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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우리에게 기쁨이 부족한 이유는
제1장 난생처음, 수영장 실내 수영장의 아타락시아 | 지금, 행복하지 않다고 느낀다면 | 움직임 뒤에 행복이 있다 | 처음으로 물 먹은 날 | 수영을 시작하고서 달라진 것들 | 습식 수건이라는 신문물 제2장 처음엔 누구나 허우적거린다 우연히 지혜로워지는 사람은 없다 | 힘을 빼려면 힘을 길러야 한다 | 통제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기 | 장애물과 동행할 결심 | 드디어 자유형 호흡에 성공하다 | 의도하는 삶과 무의식적인 삶 | 흐르는 강물처럼, 아모르 파티 제3장 내가 수영장 레인을 무수히 오가며 생각한 것들 끝마칠 때 기분 좋은 일을 하라 | 멈추지 않고 계속하는 비결 | 첫 배영 수업 | 초보자의 물장구와 시끄러운 자판 소리 | 가고, 가고, 가는 중에 알게 된다 | 평영, 삶을 가장 많이 닮은 영법 | 성급함은 약함의 한 형태 제4장 깊은 수심을 경험하다 제자리에서 편안하게 헤엄치는 법 | 수영장의 작은 영웅들 | 완전히 소진해야만 충만해진다 | 드디어 접영 수업, 그리고 잠시 안녕 | 나는 이불 속에서 몸을 따뜻하게 하려고 태어난 존재인가? | 물 한 잔과 비타민 한 포의 사색 | 우리는 거센 파도 위에 있다 제5장 물속을 자유롭게 유영하며 우리는 오늘도 비열한 인간들을 만날 것이다 | 접영 리듬의 핵심은 기다림 | 최악의 하루에도 깨달음이 깃든다 | 삶을 다시 시작하는 방법 | 이 세상의 암묵적 규칙 | 플립턴을 독학하다 | 종아리에 쥐가 났던 날 | 우리는 어느 곳에서도 삶을 배울 수 있다 에필로그: 물속에서는 모든 것이 단순해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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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영은 곧 삶이다. 호흡을 익히는 것은 불안과 공포를 다루는 훈련이고, 자유형의 리듬은 삶의 균형과 조화를 닮았다. 플립턴(flip turn)은 벽을 두려워하지 않고 다시 방향을 전환하는 용기 그 자체였다.
--- 「프롤로그: 우리에게 기쁨이 부족한 이유는」 중에서 종종 어색하고 불편한 행동이 기분을 좋아지게 할 때가 있다. 오늘 새벽 5시 13분에 일어나, 태어나서 처음으로 수영장을 찾았다. 한겨울 새벽의 날카로운 추위 속에서 스스로 의문했다. ‘이렇게 추운 날 새벽부터 나는 뭘 하고 있는 걸까?’ ‘왜 이런 고생을 사서 하게 되었지?’ 수영장을 향해 가는 동안 머릿속에서 오만 가지 생각이 일어났다. 전부 반복되는 일상의 관성에서 벗어나지 않으려는 몸부림이었다. --- 「실내 수영장의 아타락시아」 중에서 아침 5시 25분에 일어나 수영장으로 향했고, 7시 9분이 되어 밖으로 나왔다. 로션 바른 얼굴이 번들거렸다.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은 추운 날씨에 두꺼운 옷으로 몸을 꽁꽁 싸매고 있었지만, 나는 수영으로 몸이 더워져 오히려 옷을 풀어 헤쳤다. 어느 철학자의 말이 떠오른다. “행복하지 않다고 느끼는 사람은 한 시간 동안 뛰어 땀을 내고 샤워하라. 행복하지 않더라도 최소한 불행하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수영을 통해 이 진리를 몸소 체험하고 있다. --- 「지금, 행복하지 않다고 느낀다면」 중에서 우연히 지혜로워지는 사람은 없다. 세네카의 말처럼 우리는 살아가면서 배우고, 배우면서 살아간다. 삶이 멈추면 배움도 멈추고, 배움이 멈추면 삶도 정지한다. 샤워를 마치고, 너무 힘들어 2층에 있는 의자에 앉아 일곱 시 강습에 참여하는 사람들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들도 레인을 돌아올 때마다 힘겨운 기색이 역력했다. 강사는 같은 말을 반복했다. “자자, 참아요. 멈추지 말아요.” 아마도 우리 삶의 모든 영역에 해당하는 말일 것이다. --- 「우연히 지혜로워지는 사람은 없다」 중에서 많은 사람들이 외부의 모든 문제가 해결되면 심리적 평온에 이를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착각이다. 삶의 문제는 끊임없이 나타나고 사라지기를 반복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삶의 목표는 모든 문제를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 속에서도 양심에 따라 행동하고 평온한 마음을 유지하는 데 있다. 수영에서 여유를 찾아가는 과정은 스토아 철학이 추구하는 내적 평정을 얻는 여정과 닮았다. 