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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케스티스: 복음의 문법이 된 여인
이상환
도서출판 학영 2026.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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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일러두기 7
프롤로그 11
1장 고귀한 여인 23
2장 에우리피데스의 『알케스티스』 39
3장 고전이 된 여인 87
4장 학자들의 알케스티스 117
5장 방법론적 성찰 163
6장 요한계시록의 대속적 죽음 183
7장 고뇌를 동반한 대체적 죽음 217
8장 복음의 문법이 된 알케스티스 233
에필로그 253
부록1: 본문 옆에 펼친 지도—페르스넬과 슈나벨 259
부록2: 『알케스티스』 대체적 죽음 어휘 색인 281

저자 소개 1

달라스 신학교에서 신약학을 공부했다(STM; Highest Honor). 담임 목회자로 미국에 있는 이민 교회들을 섬겼고, 현재는 실리콘밸리 IT 스타트업에서 Business Intelligence 디렉터로, Midwestern Baptist Theological Seminary에서 신약학 및 해석학 조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New Testament Studies, Journal of Theological Studies, Biblica, Novum Testamentum, Journal for the Study of the New Testament, Journal for the S
달라스 신학교에서 신약학을 공부했다(STM; Highest Honor). 담임 목회자로 미국에 있는 이민 교회들을 섬겼고, 현재는 실리콘밸리 IT 스타트업에서 Business Intelligence 디렉터로, Midwestern Baptist Theological Seminary에서 신약학 및 해석학 조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New Testament Studies, Journal of Theological Studies, Biblica, Novum Testamentum, Journal for the Study of the New Testament, Journal for the Study of the Old Testament, Religions, Journal of Ancient Judaism, Journal of Greco-Roman Christianity and Judaism 등 다수의 학술지에 논문을 출간했다. 사랑하는 아내와 세 자녀들과 함께 달라스에 거주하며 일과 연구에 힘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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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6년 08월 31일
쪽수, 무게, 크기
304쪽 | 140*206*30mm
ISBN13
9791193931325

책 속으로

세상은 대개 우리의 말보다 우리의 삶을 먼저 읽는다. 누군가의 선언이나 웅변보다, 그 말이 끝내 어떤 선택으로 이어지는지가 그 사람의 본심을 드러낸다. 아무리 아름다운 언어라 할지라도, 그것을 떠받칠 삶이 없으면 오래 남지 못한다. 그러나 말이 많지 않더라도, 한 사람이 끝내 행동으로 답할 때, 그 삶은 하나의 문장이 되어 타인의 기억 속에 새겨진다. 이 책은 바로 그런 문장이 된 한 여인의 이야기를 전한다. 고대 그리스-로마 세계에서 오랫동안 기억되고 거듭해서 해석된 이름, 바로 알케스티스다. 전승에 따르면, 그녀는 죽음의 자리에 놓인 남편 아드메토스를 대신하여 그 자리를 받아들인다. 그를 사랑한다고 말하던 수많은 사람들이 물러선 죽음의 자리에서, 끝내 그의 곁에 남은 알케스티스. 그녀는 사랑한다는 말을 되풀이하는 대신, 스스로 그 죽음의 자리에 대신 들어감으로써 자신의 사랑을 증명했다. 그래서 그녀는 ‘사랑이 말에 머무르지 않고 자기 생명을 내어주는 결단으로까지 나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전형’이 되었다. 이 감동적인 전승은 익숙한 또 하나의 이야기를 떠올리게 한다. 십자가 위에서 “우리를 대신해” 죽으신 분, 곧 예수 그리스도의 이야기다. 타인을 살리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내어준다는 모티프는 두 전통 사이에 울리는 공명이다. 특히 알케스티스 전통이 복음이 처음 전해지던 시대 이전부터 널리 알려져 있었다는 점은, 적어도 “누군가가 타인을 대신해 죽는다”라는 말이 왜 그렇게 초기 그리스도인들에게 강한 울림을 지닐 수 있었는지를 생각하도록 이끈다.
--- p.11~12

