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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투 수련
내게 없는 것으로 삶과 맞서는 법
이예지
세미콜론 2026.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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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들어가며

질투한다
내게 남은 시간은 얼마지?
: 영화감독 그레타 거윅의 인생 셈법

삶에도 장르가 있다면
: 웃지 않고 웃기는 법, 스탠드업 코미디언 원소윤의 경우

신발 바꿔 신기
: 소설가 김애란이 보여주는 한 걸음 옆의 세상

웃음과 비명 사이
: 만화가 오카자키 교코가 그려낸 백골 앞에서

지금 어떤 표정을 짓고 있습니까?
: 배우 염혜란이 드리운 희비극의 명암

아버지, 우리 괴물들의 아버지
: 인간다움이란 무엇인가? 영화감독 기예르모 델 토로가 낳은 괴물들을 경유하여

어디에도 없고 어디에도 있는
: 디아스포라의 시대, 작가 차학경의 윤리

노 코멘트
: 영화감독 데이비드 린치에게, 오직 예술만이 데려갈 수 있는 장막 너머에 부쳐

곁에 있어줘
: 내 친구, 네 언니, 만인의 연인, 배우 김고은이 웃을 때

고수는 차를 내기 전 잔을 데운다
: 작가 이슬아의 매섭고도 따듯한 손끝에 대하여

가장 깊은 심지부터 밝아오는
: 살아 있다는 생의 감각, 작가 조승리

인간을 사랑하지 않는 당신에게
: 영화감독 요르고스 란티모스의 냉소가 드러내는 진실

가자에 힌드라는 소녀가 있어
: 영화감독 카우타르 벤 하니야가 지금 일어나는 비극에 연루되기를 청하다

나도 아내가 있으면 좋겠다
: 한 발 앞으로 나선 김규진·김세연 부부가 나중으로 미루지 않은 것

중립 지키지 않는 여자들
: “정치 얘기할 수 있는 위치는 어떤 위치인데?” 가수 이채연이 던진 질문

어른은 생색내지 않는다
: 독지가 김장하의 베풂을 뱁새만큼 따라잡기

포옹하자, 그리고 뺨에 키스하자
: 혐오보다는 분노, 분노보다는 연대, 활동가 홍세화의 똘레랑스

사랑의 인파이터
: 소설가 이희주가 사랑에 우열이 있는지 묻다

지켜내지 못한 어린 여자들에 대하여
: 누가 배우 김새론에게 돌을 던졌나

영혼의 집터에 벽돌 하나 쌓을 수 있다면
: 작가 장-미셸 오토니엘의 연금술

스스로 작품이 되어버린 남자
: AI가 모사할 수 없는 애니메이션 감독 미야자키 하야오의 아이러니

거미 여자가 지은 집
: 엄마, 딸, 여성, 작가 루이즈 부르주아

말한다, 죽지 않기 위해
: 들숨과 날숨처럼 노래하는 시인 이제니

선택되지 않고 선택하기
: 아름다운 피조물에도 영혼은 있다, 배우이자 영화감독 크리스틴 스튜어트

마침내, 최선의 나
: 45년 차 여성 배우가 ‘데미 무어’라는 아이콘을 전복하고 움켜쥔 것

다음 생에는 피아니스트
: 피아니스트 임윤찬이 오직 피아노와 독대하는 순간

단순한 것은 아름답다
: 작가 이배가 그은 한 획을 바라보며

내면에 이는 고통의 힘으로
: 배우 심은경의 맑은 얼굴

내 오른손이 내 왼손을 잡을 때
: 작가 전성진, 내버려둔 자신과 화해할 용기

기꺼이, 취약할 의향으로
: 약한 것은 강하다는 것을 일러준 작가 이불

|부록| 질투하지 않는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깔롱 실격
개팔자가 상팔자라고 누가 그랬나
나 아이 없음에 감사하오
그 유토피아에 제 자리도 있나요?

