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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수원을 지나며 007
가마우지들 045 보르가르 079 옮긴이의 말 124 |
Philippe Jaccott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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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들은 여전히 나무였다. 그렇다면 생각을 무장해제 시키면서 자극하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스쳐 지나가지만, 말을 걸지는 않고, 그래도 당신을 멈춰 서게 하는 것. 틈새로 보이는, 전혀 다른 세계의 기호들? 난 이제 그것들을 더이상 볼 수 없다. 그것들은 겨우 며칠 동안만 지속되었을 것이다.
---p.11 이미지들을 조심하시길. 꽃들을 조심하시길. 말들처럼 가벼우니. 그것들이 거짓말을 하는지, 오해를 불러일으키는지, 아니면 안내를 하는지 우리가 알 수 있을까? 때때로 그것들에 이끌려가는 나, 그것들밖에 없거나 거의 아무것도 없는 나는 그것들을 경계한다. 나이가 들면 내면의 시야도 좁아진다. 꿈은 덜 꾸게 된다. 더 탐욕스러워지고 더 인색해진다. 뒤를 돌아보기 시작할 때면 늙는 것이다. ---p.19 바람이 불고 건조하고 창백한 이 봄날, 늦게 돋아나는 첫 초록들이 흙먼지들을 뚫고 나오기 시작한다. 돌처럼 단단한 땅 위에 나무들의 옅은 그림자가 다시 드리워질 때, 나는 어느 날 정오, 햇살이 가득한 순간, 눈부시면서도 연약한 그 햇살 속에서, 일종의 커튼처럼, 살짝 어두운, 공기 조각처럼 보이는 산을 다시 보았다. 그 투명한 면 위에 얹힌 산봉우리의 몇몇 눈 조각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말로 표현하거나 이해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나, 다시, 그것은 나를 감동시켰고, 아마도 벤치에 앉아 있는 지친 노인처럼 여전히 나를 감동시킬 것이다. ---p.28 이것은 놀이, 아니면 빛의 속임수였다는 것 역시 잘 알고 있다. 그런데도 이 게임이 나를 감동시키는 이유는, 그것이 숨겨진 욕망과 일치하기 때문이고, 내 안의 욕망을 드러내기 때문이며, 모든 장애물이 마법처럼 사라지기를 바라는 욕망을 내 앞에서 흉내 내기 때문이라는 것도 오래전부터 이해해 왔다. ---p.30 그렇다, 우리는 눈을 씻으려 하고, 미지의 것을 쫓는다. 눈은 생기 넘치고 신선하고 감춰져 있고 샘물처럼 변하지 않는 것을 다시 마시고 싶어 한다. 우리 주변에 너무 가까이 있지만, 우리는 더이상 그것을 찾을 수 없다. 그래서 어린아이처럼, ‘산 너머’나 ‘벽 너머’에 있는 것, 보이지 않는 세계를 꿈꾸지 않을 수 없는 사람처럼, 우리는 경계를 넘고, 그 순간 모든 것이 달라질 거라고 상상한다. ---p.63 나는 내가 보는 것이 나한테 더 깊이 닿기를 원한다. 물론, 여행을 일종의 순례처럼 만들고 싶은 건 아니다. 무언가는 그걸 찾을 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것에서 돌아설 때 주어지는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내가 여행에 부여하는 진정한 역할은 이것이다. 자기 자신으로부터 돌아서고, 잊고, 몰입에서 벗어나게 하고, ‘시적인’ 태도에 갇히지 않게 하고, 어떤 계시를 기다리는 것으로 전락하기 전에 삶의 리듬을 깨뜨리는 것. ---p.64 침묵이 다시 찾아왔다. 조금만 더 지나면 모든 것이 불분명해질 것이다. 우리는 축제가 벌써 끝났다는 사실에 놀라고 슬퍼하며, 마지못해 그곳을 떠나는 사람이 된다. ---p.1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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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가 보는 것이 나한테 더 깊이 닿기를 원한다.”
