 논리와 상상력으로 변주해낸다. 소설 속에서 ‘빚’은 주인공의 사유를 움직이는 하나의 계기이며, 세상을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게 만드는 렌즈에 가깝다. 카드사와의 관계, 영수증 한 장, 통장 잔고의 숫자 같은 지극히 현실적인 소재들은 시인의 손을 거치며 예상 밖의 웃음을 만들어낸다. 주인공의 ‘당당한 삐딱함’이 만들어내는 이 웃음은 이번 소설의 가장 큰 매력이다. 냉소와 자조를 넘어서 삶을 끝까지 관찰하려는 태도에서 비롯되는 웃음 말이다. 주인공은 끊임없이 생각하고, 상상하고, 우회하며 현실을 통과해나간다. 인세가 스쳐지나갈 뿐인 통장 잔고를 들여다보며 그 현실을 기어코 언어로 비틀고, 철학으로 합리화하고, 유머로 폭파한다. 물기 없는 시선으로 무심하게 비트는 저자의 상상력은 웃음과 함께 단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페이소스를 전한다. 그 과정에서 탄생하는 문장들은 때로는 날카롭고, 때로는 황당하며, 때로는 뜻밖의 통찰을 선사한다. 이 소설은 언어와 유머가 우리 삶에서 얼마나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블랙코미디다. 그리고 그 무기는 예상보다 훨씬 웃기고, 통렬하고, 강력하다. 연신 웃음을 터뜨리며 읽다보면 어느새 주인공의 세계에 깊이 발을 들이게 된다. 그리고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나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아주 조금 달라져 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서사만큼 파격적인 시각적 실험, 독보적인 북디자인과 본문표지 그림: 미술가 임아진의 시선으로 구현한 화자의 ‘당당한 삐딱함’퀴어성과 신체성을 주제로 회화, 사진, 조형, 퍼포먼스를 넘나들며 예술계에서 주목받는 로드아일랜드 디자인스쿨(RISD) 출신의 미술가 임아진이 직접 표지화를 그렸다. 거친 질감 속에 담긴 붉은 얼굴과 짙은 선글라스의 대비가 주인공 ‘수진’의 삐딱함을 그대로 옮긴 듯 표현했다.본문 디자인: 활자를 넘어 입체적인 파격을 선사하는 인쇄 형식단순한 텍스트 배치를 넘어, 화자의 심리적 압박과 소설의 블랙코미디적 요소를 극대화하기 위해 가짜 논문과 거지 단톡방, 탄원서 등 위트 있는 양식을 시각적으로 배치했다. 이자보다 성실하게 가슴을 파고드는 문장들· 잘나가면서 돈 없는 게 가능해. 언니가 증명이야. 살아 있는 증거.· 초판 1쇄는 영원했다. 나보다 오래 살 것 같았다.· 악플보다 무서운 무플을 경험했다. 까이지도 못하는 시인. 안티도 없는 시인. 나는 무의 경지에 도달했다.· 명예는 보이스톡으로 선불제처럼 날아오는데, 현금은 지독하게 후불제다.· 영광이 30만 원이면 좋겠다.· 순수 예술이 널 보니까 밥을 먹여주지는 않겠네.· “한 편당 8,000원, 치킨 한 마리가 2만 3,000원인데. 언니가 50편 읽고 치킨 열일곱 마리 값을 벌었어.”· “치료에는 쇼핑만큼 돈이 든다. (…) 나는 의사와 상담사에게 묻는다. 이것도 중독이잖아요.”· 구글맵과 베를린의 진실: “구글에 의심을 거두지 못한 나는 결국 소설을 다 완성하고도 베를린으로 갔다. · (…) 구글맵이 다 맞았다. (…) 아. 돈지랄만 했구나.”내 카드값을 구원할 자, 누구인가.이 책은 ‘수진’의 생계를 위해 이소호의 손으로 쓰였다. 『이자만큼 성실하게』는 등단 12년 차 시인 ‘수진’이 자본주의의 정중앙에서 우아하게, 성실하게, 유쾌하게 파산해가는 과정을 기록한 지독한 오답 노트이자, 카드회사 사장님을 향한 웃픈 상환 계획서다.문학이 밥 먹여주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시를 썼고, 시적 영감을 핑계로 명품 코트를 할부로 긁었으며, 결국 14일을 막기 위해 벼락치기로 소설 작법을 배워 영혼을 갈아 이 글을 토해냈다. 가난과 수치심을 팔아먹는 게 아니냐고? 정확하다. ‘수진’은 제 바닥을 싹싹 긁어 맥북에 정직하게 썰어 팔았다.당신의 결제 한 번이 오늘밤에도 엄마의 자개장 서랍 속 금붙이를 노리는 37세 불효녀의 손모가지를 구원할 유일한 동아줄이다. 그 인세는 수진의 통장을 0.1초 만에 스치고 카드사로 아주 ‘성실하게’ 납부될 것이다. 장담하건대 이 책은 ‘수진’이 24개월 할부로 샀다가 똥값에 팔아치운 발렌시아가 런치박스보다 훨씬 훌륭한 ‘가성비 절망과 웃음’을 당신에게 선사할 것이다.이 책을 들어라. 그리고 펼쳐라. 당신의 카드를 긁어 ‘수진’의 흑야에 빛을 내려줄 시간이다!_이소호(시인이자 소설가이자 성실한 채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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