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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리야, 안녕? 나는 네 아빠야. 며칠 전에 아빠는 네가 온다는 걸 알았단다. 널 기다리는 동안 뭔가 해야 할 것 같아서 이렇게 조금씩 편지를 써볼까 해. 아직 얼굴도 모르는 너한테. 어쩌면 너를 기다리는 아빠한테.”
“누리야, 사람한테 던져도 되는 건 농구공 같은 것밖에 없더라. 물론 받을 사람이 준비됐을 때만.” “누리야, 양말은 꼭 하나씩 사라져. 우리 집에 도둑이 든 것도 아닌데도 말야. 세상엔 원인을 찾기보다 그냥 다른 양말을 신는 게 빠른 일도 있어. 양말을 짝짝으로 신어도 재미있고.” “누리야, 아빠는 언젠가부터 거짓말을 잘하는 사람이었어. 작은 불편을 피하려고 한 번, 혼나는 게 무서워서 또 한 번, 누군가를 실망시키기 싫어서 또 한 번. 그러다 보니 남보다 먼저 아빠가 아빠 말을 믿게 되더라.” “누리야, 횡단보도를 건널 때는 흰 줄이나 검은 줄만 밟자.” “누리야, 아빠가 모든 걸 다 아는 것 같지? 그런데 아빠도 다 누군가한테 배운 거란다. 누가 한 말, 누가 만든 책, 누가 보여준 장면들이 아빠를 통과해서 조금 다른 모양으로 나오는 거야. 너한테 쓰는 이 편지도 그래. 아빠가 겪은 것들이 네 이름 쪽으로 잠깐 방향을 바꾼 거야.” “누리야, 언젠가 자신이 없다고 느껴질 때가 있을 거야. 그런데 그렇게 느끼는 너는 거기 그대로 있단다. 자신은 없어도, 자신은 사라지지 않아.” “누리야, 비교가 너를 갉아먹는 건 늘 네 속과 남의 겉을 견주기 때문이란다. 너는 네 불안과 실수와 못난 생각을 다 아는데, 남은 잘 정돈된 바깥만 보여주거든. 특히 화면 속 사람들은 더 그래. 잘 나온 얼굴, 좋은 음식, 멋진 장소, 잘 고른 문장. 그걸 보면서 네 하루 전체와 겨루면 처음부터 진 게임이야. 비교가 시작될 것 같으면 한 가지만 기억하렴. 너는 지금 남의 편집된 부분만 보고 있다는 걸.” “누리야, 벌써 새벽 3시다. 엄마는 지금 병실에서 자고, 너는 엄마 뱃속에서 놀고, 아빠는 지금 불 꺼진 병원 1층에 혼자 있어. 편의점이 환하다.” “누리야, 오늘 네 탯줄이 떨어졌대. 아빠가 일하고 있는데 엄마가 사진을 보내줬거든. 꼭 잘 마른 버섯처럼 생겼더라.” “누리야, 아빠가 아무리 많이 적어도 네가 살면서 겪을 걸 다 적진 못해. 이 책에 없는 일이 훨씬 많을 거야.” “이 책에 모인 편지들은 한 아이를 떠올리며 아빠가 붙잡아두고 싶었던 생각들입니다. 아이가 곁에 온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어딘가 다르게 보이기 시작한 것들, 언젠가는 잊어버릴지 몰라 미리 적어둔 것들이죠. 누리가 스스로 이 책을 찾아 읽을 즈음에는 이 책의 절반쯤은 틀렸을지 모릅니다. 어떤 편지는 시대에 뒤처지고, 어떤 편지는 다시 읽으면 부끄러워질지 모르고요. 그래도 평소와 달리 굳이 편집하지는 않으려 합니다. 훗날 누리가 읽게 될 것은 완성된 제가 아니라 지금의 저일 테고, 부모가 되는 것은 제 부모님이 그러셨듯 완성된 사람이 되는 일보다 자신의 미완성을 아이 앞에 기꺼이 드러내는 일이라 믿는 까닭입니다.” ---본문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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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읽을 수 없는 아이에게 보내는 편지들
