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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緖, 실마리
1 이제 어찌하나_ 韋莊, 〈長安春〉 2 해 질 때 가깝다_ 李商隱, 〈登樂游原〉 3 돌이켜보며 말할 수 있겠는가_ 李商隱, 〈夜雨寄北〉 4 어린 아이들 웃으며 묻는다_ 賀知章, 〈回鄕偶書〉 5 그대들에게 물어나볼까_ 李白, 〈金陵酒肆留別〉 6 취해서는 각기 나뉘어_ 李白, 〈月下獨酌〉 7 술 한 말에 기뻐하고 희롱했다_ 李白, 〈將進酒〉 8 그저 가시라, 다시 묻지 않을 테니_ 王維, 〈送別〉 9 연둣빛 비단 창을 지나간다_ 劉方平, 〈月夜〉 10 이 열매, 서로 가장 그리워하는 것이니_ 王維, 〈相思〉 11 구름이 감추고 있어 알지 못한다고_ 賈島, 〈尋隱者不遇〉 12 들풀 속에 어지럽다_ 王昌齡, 〈塞下曲 - 其二〉 13 이름난 꽃, 나라를 기울일 아름다운 여인_ 李白, 〈淸平調 - 其三〉 14 향기를 머금었다_ 李白, 〈淸平調 - 其二〉 15 이슬 맺힌 꽃 짙어졌다_ 李白, 〈淸平調 - 其一〉 16 빈방으로 차마 돌아가지_ 王維, 〈秋夜曲〉 17 시를 높이 읊조리나 그 사람은 들을 수 없다_ 李白, 〈夜泊牛渚懷古〉 18 덩굴 무성한 길에서_ 孟浩然, 〈宿業師山房待丁大不至〉 19 몸 눕히는 것도 아득하다_ 韓翃, 〈酬程延秋夜即事見贈〉 20 돌아갈 까닭이 어디 있나_ 韋應物, 〈淮上喜會梁川故人〉 21 헛되이 눈 위에 남은, 말 지나간 흔적_ 岑參, 〈白雪歌. 送武判官歸京〉 22 양양, 바람도 볕도 좋으니_ 王維, 〈漢江臨汎/漢江臨眺〉 23 나는 술에 빠졌고 그대도 즐거워하니_ 李白, 〈下終南山過斛斯山人宿置酒〉 24 노 젓는 한 소리에_ 柳宗元, 〈漁翁〉 25 차가움_ 柳宗元, 〈江雪〉 결結, 매듭 후기後記, 뒤에 덧붙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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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움은 사람들과 단순히 멀어진 것이 아니라 동지同志, 뜻을 같이하는 이들과 단절되었음을 몸으로 알게 되는 상태이다. 자신의 처지를 스스로 안쓰러워하는 정서적 결핍 상태이기도 하다. 외로움에는 여러 가지 감정 상태가 결집되어 있다. 화남, 억울함, 슬픔, 시샘이나 부러움, 부끄러움, 쌀쌀맞은 쓸쓸함에 이르는, 부정적 심정의 묶음이다. 외로움은 추상적 묶음이고 그것의 드러남은 이러한 구성 속성 중 하나 또는 몇 가지의 결속체로 이루어져 있다. 누군가를 원하면서도 찾지 못한 상태,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결핍도 외로움을 유발한다. 외로움은 ‘스스로 존재함’이 아니다. 외로움이 고립孤立(loneliness)된 몸의 내면이라면, ‘스스로 존재함’은 독존獨存(solitude)하는 몸의 정신적 표상 형식이다.
