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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9
1장 23 2장 85 3장 1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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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과 그리움, 기억의 빈틈은 사람의 말로 번역될 수 있을까. 나는 한 사람의 이야기가 다른 사람에게 온전히 전해지는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라고 생각해왔다. 지금은 감히, 그 기적에 가까운 일을 간절히 바라고 싶다.
--- pp.18~19 이야기는 살아가고, 어떻게든 우리 곁에서 살아남는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지 않니. --- pp.20~21 모든 결핍은 아름다울 자격이 있지. 누가 뭐래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 p.21 초벌구이가 끝난 도자기 화병 같은 카탸의 몸. 허옇고 거슬거슬하고 미지근하다. 살아 있음을 증명하고 있는 카탸의 육체는 그 자체로 아름답다. 해묵은 슬픔은 매일 거기에서부터 온다. 희망이 기댈 곳 없는 아름다움. 웃을 수도 말할 수도 걸을 수도 없는 아름다움. 영영 돌아오지도 떠나지도 못하는 아름다움. --- p.46 신이 있다면 그 존재는 타인이라는 거울을 바라볼 수 있게 만드는, 우리 자신의 모습을 반사하는 빛이 아닐까. 사방에서 우리를 향해 쏟아지는 빛, 그 자체가 아닐까. --- pp.51~52 고통은 고통일 뿐이에요. 신화가 아니지요. 고통 앞에서 인간은 작아지고 하찮아지고, 자신의 바닥을 드러내기 일쑤지요. 고통이란 녀석은 사소하게 취급해서도 안 되고 너무 떠받들어서도 안 돼요. 여간 까다로운 녀석이 아니지요. --- p.61 나는 카탸의 생각과 감정을 보고 듣는다. 스스로 만질 수 없고 발설할 수도 없는 애정. 육체에서 벗어나버린 애정, 그러나 그것은 이탈이 아니다. 중력의 포위망에서 벗어난 애정은 카탸의 곁을 끊임없이 맴돌고, 에워싸고, 끝내는 카탸 자신이 된다. 카탸의 몸, 카탸의 방, 그 부동의 세계가 곧 카탸의 묵묵한 애정이다. --- p.76 사람들은 흔히 청춘이 뜨겁고 활기차고 화사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것은 이미 청춘을 지나온 이들이 옛 시절을 추억하며 떠올리는 인상일 뿐이다. 세월은 얼마나 위대한가. 살갗에 자잘한 주름을 긋고 관절을 닳게 하고 피를 탁하게 만드는 세월은, 시들어가는 육체에 보상이라도 하듯 지난 시절의 기억을 화사하게 물들인다. 넘치는 에너지를 바깥으로 분출하면서도 시시때때로 텅 빈 자신을 마주하게 되는 그 막막한 시절을, 어둠과 밝음의 경계에 놓인 수많은 회색 영역과 가능성의 그림자를 쫓아가는 그 불안한 시기를, 그 창백함을 화사한 빛으로 덧칠해버린다. 세월이 붓질해놓은 기억 속 청춘은 더없이 아름답다. 눈앞에 아른거리는 추억을 걷어내고 지금 청춘을 살고 있는 이들을 본다면 단연코 청춘은 창백한 빛이다. 무언가를 시작하면, 그것이 생산적이든 비생산적이든 무턱대고 치열해지고 마는, 때로는 자신에게, 나아가 타인에게 지나치게 옹졸하게 굴고, 상처를 받으면서 동시에 주고 마는 청춘. --- pp.100~101 상실 앞에서 아주머니는 바닥을 모르는 사람처럼 무너졌다. 그러다가도 어느 날 문득 가볍게 자리를 털고 일어나 세수를 하고 머리를 가다듬었다. 세수 한 번으로 슬픔을 완전히 씻어낸 사람처럼. 담담하고 꼿꼿하게 허리와 어깨를 펴고 자잘하게 흩어져 있던 일상을 솜씨 좋게 현재의 시간 속으로 그러모으곤 했다. 아주머니는 누군가를 돌보면서 자신을 돌볼 힘을 얻는 사람이었다. --- p.113 푸른빛이 감도는 형광등을 올려다봤다. 금세 눈이 시어 두 눈을 감았다. 닫힌 눈꺼풀 안쪽에서, 불완전한 어둠 속에서 빛의 잔상이 아른거렸다. 눈을 감아도 지속되는 감각의 경험. 아직 내가 아주 눈감지는 않았다는 냉담한 징표. 빛은 언제나 그렇게 순간순간 우리에게 뿌리를 뻗어온다. --- p.155 한 여자의 질에서 태어난 우리는 왜 다시 그의 질로 돌아가지 않는가. 