나가며

저자 소개 1

세상 만물을 질투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타고나기를 질투심 많은 자, 곁눈질의 권위자, 머릿속에서 바꿔 신어본 남의 신발만 수천 켤레에 달하는 시뮬레이션의 대가. 《코스모폴리탄》 《GQ》 《씨네21》 등에서 기자 및 에디터로 일하며 온갖 반짝이는 것들을 접하고 가지각색 멋진 사람들을 만났다. 인터뷰집 『여자가 사랑한 여자들』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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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6년 09월 09일
쪽수, 무게, 크기
280쪽 | 130*200*20mm
ISBN13
9791124336595

책 속으로

질투는 나쁜 것인가? 아니, 질투하는 당신에게 잘못은 없다. 질투를 권유하는 사회에서 우리는 단지 분별력 있게 질투하면 된다. 이 끔찍하리만큼 매혹적인 질투의 시장에서 가장 필요한 질투만을 골라, 내면의 순수한 불을 붙이고 타들어가는 심지만큼 걸어나갈 수만 있다면. 그것을 연료이자 태엽으로 삼을 수 있다면. 우리는 우리가 갈 수 있는 가장 먼 곳까지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이 땅의 질투하는 모든 이들에게 지극한 사랑과 격려를 보낸다.
우리, 재가 되지 말고 불이 되자.
---p.11 「들어가며」 중에서

삶의 장르를 내 선호대로 정할 수 있다면 되도록 코미디이고 싶다. 공포, 스릴러, 느와르는 물론이고 멜로 또한 사양한다. 길 가다 자빠져도 아이쿠, 하며 유쾌한 효과음과 함께 스스로의 머리를 콩 때리며 일어나 걷고 싶다. 모두가 초대받은 파티에 나만 초대받지 못하더라도 “역시 내가 귀여운 탓인가?”라고 초연히 말하고 싶다. (중략) 꽤 비관적인 인간으로서 꽤 낙천적인 인간을 따라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첫걸음조차 알 도리가 없다. 오래전부터 내 삶의 장르는 사건 없는 지리멸렬한 비극이었다. 타워크레인에서 일하는 아버지를 ‘로무알도’라고 부르는 천연덕스러움도, 불행을 농담으로 만들되 품위를 지키는 기술도 내겐 없다. 그러므로 원소윤의 코미디를 보고 원소윤의 소설을 읽는다. 그의 말과 글을 익히면 내 삶도 조금은 웃겨질까 봐. 큭큭큭 웃고 나면 한바탕 운 것보다 개운해질까 봐. 나는 정말이지 그의 낙천성을, 농담의 능력을 질투하고 있다.
---pp.28~30 「삶에도 장르가 있다면: 웃지 않고 웃기는 법, 스탠드업 코미디언 원소윤의 경우」 중에서

다시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자리에 서보는 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라는 질문으로 돌아온다. 서로의 불행과 다행을 견주고 자신과 타인이 위치한 좌표를 계산하며, 연민과 질투, 멸시와 우월감을 주고받으며 나의 처지를 환산하는 사람들. 스스로의 옹졸함에 치를 떨면서도 어쩔 수 없이 행하고 마는 계산과 경쟁들. 그 속에서 서로의 입장이 되어보는 것은 가능한가?
김애란은 답을 알고 있다. 그것은 끝없이 지연되다가 종국엔 실패한다. 그러나 현실 세계 사람들 간에는 불가능한 자리 바꾸기가 독자와 소설 속 등장인물 간에는 쉽게 가능해진다. 그것이 바로 문학의 역할 중 하나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 되어보기. 다른 입장을 상상하기. 그럼으로 현실에서 또한, 너그러워지기.
---pp.34~35 「신발 바꿔 신기: 소설가 김애란이 보여주는 한 걸음 옆의 세상」 중에서

