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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말
등장인물 서문 제1장 히틀러를 흠모한 건축가 제2장 미국의 독재자 제3장 미국의 법과 인종주의 제4장 미국 파시즘 선구자의 죽음 제5장 나치의 선택을 받은 남자 제6장 파시즘의 길에 오른 사제 제7장 은색셔츠단 제8장 세상을 바로잡는다는 착각 제9장 총통의 꿈을 꾼 군인 제10장 “미국을 전복하라” 제11장 청문회장에 오른 파시즘 제12장 어느 나치 스파이의 자백 제13장 기독교전선과 내란 전야 제14장 사법적 제재가 실패하다 제15장 의문의 비행기 사고 제16장 미국 국민의 세금으로 나치 선전물이 배포되다 제17장 서서히 밝혀지는 진실 제18장 시민의 의무와 책임 제19장 뒤집힌 판결 제20장 광기와 비열함으로 가득 찬 법정 제21장 지연, 회피, 소란 그리고 판사의 죽음 제22장 언제든 다시 일어날 수 있다 에필로그 감사의 말 해제 주 사진 출처 찾아보기 |
Hong Gi-b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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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시아 흉내를 내는 이 34세의 청년이 자신의 새로운 정치 운동인 국가사회주의의 여러 아름다움을 외쳐 대기 시작하자 비어렉은 거의 온몸이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의 목소리가 온 방을 채웠다. 이마의 핏줄은 마치 금방이라도 터질 듯이 부풀어 올랐다.” 그의 눈은 “니체의 ‘금발의 야수’처럼” 번쩍였다. 자기 폭풍 1만 개의 힘에 버금가는 거대한 발전기와 같았다. 이 저널리스트 겸 시인 비어렉은 생각했던 것 같다. 비어렉이 이 남자에 대해 쓴 첫 문장은 실로 예언적인 것이 된다. “아돌프 히틀러는 조심히 다뤄야 할 인물이다. 그는 인간 폭발물이다.”
--- p.24 [독일 외교관들이] 로런스 데니스를 미국에서의 나치즘 운동에 대단히 유용한 잠재력이 있을 도구로 점찍은 이유도 쉽게 알 수 있었다. 데니스 또한 그런 역할을 아주 기쁘게 수행한 듯했다. …… 로런스 데니스는 당당하게 히틀러식 권위주의를 옹호할 뿐만 아니라 단호하게 고립주의 외교 노선을 주장해 외국에서 벌어지는 전쟁, 특히 유럽에서 히틀러에 맞서는 전쟁에 미국이 참전하는 데 반대했다. 이 두 입장 모두 나치가 보기에 너무나 만족스러운 것들이었지만 데니스는 두 입장이 별개인 것처럼 묘사했다. “나의 고립주의 외교 노선은 조지 워싱턴의 고별 연설, 그리고 많은 고전의 계보에서 가져온 것”이라고 말하곤 했다. 그는 미국 의회의 가장 신념 있는 외교 고립주의자들을 자신의 친구들로 여겼다. --- pp.103-104 헨리 포드의 반유대주의는 악명이 높고 거침이 없었다. 그는 친구, 가족, 가까운 재계 동료, 신문기자, 거의 모든 주변인과의 사적 대화에서 이런 성향을 아무렇지 않게 쏟아 냈다. 포드모터컴퍼니 사무실에서도 반유대주의 강연을 늘어놓아 듣는 이들이 간혹 겁낼 정도였고 사적 대화, 인터뷰, 만찬, 심지어 캠핑 여행에서조차 멈추지 않았다. 가까운 친구가 쓴 일기에 따르면 포드는 깊은 밤 캠프파이어에 둘러앉은 대화에서도 “세상 모든 악의 근원을 유대인 혹은 유대인 자본가에게로 돌렸다”. 포드는 “뉴욕 유대인”에 대해 불평했으며 “월스트리트 유대인”에 대해서는 길길이 날뛰었다. 심지어 자신의 엔지니어들에게 자사 자동차 ‘모델 T’에 놋쇠는 쓰지 말라고 명령하기까지 했다. 