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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원하는 우주가 내 이름으로 올 때까지1부 무명의 존재들날 ‘부르스’라 불러줘, 그러면 내가 돌아볼게당신은 내게 이름조차 주지 않았어소유격 전치사로 이름 붙여진 여자들‘그것’이 자라 이름표를 뺏어 달고2부 호명하는 사랑그 이름을 지어주고 스너프킨이 말했어일일이 호명하던 날의 풍경너를 내 이름으로 부르는 순간우리가 함께 울었던 모든 밤을 기억해줘더 많이 더 깊이 사랑해주려고3부 죽음 너머의 이름몇 번의 죽음과 생을 건너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그 이름을 끝내 부르지 못하고마법 같은 생각을 한 한 해4부 나의 이름, 나의 근원마야 리 랑그바드 씨, 한국 이름 이춘복을 버려요그에게 다른 이름을 준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최초의 서래와 동점아리아가 이름 없는 자가 될 때가지5부 그 이름으로 산다는 것우리는 이름을 몇 개라도 새로 지을 수 있어내 고통에 이름 붙일 수 있다면너에게 만은 내 진짜 이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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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프랑켄슈타인』의 괴물부터 『시녀 이야기』 속 여성들까지이름은 어떻게 인간을 만들고, 지우고, 연결하는가 1부 ‘무명의 존재들’에서는 이름을 부여받지 못한 이들이 어떻게 폭력적인 구조에 놓이고 인간성을 박탈당하는지 다룬다. 예컨대 저자는 영화 〈송곳니〉를 통해 이름의 부재가 독립적인 자아의 인식과 형성을 막는다는 점을 보여준다. 외부와 철저히 단절된 채 살아가는 영화 속 세 자녀는 아버지가 설계한 폐쇄적 질서 안에서 서로를 구별하는 이름도, 사회를 이해할 언어 체계도 없이 성장한다. 이름을 갖지 못한 존재는 자신을 독립적인 ‘나’로 상상할 수 없고, 타인과 경계를 세워 자신만의 세계를 확장하거나 사회로 나아갈 좌표 역시 잃는다. 저자는 이러한 구조 속에서 큰딸이 우연한 계기로 ‘이름’의 부재를 자각하고 스스로 이름을 붙이는 장면에 주목한다. 자기 삶의 주체로 다시 태어나는 순간, 저자는 이 장면을 통해 이름이 인간이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고 자아를 형성하며 자주적인 개인으로 살아가기 위한 가장 우선적인 토대임을 이야기한다. 창조주가 피조물에게 해줘야 하는 첫 번째의 일, 가장 기본이 되는 이름조차 지어주지 않았다. 크리처가 괴물이 될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잖은가. (…) 나는 환대는커녕 적대만 가득했던 크리처의 삶의 편에 설 수밖에 없었다. 이어 2부 ‘호명하는 사랑’에서는 서로 이름을 부르며 연결되는, 지극히 ‘인간적인’ 행위에 담긴 의미를 한 겹씩 떼어본다. 저자는 『늦가을 무민 골짜기』 속 스너프킨이 이름 없는 존재에게 이름을 건네는 장면,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과 〈윤희에게〉 속 인물들이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을 거듭 부르는 순간들에 주목한다. 상대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수많은 타인 중 한 존재를 특별한 ‘너’로 구별해 자신의 세계 곁으로 들이는 일이며, 애정과 욕망, 그리움과 소유의 감각을 건네는 가장 오래된 인간적 방식이다. 저자는 그 섬세한 순간들을 따라가며, 인간이 왜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을 끝없이 불러보고 싶어 하는지를 이야기하고 그 안에 담긴 상대를 향한 깊은 애정과 투명한 욕망을 건져 올린다. 내 존재를 일컫는 고유명사인 이름을 서로 바꿔 불러준다는 것은 어떤 걸까. (…) 한 존재를 내 속으로 받아들이는 엄청난 일, 나를 한 존재의 속으로 온전히 들이미는 일. 3부 ‘죽음 너머의 이름’에서 저자는 무(無)로 돌아가도 영원히 사라지지 않고 남는 망자의 이름을 하나씩 줍는다. 이름은 살아 있는 동안 한 존재를 세상에 붙들어두는 표식이지만, 누군가 떠난 뒤에는 남겨진 사람들이 상실을 견디는 마지막 언어가 되기도 한다. 