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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 실리콘밸리 열병 자급자족 농장의 꿈 / 잡초 무성한 개척지 / 소프트 시티 1장 · 기쁨의 상자 모든 것을 내어 주는 선물 / 사회적 기층 / 사회성 유출 2장 · 데이터 지상명령 계산하라 / 모으라 / 학습하라 3장 · 분류 상황 이름 붙이기와 순위 매기기 / 테스트와 매칭 / 고유가치와 고유자본 4장 · 대대적 언번들링 정보가 담긴 결제 / 시장 조절 / 수익의 흐름 5장 · 중층적 금융화 추상화의 중층 구조 / 프로토콜 대중화 / 투기판이 되어가는 금융 6장 · 자기주권으로 가는 길 인증되는 노출 / 검색 기질 / 자기조직 인간 7장 · 서열적 시민권 평등의 문제 / 자격의 문제 / 가치의 문제 결론 · 참을 수 없는 서열화의 올바름 서열화의 이중 운동 / 진보에 대한 의지, 권력에 대한 의지 / 사회과학의 이중 진실 감사의 글 주 |
Marion Fourcade
Kieren Hea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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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0년 동안 소셜 데이터 수집과 분석의 범위가 변화하면서 우리가 삶을 경험하고 만들어 가는 방식은 근본적으로 재구성됐다. 이제 우리가 하는 일은 대부분 즉시 인증되고, 기록되고, 분류되고, 일종의 척도에 따라 점수가 매겨지곤 한다. 우리는 측정을 지향하고, 측정에 의해 정당화되고, 측정을 통해 통치되는 서열 사회 속에 산다.
--- 「서론: 실리콘밸리 열병」 중에서 알고리즘은 마치 공기와 같아서 만질 수 없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그것을 작동시키려면 엄청난 양의 에너지와 재료가 소모된다. 알고리즘은 합리적이고 객관적으로 보이지만, 그것을 훈련시킨 데이터가 객관적인 만큼만 객관적이다. 알고리즘은 부패, 악의, 무능력 등에 덜 취약한 것처럼 보이지만 꼼수(system gaming), 예외적 사례, 고의적 오용은 드물지 않다. 알고리즘은 정치적 압력에 신경 쓰지 않는 것으로 여겨지지만 정작 알고리즘을 만드는 사람은 으레 권위주의 정부의 요구에 순응하곤 한다. 그리고 알고리즘은 물론 실리콘밸리 거물들의 변덕과 심술에 취약하다. --- 「서론: 실리콘밸리 열병」 중에서 겉으로 보기에 디지털 생활은 포용의 범위를 넓히는 일이다. 그 정도가 어찌나 강한지, 정책 입안자들과 옹호 활동가들은 디지털 기술 접근권을 기본적 인권으로 규정하기에 이르렀다. 데이터의 포획을 강도질이라고 한다면, 길거리에서 총구를 겨누는 노상강도라기보다는 파티에서 당하는 소매치기에 가깝다. 그것은 ‘상호작용의 정치적 비극’이다. 즉 흔쾌히 때로는 열렬히 디지털 미디어에 참여한 일이 결과적으로 ‘보편적 포획(universal capture)’으로 귀결되는 비극이다. --- 「1장: 기쁨의 상자」 중에서 인류학자 마르셀 모스는 선물 교환을 다룬 저명한 논문에서, 자신이 가진 것을 나누는 행위가 사회생활의 원초적 속성이라고 주장했다. 겉보기에는 보답할 필요가 없고 이윤 추구도 개입하지 않는 듯한 베풂은 흔히 볼 수 있으며, 자발적으로 이루어진다. 선물은 사회라는 직물을 꿰매어 잇는다. 그렇다고 해서 나눔이 하기 쉬운 행위라는 뜻은 결코 아니다. 선물을 받은 사람은 사실상 일종의 빚을 지게 되는 셈이다. 그들은 보답해야 할 도덕적 의무를 짊어지게 된다. --- 「1장: 기쁨의 상자」 중에서 ‘데이터를 모으라’라는 데이터 지상명령은 민간, 공공기관 할 것 없이 제2의 천성이 됐다. 수집되는 데이터의 양과 성격이 수집 시점에 조직이 상상할 수 있는 범위나 분석 능력을 훨씬 뛰어넘을지 모른다는 점은 중요하지 않다. 어떤 식으로든 결국에는 비용을 정당화할 수 있을 만큼 경제적인 가치가 있거나 유용하리라는 가정이 있기 때문이다. --- 「2장: 데이터 지상명령」 중에서 디지털 인프라에 포착되지 않는 것은 의심을 사고, 조직은 그 비가시성을 부정적인 신호로 부호화한다. 