“누리야, 안녕? 나는 네 아빠야.” 『누리에게』는 민구홍이 아들 누리에게 쓴 편지들을 모은 책입니다. 편지는 누리의 얼굴도 알기 전, 그가 온다는 사실을 알게 된 날부터 시작됩니다. 초음파 속 흐릿한 점, 이름을 둘러싼 가족의 마음, 엄마 배를 차는 발길질, 병원 새벽의 편의점, 태어난 뒤의 냄새와 하품과 탯줄까지. 책은 한 아이가 세상에 오기 전과 온 뒤의 시간을 따라가지만, 출산 기록이나 육아 에세이와는 조금 거리가 멉니다. 지은이는 아이에게 좋은 말만 골라주지 않습니다. 기쁨, 슬픔, 무서움, 화, 질투, 거짓말, 돈, 권력, 전쟁, 마음의 병, 죽음까지 함께 이야기합니다. 아이를 위해 세상을 단순하게 만들기보다 아이가 언젠가 마주할 세상의 복잡함까지 조금 먼저 편지의 모양으로 접어둡니다. 그래서 이 책은 아직 읽을 수 없는 아이를 향하지만, 먼저 읽는 사람은 어른입니다. 아이를 기다리는 부모, 아이를 키우는 부모, 아이였던 적이 있는 사람, 또는 지은이처럼 누군가에게 이런 말을 듣고 싶었던 사람 등이 편지의 첫 독자가 됩니다. 『누리에게』의 편지들은 다정하지만 순하지 않고, 어둡지만 무겁게만 머물지 않습니다. “사람한테 던져도 되는 건 농구공 같은 것밖에 없더라. 물론 받는 사람이 준비됐을 때만.”, “횡단보도를 건널 때는 흰 줄이나 검은 줄만 밟자.”, “편의점이 환하다.” 같은 짧은 문장들은 삶의 작은 장면을 붙잡습니다. 반대로 거짓말, 가족, 공정함, 신, 일, 창작에 관한 편지들은 아이에게 정답을 주기보다 지은이 자신이 아버지로서 아직 풀고 있는 흔적을 보여줍니다. 지은이는 미술 및 디자인계 안팎에서 15년 이상 작가, 교육자, 번역가, 편집자, 디자이너, 프로그래머 등으로 일해왔습니다. 그는 책을 만들고, 웹사이트를 만들고, 전시를 하고, 수업을 하며 오래도록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덜어내고, 무엇을 어디에 둘지 생각해왔습니다. 『누리에게』 또한 그런 편집의 결과물입니다. 아버지가 살아오며 누군가에게 배운 말, 만든 것, 겪은 실수와 부끄러움이 아이의 이름 쪽으로 잠깐 방향을 바꾼 책입니다. 아이를 향해 쓰였지만 아이에게만 갇히지 않고, 아버지의 사적인 편지이지만 한 사람이 자기 세계를 다음 사람에게 조심스럽게 넘기는 공적인 기록이기도 합니다. 한편, 책 곳곳에는 누리의 엄마 조주희가 그린 그림이 함께 놓입니다. 그림은 편지의 내용을 설명하기 위해 새로 그린 삽화가 아니라, 누리의 엄마가 한때 아이였을 때 남긴 선들입니다. 작고 흐릿한 점, 둥근 얼굴과 몸, 사람과 동물과 집과 풀밭이 한 화면에 놓인 장면들은 아버지가 현재의 아이에게 쓰는 말 곁에 어머니가 과거의 아이였을 때 남긴 시간을 겹쳐둡니다. 편지는 끝내 아이를 대신해 살아줄 수 없다는 사실을 압니다. 그래서 책은 거창한 결론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다만 조금 뒤에서 보고 있겠다는 말, 그리고 이제 책을 덮고 나가서 실컷 누리라는 말만 남깁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