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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주
모르는 개 산책 (7) 작가의 말 (38) 원영원 여름의 갈래에서 (41) 작가의 말 (71) 강다운 00 (75) 부러진 문고리 (79) 새가 없는 공원 (81) 사각지대 (83) 울지 마, 빌리 (87) 작가의 말 (90) 김나은 좋은 여자 (91) 작가의 말 (124) 신은솔 그림자 밟기 (125) 작가의 말 (158) 이비 의자가 남는다 (161) 입 (164) 또 (167) 333 (170) 몸으로 들어가기 (172) 작가의 말 (175) 부록 상처와 시럽-당신에게 (177) 추천의 말 (2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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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인이 죽은 여자의 남자 친구였다는 사실까지 밝혀지자 댓글난은 그야말로 들끓었다. 이곳으로 오면 여자의 얼굴 사진을 볼 수 있다는 링크가 첨부된 댓글과 범인 신상 공개를 해야 한다고 분노하는 댓글이 많았다. ‘의외로 남자 완전 멀쩡하게 생겼을 듯 무섭다.’ ‘왜 가해자 신상 공개를 안 하냐? 이 정도면 알아야 피하는데.’ ‘우리나라는 가해자 보호를 너무 좋아함.’ 그러다 한 댓글에서 내 시선이 멈추었다.‘남친 얼굴 아는 사람 없냐? 실제 지인 등판해줬으면.’
---「모르는 개 산책」중에서 남자와 어머니가 가까워질 기회가 없었더라면, 아버지가 만화가로 성공했더라면, 아니 처음부터 그 팀을 떠나지 않았다면……. 그러나 슬픈 일을 바로잡기 위한 상상은 결국 그 슬픔을 더 선명하게 만들 뿐이었다. ---「여름의 갈래에서」중에서 한참을 모퉁이에 서서 주인을 같이 기다려주는 일 내가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이것은 어떤 이야기입니까? 서로의 말을 들어줄 수 없다는 것은 매트리스 모서리에서 자꾸만 어긋나는 침대보를 억지로 맞춰봅니다 ---「사각지대」중에서 조금만 기다리면 단절 사유서를 작성할 필요가 없어질지도 모른다. 접수 마감 기한이 보름 남았다. 보름 안에 은혜가 세상을 떠나줄까? 어떻게 되든 재연은 단절 사유서만은 완성해 복지부에 제출할 생각이었다. 은혜가 죽지 않더라도, 아프지 않았더라도 그와 엄마는 끊어진 사이였으니까. 칼로 잘린 것처럼 확실하게. 재연은 자신에게 선명한 사실을 설명하기 위해 이렇게 많은 글자와 시간이 필요하다는 게 믿기 어려웠다. ---「좋은 여자」중에서 “어른이 되면 귀신 같은 건 안 무섭죠?” “무서워하는 사람도 있을걸? 그런데 나는 안 무서워.” “언니는 뭐가 제일 무서워요?” “살아야 하는 거. 그럼에도 살아내야 하는 거.” ---「그림자 밟기」중에서 지하철에 가슴을 치며 제 외계와 싸우는 사람 들어 있어 학교 앞 문방구가 차례로 문을 닫고 부쩍 한산한 평상에 골똘한 등이 놓여 있어 가로수 검은 눈알에 목젖을 비벼대는 묵음 있어 사람하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사람들 사람하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을 만큼 무엇을 해버린 사람들 ---「몸으로 들어가기」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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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에 시럽 뿌리기,
따끔하지만 조금은 따듯할지도 말없이 어린 아들을 데리고 집을 나간 아버지(원영원, 〈여름의 갈래에서〉), 15년 만에 이름과 얼굴을 바꾸고 말기 암 환자가 되어 나타난 엄마(김나은, 〈좋은 여자〉), 통신 장비가 고장 나 세상으로부터 잊히고 사람이 아닌 물살이가 된 존재(이비, 〈333〉) 등 『상처에 시럽 뿌리기』에는 이해할 수 없게 된 것들, 그래서 어느 시점에 손을 놓쳐버린 것들이 가득하다. 누가 먼저 놓았든 그 단절의 순간은 상처로 남았다. 상처는 시간을 지나는 동안에도 아물지 않고 그림자처럼 존재감을 과시한다. 여섯 작가는 그 오래된 상처를 잠자코 들여다보기를 택한다. 이 책은 그 들여다봄을 ‘시럽 뿌리기’라는 행위로 정의한다. ‘놓고 온 개’부터 ‘종일 우는 사람’까지 ‘상처’와 ‘시럽’이라는 다소 엉뚱한 조합은 상상력을 자극한다. 곧바로 따가운 고통이 연상되지만, 이내 끈적하고 달콤한 시럽이라면 괜찮지 않을까 하는 근거 없는 희망도 품게 된다. 분명한 것은 어떤 결과든 상처에 시럽을 뿌리는 일에는 상처 너머를 바라보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는 것이다. 