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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
미링 헤이, 경자 씨 손가락 갑천 허니문 이주(移住) 묘덕의 마음 스마일 마켓 해설 정착 없는 세계에서 서로의 틈새를 메우는 법_김세연 작가의 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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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계 독립운동 역사를 다룬 장편소설 『푸른 별의 노래』를 발표하면서 꾸준히 보듬고 살피는 불교적 삶을 형상화한 글을 발표해 온 작가의 네 번째 작품집이다. 서로를 보살핀다는 것은 사랑의 마음에서 비롯하고 보살핌은 보살행과 다를 바 없다. 세계 곳곳에서 정착을 꿈꾸는 디아스포라의 삶의 이야기가 나지막이 들린다.
방글라데시 이주 노동자 아마르와 그의 여자 친구 쑥(「실리콘」)이 있다. 쑥의 가족들은 결혼을 반대하지만, 두 사람의 사랑은 변함없이 진행 중이다. 그들에게 또 다른 벽은 같은 집이면서 하나의 벽으로 나뉜 한국인 가정이다. 각자의 음식 냄새로 불편을 겪던 중 아마르는 실리콘으로 모든 틈새를 막기에 이른다. 경자 씨(「헤이 경자 씨」)는 파독 간호사 출신으로 독일인 남편이 죽자 고국으로 영구 귀국을 선택한다. 공항에서 맞닥뜨린 건 마중 나오기로 한 오빠와 조카의 연락 두절이다. 그녀의 노년을 뒤흔드는 혈연의 배반은 목숨을 버릴 지경까지 이르게 하지만, 산책길에 찾은 암자에서 노년의 비구니를 만나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그 외 6편의 주인공들 또한 디아스포라의 삶을 살아야 하는 이의 시고 떫고 씁쓸하지만, 뒷맛이 남는 모습을 보여준다. 선택의 자유라고는 없는, 그 길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삶을 살아야 하는 사람들에게 희망은 그저 위로를 가장한 허방다리에 불과할 뿐인가. 잃어버린 고향의 기억을 품고 떠난 자, 디아스포라에서 아직 도착하지 않은 세계를 향해 움직이는 노마드적 존재가 될 수 있을까? 아메리칸드림을 꿈꾸며 도착한 땅에서 모든 것을 잃고 다시 일어선 「스마일 마켓」의 태오와 분단된 나라의 최북단에 살면서 언젠가 자신이 운전하는 자동차를 타고 고향의 어른들을 만나기를 꿈꾸는「손가락」의 지상. 늦은 밤 모니터 앞 청년 학예사가 그린 홀로그램 속에서 육백 년 전 세상을 떠난 묘덕의 자비심이 거푸집 속 쇳물처럼 타오르는「묘덕의 마음」. 작가는 서로 다른 쓰임과 상처를 지닌 존재들이 어우러질 때 완전히 새로운 세계가 창조된다고 믿는다. 새 영토에서 뿌리내리려는 이들을 바라보는 외부의 시선은 차갑거나 조심스럽거나 경멸에 차 있다. 하지만 인간이라는 존재는 누구나 어느 구석 허술한 부분이 남아 있어서 한순간 야멸찼던 눈빛이 따스하고 몽롱한 아지랑이처럼 녹아내리기도 한다. 겹겹이 쌓이는 시간, 지속되는 관계가 있는 한 우리에게는 높고 거대한 장벽을 무너뜨릴 힘이 남아 있다고 믿는 마음, 이것이 모든 흔들리는 존재들을 향한 작가의 힘찬 응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