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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언
머리말: 자유의 의미 제1부 비서구 세계에서 자유의 사산 1장 원시의 시작 2장 눈의 창조를 위하여: 어째서 자유는 비서구 세계에서 실패했는가? 제2부 그리스적 자유의 해석 3장 자유의 그리스적 기원 4장 노예사회의 출현과 시민적 자유 5장 페르시아 전쟁과 유기체적(주권적) 자유의 탄생 6장 노예제, 제국, 그리고 페리클레스적 융합 7장 여인의 노래: 여성의 힘과 그리스 비극, 그리스 사회의 자유 이데올로기 8장 분열과 확산: 기원전 5세기 후반 이후 계급과 자유의 요소들 9장 외부의 지적 반응 10장 내면의 자유로의 전환 11장 헬레니즘과 초기 로마 세계의 지적 반응 제3부 로마와 자유의 보편화 12장 로마 공화제 내부의 자유와 계급투쟁 13장 로마 해방민의 승리: 제국 초기 도시 대중의 개인적 자유 14장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타협: 개인적 자유를 보호하는 주권적 자유 15장 자유, 스토아주의, 로마의 마음 제4부 기독교와 자유의 제도주의 16장 예수와 예수운동 17장 예수와 바울 사이 18장 바울과 그의 세계: 도시 해방민의 공동체 19장 바울과 인류의 자유: 바울의 자유신학 제5부 자유의 중세적 재건립 20장 중세의 자유와 예속 상태 21장 중세판 자유의 화음 22장 중세의 종교 사상과 세속적 사상에서의 자유 맺음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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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역사사회학이라는 무기를 갖추고 노예제라는 이름의 사람 잡아먹는 늑대를 찾아 나섰다. 하지만 당혹스럽게도 내가 계속 발견한 것은 자유라고 불리는 어린 양의 발자국이었다. 서구의 과거라는 산기슭에서 그 양과 처음 마주쳤을 때, 그 어린양은 당혹해하며 순진하지 않은 눈으로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노예제가 양의 탈을 쓴 늑대였다는 말인가? 내 과거 경험으로는 믿기지 않는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사냥감을 바꾸기로 했다. 자유의 사회역사적 뿌리를 찾고 시간과 맥락 속에서 그 본질을 이해하는 것이 내 목표가 되었으며, 지난 8년 동안 이 목표는 변함없었다. 내가 발견한 것들은 바로 이 책에 담았다.
--- p.16 이같이 중요한 점을 부각하기 위해서는 밀러의 임방갈라족에 대한 탁월한 민족지로 돌아가는 것이 최선이다. --- p.66 개인적 자유는 경멸받는 가치에 불과했으며, 역사시대 전반에 걸쳐 시민적 자유의 흔적은 거의 발견되지 않는다. --- p.85 기원전 6세기와 기원전 5세기의 평범한 그리스 여성이 노예를 목도하며 그 조건을 반추했을 때, 그녀는 필연적으로 “신의 은총이 아니었다면 나 역시 저 노예와 다를 바 없었을 것”이라는 자각에 직면해야 했을 것이다. 즉, 여성은 주인과 노예의 예속 관계를 타파하고자 하는 노예의 열망에 공감함으로써 자유를 더 선명히 의식하게 되었다. (…) 여성은 남성과 달리 “이 관계를 통해 지배 계급으로부터 어떤 정치적 양보를 이끌어낼 것인가”를 전략적으로 계산하지 않았다. --- pp.157-158 어떤 정치적 과정의 태동과 초기 제도화를 보장하는 요인, 그리고 그 과정의 영속성을 담보하는 요인을 엄밀히 구분하는 것은 역사사회학의 가장 근본적인 과업이다. 안타깝게도 그간의 논의에서 이러한 구분은 너무 자주 간과되어왔다. (…) 이 글의 핵심 논지를 다시 강조하자면 (…) 노예제의 존재는 엘리트 집단이 대중을 압박할 필요를 억제했으며, 그들로 하여금 민주제의 근간인 사법 시스템에 마지못해서라도 순응하게끔 유도하는 기제로 작용했다. --- p.192 여기에 우리는 동일한 반노예제 정서 또한 추가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이 정서가 동일한 이유에서 비롯되었다고 확신한다. 