세상을 바라보는 한 인간의 시선을 따라가는 산문집. 우리는 지나간 풍경을 얼마나 오래 간직할 수 있을까. 시간이 흐른 뒤에도 기억 속 풍경은 처음 마주했던 순간의 빛과 숨결을 품고 있을까. 『과수원을 지나며』에 수록된 세 편의 산문은 서로 다른 장소와 기억에서 출발하지만, 결국 하나의 시선으로 모인다. 자코테에게 중요한 것은 풍경 자체보다 그 풍경을 바라보는 사람의 마음과 태도다. 그는 사물을 설명하거나 의미를 부여하기보다 그 앞에 오래 머문다. 그리고 오래 바라보는 동안 눈앞의 풍경이 어떻게 기억과 사유로 이어지는지를 조심스럽게 따라간다. 풍경을 바라보는 사람, 자코테 국내 독자들에게 필리프 자코테는 이제 낯선 시인이 아니다. 이미 소개된 그의 작품들을 통해 독자들은 사라져가는 빛과 나무 사이를 지나는 바람, 오래 바라본 풍경 속에서 삶의 미세한 떨림을 발견하는 그의 문학을 만나왔다. 『과수원을 지나며』는 그 연장선에서 자코테의 산문 세계를 보여준다. 과수원, 새, 들판, 오래된 집과 같은 사소한 풍경들은 그의 글에서 기억과 현재가 만나는 장소가 된다. 자코테는 자연을 예찬하거나 풍경을 아름답게 묘사하는 데 머물지 않는다. 그는 풍경을 바라보는 순간 우리의 시선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그리고 그 작은 변화가 어떻게 내면의 사유로 이어지는지를 들여다본다. 시인이면서 산문가이고 번역가이기도 했던 자코테는 릴케와 횔덜린, 호메로스, 만델슈탐 등의 작품을 프랑스어로 옮기며 평생 다른 시인들의 언어와 대화했다. 그의 문장에 흐르는 깊은 침묵과 절제는 이러한 오랜 언어의 경험과도 맞닿아 있다. 기억은 과거에 머물지 않는다 자코테의 ‘기억’은 지나간 시간을 아름답게 회상하는 노스탤지어와는 다르다. 그는 과거의 한 장면을 복원하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한때 마음을 스쳐 지나간 빛과 기척이 시간이 흐른 뒤 지금의 자신에게 어떻게 다시 도착하는지를 바라본다. 그래서 그의 산문에서 기억은 과거에 머무르지 않는다. 이미 지나간 풍경은 현재의 언어 속에서 다시 모습을 드러내고, 한때 보았던 것은 지금의 시선에 의해 새롭게 감지된다. 풍경은 밖에 있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시선은 우리의 안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과수원을 지나며』라는 제목은 단순히 한 과수원의 풍경을 떠올리게 하는 이름이 아니다. 언젠가 지나갔던 장소를 기억하는 동시에, 지금 다시 그곳을 지나가는 경험을 암시한다. 독자는 자코테의 시선을 따라 천천히 걸으며 자신이 한때 보았던 풍경과 기억까지 되돌아보게 된다. 시인이 남긴 조용한 산문 자코테의 문장은 무언가를 설명하거나 단정하기보다 쉽게 붙잡히지 않는 감각이 언어 속에 머물도록 한다. 늘 곁에 있는 것을 조금 더 오래, 조금 더 정확하게 바라보려는 사람의 시선이 그의 문장을 이룬다. 그래서 『과수원을 지나며』를 읽는 일은 자코테가 바라본 풍경을 만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그의 느린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가 무심코 지나쳤던 빛과 바람, 나무와 새, 어떤 장소의 기척이 새롭게 눈에 들어온다. “나는 내가 보는 것이 나한테 더 깊이 닿기를 원한다.” 자코테의 이 말처럼, 이 책은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 그리고 한 번의 시선이 어떻게 오래도록 우리 안에 남을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