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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1장 공간을 읽는 사람 커피는 어떻게 마시는 거야|삼십 분의 침묵|어느 미술관 카페|아이스 카페|커피와 학문|어느 대학가 카페|플랫 화이트|공간의 위상학|벽돌의 시간|어느 박물관 카페|0.3평 카페|바다가 보고 싶을 때|어느 도서관 카페|프라이탁엔 맥주를|흩어진 얼굴들|어느 수영장 카페 2장 공간을 기억하는 사람 전혜린과 제로제|특성 없는 카페|커피와 집|어느 광장 카페|나만의 카페 의식|관계의 미학|어느 영화관 옆 카페|사랑방|커피로 시작하는 봄 산책|여름의 이자르강|크리스마스 마켓|어느 요가원 옆 카페|처음 마신 커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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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를 거닐다 보면 여전히 나의 마음을 사로잡는 카페를 만난다. 때로는 편안해서, 때로는 투박해서, 때로는 분위기가 마음에 들어서, 때로는 오직 그 공간이 허락하는 시간이 있기에 오늘도 나는 카페에 간다. 어쩌면 카페를 고를 때 내게 가장 중요한 것은 커피보다 카페가 드러내는 표정, 그러니까 공간일지도 모른다.
---p.7 동시대 건축의 아름다움은 기능과 형태, 구조와 재료, 시대와 장소처럼 양립 불가능할 것 같은 여러 특성이 아주 첨예하게 조우하며 생기는 긴장감에서 나오는 것이 아닐까. 마치 아주 세심하게 맞추어진 물의 온도, 원두의 분쇄 정도, 추출 시간이 맞아떨어질 때, 원두의 복잡다단한 맛과 향을 가장 풍부하게 표현해주는 핸드 드립 커피처럼 말이다. 이 모든 것을 완벽하게 조율하는 바리스타는 뛰어난 건축가와 닮았다. ---p.27 카페는 하나의 장소지만 결코 같은 공간은 아니다. 카페는 시시때때로 그 공간을 점유하는 사람들이 맺는 관계에 따라 변화한다. 어느 카페를 가장 잘 규정하는 것은 벽과 타일의 색깔, 혹은 의자와 책상의 모양이 아니다. 오히려 그곳에서 맺어지고 흩어지며 순간순간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나가는 사람들이다. 카페는 더 이상 유형학적 공간이 아니다. 위상학적 공간이다. ---pp.35-36 온종일 건물을 구경했다. 이제는 습관처럼 카페에 들를 차례이다. 과거로부터 건너온 물건을 담는 공간들 사이에서 유일하게 지속하는 삶을 담는 곳. 카페에서는 건축가의 사소한 취향을 엿볼 수 있다. 신중하게 골랐을 테이블, 의자, 조명 등을 꼼꼼히 구경한다. ---p.42 당시 전혜린은 상상이라도 할 수 있었을까. 토마스 만을 비롯하여 슈바빙의 예술가들이 문학과 예술을 논하던 제로제가 평범한 이탈리안 레스토랑이 될 줄 말이다. 그리고 반세기 후, 고국에서 온 어느 여성 건축가가 당신을 추억하기 위해 이 자리에 올 것을 말이다. ---p.71 나를 매료시킨 것은 바로 이 평범함이었다. 아침 출근길에는 브뢰첸과 카푸치노를 테이크아웃했고, 주말에는 오렌지 주스와 커피를 앞에 두고 브런치를 먹었다. 그럴 때면 더 이상 이방인이 아니라 이 도시의 평범한 하루를 살아가 는 사람 중 하나가 된 기분이었다. 낯선 도시를 가장 익숙하게 만든 것은 특별한 경험이 아니라 반복되는 일상이었다. ---p.9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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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을 읽는 사람, 공간을 기억하는 사람
어떤 카페는 커피보다 공간을 먼저 기억하게 만든다. 저자에게 카페를 고르는 기준은 커피 맛 그 자체보다 그를 통해 공간이 드러내는 표정이 있는 곳이다. 테이블과 의자만으로 규정되지 않는 공간, 그 안에 머무는 사람들의 대화와 그 사이로 흘러가는 시간이 더해져야 비로소 완성된다는 공간. 서로를 알지 못한 채 잠시 관계를 맺는 익명의 사람들이 하나의 풍경이 되는 순간을 건축가는 놓치지 않는다. 1장 ‘공간을 읽는 사람’은 태어나 한 번도 커피를 마셔본 적이 없다는 친구에게 “이거 한 번에 다 마시는 거야, 나눠서 마시는 거야?”라는 서툰 질문을 받는 일화로 문을 연다. 이후 저자는 출근하자마자 첫 커피를 내리는 탕비실, 점심시간의 혼자만의 아지트가 되어주는 회사 앞 카페, 적당한 타인의 온기가 필요할 때 찾는 미술관 카페를 오가며 하루의 리듬 속에 자신이 얼마나 정교하게, 또 얼마나 습관적으로 카페라는 공간을 소비하는지 가감 없이 드러낸다. 2장 ‘공간을 기억하는 사람’에서는 반세기도 더 전 슈바빙을 사랑했던 전혜린의 흔적을 쫓는 순례, 폭설이 내린 날 동네 빵집을 ‘사랑방’이라 부르며 드나들던 평범한 일상, 이자르강의 여름 피크닉, 옛 친구와 마지막인 줄 몰랐던 크리스마스 마켓의 글뤼바인 한 잔처럼 계절을 따라가는 기억들이 이어진다. 그리고 뮌헨에 처음 도착했던 9월의 어느 날, 이유 없이 슬펐던 감정을 떠올리며 “이렇게까지 오래 살 생각은 없었는데!” 하고 웃어버리는 마지막 장면에 이르면 이 책이 단순한 안내서가 아니라 커피와 함께 낯선 도시에 스며든 한 사람의 정착기라는 사실이 선명해진다. 건축가의 시선은 카페를 유형이 아닌 위상으로 읽는다. ‘카페는 잠시 머무를 수는 있지만 체류할 수도 소유할 수도 없는 공간’이라는 문장을 빌려와 저자는 카페가 그 공간을 점유하는 사람들의 관계에 따라 매 순간 다른 얼굴이 되는 위상학적 공간이라고 결론짓는다. 이 책을 덮고 나면 남는 것은 뮌헨의 카페를 통해, 그 공간을 통해 도시와 자신의 자리를 가늠해온 한 사람의 태도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