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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무지개에는 왜 검은색이 없을까요?
2. 생은 조용한 꿈 3. 파란 피 4. 모나의 집은 어디인가? 5. 죽음의 유혹은 꽃으로부터 시작한다 6. 붉은 사과가 푸르게 변한다 7. 시실리 8. 크레타를 묻지 마세요 9. 팝팝 비디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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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진은 무시무시한 악몽에 시달렸다. 엷은 노란빛의 대바구니가 푸른 하늘에 둥둥 떠다녔고, 대바구니에서 노란 나방 수천 마리가 꾸물꾸물 기어 나와 하늘을 돌아다녔다. 나방떼는 연꽃 무늬를 만들며 그녀를 향해 날아와서 그녀의 머리 위에서 맴돌았다.
수진은 눈꽃처럼 새하얀 옷을 입고 있었다. 나방떼가 그녀의 어깨에 내려앉아 옷을 벗겨냈다. 어느 틈엔가 그녀는 나신이 되어 푸른 잔디 위에 누워 있었다. 오색의 꽃배암이 그녀를 향해 기어왔다. 꽃배암은 그녀의 배꼽을 지나 젖무덤으로 기어 올라왔다. 수진은 꿈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알았다. '깨어나야 해. 깨어나야 해.' 어디에선가 한 무더기의 거미들이 나타나 천지를 뒤덮었고, 그 거미에게서 나온 은실이 지상을 향해 내려오기 시작했다. 천 마리. 천 마리. '깨어나야 해…… 이건 꿈이야…… 꿈이야.' ---p.1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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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역의 피가 흐르는 그녀들은, 살아남은 것이 죄가 되는 5월이면 청바지 입기 운동을 벌이는 도시 한복판에 시실리라는 안전 지대를 만드어 놓고, 그 음탕한 공기를 마시며 피를 삭이고 있었다. 여자들은 누구나 조금씩 피로했다. 잿빛 승복을 입고 싶거나, 예술가가 되고 싶은 여자들이었다.
--- p.17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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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입을 통해 여성이 주도하는 성담론
백은하의 소설에는 성에 대한 언설이 도드라져 보인다. 물론 사뭇 도발적으로도 보이는 그 성적 담론은 말초적인 자극과 별로 관계 없다. 오히려 성을 욕망의 말단으로 환치하려는 이데올로기의 저변을 해체하려는 의도를 드러내곤 한다. 모성성이 삭제되어 여성성의 근저에는 늘 성적 매력에 얽힌 이야기가 펼쳐져 있게 마련이다. 그것은 통상 남성들의 입을 통해 은밀한 수작으로써 유통된다. 그런 이야기가 공론화되는 것은 불경이며, 더구나 여성의 입을 통해 전해지는 것은 불경 중에서도 불경이다. 그런 불경스런 이야기를 백은하의 작품 대부분에 걸쳐 접하게 된다. 그의 이야기는 과연 낯뜨겁고 불경스런 이야기인 셈이다.
특히 『붉은 사과가 푸르게 변하다』에서는 승려와 여 주인공이 절간에서 벌이는 정사 장면이 연출되기까지 한다. 불경스러움은 그런 식으로 종교적 계율마저도 위협하려 드는 것이다. 물론 거기에 숭고한 의미가 부여되기는 커녕 '쾌락'이란 기표가 부여될 뿐이다. 그런가하면, 글자 그대로 불경스런 이야기라도 하듯, 불교의 핵심 이념 가운데 하나인 '윤회와 인연'에 관한 사변조차도 가벼운 농담거리로 전락시켜 버리는 듯하다. 『생의 조그만 꿈』의 테마는 윤회의 트리비얼리즘이라 할 법하다. 욕망의 대유물이랄 수 있는 '토파즈 반지'가 인연의 고리가 되어 등장하는 인물들에 얽힌 이야기가 해프닝처럼 펼쳐진다. 사랑도 죽음도 이야기되지만 별스레 진지한 이야깃거리가 아니다. 작가는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 아니라 '인연은 옷깃 스치는 정도로 사소한 것'이라는 심산을 한 것이 분명하다. 그렇게 권위와 숭고함은 전혀 다른 차원에서 조롱 받는다. 대단히 불경스러운 이야기를 한 것이다. 공교롭게도 작가는 '색'에 대해 많이 담론한다. 물론 색은 종교적으로 욕망을 대유한 표현으로 여겨진다. 채색되고 치장된 화려함은 욕망을 자극하게 마련이어서 그러듯 여겨졌을 법하다. 통상 모든 세속적 욕망, 특히 성적 욕망을 표현하여 색이라 한다. 숭고와 권위를 표상하는 매체는 무채색 일색이다. 색은 화려함만큼이나 정신을 산란하게 하기 때문일 것이다. 상대적으로 권위를 해체하기에는 색에 대한 감각을 드러내는 것만한 전략도 없을 터이다. 색바랜 숭고한 담론들, 그 권위에 찬 가부장적 담른들 너머로 색의 담론이 펼쳐진다. 여성의 성장이란 주제를 드러내기 위해서는 먼저 가부장적 이데올로기를 해체해야 한다고 전제하고 보면, 백은하의 소설에 드러난 모티프와 테마들 간의 연관성을 이렇게 이해할 법도 하다. 희망과 동경의 상징인 무지개에는 검은 색이 없을 수밖에 없으며 있어서도 안 될 것이라고. 작가는 고지식해 보일 만큼 진지한 세계를 열어 보이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이 치고 빠지는 솜씨가 유연하다. 어떤 한 작품만으로 작가의 색깔을 단정할 수 없는 것도 그런 이유들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