하니야의 영화는 연극과 심리 치료를 결합한 사이코드라마를 닮았다. 여기서 치유의 대상은 비극의 주인공들만이 아니다. 관객인 우리 역시 이 ‘연극’을 통해 복원되는 감각을 느낀다. 이야기가 나의 세계를 확장할 수 있다는 것, 무뎌진 마음을 일깨울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나는 하니야 감독의 첨예한 시선을, 진실을 담아내려는 열망을, 장르에 얽매이지 않는 과감한 형식 실험을, 나아가 이야기의 가능성을 끝까지 밀어붙여 성취로 이끈 뚝심을 동경한다. 먼 나라에서 남 일처럼 전쟁 소식을 듣던 나를, 구해달라는 소녀 힌드의 목소리를 듣고 발을 동동 구르며 애태우는 그 자리에 앉힌 힘 말이다.
---p.106 「가자에 힌드라는 소녀가 있어: 영화감독 카우타르 벤 하니야가 지금 일어나는 비극에 연루되기를 청하다」 중에서

모든 투쟁이 대체로 그러하듯 페미니즘 투쟁은 평생, 다음 세대가 이어받을 때까지 이어지리라. 다음 세대가 좀 더 나은 환경에서 싸울 수 있도록 유산을 남기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일 수도 있다. 그러므로 쉽게 지치지 않도록 지속 가능한 투쟁의 장을 만들어야 한다. 투쟁의 장이 혐오와 배제의 땅따먹기가 되지 않도록 내 안의 트럼프를 견제해야 한다. (중략) 그러므로 이것은 당부다. 우리, 같은 괴물이 되지는 말자. 이렇게 말하는 나 역시 내 안의 괴물을 다스리고 견제하며, 때론 질 때도 있다. 내가 이토록 그릇이 작은 인간이었나 좌절하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떠올리는 건 ‘혐오보다는 분노, 분노보다는 연대’라는 홍세화 선생의 똘레랑스 정신이다.
---pp.135~136 「포옹하자, 그리고 뺨에 키스하자: 혐오보다는 분노, 분노보다는 연대, 활동가 홍세화의 똘레랑스」 중에서

루키즘과 에이지즘, 신체 기능이 떨어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 더는 이 세계의 주역이 아닌 기분, 그러니까…… 노화에 대한 본능적인 두려움이 내게도 엄습했다. 마침 그 무렵에 데미 무어가 온몸을 불살랐다는 소문의 영화 〈서브스턴스〉를 보러 간 것이다.
데미 무어가 극 중에서 새로 탄생시킨 ‘새파랗게 젊은 버전의 엘리자베스’인 마거릿 퀄리의 생생한 젊음과 생동하는 육체, 아찔한 미모가 부럽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어쩔 수 없다. 그런 욕망은 인간의 DNA에 내장돼 있다. 그러나 그보다 나를 더 사로잡은 건 데미 무어의 세월이었다. 실제 배우 자신의 삶과 닮아 있는 엘리자베스 스파클로서 스크린에 등장한 데미 무어의 모든 연기가 뜨겁고 눈부신 존재 증명처럼 느껴졌다. 45년의 연기 경력, 63세의 나이, 그리고 타오르는 야심이 없었다면 해낼 수 없는 연기였다.
---p.195 「마침내, 최선의 나: 45년 차 여성 배우가 ‘데미 무어’라는 아이콘을 전복하고 움켜쥔 것」 중에서

살아 있는 것은 무릇 취약하다. 고치 속에 자신을 숨기고, 상처를 입으면 방어벽을 세운다. 등과 배를 적에게 보이지 않는다. 보호색으로 위장한다. 실제보다 커 보이려고 털과 깃을 부풀린다. 그럼에도 기꺼이 ‘취약해질 의향’이란…… 도대체 어떤 의지를 드러내는가.
---p.232 「기꺼이, 취약할 의향으로: 약한 것은 강하다는 것을 일러준 작가 이불」 중에서

우리는 모른다. 오늘 저녁 내게 일어날 일도, 내가 진실로 원하는 것도, 내일의 미세먼지 농도도, 지금 손을 맞잡고 있는 사람의 마음도. 단지 조금이라도 알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예측할 뿐이다. 모름을 인정하는 태도야말로 앎에 가까워지는 방법이다. 대상을 낱낱이 찢어발겨 자기 해석대로 재조립해 이름표를 붙인 뒤 그를 다 안다고 믿는 사람들보다 나는 그를 혹은 그것을 모른다고, 어쩌면 영영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며, 다만 있는 그대로 곁에 두는 사람들을 믿는다.
나는 뭘 좀 안다는 사람들을 질투하지 않는다. 그런 태도와 믿음을 가진 이들치고 실제로 아는 것이 있는 사람을 아직 만나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pp.239~240 「잘 알지도 못하면서」 중에서