그것은 단순히 인도주의라는 윤리적 명령으로서가 아니라, 개인적 자유라는 관념과 가치를 대조적으로 정의하고 은유적으로 표현하기 위한 필연적인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 p.294 플라톤은 어떻게 자유에 대해 그토록 극단적으로 적대적인 외적 관점을 갖게 되었던 것일까? 플라톤의 계급적 배경이나 전쟁 경험, 그리고 아테네 민주제의 혼란기가 그의 정치적·이데올로기적 편향을 설명하는 데 중요하다는 점에서 나는 포퍼의 견해에 기본적으로 동의한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의 근저에 깔린 본질주의적 인식론과 방법론이다. 여기서 포퍼의 논거를 요약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대신 나는 포퍼가 충분히 주목하지 않았던 구분, 즉 앞서 언급한 자유에 대한 외적 관점과 내적 관점 사이의 차이에 집중하고자 한다. --- p.300 개인적 자유가 근대 사회의 독특한 산물이며, 특히 국가에 맞선 자유를 강조하는 특정 형태가 그러하다는 말이 회자되곤 한다. 이러한 두 견해가 전적으로 잘못되었음을 입증하는 것이 이 저작의 주요 과업 중 하나다. --- p.309 우리는 외부적·물질적·정치적 세계 속에서의 자유를 탐색하며 분석을 시작했다. 이 장의 서두에서 자유의 두 번째 영역인 지성적 내적 영역을 발견했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세 번째 영역을 발견하기에 이르렀다. 이것 역시 인간 내면에서 발견되는 것이지만, 그 영역은 앞선 내적 지성의 영역과도 다르고 외부 세계와도 구별된다. 이 자유의 세 번째 영역을 우리는 편의상 영적인 영역이라 명명할 수 있을 것이다. 영성은 외부 세계에 대립한다는 점에서는 지성과 궤를 같이하지만, 그 밖의 모든 면에서 궤를 달리한다. 지성이 본질주의적이라면 영성은 실존적이며, 지성이 사유적이라면 영성은 계시적이다. 또한 지성이 법(관습)에 기초해 있다면 영성은 자연에 뿌리를 두며, 지성의 거처가 이성이라면 영성의 거처는 열정이다. 지성이 대상을 움켜쥐는 포착의 과정이라면 영성은 신성이 다가오는 수용의 과정이며, 지성이 통합을 추구한다면 영성의 지향점은 해방이다. 영성은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것이며 무엇보다 이 세계와 부침하는 시간의 흐름에 속해 있다. 반면 지성은 세속적인 것을 경멸하며 시공간을 초월하고자 한다. 그리하여 지성은 시간을 영원회귀에 귀속시키고 인류를 철저한 타자성으로 전락시키는 영원한 실재와 확신들의 영역을 공허하게 포용할 뿐이다. --- pp.343-344 항상 유념해야 할 두 번째 요점은, 고대 그리스보다 로마의 경우 훨씬 더 심각할 정도로, 우리가 가진 문헌 사료가 거의 전적으로 상류층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이다. 도널드 얼이 로마의 도덕 및 정치사상에 관한 거장다운 연구의 서두에서 경고했듯이, 우리는 오직 상류층에 대해서만 상세히 논의할 수 있을 뿐이다. --- p.410 역사적 비평에서 놀라운 점은, 로마 상류층이 해방민을 향해 보냈던 경멸적인 시각을 역사학계가 맹목적으로 수용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서술의 질을 떨어뜨릴 뿐만 아니라, 지극히 자명한 사실을 무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놀랍다. 즉, 로마 본토의 엘리트층이야말로 지배 계급의 전 역사를 통틀어 단연코 가장 탐욕스럽게 물질적이고 과시적인 집단 중 하나였다는 사실 말이다. --- p.454 하지만 아우구스투스는 자신의 막강한 권력을 개인적 자유를 옹호하는 데 휘두름으로써 무엇을 얻고자 했을까? 우리는 그가 개인적 자유의 확장을 진심으로 지지했다고 믿는다. “이민족이나 노예의 피로 더럽혀지지 않게 인민을 순수하고 깨끗하게 유지하기 위해, 그는 로마 시민권 부여를 매우 아꼈으며 해방에도 제한을 두었다”라는 수에토니우스의 자주 인용되는 견해는 편향된 인종주의적 헛소리에 불과하며, 로마의 반동적 역사가들에 의해 너무 오랫동안 수용되어왔다. --- p.474 그들의 몰입도가 어떠했든 간에, 강조점은 운명과의 일치를 통해 얻어지는 자유보다는 운명에 대한 굴복에 더 찍혀 있다. 