여유란 두렵지 않을 때에 비로소 가능해지는 것이다. 수영이든 삶이든 마찬가지다. 우리는 평생 살며 두려움을 극복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다. 힘을 기르고 내적 평온을 유지하며 끊임없이 도전하는 것,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실패하든 성공하든 이를 온전히 받아들이고 누리는 것.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추구해야 할 삶의 태도다. --- 「힘을 빼려면 힘을 길러야 한다」 중에서 우리는 무엇을 먹고 얼마나 움직일 것인가를 선택할 수 있지만, 질병이나 사고를 완전히 피할 수는 없다. 통제할 수 없는 것에 집착하면 불안과 좌절만이 따라올 뿐이다. 현자 들은 큰 키를 선호하지만 작은 키를 경멸하지 않으며, 건강하길 바라지만 건강이 나빠져도 견뎌낸다. 세네카의 이 말은 통제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구별하고, 할 수 있는 것에 최선을 다하며, 할 수 없는 것은 담담히 받아들이라는 의미다. 삶은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한 우리의 태도와 행동으로 이루어진다. 나는 물에서 호흡하는 법을 익히기 위 해 내가 할 수 있는 의도와 행동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결과 는 행운의 여신에게 맡기고. --- 「통제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기」 중에서 열심히 하고 있는데도 나아지지 않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우리가 그리는 완벽한 모습과 실제 모습이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순간에도 우리는 발전하고 있다. 아주 조금씩 나아지고 있기에 인식하지 못할 뿐이다. 그러다 어느 순간이 되면 오랜만에 보는 친척의 갓난아이처럼 훌쩍 성장한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 「드디어 자유형 호흡에 성공하다」 중에서 수업이 끝날 때면 모든 수강생이 둥글게 모여서 손을 모으고 구호를 외친다. “파이팅! 수고하셨습니다!” 그때 내 앞에서 힘들어하던 사람이 강사에게 물었다. “어떻게 하면 수영 실력이 빨리 늘까요?” 강사는 수경을 올리며 답했다. “자유 수영을 해야 빨리 늘어요. 배운 내용을 스스로 생각하며 익히는 과정이 중요하거든요. 꼭 자유 수영 하세요.” 그 말을 듣고 한 달 반 동안 자유 수영을 빠지지 않고 해온 내가 조금 뿌듯해졌다. 샤워장에서 다시 마주친 그는 나에게 툭 던지듯 말했다. “오기가 싫어서 그렇지 막상 오면 기분 좋아요.” “네. 저도 그래요.” 시작할 때 기분 좋은 것보다 끝마칠 때 기분 좋은 것을 해야 한다는 말이 떠올랐다. --- 「끝마칠 때 기분 좋은 일을 하라」 중에서 수영을 시작한 지 한 달 하고도 스무날이 지났다. 이제는 어느 정도 호흡을 조절할 수 있고, 25미터를 한 바퀴 왕복할 수 있다. 하지만 내 수영 실력은 정체된 듯했다. 처음처럼 눈에 띄는 발전이 느껴지지 않고 조금씩 지루해졌다. 여전히 계속하고는 있지만 성취감이 따르지 않는 상태. 이런 상태를 ‘신이 파놓은 함정’이라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 단계에서 좌절하고 포기한다고 하니, 참으로 교묘한 함정이라 할 수 있겠다. --- 「멈추지 않고 계속하는 비결」 중에서 스토아 철학자들은 두려움이 낯선 상황에서 비롯된다고 말한다. 우리는 잘 모르는 것 앞에서 위축되기 마련이다. 무지는 두려움의 근원이 된다. 오늘 처음으로 배영을 배울 때도 그랬다. 킥판을 잡고 몸을 물에 띄울 때도, 뒤로 누울 때도 내 몸은 뻣뻣하게 굳어 있었다. 새로운 것은 언제나 낯설고, 낯설다는 감정은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며, 두려움은 긴장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긴장하면 몸이 경직된다. 하지만 그 새로운 것에 대해 배우면 두려움도 점차 사라진다. 어떤 일이 몹시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하여 지레 겁을 먹고 도망칠 때가 있다. 그런데 정작 실제로는 생각만큼 어렵지 않은 경우가 많다. 그러니 무언가가 두렵다면 오히려 자주 접해야 한다. 세네카는 말했다. “그 일이 어려워 보여서 감행하지 못하는 게 아니다. 감행하지 않기 때문에 어려워 보이는 것이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도 강조한다. “당신의 외부 환경은 마음의 반영일 뿐이다. 