저자는 김소월의 시 〈초혼〉 속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라는 시구와 마을의 장례식에서 상여소리를 처음 들은 자신의 어린시절 경험을 겹쳐 보며 죽은 자의 이름을 그저 부르며 살 수밖에 없는 애달픈 마음을 떠올린다. 죽음 이후에도 인간은 이름을 통해 관계를 지속한다. 어느새 나는 곳집이다. (…) 애달픈 곡소리가 들려온다. 산 자와 죽은 자 사이의 간극을 두고 이름을 외치는 소리가 발걸음 사이로 흩어지고 메운다. 산 자는 죽은 이의 이름을 ‘설움에 겹도록 부를’ 뿐이다. 부르다가 죽을 이름을, 어쩌면 부르다가, 부르다가 내가 살 이름을. 내가 떠나온 이름, 선택한 이름, 돌아온 이름…스스로 규명하며 ‘나’의 자리를 찾는다는 것 4부 ‘나의 이름, 나의 근원’에서는 이름에 깃든 나의 정체성과 뿌리에 초점을 맞춘다. 덴마크의 한국계 입양인으로서 자전적 경험을 풀어낸 마야 리 랑그바드의 에세이 『그 여자는 화가 난다』는 모든 문장의 주어가 ‘여자는’으로 되어 있다. 저자는 애정 없이 지어진 자신의 한국 이름과 무심하게 자신을 버린 친부모에 대한 마야 리 랑그바드의 분노, 주어진 이름을 기꺼이 스스로 떠난 그녀의 마음과 공명한다. 이름의 근원을 찾는 그녀의 여정은 ‘나는 어디에서 왔는가’라는 근원적 물음과 맞닿아 있다. 또 소설 『이름 뒤에 숨은 사랑』에서 아버지가 애정을 담아 아들에게 이름을 물려주지만 정작 아들은 그 이름을 벗어나고 싶어 하는 이야기를 통해, 저자는 누군가의 이름을 지어주던 순간에 담겼을 부모의 사랑과 기대를 헤아리며 한평생 크게 애정하지 않았던 자신의 이름을 다시 마주하게 된다. 저자는 타인이 건네준 이름의 맥락을 이해하고 마침내 자신의 이름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가 하는 질문을 확장해나간다. 이름을 바꾼다면 개명이, 운명을 바꿔줄까? 맺거나 끊거나 이어온 관계들이 새롭게 바뀔까? 누가 바뀐 이름으로 불러줄까? 옛 이름으로 나를 기억하고 새 이름으로 나를 알게 될 사람들이 혼재하는 시간이 지나고 나면, 이전의 지나간 날과 남은 인생의 나는 어떻게 살다가 가게 되려는지. 확장된 주제의식은 마지막 5부 ‘그 이름으로 산다는 것’로 이어진다. 영화 〈허공에의 질주〉에서 저자는 정치적 도피 생활 속에서 가명으로 삶을 이어온 주인공이 끝내 자신의 진짜 이름으로 살아갈 결심을 하는 장면에 주목한다. 이름과 존재가 일치한 ‘나’로 살아간다는 것은 단지 자기 정체성을 찾는 일이 아니라,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삶의 책임과 사랑을 기꺼이 감당하는 일에 가깝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름과 존재가 일치한 ‘나’로 살아갈 때 나 자신과도, 내가 사랑하고 나를 아끼는 주변 사람들과도 진정으로 잘 지낼 수 있을 것이다. “한 사람을 이 세상에 발붙이게 하는, 이름의 점성”우리를 구하는 호명의 관계학 외로움과 고립이 사회적 화두가 된 시대, 인간은 왜 여전히 누군가에게 불리고 싶어 하고, 누군가의 응답을 필요로 할까. 분열과 단절, 혼란이 심해지는 만큼 거꾸로 진정한 소통과 이해를 갈구하게 된다. 사람들은 점점 더 자주 인공지능이 자신을 분석해주는 콘텐츠에 열광하며, 인공지능에게 마음을 털어놓고 위로와 응답을 구한다. 저자는 호명되고 스스로 규정하며 ‘나’를 찾아가는 존재들의 이야기를 통해 인간 존재의 오래된 갈망을 비춘다. 누군가에게 불리고, 기억되고, 이 세계에 속해 있다고 느끼고 싶은 마음을 발견한다. 우리는 태어나며 이름을 얻지만, 어쩌면 평생에 걸쳐 자신의 이름에 가까워지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이름은 존재를 확인하는 자리이자, 인간을 만들고 지우고 다시 태어나게 하는 자리다. 『이름의 빈자리에』는 이름 뒤에 붙은 다양한 욕망과 감정을 통해 우리에게 ‘무엇이 사람과 사람을 닿게 만들까?’ ‘우리는 어떻게 삶을 붙들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을 던지며, 결국 한 존재를 그 자신과 세상에 붙들어두는 “이름의 점성”을 보여준다. 책장을 덮은 당신이 당신의 이름을 호명해본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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