질투의 감각이 발달한 나는 에디터로 일하면서 지극히 행복했고 동시에 불행했다. 여기저기 분주하게 다니며 온갖 좋은 냄새를 맡고 다니느라 코가 마비될 정도였다. 일을 마치고 밤늦게 집에 돌아오면 문득 내가 무척 허기지다는 사실을 깨닫고 냉동 음식을 전자레인지에 데웠다. 냄새를 맡는 직업이라니. 마약 탐지견이라면 범죄를 방지한다는 멋진 사명이 있겠지만, 질투와 허영을 팔면서는 도대체 어떤 사명감을 느껴야 하는가. 그런데도 그 신기루는 어쩌면 그렇게나 달콤한가. 그런 생각을 하며 찬기가 남아 있는 냉동 음식을 우적우적 씹었다.
---pp.247~248 「깔롱 실격」 중에서

내가 죽어라 일할 동안 나의 개가 집에 편하게 누워 있다는 이유로, 늙고 병들어 죽을 때까지 영원한 ‘아기’로서 장난감과 간식, 보살핌과 사랑을 듬뿍 받을 것이라는 이유로, 나는 녀석을 질투하지 않는다. 오히려 나 없이는 단 하루도 생존하지 못할 녀석을 근심한다. 지구의 포식자인 인간의 곁에, 무해하고 사랑스러운 존재로서 살아남은 개를 애정하고 또 애석해한다. 다만 다음 생에는 인간으로 태어나라고, 태어남 자체가 고통이고 방황이며 인정 투쟁일지라도 너의 삶을 사는 주체가 되라고, 영원히 아기 천사일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되뇔 뿐이다.
---pp.255~256 「개팔자가 상팔자라고 누가 그랬나」 중에서

세상에 단독자는 없다. 인간은 인간에게서 배운다. 타인과 타인의 작업에서 자극받고, 자신을 돌아보고, 그 속에서 자신만의 것을 찾아나간다. 우리는 누구나 서로에게 조금씩 빚지고 있다. 사람들은 때로 불같은 질투와 멸시, 애정과 증오를 주고받고 때로는 선선한 자극과 동기부여, 연민과 위로를 나눈다. 그리하여 자신이 누구인지 지금 어디쯤에 서 있는지 그리고 어디로 향하고자 하는지 비로소 알게 된다. 나는 내가 질투해온 것들의 총합이자, 동시에 그것에 반발해온 저항들의 총체다.
---p.274 「나가며」 중에서

출판사 리뷰

왜 질투를 수련해야 하는가?

휘황찬란한 것부터 사소하고 범박한 것까지
정형적인 질투 대상을 타파하여 질투의 외연을 확장하다

질투하는 데에도 수련이 필요한 것인지 의구심이 들 수 있다. 저절로 끓어오르는 것이 질투심이고, 부정적이기에 억압만 해야 할 감정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틀린 말은 아니다. 저자에게도 질투는 삶 내내 저주이자 형벌 같았다. 패션지 에디터로 일하며 온갖 아름답고 값비싼 것을 접했고, 질투를 파는 산업에 종사했기에 더더욱 가질 수 없는 것을 탐하는 일이 얼마나 처절하고 허무한 것인지 알았다. 그러나 저자는 오랜 질투 끝에 “어린아이가 무섭게 생긴 인형을 부러 꼭 안아주며 본능적으로 두려움을 다스리듯이, 질투심과 함께 사는 법을 터득해야” 함을 깨닫는다.

