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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현재 심사정
2. 능호관 이인상 3. 호생관 최북 4. 단원 김홍도 5. 부록 - 이규상의 「화주록」· 「서가록」의 해제 · 번역 · 원문 |
Yu Hong-june,兪弘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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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가 겸재에게 배웠다면서 왜 현재의 화풍이 겸재와 다른가는 회화사의 큰 의문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대답은 어쩌면 간단한 것일지도 모른다. 현재가 14세 이전에 겸재에게 그림을 배웠다면 이때는 아직 겸재가 진경산수를 본격적으로 그리기 이전으로 그 자신이 중국 남종화를 한창 그릴 때였기 때문이다.
--- p.38-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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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용화사 단원 김홍도는 어느새 명류(名流)가 되어 있었다. 30대에 단원의 화명(畵名)이 얼마나 높았는지는 1779년 단원 35세 때 홍신유가 단원에게 시를 지어주면서 쓴 발문에서 "단원은 나이 30도 안 되어 그림으로 세상에 이름이 남으니 무릇 하늘이 준 재주의 높음이다"라고 한 말에서 알 수 있다. 또 그에게 그림 주문이 얼마나 쇄도했는가에 대해서는 표암이 「단원기」에 다음과 같이 증언하고 있다.
세속이 김홍도의 뛰어난 기량에 감탄을 금치 못하고 요새 다른 사람들이 미치지 못함을 탄식하였다. 이에 그림을 구하는 자가 날마다 무리를 지으니 비단 이 더미를 이루고 찾아오는 사람이 문(門)을 가득 메워 잠자고 먹을 시간도 없을 지경이었다. 단원의 명성과 밀려드는 그림 주문은 진신(縉紳)간에도 널리 퍼져 있었다. 저간의 분위기는 신광하(申光河, 1729~1796)가 지은 「정대부가 김홍도에게 그림을 요구하는 시에 부침」이라는 시에 잘 나타나 있다. 내용인즉, 정대부(丁大夫: 丁範朝로 추정)가 「산수 · 풀 · 벌레 ·새 그림을 얻기 위해 김홍도에게 보내는 노래」라는 걸화가(乞畵歌)를 짓자 신광하가 이 시를 보고 읊은 것이다. 그대 보지 못했는가. 정대부가 그림 그려 달라고 청한 노래를…… 내 듣자 하니 화사 김홍도는 요즘 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옛 사람도 그의 그림 솜씨 따르기 어렵다 하네. 일찍이 왕명을 받들고 동쪽으로 관문을 넘어갈 제 좋은 비단 뒤에 싣고 채찍을 날리며 말을 달렸다지.…… ---pp.184~18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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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화가(畵家)'가 아니고 '화인(畵人)'인가?
20여 년 전 저자는 반 고흐나 피카소 같은 서양화가보다 겸재 정선이나 단원 김홍도 같은 우리 화가들의 일생에 관한 지식이 더 적었던 우리의 무심한 현실을 반성하면서, 한국미술사 공부의 일차적인 과제를 우리 미술사에 큰 족적을 남긴 인물들에 대한 전기 쓰는 것으로 삼았다. 학창시절 이탈리아 르네상스시대에 바사리가 지은 {미술가 열전가장 유명한 화가, 조각가, 건축가들의 일생}(1568)을 읽고 큰 감명과 충격을 받았던 것이다. 그 책에는 위대한 예술가가 자기 예술을 완성하기 위하여 지불해야 했던 작가적 집념과 인간적 고뇌가 감동적으로 서려있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에게는 그런 책이 없었다. 더구나 전기로 엮을 만한 화가가 없는 것이 아니라, 그런 노력이 없었던 현실을 깨닫고는 조상들에게 미안하고 저자 스스로에게 너무나 부끄러웠다. 그래서 그는 뒤늦게 대학원에 진학하여 한국미술사를 전공하면서 그 전기 쓰는 작업을 학문의 1차 과제로 삼았다.
그래서 석사학위 논문으로 [능호관 이인상의 삶과 예술]을 써냈다. 그리고 이때부터 저자는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화가 10여 명의 전기를 쓸 생각을 가졌다. 오세창의 『근역서화징』, 유복렬의 『한국회화대관』, 이동주의 『우리나라의 옛 그림』, 안휘준의 『한국회화사』는 이 작업의 길라잡이였다. 그리고 그는 기회가 닿는 대로 문헌자료와 실작품을 조사했다. 마침 1980년에 들어서면서 각종 도록이 속속 출간되고 미술관·고미술 화랑의 전시회가 전에 없이 많이 열리기 시작했다. 『표암유고』, 『관아재고』 같은 중요한 화가들의 문집도 영인 출판되었다. 그리고 저자는 {계간 미술}에 입사하여 <한국의 미> 시리즈에 대한 편집을 맡게 되면서 자료조사에 더없이 좋은 기회를 갖게 되었다. 그렇게 10여 년 동안 자료를 수집하던 중에 남태응의 [청죽화사]와 이규상의 {일몽고}라는 18세기의 귀중한 회화사료도 찾아냈다. 이 글들에는 조선시대 화가들의 삶을 복원하는 데 결정적인 자료가 많이 들어있었던 것이다. 이때부터 저자는 평전을 쓸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고, 1990년 봄부터 계간 {역사비평}에 "조선시대 화가들의 삶과 예술"을 연재하기 시작했다. 연담 김명국, 공재 윤두서, 능호관 이인상, 호생관 최북, 현재 심사정, 관아재 조영석, 단원 김홍도, 추사 김정희, 겸재 정선 등 자료가 갖추어진 화가부터 길면 긴 대로 짧으면 짧은 대로, 쓰며 쉬고 쉬며 쓰기를 계속하기를 장장 10년, 2000년 봄호까지 9명의 전기를 완성했다. 『화인열전』(1·2)은 이 연재물을 모아 다시 엮은 것이다. 그렇다고 연재했던 것을 그대로 옮긴 것이 아니라, 그 사이에 나온 학계의 연구성과를 반영하여 대대적인 수정·보완작업을 거쳐 완전히 改稿했다. 최근 10년 동안 한국회화사 연구는 비약적으로 발전하여 많은 연구업적들이 쏟아져 나왔기에 모든 글들이 거의 새로 집필하다시피 되었고 원고 분량도 크게 늘어났다. 이리하여 저자는 마침내 20년 전 스스로에게 지운 학문적 과제이자 조상에 대한 마음의 빚이었던 우리 '미술가 열전'을 펴내게 되었다. 부디 이 책이 '인간학으로서 미술사'이라는 개념을 확대하는 새 지평을 열고, 우리나라 화인들의 사상과 철학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고, 우리 옛 그림을 사랑하고 자랑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