스토아주의와 자유 사이의 연결 고리를 이해하는 데는 진정한 지적 노력이 요구되는데, 이들은 다른 방면에서 아무리 위대한 천재성을 발휘했더라도 그러한 노력을 기울일 의지가 없거나 능력이 부족했던 것으로 보인다. --- p.501 마르쿠스의 『명상록』에는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 특유의 형언할 수 없는 분위기가 서려 있다. 독자는 무언가를 절박하게 갈망하며, 비극적이게도 손에 닿지 않는 듯 보이는 진리를 끊임없이 움켜쥐려는 한 인간의 현존을 마주하게 된다. 그것은 그가 경험했다가 상실한 무엇이 아니라, 단 한 번도 소유해본 적 없는 무엇이다. 그는 사랑해본 적 없는 키츠의 시 속 인물과 같아서, 자기 삶에 무언가 끔찍하리만치 결여되어 있다는 점은 알고 있으나 그것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말하지 못한다. 그는 오직 암시할 수 있을 뿐이다. 그는 때때로 그것을 언급하겠지만, 그럴 때마다 어색함, 즉 혼의 극심한 당혹감이 뒤따른다. 『명상록』의 지면을 배회하는 그 실체, 즉 경험되지 않았고 설명할 수도 없는 사랑의 정체는 바로 자유다. --- pp.509-510 자유는 구원과 기독교적 삶을 실천하는 데 따른 가장 큰 보상이었다. 그러나 바울은 역설적이게도 유랑 카리스마 전도자들로부터 이러한 자유가 결여되었다는 비난에 직면했다. “내가 자유롭지 아니하냐? 내가 사도가 아니냐?”라는 바울의 방어적이고 격정적인 토로는 당시의 긴박한 정황을 반증한다. ---p.572 물론 그 경쟁은 순수한 그리스도론의 바울 버전이었다. 초기 기독교의 다른 모든 버전은 어떤 식으로든 자유의 가치에 관심을 가졌지만, 자유의 종교적 표현을 노예 해방과 같은 자유의 경험과 그토록 밀접하고 완벽하게 연관시킨 적은 없었다. (…) 그것은 순전히 신학과 실천 사회학의 천재가 발현한 것이었다. 그것도 단 한 명의 성취였다. 바로 타르수스의 바울이다._579~580쪽 --- pp.579-580 이 시점에서 기억해둘 점은 대규모 노예 사회에 사는 모든 사람은 군주든 거지든, 노예든 자유민이든, 부자든 빈자든, 남성이든 여성이든 어떤 식으로든 그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대규모 노예사회에서 노예관계는 혈액 속의 암세포처럼 모든 곳에 침투해, 모든 것을 오염시키고 모든 것을 타락시키는 동시에 모든 이의 마음속에서 자유를 가장 압도적으로 선하고 바람직한 것으로 증폭시킨다. --- p.58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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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에서 예수와 바울까지
자유의 삼화음과 불협화음의 역사사회학적 탐색 “자유는 노예와 비노예 모두에게 지독히 비인간적인 조건이었던 상황을 부정하고자 하는 노예의 절박한 갈망 속에서 사회적 가치로서 그 여정을 시작했다.” 저자의 기본 논지를 담고 있는 이 문장은 그동안 자유의 기원이 된 노예제의 장기적 중요성이 과소평가되었음을 강조하고 있다. 자유는 결코 원초적이고 노예적인 근원으로부터 분리된 적이 없다. 따라서 자유는 서구 문화의 가장 중요한 공헌일 텐데, 즉 자유를 위해 비옥한 토양을 마련한 곳은 오직 그리스뿐이었다. 반면 어떤 이유에서인지 동양이나 아프리카에서는 자유보다 명예, 영광, 권력 추구와 같은 가치를 훨씬 더 중요하게 취급했다. 따라서 저자는 왜 어떤 문화는 자유를 중시한 반면, 다른 문화들은 그렇지 않았는지를 설명하려 시도한다. 그는 이 책에서 자유의 ‘삼화음’을 주창한다. 자유는 단일한 개념이 아니며, 세 가지 음으로 이루어진 화음이다. 기원전 5세기 중엽에 나타난 자유는 수 세기에 걸쳐 이 음들 중 특별히 어떤 한 음이 소리를 높이도록 했고, 이렇게 다른 두 음을 누르고 하나가 솟아오르면 긴장이 생기곤 했다. 