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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사 황석영·김영란·손희정
여는 글 창화에서 창화로 김남일 여는 시 빈안平安으로 가는 길 도종환 우리는 함께 빈안으로 나아갑니다 탄타오 1. 파도들이 저 멀리 수평선을 타고 총구 앞에 조준된 한마리의 새여 신세훈 포복 김명인 월남에의 기억·1 송기원 사원에서 만난 월남 여인 김태수 슬픈 열대 김형수 베트남에서 돌아온 P시인에게 이재무 빛도 길을 잃는다 정영주 하미에서 이승철 Bao Ninh 집 김정환 미스 사이공 이동순 그 손의 이름을 물을 수 없었다 김수열 팜 티 호아 이종형 폭낭과 야유나무 배진성 도안응이아의 봄 김경훈 어떤 49재 김선향 내 심장이 몰랐을 리 없다 나희덕 2. 없는 몸을 어루만지다 뗏 한여진 만약 우리가, 우리가 아는 우리가 아니었다면 송경동 겨울골짜기 김현아 이제야 응우옌티탄에게 김해자 이런 시를 쓰게 하다니요? 김용택 당신의 하늘을 바라봅니다 김수우 응우옌티탄 허영선 달리는 런 아저씨께 이대흠 따이한 제사 허은실 3. 붉고 깊고 시린 블랙아웃 포에트리 응우옌티카인과 응우옌티떰 자매의 증언 랑 퐁니·퐁녓학살 유가족들의 탄원서 이승민 하미학살 위령비 비문 김지연 베트남 피해자·유가족들에게 보낸 국방부의 청원회신 이기석 퐁니·퐁녓학살 피해생존자 응우옌티탄의 증언 서진선 파운드 포에트리 장지로 향하기 신재욱 안전 환영 행복 만들기 고운 끝내 잊을 수 없는 이름들 하재홍 선뜻, 끝내, 전혀, 오히려 한국호 비주얼 포에트리 손 하나 잡았을 뿐인데 공동창작 맺는 글 연루됨의 윤리 고영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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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1965년부터 제2해병여단(청룡)을 필두로 베트남에 전투부대를 보내기 시작해 1973년 파리평화협정에 따라 철수할 때까지 총 32만여 명의 병력을 투입했다. 병사들 대부분은 베트남전쟁의 세계사적 의미는커녕 당장 내일 자신들이 전선에 투입되어 어떤 운명을 맞이할지 찬찬히 따져볼 겨를조차 없었다. 아직 가난한 농본국가이자 철두철미한 반공국가로서 조국이 등 떠미는 대로 사철 여름인 나라에 발을 들여놓았을 뿐이다.
참전 병사들 중에 시인이 있었고, 살아 돌아가 훗날 시인이 된 청년들도 있었다. 어떤 경우든 그들은 도무지 전장에 있어서는 안 되는 청년들이었다. 아니, 전쟁에 적합한 청년, 전쟁에 적합한 인간이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 시인이 되어서야 그들은 자신들의 청춘이 왜곡된 방식으로 방전되고 소모되고 훼손되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마땅히 빛났어야 할 호우시절이 어째서 이토록 참혹하게 일그러졌는지를. ---「김남일, 창화에서 창화로」중에서 총성이 울리면 쓰러지는 것은 사상이 아니다. 나의 심장을 향해 총을 겨누고 상처를 입힌 것은 얼굴이 누렇고 키가 작은 아시아인, 그러나 나는 아직도 알 수가 없다. 그들이 어떻게 해서 나에게 적이 되는지, 사상과 인간과의 함수관계는 무엇이 되는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다만 내가 겨누었던 총구의 구멍과 저편의 구멍뿐. 그러나 이러한 곳에도 역시 꽃이 피고 풀잎에 이슬이 맺히고, 상처 입지 않은 영혼처럼 눈부신 아침해가 떠오른다는 것뿐. ---「송기원, 월남에의 기억·1」중에서 우리 마을 사람들 윗동네 아랫동네 사람들 이백 명도 넘고 삼백 명도 넘는 사람들 그 날 그 겨울골짜기에서 총 맞아 죽었지 다 죽었지 경상남도 거창군 신원면 박산골 1951년 2월 10일 그 날 밤 나는 군인들이 막사를 차린 학교 마룻바닥에서 애를 낳았지 시퍼러둥둥 춥고 스산한 교실에서 신음 한 번 안 내고 이를 깨물며 혀를 깨물며 ---「김현아, 겨울골짜기」중에서 “살았으니, 말해야 해요” 녹슨 대지의 묘 위로 비로소 갈갈이 문드러진 잠들을 덮는 목소리 죽은 핏줄들의 눈동자가 허공을 