놋쇠는 “유대인 금속”이라는 것이었다. --- p.163 한 이탈리아 파시스트 군대 사령관이 독일계미국인연맹이 뉴저지 북부에서 개최한 회합에 모인 1만 명에 이르는 청중에게 연설하는 믿기 힘든 사진도 있었다. 하지만 가장 소름이 끼치는 것은 함스공원과 도이치호르스트캠프, 지크프리트캠프 등 히틀러청소년단 캠프에 모인 청소년들의 스냅사진이었다. 제복을 입은 어린 소녀들은 히틀러식 경례와 배경의 스와스티카만 없었다면 ’캠프파이어를 즐기는 소녀들”로 착각할 지경이었다. 멧커프의 사진 중에는 ‘하일 히틀러’ 경례와 스와스티카로 도배된 소년들도 있었지만 그중에는 더욱더 충격적인 이미지들도 있었다. 어떤 소년들이 제1차세계대전을 떠올리게 하는 강철로 된 독일군 헬멧을 쓰고, 또 일부는 손에 창을 든 채 포즈를 취한 것이다. --- p.221 코플린 신부가 자신을 옹호하는 기독교전선 조직을 더욱 뜨겁게 부추기자 캐시디는 이 조직의 지도자 자리를 노리기 시작했다. “지금 우리는 어느 때보다도 강력하고 정력적이며 성스러운 기독교도 미국인 단체가 필요합니다.” 코플린은 뉴욕시에 있는 추종자들에게 이런 편지를 보냈다. “이제 방어 전략 대신 공세적 계획으로 전환할 때입니다. 가장 좋은 방어는 바로 공격이니까요.” 코플린은 기독교전선이 “선제공격”을 해야 한다고 말하기 시작했고 운동은 성장해 나갔다. 그는 1938년 한 방송에서 말했다. “기독교전선은 더욱 강력하고 용감하고 결의에 찬 조직이 되고 있습니다. 말로 설득할 가능성이 아직 남아 있는 한 기독교적 방식은 평화적이어야 하지만 시민적 질서에 입각한 모든 권위가 무너졌을 때는 우리의 영적 권리와 국민적 권리를 침해하는 자들로부터 우리는 오로지 프랑코의 방식을 취할 수밖에 없습니다.” --- p.285 이 뉴요커 집단은 수개월 동안이나 무기 및 전술 훈련을 수행했다고 에드거 후버는 설명했다. 이들은 자기 손으로 폭탄을 제조했으며 총기와 탄약을 비축했다. 그리고 무장 반란을 통해 폭력 사태를 격화시켜서 결국 연방정부의 무기고와 병기창, 나아가 정부까지 장악하려는 의도에서 임박한 행동에 착수했다. 후버는 말했다. “이 집단은 훈련 기간이었던 1월 20일 이후 어느 시점부터 초기 테러 활동을 계획했으며, 그중에는 모든 유대인의 완전한 제거, 전기, 수도, 철도, 통신 및 교통 등 모든 공공시설 장악 등이 포함돼 있었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세우려던 정부를 ‘히틀러와 비슷한 종류의 독재 정부’라고 말했습니다.” --- p.310 헨리 호크는 1940년 8월 마지막 다이스위원회에 증인으로 출석한 것을 계기로 독일이 미국에서 벌인 프로파간다 캠페인에 대해 수집한 증거를 국회에 제출하고 이와 다툴 전략을 고안해야만 하는 이유를 의원들에게 설명할 기회를 얻었다. 국회는 어쩌면 국제우편연합조약을 재검토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이 조약은 미국으로 하여금 독일을 포함한 외국에서 온 우편물을 무료로 배달하도록 의무화하고 있었다. “우편물에 소인을 찍는 나라만 배달 비용을 가져갑니다.” 호크는 위원회에 설명했다. 즉 의도치 않게 미국으로 독일의 선전물을 직접 보내는 작전의 비용 일부를 미국 국민의 세금으로 보조하는 셈이라는 것이었다. --- p.369 미국에서의 독일 프로파간다 공작은 “인종 문제, 경제적 불평등, 공적 생활에서의 자잘한 질투심”, 그리고 “정당 및 소수 집단 들의 견해 차이”를 그런 소동의 핵심들로 보았다. 그중에는 심지어 “한물간 정치인들의 좌절된 야망”도 있었다. 