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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urt Vonnegu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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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퀘이크의 전제는 이랬다. 타임퀘이크, 곧 시공(時空) 연속체의 갑작스런 고장이 일어나자 모든 사람과 사물이 좋든 싫든 지난 10년 동안에 했던 것을 똑같이 되풀이하게 되었다. 사람들은 1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계속 이미 알고 있는 것, 곧 기지감(旣知感)을 느끼며 살아야 했다. 그렇다고 삶이 중고품이라고 불평할 수도 없었고, 자기만 미쳐가고 있는지 모든 사람들이 미쳐가고 있는지 물을 수도 없었다.
그 전 10년 동안 하지 않았던 말이라면, 이 반복기(反復期)에 새로 할 순 없었다. 그 전 10년 동안 하지 못한 일이라면, 자기 자신은 물론 사랑하는 사람의 목숨도 구할 수 없었다. --- p.10~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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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DS와 신종 매독과 임질과 고환통이 화장품 방문 판매원들 설치고 다니듯 유행하고 있는 내력이라며 트라우트는 이런 이야기를 했다. 2차 세계대전 종전 직후인 1945년 9월 1일, 모든 화학원소의 대표자들이 트라팔마도어 행성에서 회합을 열었다. 일부 원소들이 이제까지 잔인하고 어리석은 인간같이 지저분하고 냄새 고약한 대형 유기체의 몸을 이루고 있는 문제를 논의하자고 모인 것이었다. (…) 트라우트의 이야기로는, 화학원소의 대표들은 회의가 시작되기 전에 인간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자행한 끔찍한 짓들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기로 합의를 본 터였다. 일부 대표들이 얌전히 앉아서 그렇게 구역질나는 이야기들을 들어야 한다면 회의를 보이콧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은 것이었다. (…) 트라우트는 이렇게 말했다. “어른들이 어른들에게 저지른 짓만으로도 인간이 절멸되어야 할 이유는 충분했다.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저지른 짓을 구질구질하게 다시 늘어놓는다면 백합꽃에 도금을 하는 격이 될 것이었다.”
--- p.65~6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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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우트가 말했다. “선생이 전과자라고 하고, 선생이 치러야 할 그 온갖 개똥같은 일들을 한 번 상상해 보시오. 선생에게 편지를 쓴 그 딱한 작자를 받아주는 교회가 있다면 그 자식은 금방 감옥으로 돌아갈 거요.”
“무엇 때문에요?” 내가 물었다. “헌금함을 털기라도 합니까?” “아니지.” 트라우트가 말했다. “예수 그리스도를 기쁘게 해준답시고 낙태 작업장에 일하러 온 의사를 쏘아 죽일 거거든.” --- p.1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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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나는 어떤 여성에게서 속없는 편지를 한 통 받았다. 그녀는 나 역시 속이 없다는 것, 즉 북부의 민주당 지지자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녀는 임신 중이었는데 이 악한 세상에 무죄한 아기를 내보내는 것이 잘하는 일인지 알고 싶어 했다.
나는 답장에서 내게 인생을 그나마 살 만한 것이라고 여기게 만드는 것은 내가 만난 성자들, 이타적이며 훌륭하게 행동하는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그들은 전혀 예기치 않은 곳에 나타났다. 아마 여러분이, 친애하는 독자들이, 그녀의 귀여운 아이가 만날 성자이거나 그런 성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원죄(原罪)를 믿는다. 원덕(原德)도 믿는다. 둘러보라! --- p.26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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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2년에 태어난 커트 보네거트 2세는 작년 11월 11일 여든 세 번째 생일을 맞은 미국 작가이다. 지금도 노구를 이끌고 부시의 전쟁 정책에 맞서 반전을 외치는, 사회적 발언을 마다 않는 미국 지성의 양심으로 불린다.
그가 미국 사회와 문학 세계에 끼친 영향에 비한다면 한국에서의 평가는 다소 인색한 편인 것 같다. 일부 마니아층과 연구자들 사이에서의 높은 평가에 비해 일반 대중들 사이에서는 그다지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까닭이다. 그를 흔히 SF작가로 규정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엄밀히 보면 그의 작품에서 과학적 지식은 소설의 한 도구로 이용될 뿐이지 그는 현실 세계의 고민을 무시한 공상 과학 소설가는 아니다. 과학 지식을 이용하여 그의 수준 높은 상상력을 마음껏 펼쳐 보이지만 현실에 대한 비판의 끈을 놓지 않는다. 인간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 놓여 있고, 권력에 중독된 인간 집단의 속내를 낱낱이 파헤쳐 고발하는 특성이 있다. 한마디로, 다른 존재들과 구별된다고 믿고 있는(?) 인간의 이성이라는 것에 대해, 인간이 얼마나 약하고 간사하며 이기적이고 비양심적인 존재인지 비판의 칼을 들이대고 조롱과 풍자로 그것의 본체를 살살 건드리며 드러내는 것이 그의 작품을 읽는 재미라 하겠다. 이러한 보네거트의 작품 경향에는 그의 실존적 체험에 기인한 바도 크다. 실제로 그는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여 벨기에 전선에 투입된 경험이 있다. 이때 그는 조상의 나라(독일)에 총부리를 들이대는 사태에 직면하고, 독일의 유서 깊은 고도 드레스덴의 파멸 현장에서 정말 ‘운 좋게도’ 살아남아 원치 않는 증언자가 되고 만다. 팽창하는 자본주의, 물질의 지배를 둘러싼 인간 집단의 광기, 전쟁으로 표출되는 이 집단의 야만적인 모습들은 인간이 ‘이성의 동물’이라는 서구 주류 사회에 강력한 문제 제기, 응전을 펼친다. 그의 작품들은 한결같이 우울하다는 평가를 듣는다. 그럼에도 그 안에서 내뿜는 한줄기 햇살 같은 장치들, 다시 말해 유머와 풍자와 조롱을 수반한다. 그래서 마냥 우울하지만 않다. 그리고 그의 과학적 지식도 소품으로 등장시켜 ‘재치와 재미’를 선물한다. 그것을 발견하여 즐기는 건 독자의 몫이지만. 알려져 있기로, 작가 커트 보네거트는 지금까지 모두 14편의 장편소설과 3권의 에세이집을 발표했고, 백여 편의 단편소설을 썼다고 한다. 그 외에도 약간의 희곡도 발표했다고 한다. 이 책 <<타임퀘이크>>는 그가 일흔 셋의 나이에 발표한 최신작(?)이다. 지금으로부터 꼭 10년 전에 발표되었으니까 최신작이라 할 만하다. 그의 장편소설 가운데 마지막 작품이 되지 않을까 싶다. 물론, 더 최신작이 나온다면 대단히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그는 올해 여든 넷 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