당신의 마음을 다스리라.” --- 「첫 배영 수업」 중에서 나는 평영이 속도를 내기 위한 수영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수영이라고 생각한다. 느리지만 체력 소모가 적다. 그리고 이 점이 내가 추구하는 삶과 닮았다. 남들처럼 빠르게 앞서 나가지는 못하더라도, 천천히 꾸준히 나아가는 것, 힘을 빼고 자연스럽게 흐름을 타는 것. 깊이 있는 삶은 효율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남들이 ‘너무 느린 것 아니냐’고 여길 만큼 천천히 가야만 도달할 수 있는 곳이 있다. --- 「평영, 삶을 가장 많이 닮은 영법」 중에서 수영은 본질적으로 리듬 운동이다. 일정한 호흡, 팔과 다리의 조화로운 움직임이 물살을 가르는 추진력이 된다. 이 리듬을 깨뜨리는 가장 큰 적이 바로 ‘조급함’이다. 빨리 가고 싶은 마음, 남보다 앞서고 싶은 욕심은 호흡을 가쁘게 하고 동작을 흐트러뜨린다. 이는 비단 수영장에서만 통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의 삶 자체가 거대한 수영장과 같아서, 저마다의 리듬을 찾아 꾸준히 나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는 종종 ‘급할수록 돌아가라’고 말하지만, ‘돌아간다’기보다는 ‘자신의 고유한 리듬을 회복해야 한다’가 더 정확한 표현이 아닐까 한다. 서 두르지 않고 자신의 박자에 맞춰 한 걸음씩 내딛는 것, 그것 이 바로 외부 상황에 흔들리지 않고 자신을 완성해 나가는 가장 깊고도 강한 힘이다. --- 「성급함은 약함의 한 형태」 중에서 우리가 어떤 일을 미루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근본적으로는 ‘저항’ 때문이라 할 수 있다. 너무 커 보이 는 목표와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첫걸음 내딛는 것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도 아침마다 침대에서 일어나기가 싫었고, 그럴 때마다 스스로에게 물었다고 한다. 나는 이불 속에서 몸을 따뜻하게 하려고 태어난 존재인가? 그는 로마 황제라는 권력을 가지고도 안락한 침대 속에 머무르는 것은 옳지 않다고 여겼다. 가치 있는 일을 위해 노력하고, 그 가치를 삶에 반영하며, 타인에게 모범을 보이는 것은 자랑스러운 일이다. 스토아 철학자들은 이 점을 강조한다. --- 「나는 이불 속에서 몸을 따뜻하게 하려고 태어난 존재인가?」 중에서 예상치 못한 일이 닥치면 우리는 원인을 규명하려 하며 자신과 타 인을 탓하기 쉽다. “그 사람이 그렇게 하지만 않았다면” 혹은 “내가 그때 그렇게 하지 않았더라면” 하는 후회가 비난으로 이어지고, 결국 분노를 낳는다. 그러나 비난은 실수를 통해 배울 기회를 가로막을 뿐이다. 삶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거센 파도를 던진다. 우리는 그 파도를 경험하며 어금니를 질끈 깨물고 팽팽한 다리 근육으로 균형을 잡는다. 그렇게 나아가는 법을 배우는 존재가 우리들이 아닐까. --- 「우리는 거센 파도 위에 있다」 중에서 로마 황제이자 철학자였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이렇게 말한다. 참담하고, 배은망덕하고, 무례하고, 충성스럽지 않고, 거짓되고, 이기적인 사람을 오늘도 만날 것이다. 그는 매일 아침 세상에서 맞이할 사람들의 부정적인 면을 예상하며 하루를 시작했다고 한다. 또한 그런 사람들을 만났을 때 어떻게 대응할지도 미리 계획했다. 그들 중 누구도 나를 해치거나 악한 일에 연루시킬 수 없다. 따라서 나도 그들에 대한 증오심을 품어서는 안 된다. 타인의 비열함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의 내면을 지키는 법을 철저히 연습했던 것이다. --- 「우리는 오늘도 비열한 인간들을 만날 것이다」 중에서 내가 스토아 철학을 좋아하는 이유는, 슬픔을 부정하지 않는다는 점 때문이다. 스토아 철학은 감정을 억누르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오히려 세네카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친구에게 말한다. “눈물이 흐르게 두라. 그러나 동시에 그 눈물을 멈추게 하라.” 슬퍼하되, 슬픔을 지속적으로 상기해 그 감정에 머물지 말라는 의미다. --- 「최악의 하루에도 깨달음이 깃든다」 중에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명상록』에서 이렇게 말한다. “현재를 살아라. 