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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 감별사회
성범죄 피해자 전문 변호사가 폭로하는 법정의 민낯
박영사 2026.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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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프롤로그
당신 편에 서서 끝까지 싸우겠습니다6

PART 01 유죄추정의 원칙이라는 착각13

01. ‘유죄추정 사회’라는 거짓 프레임15
02. 무죄추정의 원칙, 그 정확한 의미23
03. 원칙과 현실 사이에서 - 의뢰인들의 질문31

PART 02 법정의 언어 vs 피해자의 언어41

01. 진술의 일관성이라는 함정43
02. 증거의 역설 - 있어도 없는 것이 되는 순간54
03. 2차 가해로서의 법정 심문67
04. 피해자가 왜 저래?74
05. “그 사람 인생은 생각 안 해요?”90
06. 피해자의 언어가 법정에 닿지 못하는 이유97

PART 03 성범죄 재판의 숨겨진 규칙들107

01. “네가 조심했어야지”109
02. 강간 신화가 판결문에 스며드는 방식115
03. 무고 협박은 어떻게 통하는가124
04. 완벽한 피해자 vs 완벽하지 않은 인간129
05. 동의의 부재 vs 폭행·협박의 증명134
06. 판사는 왜 피해자를 믿지 않는가145

PART 04 피해자를 위한 실질적 가이드153

01. 신고를 결심하기까지155
02. 수사와 재판의 과정158
03. 당신 잘못이 아닙니다162
04. 주변인을 위한 가이드165

PART 05 법은 바뀔 수 있다167

01. 무엇이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가169
02. 바뀐 것들, 바뀌고 있는 것들172
03. 의뢰인의 편지175

에필로그
우리는 끝까지 당신의 편입니다178

부록180
참고문헌188

저자 소개 2

피해자 전문 법률사무소 로앤이 대표변호사. 성폭력, 스토킹, 디지털 성범죄, 폭행 사건에서 피해자를 대리한다. 사건을 맡을 때마다 피해자가 수사와 재판을 통과하기 위해 자신이 ‘진짜 피해자’임을 증명해야 하는 현실과 마주했다. 피해 사실보다 피해자의 표정과 말투, 사건 전후의 행실이 먼저 심사대에 오르고, 그 기준에 미치지 못한 고통은 쉽게 의심받거나 지워진다는 사실, 누구의 피해는 인정되고 누구의 피해는 걸러지는지에 대한 고민 끝에 그 감별의 잣대를 만드는 것이 결국 사회라는 점에 오래 문제의식을 품어 왔다. 피해자의 엄벌탄원을 돕는 인공지능 애플리케이션 ‘진심의 무게’를 만
피해자 전문 법률사무소 로앤이 대표변호사.
성폭력, 스토킹, 디지털 성범죄, 폭행 사건에서 피해자를 대리한다. 사건을 맡을 때마다 피해자가 수사와 재판을 통과하기 위해 자신이 ‘진짜 피해자’임을 증명해야 하는 현실과 마주했다. 피해 사실보다 피해자의 표정과 말투, 사건 전후의 행실이 먼저 심사대에 오르고, 그 기준에 미치지 못한 고통은 쉽게 의심받거나 지워진다는 사실, 누구의 피해는 인정되고 누구의 피해는 걸러지는지에 대한 고민 끝에 그 감별의 잣대를 만드는 것이 결국 사회라는 점에 오래 문제의식을 품어 왔다. 피해자의 엄벌탄원을 돕는 인공지능 애플리케이션 ‘진심의 무게’를 만들었고, 《바이브코딩 바이블》을 썼다. 충북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을 졸업했다.
피해자 전문 법률사무소 로앤이 대표변호사. 사기, 횡령, 배임, 보이스피싱 등 주로 재산범죄 사건의 피해자를 대리한다. 돈을 둘러싼 범죄일수록 피해자는 위로와 도움보다 ‘왜 속았느냐’는 물음 앞에 먼저 서거나 되려 가해자로 몰려 처벌될까 두려움에 떠는 피해자들의 모습을 보았다. 특히 피해 사실보다 피해자의 판단력과 부주의가 심판대에 오르고, 가해자의 책임은 흐려지는 구조 속에서 부조리한 수사과정의 개선방향과, 피해자의 재산회복 및 숫자로 계산되지 않는 피해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다. 경북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을 졸업했다.