디지털 활동에 참여하지 않거나 자신의 데이터 분신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는 것은, 좋게 보아도 도덕적 결함이고 최악의 경우 불법행위의 확실한 징표이다. 비가시성은 가시성 못지않게 덫이다. 단순히 빚을 지지 않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렇게 하면 결국 낮은 점수를 받을 뿐이고, 그 점수를 개선하려면 사생활을 더 깊이 파고드는 데이터 조사에 자신을 내맡길 수밖에 없다. --- 「3장: 분류 상황」 중에서 정말이지 중국은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집단적 화합이라는 이름으로 모든 인민의 행동을 통제하기 위해 시스템 전반에 걸쳐 데이터와 점수를 연관 지으려는 야심을 품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이론일 뿐이며, 현실은 그보다 더 범속하다. 요란한 언론 보도와 달리, 이런 시스템 가운데 상당수는 여전히 역량과 권한 양쪽 모두에서 모자란다. 현재로서는 거창한 통제 시스템이 아니라, 일상적인 모니터링 수단이 쳐놓은 훨씬 더 평범한 장애물, 또는 훨씬 더 어둡고 불투명한 디지털 감시의 배치로 인해 사람들은 바라는 삶을 살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 「3장: 분류 상황」 중에서 우리는 이 과정을 ‘대대적 언번들링(the great unbundling)’이라고 부른다. 그 핵심적인 특징은 돈이 더 이상 익명적이지 않다는 데 있다. 유통 경로를 추적할 수 있게 되면서 돈 자체가 일종의 원장처럼 기능한다. 경제적 거래 하나하나가 데이터 묶음으로 변한다. 상품과 거래 당사자, 거래 수단의 특성이 파악되어 기록된다. 가격은 더 이상 하나로 정해지지 않고, 매칭 알고리즘이 파악한 구매자와 구매 장소, 구매 시점에 맞추어 조정된다. --- 「4장: 대대적 언번들링」 중에서 순수하게 개인의 자격만을, 즉 데이터를 점점 더 많이 모음으로써 광범위한 사회구조와 완전히 분리해 낸 개인의 자격을 평가한다는 발상은 신기루이다. 사회 상황과 그에 따른 사회적 행동이 인구통계학적 범주들마다 일관되게 다르다면, 행동 데이터에 기반한 점수 역시 범주들마다 일관되게 다를 수밖에 없다. 법이 대문 밖으로 내쫓은 ‘집단 단위의 차별’은 창문을 통해 다시 집 안으로 들어온다. --- 「7장: 서열적 시민권」 중에서 이 모든 것이 처음에는 아무런 악의 없이 시작됐다. 컴퓨터 괴짜들은 호감을 주었다. 월드와이드웹은 기쁨을 주었다. 처음에는 해롭지 않았다. 그러나 월드와이드웹도 자본이 밀려드는 데는 속수무책이었다. 게다가 그 자본은 흔히 대중과 국가의 축복까지 등에 업고 들어왔다. (…) 개인화를 통한 계층적 분류라는 논리는 이제 경제적 인프라와 사회적 기대에 내장되어 있다. 세분화되고 정량화된 개인 데이터의 출현은 사회적 계층화 과정의 합리화를 가속화했고, 사회적 계층화 과정에 새로운 종류의 도덕적 정당성까지 부여했다. --- 「결론: 참을 수 없는 서열화의 올바름」 중에서 서열 사회가 영역을 넓혀감에 따라, 시장의 시선 아래에서 형식적 평등을 고집하는 태도는 국가의 그늘에서 벌어지는 실질적 평등을 위한 투쟁을 가려버린다. 이로써 우리는 서로 공유하는 것을 보지 못하게 되고, 연대의 감정과 제도는 조금씩 깎여 나간다. 공공재와 집단적 목표는 개인화와 경쟁이라는 산성 용액 속에서 녹아 없어지고, 우리는 사회질서가 정밀하게 계량되는 초연결 세계에서 갈수록 고립된다. 그 질서는 인위적으로 구성된 방식이기는 해도 반박하기 어려울 만큼 ‘올바르다’. 서열 사회에서의 삶은 정말이지 참을 수 없는 것이 될지도 모른다. --- 「결론: 참을 수 없는 서열화의 올바름」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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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밸리에서 시작한 흐름이 현대 사회의 구조를 재편하기까지