과거는 지나갔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다.” 수영할 때도 마찬가지다. 다음번을 기약하기보다는, 지금 이 한 번을 최선으로 만들어야 한다. 오늘이 나의 마지막 수영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 질문에 답하는 마음으로 물속에 뛰어든다. --- 「종아리에 쥐가 났던 날」 중에서 물속에 들어가는 순간, 복잡하게 얽혀들던 생각이 멈춘다. 뇌를 가득 채우던 고민도, 마음을 짓누르던 분노도 물속에서는 힘을 잃는다. 수영은 고립이다. 이 시대에 고립은 오히려 축복이다. 늘 연결된 상태로 살아가는 우리는 전화벨과 문자 메시지 수신음 등 각종 알림에 끊임없이 노출되어 있다. 그런 시대에 수영만큼 철저히 단절되는 경험도 드물다. 어쩌면 수영장은 삶의 중압감을 해소하기 위해 생긴 공 간이 아닐까. 수영장에서는 어른도 아이가 된다. 장난기 가득 한 물장구 소리, 물속에서 물구나무를 서는 백발 어르신들, 샤워실 거울 앞에서 터지는 웃음소리. 이곳은 스트레스와 어울리지 않는 공간이다. 물은 나를 지우고, 다시 나를 드러낸다. --- 「에필로그: 물속에서는 모든 것이 단순해진다」 중에서 수영은 내 안의 소음을 가라앉히고, 스토아 철학은 나를 다시 세우는 훈련이다. 삶은 명확성과 결단력, 반복되는 훈련이 더해질 때 비로소 단순해진다. 그리고 단순함 속에서 우리는 평온과 가까워진다. 삶이 버겁게 느껴질 때, 잠시 물속으로 들어가보라. 그리고 아우렐리우스를 떠올려보라. 아직, 우리는 제대로 된 삶을 시작할 수 있다. --- 「에필로그: 물속에서는 모든 것이 단순해진다」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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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당신은 스스로를 단단하게 하는 철학을 만났습니까?”
쓰러진 삶을 일으키는 철학 오늘도 삶이라는 바다를 헤매는 당신을 위한 이 세상을 수영하는 법 한겨울 새벽 수영은 언제나 고되다. 몸을 감싼 이불은 따뜻하고 폭신하여 빠져나오기가 쉽지 않다. 그래도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말을 떠올리며 천근만근 같은 몸을 일으킨다. “나는 이불 속에서 몸을 따뜻하게 하려고 태어난 존재인가?” 유난히 사건 사고가 많았던 하루, 너무도 피곤하여 ‘오늘은 수영장 가지 말까? 내일 가면 되잖아’ 갈등하는 마음을 세네카의 말로 다잡는다. “아무것도 미루지 말고, 매일 삶과 싸워라.” 수영장에 가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난다. “탈수기 다 썼어?” 초면에 반말하는 사람, 직원에게 갑질하는 사람.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말했다. “참담하고, 배은망덕하고, 무례하고, 충성스럽지 않고, 거짓되고, 이기적인 사람을 오늘도 만날 것이다. 그러나 그중 누구도 나를 해치거나 악한 일에 연루시킬 수 없다. 따라서 나도 그들에게 증오심을 품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왜 철학책을 읽는가? 아무리 살아봐도 어렵고 매 순간 고민이 연속되는 삶을 좀 더 지혜롭게 살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싶기 때문이 아닐까. 어떻게 하면 항상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을까? 온갖 핑계를 떨쳐내고 목표를 향해 꿋꿋이 걸어가는 비결이 뭘까? 인간관계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지혜롭게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이를 위해서는 매일 스스로를 치열하게 단련해야 한다. 마치 물 위를 유유히 떠 가는 듯하지만 수면 아래서는 쉼 없이 발장구를 치고 있다는 호수 위 백조처럼. 저자는 수영을 잘하고 싶다는 일념으로 600일간 수영장 안팎에서 매일 사투를 벌였다. 그리고 마침내 어느 휴가철 찾은 바닷가. 처음으로 물 위에 떠서 하늘을 올려다보았을 때 느낀 행복과 충만감을 이루 말할 수가 없다고 회상한다. 결국 스토아 철학이 말하는 평정은 매일 삶을 피하지 않고 할 수 있는 일을 묵묵히 해낸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축복인 것이다. 책장을 넘길수록 저자의 수영 실력은 서서히 좋아지고 깨달음도 깊어진다. 그 끝에는 어떤 이야기가 기다리고 있을지 궁금해진다. 중간중간 힘과 의욕을 북돋아주는 스토아 철학자들의 명언은 덤이다. 