--- p.47 세상은 시끄럽다. 사람들이 자신의 존재 증명을 위해 떠든 말들이 이리저리 떠다닌다. 떠들지 않으면 그들의 존재가 다른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을까 걱정되어 마구마구 떠드는 것이다. 떠들다 떠들다 힘 떨어져 입 다물면 그는 바로 그 순간 ‘부재不在하는 자者’, 즉 ‘있지 않음’으로 전락하고 만다. 입을 다물고 있는 이들은 존재 증명에 실패한 듯 보인다. 묻혀서 사라진 것만 같다. 본래부터 입을 다물고 있던 이들은, 늘 있던 이, 상존尙存하는 이다. 그는 어쩌면 ‘본질로서 있는 존재’, ‘상재相在(Sosein)’를 이미 가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종남산 자락에 죽은 듯이 누워 있어도 내 존재는 그 자체로 증명될 텐데 뭐가 걱정이겠는가. 그저 가시라, 부존재不存在의 걱정 없이 고요히 누워 있으시라. 왕유와 “그대”의 동감의 깊이가, 내가 차마 헤아리기 어렵다. 나는 내 존재 증명을 위해, 그들의 부존재 증명에 대해 이렇게 잡설雜說을 쏟아 내고 있으니 말이다. --- p.67 가을에 물을 건너와 장성 앞 모래밭 풍경을 바라보며 백골과 황진을 말하는 이는 이 모든 것을 무심의 경지에서 보고 있다. 희끄무레하게 보이는 성만이 아니라 그 성에 얽혀 들어간 인간, 사막, 백골, 들풀, 이 모든 것들의 바탕에 놓인 진리의 고리를 보고 있는 게 아닐까. 지금도 어제도 우리는 수없이 많은, 헤아리기도 어려울 다툼을 여기저기서 보고 보았다. 그게 다 뭘까. 장차 성 아래서 어지럽게 뒹굴 것들이다. 본래의 모습도 제대로 갖지 못한 채. 시인은 이곳에 처음 온 이가 아니다. 그는 거대 국가가 벌이는 토목 공사, 무참한 전쟁 행위의 덧없음, 그러한 행위 속에서 바스라져 가는 인간의 짠함과 무상을 담담하게 드러내 보인다. 황진이 되어 버린 백골, 한때는 의기양양했을 백골, 살점이 모두 썩어 버린, 이제는 한낱 들풀보다도 하찮은… 들풀은 생명이 있건만. --- p.99 시는, 우리 눈앞에 있어서 관찰할 수 있는 사태事態 또는 현상現象의 본모습, 사상事象에 관하여 시인이 깊이 생각한 것, 사상思想을 정교하게 다듬은 언어와 구성으로써 드러내 보인 것, 즉 사상寫像한 것이다. 사태事態-사상事象-사상思想-사상寫像이라는 네 항목은 바깥에 있는 것이 시인의 내부로 들어가 정신적 ‘위상位相 전이轉移’(phase transition)를 거쳐 질적으로 다른 것이 된 다음, 외부로 다시 드러나는 시 창작의 전 과정을 보여 준다. 이 과정에서 시를 음미하는 이에게 미묘한 즐거움과 더러는 짜릿함을 주는 요체는 바로 시인의 사상思想일 텐데 그것은 결국 사상事象과 사상寫像 사이의 긴장과 대응을 만들어 내는 깊은 사유思惟, 즉 사색思索의 힘에서 나올 것이다. --- p.131 왕유는 양양에 있다. 이곳은 구체적인 땅이지만 탈속의 자리이기도 하다. 바람도 볕도 좋은 곳이다. 바람이나 볕이나 무형無形의 것들이다. 양양에는 어디 갈 일도 없는 늙은이가 있다. 그는 평생의 벗 맹호연이다. 다른 이도 아니고 맹호연이라면 서로 아무 말 하지 않고 그 볕을 함께 누릴 만하다. “취醉”로 적힌 본이라면 ‘취해야겠다’로, ‘상賞’으로 적힌 본이라면 ‘누려야겠다’로 옮길 수 있을 텐데 “취”가 술 마시고 취하는 건 결코 아닐 것이다. 볕 좋고 바람 좋은 곳에서 술을 마시는 것은 세상을 떠나지 못하는 천박한 것들이 고립을 이겨 내지 못하고 저지르는 어리석은 짓이다. 고수 중의 고수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앉아 바람과 볕에 취하고 흐드러지게 누리는 법이다. 그러니 “취”건 ‘상’이건 뜻은 같다. 벗이 곁에 있으니 독존은 아니나 유유자적悠悠自適, 보는 이를 흔쾌하게 해 준다. --- p.181 이백이 벗과 함께 잊어 버린 대상이 자연물뿐이겠는가. 바깥세상 모든 일, 자신의 마음 안에서 솟아나는 온갖 정념들도 그러려니 하고 멀리 떠나보내는 것이 그의 “망기”일 것이다. 벗을 만나 술을 마시며 망기하는 이백의 모습, 보고 있는 내가 흐뭇하다. 부디 늘 그렇게 지내시라. 우리도 다른 이에게, 골치 아픈 세상을 살면서, 스스로에게 다짐도 할 겸, “공망기共忘機”를 덕담으로 건네 보는 것도 좋겠다. 부디 ‘뭘 어찌 해 보겠다는 마음, 함께 버립시다.’ 그리하면 우리는 ‘같은 마음’(homophrosyne)에 이를 테니까. --- p.191 죽을 때가 얼마 남지 않은 게, 생물학적으로는 노년이다. 노년이란 무엇인가를 물으면, 우리는 이렇게 아무 맛도 없이 담담하게, 무미건조하게 대답하면 된다. 나이가 젊어도 살 날이 얼마 안 남았다는 진단을 받았다면, 그는 노년이다. 언제 죽을지 대강이라도 날짜를 받았다면 그때부터 노년에 들어선 것이다. 나는 이 정의定義가 몹시 맘에 든다. ‘노년’에서 파닥거리며 튀어나오는 추접스러운 잡상雜想을 단숨에 끊어 주는, 이런 과학이 썩, 역설적으로 유쾌하다는 말이다. --- p.2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