삼화음의 첫 번째는 ‘개인적 자유’다. 영미권의 정치 전통과 가장 명확하게 연결된 개념이며, 말하자면 국가의 강압으로부터의 자유다. 두 번째는 ‘시민적’ 자유로, 이는 “성인 구성원이 공동체의 생활과 통치에 참여할 수 있는 능력”이다. 세 번째는 ‘주권적’ 자유로, 타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자신이 원하는 대로 행동할 수 있는 힘이다. 사실상 노예 소유주들의 권리를 반영한 것으로, 이 철학은 페르시아 전쟁과 펠로폰네소스 전쟁에 대응하면서 확장됐고 문화적 제국주의와 그리스인의 우월성을 은근히 드러내기도 한다. 고대 아테네 거주자들은 자유의 삼화음을 모두 찬미했지만, 각 집단이 음에 부여한 위계는 저마다 달랐다. 시민이나 노동자 계층 남성들은 무엇보다 시민적 자유를 가장 소중히 여겼던 반면, 귀족 엘리트들은 권력을 누릴 수 있는 주권적 자유를 중시했다. 반면 해방민과 거류외국인들이 핵심으로 꼽은 음은 개인적 자유였다. 그리고 가장 주목해야 할 아테네 여성들은 개인적 자유를 정교하게 다듬고 격상시킨 주역으로 활약한다. 저자는 책 전체에 걸쳐 ‘왜 우리는 자유를 그토록 중요히 여기는가’라는 질문을 깊이 파고든다. 사람들은 흔히 자유를 본능이라 여겨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자유는 결코 자명하지 않다. 비서구 세계의 역사를 살펴보면 이 점을 곧바로 알 수 있다. 이 책은 로마 시대, 초기 기독교 시대, 중세 유럽을 거쳐 자유의 삼화음을 추적해나간다. 대부분의 사람은 로마가 어느 정도까지 노예가 지배적이었는지 잘 알지 못한다. 언제나 제국의 위대함이 강조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정한 영광의 시대가 시작될 무렵 대다수의 로마인은 노예, 전前 노예 혹은 노예의 후손이었다. 도시의 사업들은 바로 이들이 운영했고, 해방 노예들은 로마 사회에서 백인대장 계급을 장악했으며, 제국의 관료 조직도 그들에 의해 운영됐다. 저자는 이 로마 사회에서 바로 기독교가 기원했는데, 초기 기독교인 중 정말 중요한 사람들은 해방 노예였고, 이들이 자유라는 이상을 그토록 소중히 여겼다고 말한다. 이 책이 고대 그리스를 지나 바울의 사상을 집중적으로 조명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기독교는 무엇을 했는가? 이 종교는 노예제와 자유의 경험을 가장 중요한 종교적 이상, 즉 영적 자유를 표현하는 은유로 활용했다. 그들이 사용한 ‘구속redemption’이라는 단어는 문자 그대로 누군가를 노예 상태에서 사서 해방시키는 것을 뜻한다. ‘자유로워지다’라는 사상을 핵심 신조로 삼은 기독교는 이로써 유일하게 위대한 종교가 되었다(이는 스토아주의나 영지주의, 유대교나 이슬람교는 하지 못한 일이다). 그리고 그 기독교의 창시자는 바울과 로마 교회라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이 책은 바로 이 부분에서 획기적인 시각을 보여준다. 바울과 초기 교회의 사상이 영적 해방으로 옮겨가면서 ‘노예에서 자유로’라는 은유를 강력하게 활용한 것을 이 연구는 포착했다. 즉 「갈라디아서」는 개인의 영적 자유를, 「로마서」는 신께 굴복함으로써만 얻게 되는 궁극적인 자유를 발견하게 된다는 인식을 얻었다. 유럽은 곧 기독교 세계가 되었고, 기독교 세계는 오직 하나의 목표, 즉 구속과 자유에 끊임없이 집중했다. 저자는 기존의 근대적 자유주의를 강조하는 학자들과 달리 중세 문명에 이미 자유의 정신문화가 울려 퍼져 있었다고 본다. 그에 따르면, 중세 말에 텍스트는 거의 완전히 편집되었고, 근대 역사는 여기에 긴 주석을 단 것일 뿐이다. *** 패터슨의 논지에서 주목할 만한 것은 양가감정이다. 모든 선한 것은 선한 것으로만 오지 않는다. 그것은 반대의 것과 함께 온다. 즉 우리가 목숨 걸고 지키려는 선善 속에는 종종 우리가 가장 혐오하는 악惡도 내재되어 있다. 자유는 서구 문명의 천재성과 모든 위대함의 씨앗이지만, 동시에 탐욕과 소외, 사회적 불의의 근원이기도 하다. 선과 악은 상호 의존적이며, 그것이 바로 삶이고 역사다. 