품목정보

발행일
2026년 08월 20일
쪽수, 무게, 크기
192쪽 | 128*188*20mm
ISBN13
9791130303468

출판사 리뷰

프롤로그
당신 편에 서서 끝까지 싸우겠습니다

피해자 상담이 있던 어느 날이었다. 약물이 섞인 술을 마시고 준강간을 당한 피해자인 그녀는 겉으로 보기엔 멀쩡하고 평온해 보였다. 조사를 앞두고 떨리는 기색조차 찾을 수 없었다. 그러나 수사관이 확보한 모텔 입구 CCTV 영상을 보자마자 무너졌다. 눈이 크게 흔들리고, 손을 꽉 쥐고, 숨이 갑자기 가빠지고, 입술을 떨었다. 그녀는 목이 멘 소리로 말했다.

“저는… 제가 이렇게 끌려간 줄 몰랐어요…”

나는 그 CCTV 영상을 확인하며 머릿속으로 당시의 상황을 프레임 단위로 재현했다. 어떤 순간에 몸의 중심이 무너졌는지, 누가 어디에 손을 댔는지, 그녀가 스스로 서지 못했는지, 주변 사람들의 반응은 어떠했는지.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변호사의 역할은 단순히 피해자의 말을 대신 써주는 사람이 아니라, 무너지는 사람의 진실을 대신 붙잡아주는 사람이라는 것을. 이 역할이 없다면 그녀의 진실은 피고인의 부인 한마디에도 쉽게 사라질 수 있다.
그날 나는 밤늦게까지 사건 의견서를 작성했다.
해당 사건을 진행하던 중,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변호사님… 저는 제 말보다, 제 말을 믿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더 힘이 돼요.”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이 사회에서 스스로 선택한 내 직업의 소명을 확인하게 된다. 나는 재판에서 피해자 대신 싸워주는 사람이지만 동시에 피해자를 끝까지 믿어주는 사람이기도 하다.

나는 변호사로 일하는 동안 수많은 피해자를 만났고, 그들 중 상당수가 비슷한 질문을 해 왔다. 2024년 여름, 스물여섯 살 여성이 상담실 문을 열고 들어왔을 때도 그랬다. 그녀는 직장 상사에게 성추행을 당한 뒤 용기를 내어 신고했고, 재판을 앞두고 있었다. 나는 평소처럼 사건 경위를 듣고, 앞으로 어떻게 진행될지 차근차근 설명하고 있었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집중해서 들었다. 그런데 상담이 거의 끝나갈 무렵,

그녀가 조심스럽게 꺼낸 말에 나는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변호사님… 혹시 제가 이 남자 인생을 망치는 건 아닐까요?”

나는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가, 자신이 누군가의 인생을 망친다는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녀는 핸드폰을 꺼내 한 온라인 커뮤니티의 화면을 보여주었다.

“요즘은 성범죄 무고가 80%라 여자가 그냥 신고만 하면 남자 인생 끝나요”
“유죄추정 사회입니다. 신고=유죄”
“미투 이후로 남자들은 억울하게 당하고 있어요”

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인터넷에서 검색을 하다가 이런 글들을 정말 많이 봤어요. 그래서 신고하기 전에 한 달 동안 고민했어요. 제가 이 사람 인생을 망치는 건 아닌가, 혹시 제가 오해한 건 아닌가, 제가 예민한 건 아닌가 하고요. 그런데 변호사님, 저는 정말 피해자가 맞나요?”

참담했다. 이 사람은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는데, 왜 이렇게 자신을 의심해야 하는 걸까. 왜 피해자가 가해자를 걱정해야 하는 걸까. 왜 피해자의 편에서 말하는 사람은 없을까.

그리고 알아내야 할 일이 생겼다. 유죄추정이라는 말도 안 되는 표현이 어떻게 퍼져 있는 것인지, 해당 표현을 보고 신고를 포기한 이름 모를 피해자들이 얼마나 될지.

나는 그날 깨달았다. ‘유죄추정 사회’라는 거짓 프레임이 얼마나 무서운 무기인지를. 2010년대 후반부터 온라인에 퍼지기 시작한 이 말은 미투 운동 이후 더욱 거세졌다.