“세상에 단독자는 없다. 인간은 인간에게서 배운다.” 이 문장처럼 우리는 누구나 서로에게 조금씩 빚지며 살아간다. 때론 질투와 멸시, 애정과 증오를 주고받고, 때론 선선한 자극과 동기부여, 연민과 위로를 나눈다. 첫 번째 글 「내게 남은 시간은 얼마지?」를 읽어보면 이 사실을 알 수 있다. 저자는 본인에게 남은 생의 시간 동안 만들 수 있는 작품 수를 헤아리며 일한다는 그레타 거윅의 인생 셈법에 자극받고 그 야심을 질투하며, 자신에게 남은 시간을 더 열정적으로 쓰기 위해 손목시계를 산다. 이처럼 인간은 사람들 가운데 섰을 때 비로소 자신이 어디에 서 있고 어디로 향하는지 가늠할 수 있는 법이다.

데이비드 린치, 요르고스 란티모스, 기예르모 델 토로 같은 영화감독부터 김애란, 이슬아, 이희주, 조승리 같은 작가와 소설가들, 차학경, 루이즈 부르주아, 이불 같은 예술가, 염혜란, 데미 무어 같은 배우, 그리고 삶 자체를 운동으로 만든 홍세화 같은 활동가나 김규진·김세연 ‘모모母母’ 부부까지. 저자가 질투해온 인물 각각의 특질들은 선망의 대상이 될 법한 전형성에서 벗어나 있다. 흔히 질투의 대상이 되는 세속적인 것들뿐 아니라 탈속적인 것들과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까지, 그의 질투 대상은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그의 질투심의 스펙트럼은 넓고도 다채롭다.

이예지 작가는 30인의 인물을 통과하며 뭉툭한 부러움을 날카로운 질투심으로 벼려낸다. 누구에게서든 본받을 점만 골라내어 내 삶의 실천으로 옮기는 일을 끊임없이 시도한다. 가령 영화 〈힌드의 목소리〉를 보곤 먼 나라 일처럼 가자 지구의 뉴스를 전해 듣던 자신을 연대의 자리로 끌어 앉힌 하니야 감독의 뚝심을 질투하며, 팔레스타인을 후원할 방법을 적극적으로 찾는다. 산문집 『이 지랄맞음이 모여 축제가 되겠지』를 읽고 혀의 무수한 돌기들처럼 모든 걸 생생하게 감각하는 조승리 작가의 열망을 질투하며, 스위치가 꺼져 있던 생의 감각을 몸 안쪽부터 밝힌다.

“질투를 권유하는 사회에서 우리는 단지
분별력 있게 질투하면 된다.”

필요한 질투만을 골라 내면에 불을 붙이고
타들어가는 심지만큼 걸어나가기

칼럼의 제목이자 이 책의 뿌리인 「질투는 나의 힘」은 시인 기형도의 시에서 따온 것이다. 시인은 오랜 세월이 흐른 뒤 자신을 돌아보며, 스스로 품었던 희망의 실체가 결국 질투뿐이었음을, 사랑을 찾아 헤맸으나 정작 스스로를 사랑한 적은 없었음을 고백한다. 이예지 작가는 이 오래된 고백을 오늘날의 언어로 다시 쓴다. 질투심을 나의 내면을 탐구하고, 자기와 화해하는 재료로 삼은 것이다.
그렇기에 『질투 수련』은 질투심을 부정하고 다스리라고만 말하는 여느 질투에 관한 서적과는 다르다. 질투심을 지우라 말하지 않는다. 다만 무엇을 질투하고 무엇은 질투하지 않을지 스스로 가려내는 분별력을 요구할 뿐이다.

다만 분별력 있는 질투심은 무엇을 욕망할지 아는 것만으로는 완성되지 않는다. 부록 ‘질투하지 않는다’의 글을 보면 그 사실을 알 수 있다. 앞선 ‘질투한다’에서 저자는 질투하는 대상들을 통해 오늘날 자신이 추구해야 할 욕망과 가치가 무엇인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이를 실천했다. 가령 독지가 김장하 선생의 베풂의 태도를 질투한 글 「어른은 생색내지 않는다」에서 저자는 선생 같은 위인이 될 수 없다면 우선은 사정이 어려운 남을 위해 선뜻 밥값을 내는 일부터 시작해보는 것도 좋겠다고 말한다. 위인을 따라 잡을 수 없다며 마냥 부러워만 하는 대신, 어릴 적 어머니가 일러준 밥값 계산법을 자신의 삶에 적용한 것이다.