‘서열 사회’가 구성되는 역사적 흐름을 따라가는 구조적 논증 이 책의 핵심적인 질문은 이것이다. 우리는 어쩌다 "측정을 지향하고, 측정에 의해 정당화되고, 측정을 통해 통치되는" 사회에 살게 되었는가. 저자들은 이 질문에 아홉 개의 장을 층층이 쌓아 올린 하나의 논증으로 답한다. 월드와이드웹(WWW) 중흥기의 열광을 계곡열(Valley Fever)에 빗대어 표현한 서론 ‘실리콘밸리 열병’은 그 출발점을 뜻밖의 장소, 1960년대 반문화의 고향 캘리포니아로 잡는다. 자유와 해방을 약속하며 태어난 웹은 국가도 위계도 없는 ‘개척지’를 꿈꿨지만, 스스로 서버를 일구는 자급자족의 삶 대신 사람들은 거듭 편리한 서비스를 선택했고, 그 선택이 쌓이는 동안 웹은 누구나 서로를 평가하고 순위 매기는 자기 감시 네트워크, ‘소프트 시티’로 변모했다. 요컨대 서열 사회는 강요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원했던 편리함의 그림자로 도착했다는 것, 이것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첫 번째 전제다. 1장과 2장은 이 사회의 토대, 곧 데이터가 쌓이는 메커니즘을 양쪽에서 해부한다. 1장 ‘기쁨의 상자’가 개인의 측면에서 답한다면, 2장 ‘데이터 지상명령’은 조직의 측면에서 답한다. 개인은 왜 데이터를 내어 주는가? 빼앗겨서가 아니라 선물을 주고받기 때문이다. 무료 서비스라는 ‘선물’은 마르셀 모스가 밝힌 선물의 힘 그대로 보답의 의무를 낳고, 우리는 그 답례로 클릭과 ‘좋아요’와 관계망을 내어놓는다. 그렇게 인간의 사회성 전체가 측정 가능한 데이터를 끊임없이 흘려보내는 ‘사회적 기층’이 된다. 그렇다면 조직은 왜 그 데이터를 그러모으는가? 쓸모를 알아서가 아니다. 언젠가는 가치가 있으리라는 믿음 아래 일단 "모으라(Thou Shalt Gather)"라는 명령이 기업과 국가의 제2의 천성이 되었기 때문이다. 저자들이 ‘데이터 지상명령’이라 칭한 이 강박이 17세기 통계학에서 머신러닝까지 이어지는 계보 위에서 그려진다. 3장 ‘분류 상황’은 이 책의 이론적 심장부이자 논증의 결정적 전환점이다. 쌓인 데이터는 그냥 쌓여 있는 게 아니라 일을 한다. 이름을 붙이고, 순위를 매기고, 짝을 지어주는 일이다. 데이터 기반 분류 체계가 만든 범주 안에서 개인이 놓이는 위치, 곧 ‘분류 상황’은 취업·의료·보험·교육·주택·신용·시민권에 이르는 삶의 기회를 좌우한다. 이는 베버가 말한 ‘계급 상황’처럼 삶의 기회를 좌우하는 새로운 계층화의 기제가 된다. 그리고 그 위치 자체가 자원이 된다. 개인의 디지털 흔적 총체가 압축된 새로운 자본, ‘고유자본’이다. 마르크스의 자본, 부르디외의 문화자본을 잇는 이 개념과 함께, 데이터의 문제는 프라이버시 침해를 넘어, 기회 배분과 불평등의 문제로 확장된다. 4장과 5장은 이 서열화의 논리가 경제를 어떻게 재편하는지를 추적한다. 4장 ‘대대적 언번들링’의 열쇠는 돈이 익명성을 잃었다는 사실이다. 모든 결제가 데이터 묶음이 되자 기업은 상품에 묶여 있던 경제적 권리를 잘게 쪼개 사람마다 다른 가격, 다른 조건으로 팔 수 있게 됐고, 판매는 소유권 이전이 아니라 고객을 계속 붙들어 두는 관계의 시작이 됐다. 5장 ‘중층적 금융화’는 그렇게 쪼개진 데이터 흐름이 다시 묶여 자산으로 거래되는 다음 단계를 보여준다. 추상화가 층층이 쌓이는 금융의 오랜 논리가 데이터 기술과 만나면서, 주식과 암호화폐를 넘어 개인의 미래 소득과 정체성까지, 말 그대로 자기 자신을 투기의 대상으로 만들 수 있는 세계가 열린다. 6장과 7장에서 시선은 경제로부터 인간과 정치로 옮겨 간다. 6장 ‘자기주권으로 가는 길’은 디지털 기술이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과정만이 아니라, 실제로 자유를 확장하면서 그 자유의 책임까지 개인에게 떠넘기는 역설을 그린다. 오늘날 개인은 기존의 권위에 덜 의존해 지식을 찾고, 자신의 정체성을 표현하며, 삶의 경로를 스스로 조직할 수 있는 전례 없는 능력을 얻었다. 그러나 진정한 자신을 표현할 자유는 그 자신임을 증명해야 하는 ‘인증되는 노출’과 결합하고, 지식에 직접 접근하는 능력은 무엇이든 스스로 찾아 판단해야 하는 ‘검색 기질’이 되며, 자신을 자유롭게 구성한다는 이상은 세분화된 범주들의 세계에서 자신의 위치를 끊임없이 정해야 하는 ‘자기조직’의 과제로 이어진다. 자기주권은 그러므로 해방을 가장한 예속도, 허울뿐인 자유도 아니다. 그것은 실제로 개인의 행위능력을 확장하는 동시에, 그 자유를 인증·검색·자기분류의 책임으로 되돌려 개인에게 떠맡기는 디지털 시대의 양가적 이상이다. 7장 ‘서열적 시민권’은 이 양가적인 자기주권의 이상이 시민권과 사회적 포용의 원리로 확장될 때 어떤 정치적 질서를 만들어 내는지 추적한다.