나는 성범죄 피해자 전문 변호사로 일하면서 수많은 사건을 다루었고, 그간 겪은 사건을 생각해 보면 그들이 말하는 ‘유죄추정 사회’는 결코 본 적이 없었다. 오히려 피해자들이 신고하는 순간부터 끝없이 의심받고, 비난받고, 법정에서 “왜 소리를 지르지 않았나요?” “왜 바로 신고하지 않았나요?” “왜 그런 옷을 입었나요?”라는 질문 공세를 받았다.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가 심문을 받고, 피해자가 자신의 무죄를 입증해야 했다. 그리고 증거가 있고 진술이 일관되어도 무죄 판결이 나오는 경우를 나는 셀 수 없이 많이 보았다. 그런데 유죄추정이라니?

“요즘은 여자가 신고만 해도 남자는 무조건 유죄다.”

현실은 정반대다. 그래서 이 책을 쓴다. 법정 안에서 실제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판결문에 쓰이지 않은 이야기들을 세상에 꺼내고 싶었다. 우리는 ‘피해자 감별사회’에서 살고 있다. 우리 사회가 유죄추정하는 대상은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다. 법정이 의심하는 사람은 성범죄를 저지른 사람이 아니라, 성범죄를 당했다고 말하는 사람이다.

우리 법정을 받치고 있는 것은 ‘유죄추정의 원칙’이 아니라 무죄추정의 원칙이다. 증거 없이는 누구도 함부로 처벌할 수 없고, 피고인은 유죄 판결이 확정되기 전까지는 무죄로 추정되어야 한다는 원칙이다. 이것은 국가 권력의 남용을 막고 개인의 자유를 지키기 위한 규율이다. 모든 변호사는 이 원칙을 존중한다.

그러나 이 원칙이 성범죄 사건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조금이라도 살펴보면, 균형이 심각하게 무너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피고인에게 ‘무죄추정의 원칙’이 보장되는 동안 피해자에게는 어떤 원칙도 보장되지 않는다. 법정의 요구에 따라 피해자는 끊임없이 증명해야 한다. 자신이 거짓말쟁이가 아니라는 것을, 자신이 진짜 피해를 입었다는 것을, 그 상황에서 자신이 저항할 수 없었다는 것을. 계속, 계속, 계속.

이 책에서 나는 법정의 숨겨진 규칙들을 하나씩 드러낼 것이다. 뿌리 깊은 강간 신화가 어떻게 판결문에 스며드는지, 피해자에게 요구되는 완벽함의 기준이 얼마나 비현실적인지, 법 자체가 가진 구조적 한계가 무엇인지를.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내가 만난 의뢰인들의 이야기를 들려줄 것이다. 그들이 법정에서 하지 못한 말들, 그들의 절망과 분노를.

나는 이 책이 단순히 문제를 지적하는 데 그치지 않기를 바란다. 법이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실질적인 제안도 함께 담고자 한다. 스웨덴, 캐나다, 영국이 이미 걸어간 길을 한국도 걸어갈 수 있다. 동의 중심의 법제, 피해자 보호 제도의 강화, 법조인에 대한 체계적인 교육. 모두 가능한 일이다.

변호사 일을 하면서 가장 마음 아픈 순간은 피해자인 의뢰인이 “제가 뭘 잘못한 건가요?”라고 물을 때다. 나는 매번 피해자들에게 말한다. 당신은 아무것도 잘못하지 않았고, 용기를 낸 것뿐이라고. 그러나 그들은 쉽게 믿지 못한다. 법정이, 사회가, 끊임없이 피해자에게 의심의 눈길을 보내기 때문이다. 이 책이 아직 목소리를 내지 못한 수많은 피해자에게 닿기를 바란다. 당신은 혼자가 아니며, 당신의 이야기는 중요하다고 말해주고 싶다.

법은 완벽하지 않다. 법은 때로 부정의하고, 때로 시대에 뒤처진다. 그렇기 때문에 법은 바뀔 수 있다. 그 변화는 우리에게서 시작된다. 피해자가 말한 사실이 법의 인정을 받고, 변호사가 이에 힘을 실어주고, 시민이 관습과 악행의 개선을 요구할 때, 법은 그 변화를 따라간다. 이 책이 그 변화의 불씨가 되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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