골치 아파질 걸 알면서도 개를 데리러 가기로 결심하고(이영주, 〈모르는 개 산책〉), 자꾸만 어긋나는 침대보를 억지로 맞춰보고(강다운, 〈사각지대〉), 보이지 않는 눈에 끝까지 랜턴을 비춘다(신은솔, 〈그림자 밟기〉). 여섯 작가가 한 겹씩 쌓아 올린 ‘시럽’ 같은 문장들은 ‘상처’를 지나며 비로소 용기라는 이름의 발판이 된다. “더 이상 모르는 게 상책은 아니었다.” 외면의 상처를 지나 연대로 흐르는 분수령 이영주의 〈모르는 개 산책〉은 개 산책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살인 사건에 휘말린 가정주부의 이야기다. ‘모르는 게 상책’이라 믿으며 하루하루를 살아온 그는 자신의 믿음에 금이 가는 순간을 맞이한다. 그리고 마침내 타인의 일을 더는 ‘모르는 척’하지 않기로 마음먹으며 조금 아는 개 ‘초코’를 데리러 집을 나선다. “내가 아버지를 끌어안는 심정으로 그 여름날의 기억을 더듬어왔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지난여름을 되짚는 이해라는 갈래길 원영원의 〈여름의 갈래에서〉는 어느 여름날 어린 아들을 데리고 집을 나온 아버지의 여정을 아들의 시점에서 되짚는다. 조금씩 어긋나는 가족의 모습을 지켜보던 아들은 어떻게 아버지를 이해하게 되었을까? 아들은 시간이 한참 지나 아버지의 만화가라는 꿈과 녹록지 않은 현실의 괴리에서 왔던 절망을 회상의 방식으로 톺아가고, 마침내 ‘이해’라는 이름으로 그 시절의 아버지를 있는 그대로 끌어안는다. “모서리와 모퉁이의 이야기를 찾을 수 있는 곳이었으면” 저마다의 단절감 속 연결을 향한 몸부림 강다운의 시 다섯 편에서 두드러지는 건 ‘기다림’이다. 술과 담배가 떨어진 집에서 집주인인 피에르를 기다리고(〈부러진 문고리〉), 추모공원에서 매일 기도하러 오는 수녀를 기다린다(〈새가 없는 공원〉). 강다운의 시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늘 어딘가 어긋난 형태로 서로 관계 맺는데, 그 방식은 마치 아직 태어나지 않은 천사의 “사라진 날개의 흔적”(〈00〉)처럼 희미하고 불완전하다. 아스팔트 도로에서 로드킬을 당한 “고양이의 젖은 영혼들이”(〈울지 마, 빌리〉) 주인공 빌리를 응시하기도 한다. 시 속 존재들은 저마다의 단절감 안에서 미약하게나마 연결되기 위해 끊임없이 노래한다. “난 그 사람이 죽었으면 좋겠는데.” 변해버린 얼굴 아래 서서히 떠오르는 애증 김나은의 〈좋은 여자〉에서는 연이 끊어졌다 생각했던 엄마가 이름과 얼굴을 바꿔 딸 ‘재연’의 삶에 난입한다. 암에 걸려 금방이라도 죽을 듯한 엄마를 바라보며 재연은 몰라볼 정도로 달라진 엄마의 모습과 태도에 낯섦을 느낀다. 청년 계좌를 신청하기 위해, 이제는 모두에게 ‘좋은 여자’라 불리는 엄마와 관계가 단절되었음을 증명해야 하는 재연의 처지가 아이러니하게 펼쳐진다. “왜 엄마의 그림자를 보는 건 항상 나일까?” 오해와 이해 사이 짙디 짙은 그림자 신은솔의 〈그림자 밟기〉는 다정하면서도 어딘가 불안해 보였던 ‘두정 언니’와 외로운 청소년이던 ‘나’의 우정을 그렸다. 동생의 지병으로 부모님이 집을 비우는 시간이 잦아지자 ‘나’는 이웃집 두정 언니에게 차츰 의지하게 된다. 그러나 끝내 두정 언니를 떠나보내며 가까운 이의 죽음을 목도한 ‘나’는 오랫동안 이해하지 못했던 엄마의 그림자를 비로소 바라보게 된다. “나는 나의 상주가 되어야지” 세계를 살리는 빛으로 탈바꿈하는 고유한 언어 이비의 시 다섯 편은 그 개인이 속한 사회에 초점을 맞추며 관점을 확장시킨다. 구체적인 사회적 연대의 장면이 드러나면서도, “합의 공장에 근로자 위원도 국선 노무사도 내 편은 아니고”(〈입〉), “목소리가 돼보라더니 입을 뺏는”(〈또〉)과 같이 연대의 과정에서 필연적인 갈등도 선명하다. “그러면 나는 나의 상주가 되어야지”(〈333〉) 하고 체념하다가도 결국 이렇게 된 것은 “사람하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을 만큼 무엇을 해버린 사람들”(〈몸으로 들어가기〉)이기 때문이므로, 함께하기를 영영 포기하지는 않는다. 후회의 그을음과 달콤 쌉싸름한 물음 우리는 살면서 끊임없이 상처를 주고받는다. 개중에는 영영 낫지 않을 상처도 있고, 이미 나아 자취를 감춘 상처도 있을 테다. 이 책의 인물들처럼, 교제 폭력이나 우울처럼 여전히 반복되는 상처가 우리 곁에 있다. 어떤 사람들은 스스로의 우울감을 이기지 못한 채 문드러진다. 세상의 한편에서는 노동 계급이 싸우고 있고,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받은 상처를 끝내 치유하지 못하는 이도 있다. 영영 낫지 않을 ‘상처’에 약도, 소금도 아닌 ‘시럽’을 뿌려보는 이들의 마음은 무얼까. 시럽은 굳어 잠시간 상처를 보호하지만, 고름은 아니기에 딱지가 되지 못한다. 이 이야기들은 완전한 치유법이 되지는 않지만 잠시 움츠리는 법을 일러준다. 우리는 서로의 고통을 온전히 끌어안을 수 있을까. 그 답은 이 책을 덮은 뒤, 독자 각자의 자리에 남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