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라는 근대 시민권의 이상이 개인별 점수의 체제에 의해 잠식되고 재편될 때, 차별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형태를 바꾼다. 출신이나 집단적 정체성이 아니라 각자의 행동과 선택에 따라 개인을 평가하겠다는 약속은, 기존의 편견과 차별을 넘어 모든 사람을 고유한 개인으로 공정하게 대우하려는 열망에서 출발했다. 그러나 평등과 자격, 사회적 가치를 개인별 데이터로 정밀하게 측정하려 할수록, 시민이 누릴 권리와 기회는 보편적으로 보장되는 것이 아니라 각자가 입증한 행동과 점수에 따라 달리 배분된다. 이 과정에서 사회구조가 만든 격차는 개인의 기록 속에 다시 나타나고, 서로 다른 결과는 각자가 응당 받아야 할 몫으로 해석된다. 점수는 결과를 각자의 ‘응분의 몫’으로 도덕화하여, 불평등에 그 어느 때보다 그럴듯한 정당성을 입힌다. 서열적 시민권은 평등을 단순히 폐기하는 질서가 아니다. 오히려 평등과 공정, 포용의 이상을 개인화된 측정으로 실현하려는 시도가 어떻게 새로운 위계와 배제를 만들어 내는지를 보여주는 또 하나의 양가적 형식이다. 결론 ‘참을 수 없는 서열화의 올바름’은 이 모든 논의를 하나의 역설로 종합한다. 점수와 순위는 두 개의 진실을 동시에 갖는다. 내 눈높이에서 그것은 유용하고 심지어 즐겁지만, 한 걸음 물러서서 보면 바로 그 유용함과 즐거움이 조직에는 통제력을, 기업에는 이윤을 공급하는 연료다. 그리고 누구도 한쪽 진실만 골라 살 수 없다. 대학 평가 순위를 경멸하면서도 끝내 벗어나지 못하는 로스쿨들처럼, 우리는 순위라는 덫에 빠졌다기보다 순위에 얽혀들었다. 순위에 기대면서 순위를 미워하는 이 ‘이중 운동’ 속에서 연대의 감정과 제도는 조금씩 깎여 나간다. 저자들의 진단대로 "이제는 어느 누구도 선별되지 않은 뉴스 피드, 평가가 되지 않은 택시 기사를 바라지 않는" 이상, 이 질서는 되돌릴 수 없다. 다만 물을 수 있을 뿐이다. 이 서열은 누구의 기준으로 매겨지며, 그 도구로 이익을 얻는 자는 누구인가. "서열 사회에서의 삶은 정말이지 참을 수 없는 것이 될지도 모른다"라는 마지막 문장은, 그 물음을 시작하라는 경고다. 하이에크를 비틀고 쿤데라를 변주하는 사회학 - 이토록 유쾌한 정전은 오랜만이다 『서열 사회』는 결코 논리적이기만 하거나 딱딱한 책이 아니다. 저자들의 문장은 사회이론서라는 말이 무색할 만큼 유려하고 장난기가 넘친다. 6장 제목 ‘자기주권으로 가는 길(The Road to Selfdom)’은 하이에크의 『노예의 길(The Road to Serfdom)』을, ‘자기조직 인간’은 윌리엄 화이트의 고전 『조직 인간』을 비틀었고, 점수 낮은 이들을 가리키는 신조어 ‘룸펜스코레타리아’에는 마르크스의 룸펜프롤레타리아트가, "정보를 유출하는 자는 결국 유출당하는 자가 된다"라는 경구에는 『자본』의 "수탈자가 수탈당한다"가 겹쳐 있다. 그러나 이들의 글쓰기 방식은 결코 단순한 지식 자랑도 말장난도 아니다. 원전의 논리를 빌려 와 정확히 뒤집거나 연장하는 것, 즉 제목 한 줄에 논증 하나를 통째로 압축하는 것이 저자들의 방식이다. 하이에크가 국가의 계획이 예속으로 가는 길이라고 경고했다면, 저자들은 그 책 제목의 한 글자를 바꿔 정반대의 질문을 던진다. 국가로부터의 자유를 약속하며 도착한 ‘자기주권’이야말로, 평생 자신을 인증하고 검색하고 점수 관리해야 하는 새로운 예속의 길이 아닌가. 이 방식이 가장 빛나는 자리 중 하나가 결론의 제목, ‘참을 수 없는 서열화의 올바름’이다.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연상시키는 이 제목에서 눈여겨볼 것은 무엇이 무엇으로 바뀌었는가다. ‘가벼움’의 자리에 들어온 말은 ‘올바름’이다. 쿤데라의 역설이 가장 가벼운 것이 우리를 가장 무겁게 짓누른다는 데 있었다면, 저자들의 역설은 가장 올바른 것이 이 시대 우리가 가장 참을 수 없는 것이라는 데 있다. 서열 사회의 점수와 순위는 조작된 낙인이 아니다. 그것은 내가 실제로 한 행동, 내가 남긴 기록 위에 세워져 있고, 그래서 "인위적으로 구성된 방식이기는 해도 반박하기 어려울 만큼 ‘올바르다’". 