당장 내 삶에 적용할 수 있는 ‘생활 밀착형 철학’ ‘계속 앞으로 나아갈 힘을 주는 철학’을 원하는 이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고통을 인식하는 철학에서 고통을 견뎌내는 철학으로 이제 쇼펜하우어 다음은 스토아 철학이다! 대한민국 출판계의 지난 쇼펜하우어 열풍을 생각한다. 인생의 본질을 고통이라 본 쇼펜하우어 철학의 직설적인 현실 인식이 도리어 많은 이들에게 공감을 사고 위로를 주었던 까닭이라고, 여러 사람이 분석했다. 그렇다면 이제 다시 한 가지 질문이 남는다. 살면서 고통을 피할 수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스토아 철학은 주어진 상황을 통제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으로 구분해보라고 제안한다. 통제할 수 없는 것에 마음을 두지 말고, 지금 실천할 수 있는 덕을 행하라고 권한다. 그로써 평정을 달성하라는 것이다. 수영 실력이 늘지 않는 것은 내 능력 밖의 일이다. 지금 당장 수영을 잘하고 싶다고 발을 동동 굴러도 어쩔 수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한 번 더 연습하는 것뿐이다. 나를 힘들게 하는 저 사람 또한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영역에 있다. 할 수 있는 일은 그 사실을 인정하고 내면의 평정을 지키는 것이다. 단호하면서도 단단한 스토아 철학의 가르침이 쇼펜하우어 열풍 이후 우리에게 남은 질문에 대답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배울수록 수영은 살아가는 일을 많이 닮았다. 또한 수영장은 우리네 삶의 축소판이다. 따라서 스토아 철학을 배우기에 수영장만큼 좋은 공간도 드물다. 물속에 들어가는 순간, 복잡하게 얽혀들던 생각이 멈춘다. 분노로 이글이글 타오르다가도 수영을 마치고 나오면 언제 그랬냐는 듯 개운해진다. 그 산뜻한 감각이 좋아서 수영을 계속하게 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수영장은 “삶의 중압감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공간”이다. 끊임없이 연결된 채 살아가는 우리에게 수영만큼 “철저히 단절되는 경험”도 드물 것이다. “수영은 내 안의 소음을 가라앉히고, 스토아 철학은 나를 다시 세우는 훈련이다. 삶은 명확성과 결단력, 반복되는 훈련이 더해질 때 비로소 단순해진다. 그리고 단순함 속에서 우리는 평온과 가까워진다.” 책을 읽다 보면 나도 수영을 배우고 싶어진다. 적어도 수영을 배우듯 살아가야겠다고 다짐하게 된다. “삶이 버겁게 느껴질 때, 잠시 물속으로 들어가보라. 그리고 아우렐리우스를 떠올려보라. 아직, 우리는 제대로 된 삶을 시작할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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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펜하우어가 고통의 본질을 꿰뚫었다면, 스토아 철학은 그 고통을 견디는 기술을 알려준다. 혼란과 불안의 시대, 단순한 위로나 회피가 아닌 ‘정신의 단련’이 필요한 지금, 스토아 철학은 놀랍도록 현대적이고 현실적이다. 읽는 사람에게 고요한 용기를 전하고 삶의 균형을 잡는 법을 알려주는 책이다. 이제, 쇼펜하우어 다음은 스토아 철학이다. - 김경집 (인문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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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아! 2,300여 년의 장구한 시간 속에서 수도 없이 검증된, 가장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삶의 태도. 그래서 오늘날 우리 삶의 기술이 되기도 하는 고대의 철학. 스토아 철학을 말하는 책만 이미 수백 종이다. 하지만 이 책은 단연 천재적이며 압도적이다. 수영, 배움, 인생, 철학, 자유, 행복… 이 납작한 것들을 겹겹이 쌓아놓은 후, 저자는 그 겹들을 단박에 관통해 전혀 다른 차원으로 도약하는 이야기를 만든다. 그 때문일까? 정강민의 문장들은 마치 입방체처럼 보인다. 읽는 동안 머릿속에 떠오른 수많은 생각이 흩어지지 않고 자꾸 각을 잡고 쌓인다. 아주 독특한 독서 경험을 선사하는 멋진 철학 에세이다. - 김성신 (출판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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