맴도는 나의 질문입니다 어째서 그날, 당신들은 쏘았던가요 재판장님 저는 진실을 말했습니다 할 말을 다 했어요 여기, 이 진술은 살았으니 산 자가 할 일입니다 ---「허영선, 응우옌티탄」중에서 이름을 부르는 건 없는 몸을 어루만지는 일이야 미처 지어주지 못한 획까지 더운 입술로 살아남은 이들은 잔을 돌린다 주잔권잔 찌어 부온 슬픔의 담즙을 나누어 마신다 눈물을 채워라 오늘은 울다 가도 좋아 어깨가 서로 젖도록 붉은 벽 붉은 모래 씻기도록 ---「허은실, 따이한 제사」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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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죽음을 불러오는 시의 언어
베트남전쟁 아카이브 시집 『살았으니, 말해야 해요』 베트남전쟁을 증언하는 아카이브 시집 『살았으니, 말해야 해요』가 출간되었다. 한베평화재단 창립 10주년을 맞아 기획된 이 책은 60여 년 전 베트남에서 한국군이 자행한 민간인학살 사건을 기억하기 위해 피해자의 유품과 생존자의 진술을 비롯한 역사적 기록과 1960년대부터 현재까지 베트남전쟁을 다룬 한국 시들을 한데 모은다. 한국과 베트남의 인연은 본래 오래되고 평화로웠다. 조선과 안남의 사신들은 15세기 중반부터 중국 연경에서 빈번히 교류하며 시를 주고받는 창화(唱和)의 우애를 다졌다. 그러나 근대에 이르러 두 나라 사이에는 전쟁이라는 비극이 놓인다. 한국은 베트남전쟁에 1965년부터 1973년까지 총 32만 명의 병력을 파병했고, 이 과정에서 한국군은 하미 마을을 비롯한 베트남 중부 지역에서 9천여 명의 민간인을 학살했다. 『살았으니, 말해야 해요』는 전쟁의 참혹한 기억과 그 속에 뿌리내리는 인간의 양심을 ‘아카이브 시’라는 새로운 문학 형식으로 조명한다. 직접 참전했던 시인들의 작품부터 베트남전쟁의 역사적 기록을 토대로 한 후대 시인들의 신작시, 그리고 시민들이 함께 완성한 실험시로 이어지는 이 책은 “용서를 빌고, 원한을 풀고, 함께 살아가는 해원풀이와도 같다”(황석영 추천사). 한국에서 베트남으로, 과거에서 다시 현재로 이어지는 시편들을 통해 베트남전쟁이 누구의 것인지, 그 어수선한 역사를 어떻게 기억해야 할지 함께 고민해보자. 총구 앞 청년에서 학살 뒤편의 사람들까지 반세기에 걸친 전쟁의 시편들 제1부 「파도들이 저 멀리 수평선을 타고」는 베트남전쟁에 관해 기존에 발표된 작품들로 이루어져 있다. 신세훈, 김명인, 송기원, 김태수 등 참전 세대와 비극을 기억하고자 베트남에 찾아간 김형수, 이재무, 나희덕 등을 포함한 16명 시인들의 목소리가 또렷이 담겼다. 비둘기부대 소위로 전장에 투입된 신세훈은 차마 인간에게 총을 겨누지 못하고 “더 싸워야 하는 이유를 규명하라”(「총구 앞에 조준된 한마리의 새여」)며 울부짖는다. 마찬가지로 참전 시인이었던 송기원은 “사상과 인간과의 함수관계는 무엇”(「월남에의 기억·1」)인지 궁금해하며 무기 저편의 아침해를 그리워한다. 베트남 복판에서 싸움의 의미를 묻는 여러 문인들의 음성은 한국군의 만행을 반성하는 후대 시인의 기록으로 이어진다. 〈베트남을이해하려는젊은작가들의모임〉의 일원인 이승철은 한국군에 의해 주민 135명이 학살된 마을을 찾아가 추모 위령비를 어루만지며 “저러이 사랑스럽고 아름답던 그날의 하미”(「하미에서」)를 기억한다. 시인 이종형은 전쟁으로 두 발목과 가족을 잃은 팜 티 호아 할머니의 손을 맞잡으며 제주 4·3 사건 당시 “이미 섬에서 본 적이 있”(「팜 티 호아」)는 얼굴들을 겹쳐 떠올린다. 이처럼 시 안에서 살아 숨 쉬는 전쟁의 시간은 제2부 「없는 몸을 어루만지다」에서 더욱 구체적인 형상을 얻는다. 한여진, 송경동, 김현아, 김해자, 김용택, 김수우, 허영선, 이대흠, 허은실 등 9명의 시인은 한베평화재단이 수집해온 사진과 문서, 피해생존자의 증언과 같은 아카이브를 마주하고 새로이 시를 썼다. 피해자의 주검에서 나온 탄환, 학살로 황폐해진 마을의 풍경, 죽은 가족의 초상화, 이름 없이 세상을 떠난 아기의 사진…… 역사를 입증하는 기록 하나하나가 시의 언어를 통과하며 선명해진다. 여섯 살 나이에 한국군의 총격으로 목숨을 잃은 즈엉떤터이는 한여진의 「뗏」에서 “그리하여 너는 모든이었던 사람”으로 다시 기억된다. 