우리는 그 올바름을 알기에 순위에 기대어 식당을 고르고 사람을 판단하며, 남을 평가하는 일은 멈추지 않는다. 다만 그 시선이 나를 향할 때에만 참을 수 없어질 뿐이다. 저자들이 ‘서열화의 이중 운동’이라 부르는 이 긴장, 곧 게임 안에 있고 싶으면서 동시에 바깥에 서고 싶은 욕망이야말로 서열 사회가 좀처럼 무너지지 않는 이유다. 부당한 질서라면 맞서 싸우면 되지만, ‘올바른’ 질서 앞에서 우리는 항의할 언어부터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책 전체가 도달하는 이 결론이 제목 여섯 글자의 뒤틀림 안에 이미 들어 있는 셈이다. 베버, 모스, 부르디외, 들뢰즈, 보르헤스, 심지어 동화 작가 존 메이스필드까지 종횡무진 오가는 인용들도 마찬가지로 저마다 제 몫의 일을 한다. "충분히 발달한 기술은 마법과 구분할 수 없다"라는 아서 클라크의 법칙은 그대로 인용되는 대신 뒤집힌다. AI는 우리를 마법의 세계로 ‘끌어올리는’ 것이 아니라, 알 수 없는 신탁 앞에서 의례를 되풀이하는 처지로 ‘끌어내린다’는 것이다. "엄밀함과 품격을 겸비했다. 지적 성취와 독서의 즐거움을 동시에 주는 책"(캐런 레비, 코넬대학교 교수)이라는 상찬처럼, 이 책은 사상사의 유산을 빌려 쓰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유산에 21세기의 독자적인 의미를 새겨 넣는다. 묵직한 이론서를 읽으며 페이지마다 웃고 밑줄 긋는 경험은 흔치 않다. 판옵티콘, 『감시와 처벌』, 『감시 자본주의 시대』… ‘감시’의 사상사 250년, 그 계보의 다음 자리에 놓일 책 감시 사회 논의를 ‘분류와 매칭’의 문제로 확장하다 1791년 제러미 벤담은 중앙의 감시탑에서 모든 수감자를 한눈에 내려다보는 원형 감옥, 판옵티콘을 설계했다. 1975년 미셸 푸코는 『감시와 처벌』에서 이 설계도를 근대 사회 전체의 은유로 확장했다. 감옥, 학교, 공장, 병원에 스며든 시선은 마침내 개인의 내면에 감시탑을 세우고, 사람들은 보는 이가 없어도 스스로를 감시하는 규율적 주체가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2019년 쇼샤나 주보프는 『감시 자본주의 시대』에서 이 시선이 자본의 손에 넘어갔음을 고발했다. 구글과 페이스북은 우리의 행동이 남긴 잉여 데이터를 채굴해 미래 행동을 예측하고 판매하는 새로운 축적 체제를 세웠다는 것이다. 『서열 사회』는 감시가 수집한 정보가 분류·순위·매칭의 질서로 전환되는 과정에 주목한다. 핵심 질문은 누가 나를 보고 있느냐에 그치지 않는다. 그 시선이 나를 어떤 범주에 넣고, 누구와 연결하며, 어떤 기회와 조건을 배분하느냐는 것이다. 수집된 시선이 최종적으로 하는 일은 이름 붙이기와 순위 매기기, 곧 분류와 서열화다. 저자들은 일찍이 오스카 갠디가 ‘판옵틱 분류(panoptic sort)’라 지칭했던 이 ‘규율적 감시 시스템’이 이제 신용점수, 위험 등급, 추천 알고리즘, 매칭 시스템의 형태로 전면화되었음을 보여준다. 푸코의 규율 사회가 사람을 ‘주조’했다면, 서열 사회는 질 들뢰즈가 예견한 대로 코드와 점수를 통해 사람들의 행동을 실시간으로 ‘조절’한다. 감시탑은 더 이상 필요 없다. 우리가 자발적으로 남기는 디지털 흔적이 곧 감시탑이고, 그 흔적으로 매겨진 서열이 곧 감옥의 등급이기 때문이다. 감시 사회 논의가 “누가 나를 보는가”를 물었다면, 이 책은 그다음 질문을 던진다. “나를 본 그들은, 나를 몇 번째 줄에 세우는가.” 저자들은 이 책을 통해 감시 사회의 논의를 분류와 서열화의 차원으로 확장함으로써 사회 이론의 새 국면을 열어젖힌다. 빼앗긴 것이 아니라, 우리가 ‘선물’한 것이다 스스로 감시와 서열의 제단에 오르는 현대인의 역설 데이터 경제에 대한 기존 비판은 대체로 ‘약탈’의 서사였다. 기업이 우리의 정보를 훔치고, 수탈하고, 인클로저했다는 것이다. 일리 있는 이야기지만, 이 서사에는 치명적인 맹점이 있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매일 아침 제 발로 그 약탈의 현장에 출근 도장을 찍는가? 저자들의 진단은 신랄하다. “데이터의 포획을 강도질이라고 한다면, 길거리에서 총구를 겨누는 노상강도라기보다는 파티에서 당하는 소매치기에 가깝다.” 우리는 끌려간 것이 아니라 초대받았고, 흔쾌히, 때로는 열렬히 파티에 참여했다. 