알케스티스의 서사적 생명력은 고대에 그치지 않았다. 르네상스 이후 유럽에서 오페라라는 새로운 장르가 탄생했을 때, 알케스티스는 가장 먼저 무대에 오른 신화 가운데 하나였다. 1674년 장바티스트 륄리(Jean-Baptiste Lully)가 이 이야기를 오페라로 작곡한 이래, 1750년에는 G. F. 헨델(Handel)이 같은 주제로 부수음악을 작곡했고, 1767년에는 C. W. 글루크(Gluck)가 『알체스테』(Alceste)를 무대에 올렸다. 글루크의 작품은 특히 중요한데, 그는 이 오페라의 서문에서 음악이 드라마에 종속되어야 한다는 이른바 “오페라 개혁”의 원칙을 선언했기 때문이다. 알케스티스의 자기희생이라는 서사가 오페라라는 형식의 혁신을 촉발하는 매개가 된 셈이다. 근현대에 이르러서도 이 이야기는 계속 변주되었다. T. S. 엘리엇(Eliot)은 1949년 『칵테일 파티(The Cocktail Party)』에서 알케스티스 신화의 구조를 현대 런던의 사교 모임 속에 녹여 넣었고, 이 작품은 이듬해 토니상 최우수 작품상을 수상했다. 한 여인의 자기희생이라는 모티프가 고대 비극에서 바로크 오페라로, 다시 20세기 극작으로 이어지며 그 형식을 끊임없이 바꾸어 온 것이다. 춘향이 판소리에서 스크린으로, 심청이 판소리에서 오페라와 애니메이션으로 그 생명력을 이어 갔듯이, 알케스티스 역시 아테네의 축제 무대에서 로마의 석관 부조로, 바로크 오페라에서 현대 극장으로 끊임없이 귀환해 왔다.
--- p.33

2003년에 출간된 N. T. 라이트의 『하나님의 아들의 부활』(The Resurrection of the Son of God)은 신약학 역사에서 가장 방대한 부활 연구 가운데 하나로 평가된다. 이 책은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어떻게 이해했는지를 추적하는 한편, 그러한 부활 신앙이 역사적으로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대규모로 논증한다. 라이트는 예수님의 부활이 얼마나 충격적이고도 독특한 사건이었는지를 드러내기 위해, 먼저 고대 세계 사람들이 죽음 이후의 삶을 어떻게 이해했는지를 폭넓게 검토한다. 그의 결론에 따르면, 그리스-로마 세계에서 죽은 자의 육체적 부활은 누구도 기대하지 않았다. 만일 이교 세계 안에 이미 부활 전통이 존재했다면,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부활 선포는 기존 문화의 연장선에서 설명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전통이 없었다 면, 부활 신앙은 기존의 문화적 자원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전혀 새로운 현상이 된다. 그렇게 되면 무엇이 이처럼 새로운 신앙을 촉발했는지에 대한 질문이 한층 더 절실해진다. 바로 이 지점에서 자연스럽게 하나의 질문이 제기된다. 알케스티스 전통은 이교 세계의 부활 전통으로 간주될 수 없는가? 라이트는 알케스티스가 실제로 죽은 뒤 다시 육체적 삶으로 돌아오는 이교 전통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분명히 인지하고 있다. 그는 그녀의 귀환 자체가 매우 주목할 만하며, 고대 세계 전체를 통틀어 이런 유형의 이야기를 지닌 거의 유일한 사례라고까지 인정한다. 더 나아가 그는 알케스티스 전통이 여러 판본으로 널리 전승되었다는 점도 확인한다. 특히 주목할 만한 대목은, 로마의 비아 라티나 카타콤에서 헤라클레스가 두건을 쓴 알케스티스를 무덤에서 이끌어내는 장면이 성경의 장면들과 나란히 배치되어 있다는 점에 대한 라이트의 반응이다. 그는 여기서 매우 흥미로운 질문을 던진다. 이 헤라클레스 장면이 훗날 예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지하 세계에서 이끌어내는 정형화된 도상 전통의 모델이 되었을 가능성은 없는가?3 그런데 놀랍게도 라이트는 이 질문을 더 이상 추적하지 않은 채, 알케스티스 전통이 신약의 부활 전통과는 무관하다고 주장한다. 그가 제시하는 주요 논거는 다음과 같다.
--- p.118-~119