왜 다시 눈을 감고 울음을 그치고 탯줄을 따라 포궁 속으로 따뜻한 뱃속으로 외롭지 않은 어둠 속으로 온전히 한 사람과 하나였던 그때로 쪼개지지 않은 하나의 세포로 돌아가지 않는가. 우리가 종내 돌아가는 곳은 왜 우리의 시작이 아닌가. 왜 우리는 우리의 훼손을 고스란히 새긴 채로 사라지는가. 달아오른 가마 안으로 관을 밀어넣는 거대한 철제 레일, 가마의 육중한 문이 천천히 닫히며 울려퍼지는 굉음, 기계장치의 개폐를 알리는 온갖 신호음, 고막을 울리는 공기의 울음, 이글거리며 타오르는 불길, 흙빛과 잿빛의 그을음, 떨림과 흔들림, 기척, 아우성, 흔적, 자국, 지워지지 않을 이 모든 것이 모든 탄생처럼 아프고 낯설다. --- pp.156~157 우리는 우리에게 흐르는 시간을 충실하게 살았다. 망설이지 않고 아끼지 않고 흘려보냈다. 어김없이 내일로 나아갔다. 본래 있던 자리로 돌아오기 위해 나아갔다. 몇 번을 다시 돌아가도 되돌릴 수 없는 시간을 향해 나아갔다. --- p.171 공책을 펼친다. 나는 과거의 기억을 복원하고 싶지는 않다. 그것이 가능하다고 믿지도 않는다. 지금의 나를 있게 한 나에 관해 말하고 싶다. 의미에 관해 말하고 싶다. 사랑의 의미뿐 아니라 미움, 원망, 후회의 의미까지도. 지난날이 현재의 암시였다는 것을 나는 온몸으로 알아차리고 있다. 그 나날이 결코 잘못된 것만은 아니었다는 증거가 바로 지금의 나다. 나는 나를 다시 체험하고 싶다. 나를 줍고 싶다. 펜을 쥐고 모눈 위에 첫 문장을 쓴다. 처음 있는 일은 아니었다. --- pp.211~2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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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어디에나 있고 누구에게나 있다.
이야기는 증명되지 않아도 된다. 이야기는 계속될 테니까. 키르기스스탄에서 어학연수를 했던 윤은 한국으로 돌아온 지 팔 년이 지난 어느 날, 신세 졌던 하숙집 주인 라리사의 부고를 전해듣는다. 라리사는 윤에게 수양딸 나지라의 공책을 유품으로 남긴다. 공책에 쓰인 이야기의 주인공 또한 ‘나지라’라는 이름을 지녔지만, 실제 나지라의 삶과 공책 속 나지라의 삶이 완전히 같은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라리사와 윤은 이 이야기가 나지라 그 자체라고 믿는다. 윤은 키르기스어로 쓰인 이야기를 한국어로 옮겨 우리에게 전하면서 이렇게 묻는다. “한 사람의 삶이 온전히 다른 사람에게 전해질 수 있을까.” 이처럼 『남겨진 이름들』은 공책에 쓰인 이야기를 번역해 소개하는 액자식구성을 취한다. 이 형식은 낯선 타국의 한가운데로 초대받은 독자들이 언어를 초월하여 인간 보편의 감정을 자각하도록 이끈다. 소설이라는 형식이 이미 ‘허구’를 내포하고 있음에도 안윤 작가는 허구 안에 또다른 허구를 배치하며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가뿐히 뛰어넘는다. 한 존재의 삶을 보다 여실하게 표현할 수 있는 것은 실재의 나열이 아닌 상상으로 직조된 한 편의 이야기라고, 문장과 서사라는 씨실과 날실의 엮임에서 한 사람의 진정한 심연을 발견할 수 있다고 소설은 말하고 있는 듯하다. 공책들 속의 이야기는 그애의 이야기이면서 그애의 이야기가 아니더구나. 일기도 소설도 아니었지. 글쎄, 그런 걸 뭐라고 하는지 모르겠다만, 그 이야기는 그냥 그애 자체였지. 나지라 하미돕나 유수포바였어. 나는 이 기록을 모두 읽고 나서 윤, 너를 떠올렸다. 너는 이야기를 쓰는 사람이니까. 이야기는 살아가고, 어떻게든 우리 곁에서 살아남는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지 않니. _21쪽 이야기 속의 나지라는 쿠르만과 카탸 부부의 입주 간병인으로 일하고 있다. 사고로 식물인간이 된 카탸를 먹이고, 씻기고, 입히는 게 나지라의 주된 업무다. 예전의 행복했던 시간으로는 다시 돌아갈 수 없다는 예감이 남편 쿠르만을 괴롭히지만 이대로 삶이 계속될 수만 있다면, 하는 일말의 기대감이 이들을 하루하루 기쁜 마음으로 살게 한다. 카탸를 돌보고, 가끔씩 무너져내리는 쿠르만을 지탱하며 나지라는 카탸와 쿠르만의 친구이자 두 사람 사이를 잇는 가교가 된다. 눈동자만으로 의사를 표현할 수 있는 카탸를 보며 나지라는 느낀다. 단지 발화와 물리적 행동만이 사랑을 표현하는 수단은 아님을. 카탸가 자신의 말에 온몸으로 대답하고 있다고 믿음으로써 나지라는 신체와 언어의 장벽을 넘어 그녀와 대화한다. 