이 역설을 풀기 위해 저자들이 소환하는 것이 인류학자 마르셀 모스의 선물 이론이다. 모스가 『증여론』에서 밝혔듯, 선물은 자발적이고 무상인 듯 보이지만 받는 이에게 보답의 도덕적 의무를 지운다. 선물은 “사회라는 직물을 꿰매어 잇는” 원초적 힘이다. 디지털 자본주의는 바로 이 힘을 비즈니스 모델로 만들었다. 무료 검색, 무료 이메일, 무료 소셜 미디어라는 ‘선물’을 받은 우리는, 그 답례로 개인 데이터와 사회관계망 정보를 내어놓는다. 저자들이 ‘모스식 거래(Maussian bargain)’라 부르는 이 교환의 교묘함은, 답례물이 관계가 시작되기 전에는 존재하지도 않았다는 데 있다. 나의 클릭, 나의 ‘좋아요’, 나의 친구 목록은 플랫폼에 가입하는 순간 비로소 물질성을 얻는다. 그렇게 우리는 자발적으로 선물과 교환의 시장에 뛰어들어, 스스로를 측정과 감시와 서열 짓기의 대상으로 만들어 바친다. 원치 않는 선물을 거절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는 명절 선물세트를 받아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안다. 하물며 그 선물이 이토록 편리하고 즐겁다면. 강탈의 서사로는 결코 보이지 않던 디지털 자본주의의 진짜 작동 원리가, 100년 전 선물 이론의 렌즈를 통해 선명하게 드러난다. 21세기의 새로운 자본, ‘고유자본’이 온다 흩어진 디지털 흔적은 어떻게 새로운 자본이 되는가 마르크스는 공장과 화폐의 시대에 ‘자본’이라는 개념으로 계급의 형성과 재생산을 설명했다. 한 세기 뒤 피에르 부르디외는 자본이 반드시 돈의 형태만 취하는 것은 아님을 보여주었다. 좋은 취향, 세련된 매너, 명문대 졸업장, 즉 ‘문화자본’은 몸에 배고(체화), 소유물로 드러나고(객관화), 학위로 공인되며(제도화), 경제적 불평등을 “도덕적으로 흠잡을 데 없는” 개인의 자질로 둔갑시킨다. 그렇다면 모든 것이 데이터로 기록되는 시대의 자본은 무엇인가. 푸르카드와 힐리의 대답이 이 책의 이론적 절정을 이루는 ‘고유자본(eigencapital)’ 개념이다. 개인이 디지털 경제에서 맺어온 상호작용의 총체, 곧 나의 모든 검색과 결제와 이동과 관계가 하나의 정보 벡터로 압축되어 “사회적 위치를 특징짓는” 새로운 자원이 된다는 것이다. 검색·결제·이동·관계 등 개인이 남긴 이질적인 디지털 흔적들은 아직 하나의 완전한 점수로 통합되어 있지 않고, 현재까지는 주로 ‘가능태(potentiality)’로서 존재한다. 그러나 특정한 상황에서 이 흔적들은 개인의 위치를 특징짓고 기회와 대우를 좌우하는 자원으로 작동한다. 저자들은 이 잠재적 자본 형식을 ‘고유자본’이라 부른다. 고유자본 역시 문화자본처럼 세 가지 형태를 취한다. 좋은 점수의 소유자는 자신의 데이터 분신 안에 자연스럽게 깃들어 살고(체화), 자녀의 신용 기록을 일찍부터 관리해 주는 부모처럼 ‘좋은 데이터’를 의식적으로 생산하며(객관화), 신용점수와 각종 통합 점수로 공인받는다(제도화). 그 결과는 낯설고도 익숙하다. 높은 고유자본은 과거 귀족만이 누리던 “돈으로 살 수 없는 삶의 은총”, 곧 어디서나 통하는 신용과 세심한 응대를 수량화된 형태로 부활시킨다. 그리고 그 반대편에는, 산업 자본주의의 룸펜프롤레타리아트에 빗댄 저자들의 신조어 ‘룸펜스코레타리아(lumpenscoretariat)’, 점수가 낮거나 아예 측정되지 않아 시스템 바깥으로 밀려난 사람들이 있다. 마르크스에서 부르디외로, 부르디외에서 푸르카드와 힐리로. 자본 개념의 계보를 잇는 이 책은, 불평등 연구의 언어가 21세기에 어떻게 갱신되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교과서적 사례다. 등급과 서열의 나라에서, 이 책이 도착해야 할 자리 사회성을 포획하는 데이터 경제는 어떻게 새로운 서열을 만드는가 “푸르카드와 힐리는 머지않아 다수에게 견디기 어려운 사회가 될지도 모를 ‘서열 사회’에서 사회성이 어떻게 포획되고 수익화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다.” 『21세기 자본』의 저자이자 파리경제학교 교수인 토마 피케티는 『서열 사회』를 이렇게 평했다. 그의 말처럼 이 책이 시사하는 중요한 지점 가운데 하나는 디지털 자본주의가 우리의 돈이나 노동뿐 아니라 ‘사회성’, 바로 사람과 사람이 맺는 관계 자체를 경제적 자원으로 바꾸었다는 사실이다. 