저자는 전작 『노예제와 사회적 죽음』을 쓰면서 노예제의 역사를 쓰는 것이 곧 자유의 역사를 쓰는 것임을 깨달았다. 그리고 8년에 걸친 연구 끝에 『자유의 역설』을 내놓았다. 학계는 이 책이 “사회과학과 역사의 경계를 허문 거대한 지적 성취”를 이뤄냈다고 평가했다. 99퍼센트의 사회과학자가 좁은 주제에 매몰될 때, 올랜도 패터슨은 베버처럼 여러 세기와 여러 대륙을 넘나들며 거대 담론을 펼쳐 ‘르네상스적 학문’의 모범을 보였다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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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터슨은 리즈먼, 벨, 파슨스와 함께 하버드 사회학의 마지막 거장들 중 한 명으로 손꼽힌다. - 크리스토퍼 윈십 (하버드대학 사회학과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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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과 사회학 전체에 가장 광범위하고도 깊은 충격을 던진, 학계의 판도를 바꾼 기념비적인 이정표. - 마이클 매코믹 (하버드대학 역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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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보적인 존재다. 그의 연구가 지닌 방대한 범위와 야심은 그를 나머지 99퍼센트의 사회과학자들과 차별화시킨다. 그는 여러 세기와 여러 대륙을 가로지르는 거대한 질문을 던지는 ‘르네상스 학자’다. - 로익 바캉 (UC 버클리 사회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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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기존 학자들의 역사적 통념과 가정을 완벽하게 뒤흔든다. - 데이비드 스콧 (컬럼비아대학 인류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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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식 있고, 웅변적이며, 엄청나게 깊은 생각을 자극하는 이 책은 우리 문화유산의 가장 깊은 모순의 핵심을 찌른다. - 데이비드 B. 데이비스 (예일대학 역사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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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 문명의 형성 과정을 분석하는 데 패터슨의 통찰은 핵심적이다. 문화적 분석, 역사적 자료, 과학적 연구를 총동원해 자유의 세대별 변화를 보여준다. - 얼 C. 존슨 (존슨 시카고대학 사회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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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터슨은 인류 역사상 가장 잔인한 제도인 노예제가 역설적으로 인간에게 ‘자유라는 의식’을 눈뜨게 만든 촉매제였음을 밝혀냈다. 서구 문명의 형성과 기독교 정신의 모순을 이해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만 하는 기념비적인 이정표다. - 전미도서상 심사위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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