비록 실감할 수는 없더라도 끊임없이 카탸의 대답을 상상하며 그녀와 교류하기를 멈추지 않는 나지라와 쿠르만의 노력은 소통에 대한 기존의 관념을 전복하면서도, 들을 수 없는 카탸의 목소리를 그리워하는 그들의 마음을 효과적으로 드러낸다. 나는 그러나 들을 수 없는 것은 카탸의 목소리지 대답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동원할 수 있는 힘이란 힘은 모조리 끌어다 전하고 있는 그의 대답을 우리가 들을 수 없을 뿐이라고, 카탸는 언제나 온몸으로 대답하고 있다고 나는 믿었다. 카탸의 곁에 머무는 우리는 비밀처럼 숨겨진 그의 대답을 들으려 쉼없이 주의를 기울여야만 한다. 상상해야만 한다. _77~78쪽 카탸와의 이별을 끝내 마주했을 때 나지라와 쿠르만은 최선을 다해 그녀를 떠나보낸다. 지워지지 않으리라 여겨질 만큼 낯설고 선연한 아픔이 이들을 고통스럽게 하지만, 두 사람은 카탸의 부재를, 그리고 다가올 각자의 부재를 받아들이게 되는 날까지 서로를 돌본다.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통해 탄생이 있기에 죽음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으므로, 이들은 만남 뒤의 이별을 축하하며 맞이하게 된다. 그리고 훗날 희미해져가는 기억 속에서 나지라는 이 모든 일을 공책에 기록한다. 슬퍼함에서 멈추지 않고 기록함으로 나아가는 나지라를 통해 우리는 알게 된다. 소설가 이주란의 추천의 말처럼, 우리가 경험해온 “모든 것들이 바로 살아 있음의 증거이며, 끝내 자기 자신에게 가닿고자 우리는 그 증거를 기록하고 또 기록하고 있음을.” 『남겨진 이름들』은 이처럼 잊혀가는 이들을 활자의 영원으로 끌어들이는 일을 해내면서도, 깊이 있는 사유와 우아한 분위기로 안윤 소설만의 미학을 확인하게 해준다. 일상의 평범한 장면들을 반짝이게 만드는 다정한 디테일, 고통의 순간에 문득 당도하는 깨달음은 소설 읽기의 경험을 한층 풍부하게 한다. 이별과 애도로 가득한 페이지들을 넘기면서도 슬픔을 넘어선 무언가를 느끼게 하는 안윤의 문장은 때론 날카롭고 짙은 채도로, 때론 온화하고 묵직한 촉감으로 우리를 이야기 속에 오래도록 머물게 할 것이다. 제3회 박상륭상 심사평 한치도 손을 놓지 못하게 하는 문장의 밀도, 그리고 마치 직접 현지인의 대화를 듣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생생한 묘사, 사물에 대한 섬세한 자각과 심리의 교직이 우아하게 펼쳐지는 수작이었다. 상처를 드러낼 때 덩달아 아파지고 짧은 환희를 토로할 때 뒷골이 서늘해지는 느낌 때문에 굉장히 더딘 독서가 됐지만, 삶의 소소하지만 내성 깊은 심연을 들여다봤다가 나온 뒤의 묵묵한 성찰들은 근래 보기 드문 내공이었다. 언뜻 평범해 보이지만 다가갈수록 자신만의 웅대한 고독 속에서 우주와 내통하는 듯한 내밀한 결기에 경외감이 들 정도였다. _박상륭상 심사평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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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중하고 다정한 작가 안윤이 전해온 이야기를 통해 비로소 깨닫는다. 내 삶의 증인은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나 자신임을. 나를 둘러싼 세계, 사람들, 사랑과 미움, 원망과 후회, 그 모든 것들이 바로 살아 있음의 증거이며, 끝내 자기 자신에게 가닿고자 우리는 그 증거를 기록하고 또 기록하고 있음을. 내 마음은 ‘나지라’가 떠난 자리에 아주 오랫동안 머물렀고, 마침내 한 사람의 이야기가 온전히 전해지는 그 기적에 가까운 일이 내게 일어났다고 감히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어느 날 삶이 그저 우연의 연속에 지나지 않는다고 느낄 때, 시간이 기척만을 남기고 사라진다고 느낄 때 나는 다시 이 이야기를 펼쳐 들 것만 같다. 누군가 전해오는 순간들이, 그 순간들이 만든 한 사람이 바로 여기에 있으므로. - 이주란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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