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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_ 4
|1부|처음이라는 계절 시작의 맛, 카레 _ 14 바삭했던 순간, 돈까스 _ 23 봄을 캐던 날들, 쑥국 _ 33 미역국의 시간 _ 41 첫 번째 햄버거 _ 48 눈물의 맛, 육개장 _ 57 |2부|버티는 동안 먹었던 것들 특별한 아이스크림을 먹는 날 _ 68 콜라 중독자의 고백 _ 79 작은 기쁨, 떡볶이 _ 86 녹색 병에 담긴 청춘, 소주 _ 95 거품처럼 사라지는 순간들, 맥주 _ 103 특별하진 않지만 충분한 한 잔, 믹스커피 _ 111 |3부|말 대신 놓인 음식 남자들은 왜 고기에 진심일까? _ 122 갈치를 발라주는 시간 _ 132 된장찌개 한 뚝배기 하실래예? _ 141 워킹맘의 구세주, 주먹밥 _ 152 아귀찜, 서툰 사랑의 이름 _ 160 맛의 끝자락, 콩잎 _ 168 |4부|맛으로 남은 시간 에이스, 수치심의 맛 _ 178 시간의 맛, 쁠라 랏 프릭 _ 185 고등어 케밥, 고화질의 맛 _ 195 시간을 삶아낸 한 그릇, 수제비 _ 206 변해온 것, 변하지 않은 것-잡채 _ 216 에필로그 _ 226 참고 문헌 _ 2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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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카레는 시작의 맛이다. 초년생의 설렘과 두려움이 뒤섞인 맛.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게 없는 것 같던 어리숙한 신규 교사의 눈물 맛. 텅 빈 집에 돌아온 나를 뜨끈하게 데워준 위로의 맛. 천천히 배워가면 된다고 달래주던 맛.
---「시작의 맛, 카레」 중에서 붉은 국물에는 고추기름이 떠 있었다. 한 숟가락 떠서 입에 넣으니 기름진 맛이 혀에 감겼다. 할머니의 육개장은 이렇지 않았다. 할머니께서는 고추기름을 많이 넣지 않는 대신, 고사리와 숙주, 납작하게 썬 무를 듬뿍 넣어서 맛이 좀 더 깔끔했다. 국거리용 소고기가 간간이 씹히지만 담백하면서도 칼칼한 맛. 기름진 육개장의 맛 때문인지 할머니가 더 보고 싶어졌다. 몸에 퍼지는 온기를 느끼며 수저를 내려놓고 멍하니 한참을 앉아 있었다. ---「눈물의 맛, 육개장」 중에서 인스턴트커피는 향이 진하지도 않고, 맛이 복잡하지도 않다. 산미나 바디감 같은 전문 용어는 여기서 통하지 않는다. 바리스타의 정성도, 원두의 깊이도 없다. 적당히 달큰하고 부드러우면서 간편하다. 그런데 그게 위안이 된다. 완벽하지 않지만 충분한 것들로 버텨나가는 것, 특별하지 않지만 익숙한 것들에 기대는 것. 한 모금 마시고 나면, 왠지 오늘 하루도 해볼 만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특별하진 않지만 충분한 한 잔, 믹스커피」 중에서 먼 옛날 여행객들도, 전쟁터로 떠났던 아들들도, 조선시대 농부들도, 지금의 워킹맘들도. 우리 모두 저마다의 전쟁터에서 살아가고 있다. 오늘도 나는 살아남았다. 주먹밥 덕분에. ---「워킹맘의 구세주, 주먹밥」 중에서 내가 지나온 날들이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니었음을, 이제는 안다. 그 뭉클한 수고로움 속에서 나는 귀하고 손이 많이 가는 사랑을 먹으며 자라났다. 그것이 단순한 반찬이 아니라 사랑이었음을, 너무 늦게 알아버렸다. ---「맛의 끝자락, 콩잎」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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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의 부엌에서 시작해 전쟁사와 정책 문서까지 알아보다
『기억의 맛』이 눈에 띄는 이유는 음식 에세이와 관련 역사를 나란히 놓았기 때문이다. 각 장은 저자의 지극히 사적인 장면에서 출발한다. 자취방의 카레 한 솥, 빈소에서 받아 든 육개장 한 그릇, 새벽에 뭉치던 주먹밥. 그리고 글의 뒤편에는 그 음식이 걸어온 내력을 정리한 코너가 붙는다. 카레는 왜 일본의 국민 음식이 되었는지, 육개장은 언제부터 장례식장의 기본 메뉴가 되었는지, 믹스커피의 원형은 어느 전쟁의 참호에서 왔는지. 감정에서 시작해 자료로 착지하는 이 구조가 매 편 반복된다, 자연스레 독자는 자기 사연이 담긴 음식에 공감도 하고, 역사에 대해서도 알게 된다. 백여 건이 넘는 참고 문헌 목록이 책 말미에 붙어 있다는 점도 짚어둘 만하다. 개인의 기억을 다루는 에세이이면서도, 역사 부분에서만큼은 근거를 잘 기록하고 있다. "많이 묵어라" 한마디에 담겨 있던 말들 이 책의 중심에는 부산의 할머니가 있다. 손주가 밥을 다 먹을 때까지 수저를 들지 않던 사람, 만류하는 손을 뿌리치고 기어이 갈치 살을 발라 입에 넣어주던 사람, 콩잎을 삭히느라 하루가 지나면 양념장을 따라내 다시 끓이기를 반복하던 사람. 사랑이 담긴 할머니의 손길을 기억하며 저자는 문득 생각한다, 그 시간을 조금은 당신 자신을 돌보는 데 쓰셨으면 어땠을까. 할머니의 소원대로 ‘맘껏 훨훨 다니며 세상 구경을 하셨으면 좋았을 텐데’라고. 그리고 정성이 담긴 밥을 먹고 자랐지만 정작 내 아이에게는 배달 음식으로 끼니를 때우는 날이 많다는 고백도 숨기지 않는다. 그래서 이 책의 그리움과 죄책감이 섞여 있고, 바로 그 점이 정직한 고백이 된다. 부끄러운 기억까지 식탁과 함께 말하는 용기 무엇보다 이 책은 아름다운 장면만 고르지 않는다. 누군가 밟아 버린 과자를 주워 먹다 들켜 도망쳤던 아이의 수치심,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 무력하게 흘려보내던 나날, 임용 시험에 떨어지고 친구들과의 연락을 끊었던 시절도 그대로 실려 있다. 저자는 그 기억들을 지웠다가 다시 쓰기를 반복했다고 적었다. 그렇게 남은 문장들이기에, 이 책의 위로는 독자에게 와닿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