친구를 맺고, ‘좋아요’를 누르고, 리뷰를 남기고, 위치를 공유하는 일상적인 사회적 상호작용은 끊임없이 데이터로 포착되고 새로운 가치의 원천이 된다. 그러나 푸르카드와 힐리의 분석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그렇게 수집된 데이터는 단순히 광고와 수익을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다시 개인을 분류하고 평가하고 매칭하는 재료가 된다. 사회성이 데이터가 되고, 데이터가 가치가 되며, 그 가치가 다시 사람의 위치를 정하는 순환 속에서 ‘서열 사회’가 만들어진다. 저자들이 말하듯 서열 사회는 디지털 흔적이라는 기층 위에서 사회성을 유출하고, 다양한 점수화·분류·매칭을 통해 개인들을 끊임없이 서로 다른 위치에 놓는다. ‘서열’이라는 말이 이토록 실감 나게 읽히는 독자들이 또 있을까. 수능 등급과 대학 서열, 기업 순위와 아파트 브랜드의 위계 속에서 살아온 한국 사회는, 어쩌면 세계에서 가장 예민한 서열 감각을 지닌 사회다. 그리고 지금 그 익숙한 위계 위로 또 하나의 서열 체계가 겹겹이 쌓이고 있다. 배달 앱의 별점과 라이더 등급, 중고거래 플랫폼의 매너 온도, 금융 앱이 매일 알려주는 신용점수, 게임 티어와 SNS 팔로워 수까지. 일상의 수많은 활동이 수치와 등급으로 바뀐다. 그러나 디지털 서열의 특징은 단순히 순위의 종류가 더 많아졌다는 데 있지 않다. 문제는 이 새로운 서열들이 옛 서열과 달리 ‘공정’과 ‘객관’의 얼굴을 하고 온다는 점이다. 내 행동의 기록으로 매겨진 점수이니 불평할 수 없지 않으냐고, 시스템은 속삭인다. 『서열 사회』는 바로 그 ‘올바름’을 의심하게 만든다. 행동 데이터로 매긴 점수가 어떻게 기존의 사회적 격차를 그대로 흡수해 “응분의 몫”으로 세탁하는지, 측정되지 않는 사람은 어떻게 시스템 바깥으로 밀려나는지, 그리고 “형식적 평등을 고집하는 태도”가 어떻게 “실질적 평등을 위한 투쟁을 가려버리는지”를 저자들은 집요하게 파고든다. 채용 AI의 공정성, 플랫폼 노동자의 평가와 계정 정지, 추천 알고리즘과 여론 형성, 생성형 AI 시대의 데이터 문제까지, 한국 사회가 마주한 여러 쟁점을 새롭게 읽을 수 있는 이론적 언어를 제공한다. 어느새 이 나라에서 능력주의 담론은 “공정하게 매겨진 서열은 정의롭다”라는 믿음과 한 몸이 되었다. 공정한 경쟁과 객관적인 평가에 대한 열망이 강한 사회일수록 이 책의 질문은 더욱 날카롭게 다가온다.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노골적으로 부당한 서열만이 아니다. 오히려 너무나 합리적이고 공정하며 개인의 선택에 충실해 보여 반박하기 어려운 서열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저자들의 마지막 문장, “서열 사회에서의 삶은 정말이지 참을 수 없는 것이 될지도 모른다”는 경고는 한국 독자에게 특별한 무게로 다가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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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혁신적이고 계몽적인 책은 데이터의 편재성이 촉발한 거대한 사회 변화를 비춘다. 마리옹 푸르카드와 키런 힐리는 모든 사물과 사람이 서열화되는 새로운 ‘서열 사회’에서 사회적 계층화가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하게 생성되고, 규범화되고, 끝내 정당화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광범위하고 치밀한 연구를 바탕으로 했으며, 21세기의 불평등을 이해하고자 하는 이들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다. - 가브리엘 쥐크만 (캘리포니아대학교 버클리 캠퍼스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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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데이터의 추적과 점수화가 현대인의 삶을 어떻게 조절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설명이 명징하고 예리하다. 