독일 요원들은 미국 사회 내의 이러한 분열의 씨앗들을 찾아내고 더욱 확대해 미국인들이 서로를 증오하고 의심하며 심지어 나라를 완전히 새롭게 만들고 싶다는 생각까지 조장하는 것을 임무로 삼았다. 두 정당으로 갈라진 극심한 다툼 끝에 사기가 땅으로 떨어진 미국은 유럽에서의 전쟁에 효과적으로 개입할 능력도 없을 것이라고 나치는 믿었다. 그렇게 되면 심지어 미국을 끝내 집어삼킬 수 있을 만큼 물렁물렁하게 만들 수도 있을 것이라고. --- p.413 아이허 판사가 기진맥진이 된 것은 충분히 이해할 만했다. 그는 이미 재판 거부 신청 500건에 판결을 내렸고 변호인들과 막 나가는 피고인들이 내놓은 이의 7만 2000건을 다뤄야 했으며 그 외의 변호인 일곱 명에게 법정 모욕죄로 벌금을 선고하고 그중 한 사람에게는 90일 구금 조치도 명령했다. 지난 일곱 달 동안 변호인과 피고인 들이 재판 지연 전술로 노래하고 구호를 외치고 소리를 질러서 재판 기록에는 이미 300만 단어가 적히고 이조차 계속 늘어나고 있던 상황이라 그는 이를 쭉 감내해야만 했다. …… 그다음 날 아침 6시 아내가 그를 깨웠을 때는 숨을 거둔 상태였다. 잠을 자다가 죽은 것이다. 65세. 심장마비. 이 재판의 압력이 에드워드 클레이턴 아이허 판사를 죽음에 몰아넣었다는 것이 중론이었고 사실 다르게 보기도 힘들었다. --- pp.497-49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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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표는 미국 정부 전복!“
역사 속으로 숨어 버린 미국 사회 속 파시스트들을 폭로하다 위태로운 현대 민주주의를 향한 강력한 경고 잔혹하게 되풀이되는 미국 극우의 역사 2021년 1월 6일, 미국 국회의사당이 프라우드보이즈와 오스키퍼스 등을 중심으로 한 민병대에 의해 점거되었다. 2020년 대통령 선거 결과를 부정한 이들은 ‘미국을 구하라’라는 구호 아래 총과 칼을 비롯한 무기를 들고 국회의사당을 장악했다. 미국의 언론인이자 진보 정치 평론가인 레이철 매도는 현대 미국 극우 정치 세력의 등장이 제2차세계대전 시기 미국 정부를 전복하려 한 친나치 세력의 행태와 소름 돋을 정도로 닮아 있다고 지적한다. 1900년대 초반, 미국에는 반유대주의와 파시즘을 앞세우며 국가 전복을 꿈꾼 이들이 있었다. 이들은 민간에서 혹은 경제계와 정치권 곳곳에서 자신들의 영향력을 키우면서 미국 정부가 외국의 정치에 간섭하지 말 것을 요구하는 고립주의 노선을 추구했다. 동시에 이들은 ‘순수하고 충성스러운’ 백인의 나라를 세우기 위해 폭력적 수단도 불사했다. 이들은 미국 내에서 히틀러와 나치를 추종할 뿐 아니라 실제로 독일로 건너가 히틀러를 만나 나치의 지령을 받아 오기도 했다. 작가와 건축가, 반유대주의 선동에 앞장선 가톨릭 사제, 독재 권력을 직접 실현한 루이지애나 주지사, 스스로 미국의 히틀러가 되려 한 정치인, 반유대주의 활동에 자금을 대준 기업가에 이르기까지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운 그들은 미국의 해외 참전에 반대하며 미국이 나치 등 추축국의 편에 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민주주의적 제도를 약화하고 극단적 반유대주의를 조장하며 기존 정치 체제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리고자 했다. 궁극적 목표는 미국 정부를 전복하고 권위주의 통치 체제를 수립하는 것이었다. 이들은 단순히 망상에 빠진 폭력주의자가 아니었다. 