반면 ‘질투하지 않는다’에선 저자의 사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더 이상 질투하지 않는 것들에 대한 고백이자 선언이 전개된다. ‘질투하지 않는다’의 한 꼭지 「깔롱 실격」에서는 한때 추앙했던 화려한 패션과 고가품을 더 이상 아름답다고 느끼지 않는다며, 값나가는 브랜드 의복과 액세서리, 향수들을 하나하나 정리하기 시작한다. 이처럼 무엇은 내 삶에 남겨 실천으로 옮기고 무엇은 놓아버릴지 매 순간 골라내는 감각, 그것이 이 책이 말하는 분별력 있는 질투다.

그 밖에도 저자는 「잘 알지도 못하면서」에서는 모든 걸 안다고 자만하는 사람들을, 「나 아이 없음에 감사하오」에서는 아이를 갖는 일을, 「그 유토피아에 제 자리도 있나요?」에서는 노동계급을 소외시킬 유토피아를, 질투하지 않는다고 선언한다. 질투하는 것들과 질투하지 않는 것들, 독자는 이 두 목록을 순차적으로 읽으며, 자신의 삶에서도 무엇을 계속 욕망하고 무엇을 이제 놓아줄 것인지 자문하게 될 것이다. 책장을 덮은 뒤 자신만의 질투 목록을 써 내려가는 것도 책을 즐기는 한 방법일 테다.

질투의 기준을 자기 안에서 성립하고 싶은 독자, 질투를 부끄러움이 아니라 방향을 가진 힘으로 다시 쓰고 싶은 독자에게 『질투 수련』을 권한다.

추천평

「질투는 나의 힘」이라는 시가 있다. 요절 한 시인 기형도의 작품이다. 시에서 질투는 삶을 밀고 나가는 유일한 동력이지만 동시에 그 동력이 자신을 갉아먹는 독이 된다. 질투가 힘이 되는 순간과 질투가 독이 되는 순간은 혼재한다.
질투는 향신료 같은 것이다. 살짝만 들어가면 관계에 긴장과 활기를 더하지만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관계 자체를 파괴한다. 질투를 잘 사용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감정을 날것으로 두면 안 된다. 승화하고 가공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사랑이라고 다를까? 날것의 사랑도 가공되지 않으면 집착과 소유, 구속과 상처일 뿐이다. 세상의 모든 감정은 경계 위에 있다. 좋음과 나쁨의 경계, 힘과 독의 경계.
이 책은 경계 위의 감정을 이예지의 시선으로 가공한다. 타인의 재능을 향한 날카로운 질투를 자신을 성장시키는 힘으로 깔끔하게 증류한다. 질투심을 질투력으로 승화하고 싶은 사람, 타인을 청량하게 부러워하고 싶은 사람에게 추천한다. - 박혜진 (문학평론가)
거의 항상 부정적인 감정으로만 여겨지는 질투에는 그것에 사로잡힌 이를 일시적이나마 유토피아로 이끄는 힘이 있다고, 이예지의 글을 읽으면서 생각했다. 다만, 이 유토피아는 누군가의 자리를 차지하려 하고 타인의 소유를 빼앗아 가지려 하는 흔한 정념을 통해서는 절대 열리지 않는다. 그런 정념은 끔찍하고 흔해 빠진 지옥을 열 뿐이다.
그리고 이예지는 질투할 줄 아는 존재만을 질투한다. 따라서, 반려견, 아기, 그리고 일시적이지 않고 영원한 유토피아는 그가 질투하는 대상이 될 수 없다. 그의 유토피아는 질투를 불러일으키는 이의 곁에서 오롯이 나의 꿈을 꾸는 이에게만 이따금 열리는 그런 것이다. 유토피아란 그처럼 드물고 일시적인 것이기에, 질투에 사로잡힌 이는 한 사람의 곁에서 다른 사람의 곁으로, 그리고 또 다른 사람의 곁으로 끊임없이 옮겨 다니며 꿈꿀 수밖에 없다. 질투는 여행자의 힘이다. 이 책은 그 여행의 기록이다. - 유운성 (영화평론가·『물듦』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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