따분한 일상, 소름 끼치는 감시, 성가신 수탈과 편향뿐 아니라 기쁨, 연결, 들뜸의 경험까지도 보여준다. 디지털적 질서화가 우리 세계를 어떻게 장악하고 있는지 이해하고 그 족쇄를 느슨하게 할 방안을 모색하기 위한 필독서이다. - 나타샤 다우 쉴 (뉴욕대학교 교수, 『중독의 설계』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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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세계를 가득 채운 디지털 흔적이 어떻게 상품화되는지를 구조적으로 탐구한다. 이 책은 데이터가 오용될 수 있는 무수한 조합을 짚어가며, 사회의 디지털화가 갈수록 빨라지는 현실의 한 단면을 독자가 더 잘 이해하도록 돕는다. - 조너선 웨이 (아칸소대학교 교수, 《사이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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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열 사회』는 횡단적 사회 이론의 성과이자 디지털 기술이 제기하는 쟁점을 냉정하게 성찰한 저작으로 정전의 반열에 오를 것이다. 푸르카드와 힐리는 놀라울 만큼 폭넓은 이론적·경험적 지식을 동원해 측정과 서열화가 시장, 정치, 문화, 그리고 사회생활의 조직 그 자체에 얼마나 필수적인 것이 되었는지를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게다가 엄밀함과 품격을 겸비했다. 지적 성취와 독서의 즐거움을 동시에 주는 책이다. - 캐런 레비 (코넬대학교 교수, 『데이터 드리븐(Data Driven)』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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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자본주의하에서는 사회적 상호작용 자체가 사적 전유와 자본 축적의 표적이 되었다. 푸르카드와 힐리는 머지않아 다수에게 견디기 어려운 사회가 될지도 모를 ‘서열 사회’에서 사회성이 어떻게 포획되고 수익화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다. - 토마 피케티 (파리경제학교 교수, 『21세기 자본』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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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시대의 현대 사회 이론을 진전시키고 널리 확산시킬 수 있는 저작이 있다면 그것은 『서열 사회』이다. 푸르카드와 힐리는 ‘서열화’라는 우아한 이론을 공통의 실로 삼아 이질적 현상을 묶고, 특히 계산이 민주화와 위계화를 동시에 촉진하는 방식이라는 디지털의 핵심 역설을 정리한다. 이 중요한 책은 사회학을 넘어서 오래도록 영향력을 발휘할 것이다. - 프랭크 파스콸레 (코넬대학교 교수, 『블랙박스 사회』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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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런 힐리와 마리옹 푸르카드는 정밀하고 유려한 문장으로 일상생활의 디지털화를 밀어붙이는 지각변동의 힘이 어디에 어떻게 작동하는지 그려 보인다. 단층선이 어디에 있으며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알고자 한다면 이 책을 읽어야 한다. - 프레드 터너 (스탠퍼드대학교 교수, 『반문화에서 사이버문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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