붕따우 마을에서 36명의 이웃들이 살해될 때 시신 더미에서 아이를 낳았던 릉티퍼이는 김현아의 「겨울골짜기」에서 “목숨 있는 것으로 태어나지 않”게 해달라는 소원을 되뇐다. 『살았으니, 말해야 해요』는 베트남전쟁의 “끝내 지워지지 않은 이름들이 쌓아 올린 아카이브를 뼈대로 삼”(손희정 추천사)는 시집이다. 시인 허은실이 말하듯 “이름을 부르는 건 없는 몸을 어루만지는 일”(「따이한 제사」)이다. 전쟁의 기억이라는 뼈에 시는 두꺼운 살을 입힌다. 한 편의 시는 하나의 몸이 되고, 몸들은 서로 기대어 우리가 외면해오던 역사의 형상을 만들어낸다. 시인에서 시민으로 전쟁을 기억하는 공동의 목소리 『살았으니, 말해야 해요』는 베트남전쟁에 관한 시민들의 목소리를 담았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제3부 「붉고 깊고 시린」에는 베트남전쟁 기록물을 재료로 한 시민들의 블랙아웃 포에트리, 파운드 포에트리, 비주얼 포에트리 등 3종류의 실험시가 수록되어 있다. 응우옌티카인과 응우옌티떰 자매가 전시 성폭력을 증언했던 기사, 한국군의 학살을 폭로하는 위령비 문구, 대한민국 국방부가 베트남전쟁 민간인학살 피해자들에게 보낸 청원회신 문서 등에서 시민들은 단어를 고르고 지우며 전에 없던 문장들을 길어 올린다. 연대를 꿈꾸던 베트남 소설가 ‘반레’의 작품 『그대 아직 살아있다면』은 해체되고 재구성되어 또 하나의 시가 되고, ‘당신이 바라는 평화는 무엇인가요?’라는 질문에 대한 시민들의 대답이 모여 평화를 상징하는 하나의 그림이 된다. 이 책이 되살리는 것은 60여 년 전 베트남의 비극만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어떤 역사를 선택하고 어떤 역사를 지워왔는가에 대한 질문이며, 타인의 고통을 알아차린 뒤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존재적 고민이기도 하다. 김애란 전 대법관이 말하듯 『살았으니, 말해야 해요』의 시들은 “지워진 역사와 기억의 경계를 함께 지”킨다. 한때 총을 들고 마주했던 한국과 베트남이 창화의 연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그 시작엔 과거를 밝히는 언어가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은 거듭 말한다. “기억하라, 기억하라, 꼭 기억하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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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전쟁은 한국전쟁입니다.” 오래전 어느 미국인이 내게 해준 말이다. 젊은 날 내가 베트남에 파병되어 품게 된 깊은 회한은 나의 초기 단편들과 장편소설 『무기의 그늘』에 드러나 있다. 그것은 남의 목소리를 빌려 자기 울음을 우는 것과 같았다. 『살았으니, 말해야 해요』의 시 한 편 한 편은 진실을 밝히고, 용서를 빌고, 원한을 풀고, 함께 살아가는 해원풀이와도 같다. 이 시집은 말한다. 기억하라, 기억하라, 꼭 기억하라! - 황석영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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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았으니, 말해야 해요』는 베트남전쟁 아카이브의 또 다른 형식이다. 사진과 문서, 탄환과 증언, 그리고 끝내 지워지지 않은 이름들이 쌓아 올린 아카이브를 뼈대로 삼아, 역사를 잊지 않으려는 입술들이 사라진 몸에 기어코 다시 살을 입혔다. 한 편의 시는 하나의 몸이 되고, 그 수많은 몸들이 서로 기대고 얽혀 ‘진실’이라는 더 큰 실체를 이룬다. 당신도 독서의 경험을 통해 그 몸의 일부가 되어보시기를 바란다. - 손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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