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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 일이 끝난 자리, 인간은 무엇으로 살아가는가1부. 일의 종말은 재앙인가, 해방인가“경고문: AI는 인류의 쓸모를 파괴할 대재앙입니다”왜 아무도 러다이트를 꿈꾸지 않는가말똥의 우화: 기술이 모든 것을 해결한다는 환상중산층은 왜 가장 먼저 흔들리는가전문직은 왜 더 이상 안전지대가 아닌가사람을 대체하는 AI, 직업이 아니라 업무를 없앤다2부. 우리를 만든 노동, 우리를 망가뜨리는 노동우리는 왜 ‘일해야만 가치 있다’고 믿게 되었나 - 로크의 유산플랫폼 위에서 내 노동은 왜 내 것이 되지 못하는가더 많이 일할수록 왜 우리는 더 무력해지는가 - 마르크스의 예언자동화 사회는 어떻게 가짜 노동을 낳는가노동이 사라지면 과연 자유가 실현될까? - 아렌트의 경고‘노동 없는 노동자 사회’라는 최악의 시나리오3부. 일 없는 세상,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풍요는 왜 모두의 것이 되지 않는가봉건 영주가 된 빅테크, 국가는 AI를 민주화할 수 있는가AI 시대의 시민은 ‘빵과 서커스’만으로 살 수 있는가종교가 된 노동 이후, AI 시대의 구원은 어디에 있는가일자리를 잃은 자는 왜 돈보다 더 많은 것을 잃는가노동에서 여가로, 인간은 진정 자유로울 수 있는가에필로그 - 쓸모를 넘어설 때, 비로소 인간다운 삶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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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던진 가장 불편한 질문,“당신은 왜 일하십니까?”‘일하는 인간’이라는 정의가 끝나는 시대,철학자의 사유로 들여다본 일의 의미일자리에 관한 상반된 뉴스가 연일 쏟아지고 있다. 한쪽에서는 인공지능이 아주 가까운 미래에 사람의 일을 대신할 것이라고 예측하는 한편, 다른 한쪽에서는 인공지능이 아무리 발달한다고 한들, 인공지능을 사용하는 사람의 지위는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 낙관한다. 양쪽 모두 인공지능이 불러온 이 변화를 ‘일자리가 사라질 것인가’라는 경제적 위기로만 받아들인다.하지만 AI가 불러온 진짜 위기는 따로 있다. 바로 수백 년 동안 인류의 삶을 지탱해 온 ‘노동의 시대’ 자체를 조용히 끝내고 있다는 사실이다. 억지로 일하지 않아도 기본소득이 주어지거나 혹은 가치를 느끼지도 못하는 일자리만이 남아 있다면, 과연 우리는 행복해하며 그 미래를 만족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인간은 무엇으로 가치를 증명할지, 어디에서 삶의 의미를 찾을지 등 보다 근원적인 질문을 낳는다. 즉 ‘일자리의 위기’가 아니라, ‘인간의 자리’가 흔들리는 근본적 위기다. 그렇다면 일이 사라질 때, 인간의 쓸모와 의미도 함께 사라지는 것일까?“‘일하는 삶이 가치 있다’는 공식이 깨진 미래는유토피아인가, 가장 우아한 감옥인가?”자본의 독점과 공동체의 상실이인간의 ‘쓸모’에 울리는 강력한 경종노동에 관한 오랜 믿음이 무너질 때, 몇 가지 불편한 질문이 따라온다. 노동이 없다면 개인의 돈과 재산은 무엇으로 정당화될 수 있을까? AI 시대가 창출하는 막대한 부를 특정 대기업이나 소수의 개인이 독식해도 괜찮은 것일까? 한편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은 새로운 기회를 얻는가, 아니면 사회의 주변으로 밀려나는가/ 마지막으로 만약 기계가 대부분의 일을 대신하는 사회가 온다면, 우리는 자유로워질까, 아니면 소비와 오락 속에서 시간을 소모하는 존재로 남게 될까? 미래 세상은 완벽한 유토피아일 수도, 그저 소비와 오락으로 시간을 때우는 ‘가장 우아한 감옥’일 수도 있다.“왜 일하는지 묻지 않았던 사람은일이 없는 시대에, 존재할 이유를 잃는다”AI 시대에 필요한 새로운 인간의 존엄,인간답게 사는 법을 다시 배울 시간노동은 단지 생존을 위한 생계 수단을 넘어선다. 일은 우리의 자존감, 자유, 성장의 기반으로서 우리의 의미 있는 삶을 실현해 온 핵심 구조다. 이런 점에서 AI 시대에 일은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고 타인과 관계 맺으며 사회에 기여하는 의미 있는 활동으로 완전히 새롭게 정의해야 한다.그렇기에 AI 시대에 필요한 해결책은 사라지는 일자리를 억지로 붙잡고 싸우는 데 있지 않다. 기계에 노동을 넘겨주되, 부를 공정하게 나누고, 인간은 노동의 굴레에서 벗어나 삶의 본질적 즐거움을 누리고, 의미를 찾는 존재로 거듭나야 한다. AI 시대, 우리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기술에 맞서는 힘이 아니라, 인간답게 사는 방식을 처음부터 다시 배우려는 용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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