무소니우스 루푸스가 알케스티스를 결혼의 이상으로 칭송하고, 플라톤이 그녀의 희생을 에로스의 힘으로 설명하며, 세네카가 그것을 우정의 극치로 말할 때, 그 모든 논의는 어디까지나 사랑의 관계 안에서 이루어지는 죽음을 전제한다. 사랑이 없는 장소, 관계가 이미 깨어진 자리에서 누군가를 위해 죽는다는 생각은 고전 윤리의 문법 안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 바울은 바로 그 상상할 수 없는 일을 선언한다. “우리가 하나님의 원수일 때에도 하나님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해하게 되었다면, 화해한 우리가 하나님의 생명으로 구원을 얻으리라는 것은 더욱더 확실한 일입니다”(롬 5:10). 개더콜은 이 부분을 강조한다. 고전 문학에서는 관계가 먼저 있고, 그다음에 죽음이 따른다. 그러나 바울에게서는 그 순서가 정반 대이다. 죽음이 먼저 있고, 그 죽음이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 낸다. 적대가 있던 자리에서 화해를 낳는 죽음, 원수였던 자들을 친구와 자녀로 바꾸어 놓는 죽음, 그것이 바로 바울이 말하는 그리스도의 죽음이다.
--- p.136~137

바로 이런 이유로, 알케스티스와 겟세마네의 비교는 예수님의 고난을 하나의 신학적 명제로만 다루지 않고, 죽음을 앞둔 인간적 경험의 심연 속에서 바라보도록 우리를 이끈다. 알케스티스가 극심한 공포 가운데서도 자신의 결정을 거두지 않았듯이, 예수님 역시 고통의 한복판에서 “아버지의 뜻대로”를 선택하심으로써 그 사명을 끝까지 완수하신다. 여기서 결정적인 점은, 자발성이 고통을 제거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오히려 자발성은 고통을 더욱 선명하게 드러낸다. 스스로 받아들이는 죽음은 자신이 감당해야 할 것을 더 깊이 자각한 채 맞이하는 죽음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대체적 죽음의 참된 무게는 결심의 찰나에만 있지 않다. 그 무게는 결심 이후 길게 이어지는 고뇌의 과정 속에서, 그리고 그 고통을 끝내 철회하지 않는 순종 속에서 가장 선명하게 드러난다. 대속의 사랑은 죽음이라는 결과를 넘어, 그 죽음에 이르기까지 흔들리고 괴로워하면서도 끝내 물러서지 않는 과정 전체 속에 새겨져 있다. 그렇기에 겟세마네를 오래 바라보는 일은 십자가의 의미를 약화하지 않는다. 오히려 십자가가 어떤 사랑의 무게로 감당되었는지를 더 깊이 보게 한다.
--- p.228~229

알케스티스가 남편을 위해 무덤으로 내려갔듯,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골고다로 오르셨듯, 이제 우리의 차례가 왔다. 우리의 자리에서, 우리가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우리의 언어로 써 내려가야 할 “한 문장”이 있다. 그 문장이 반드시 무덤으로 내려가는 거대한 결단일 필요 는 없다. 당장 쏟아 내고 싶은 말을 삼키고, 들어야 할 말을 끝까지 듣는 일, 누군가의 이름을 오래 기억해 주는 일, 아침마다 한 번 더 용서하는 일, 바로 그런 작은 자리에서도 한 문장은 태어난다. 어쩌면 복음의 문법은 큰 무대 위에서보다 우리의 가장 조용한 하루 속에서, 누군가를 위해 자기 자신을 조금씩 내어주는 그 반복 속에서 먼저 숨쉬기 시작하는지도 모른다. 부디 이 책을 덮는 당신 의 다음 한 페이지가 그 문장이 되기를 바란다.

--- p.255~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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