미국 주류 사회 곳곳에 형성해 놓은 자신들의 네크워크를 활용해 구체적으로 국가 전복 계획을 세웠다. 이들의 계획은 1940년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재선 이후 수백 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무장 봉기를 일으켜 정부를 무력으로 접수하는 것이었다. 이들은 연방 무기고에서 무기를 훔치고 총기 수천 정을 구입했으며 사제 폭탄을 제조해 비축하기도 했다. 『아메리칸 파시스트』는 이처럼 제2차세계대전을 전후한 시기에 미국 내에서 활동한 극우 파시즘 세력의 실체를 파헤치고 정치계와 경제계에 뻗어 있던 그들의 비밀 네트워크를 폭로한다. 그리고 그에 맞서 싸운 소수의 헌신적인 공무원과 언론인, 시민 들의 투쟁을 소개한다. 수십 년 동안 미국의 역사 속으로 뻗어나간 극우 세력과 그들이 품고 있는 미국식 파시즘을 생생하게 추적한 이 책은 위태로운 민주주의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강력한 경고와 시사점을 던져 준다. ”미국에도 히틀러가 필요하다“ 자동차 왕부터 스타 건축가까지 1930년대 친나치 인맥 지도 1918년 포드모터스의 회장 헨리 포드는 『디어본 인디펜던트』라는 신문사를 인수한다. 포드는 자신의 자동차 영업망을 활용해 신문을 배포했고 고객에게 판매한 자동차 앞좌석에도 이 신문을 꽂아 놓았다. 신문에는 반유대주의를 부르짖는 기사가 실렸다. 포드는 “뉴욕 유대인”, 특히 “월스트리트 유대인”에 분개했다. 유대인이 미국의 영화와 음악, 야구를 망쳤으며 시장 질서를 파괴하고 유럽에서 전쟁을 일으켰다는 주장이었다. “어떤 나라에 뭔가 문제가 터지면 항상 유대인들이 뭔가 책동을 부리고 있다.” 헨리 포드는 말했다. 포드의 반유대주의는 그저 한 기업가의 성향에만 그치지 않았다. 독일 나치당 본부를 방문한 기자에 따르면 히틀러의 책상 뒷벽에 포드의 커다란 초상화 액자가 걸려 있기도 했다. 히틀러는 인터뷰에서 “헨리 포드를 영감의 원천으로” 여긴다고도 밝혔다. 1900년대 초반 반유대주의는 특정 외국인에 대한 정서적 혐오에 멈추지 않았다. 작가 조지 실버스터 비어렉은 발간한 잡지 『아메리칸 위클리』는 독일 정부의 자금을 받아 발행한 것이었다. 그는 마침내 히틀러를 만난 뒤 “마력이 깃든 푸른 눈”을 가진 이 사람에 대항하는 것은 결코 현명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랬던 그가 1940년대가 되자 미국 내 나치 프로파간다를 총괄하는 자리에까지 올랐다. 미국 모더니즘 건축의 대가이자 코네티컷의 글래스하우스를 설계한 필립 존슨은 1930년대에 노골적으로 히틀러를 찬양하며 미국에도 히틀러 같은 인물이 필요하다고 역설하기도 했다. 1935년에는 미국에서 독재 정치를 실험한 루이지애나 주지사 휴이 롱을 찾아가 그의 선택을 받고자 했으나 휴이 롱이 암살당하면서 실패로 돌아갔다. 이듬해에는 전국적으로 유명한 ‘라디오 신부’ 찰스 코플린을 위해 무대를 설계하는 등의 일을 거들었다. 휴이 롱 주지사는 1900년대 초반 미국에서 전체주의를 지향하는 이들에게 선망의 대상이었다. 롱은 “히틀러보다 똑똑”하고 “전국적인 파시즘 지도자에 가장 근접한 최상의 인물”이라는 평을 받으며 뛰어난 연설 실력을 바탕으로 청중을 휘어잡았고 헌법의 틀에도 얽매이지 않았다. 심지어는 주방위군을 이끌고 실제로 뉴올리언스에 군사 공격을 감행하기도 했다. 그의 삶을 다룬 전기의 부제는 “미국식 독재 연습”이었다. 휴이 롱의 독재 실험은 1936년 피살로 끝을 맺었는데 당시 신문들은 그가 “민주주의의 본절적 취약성”을 드러냈으며 “히틀러를 복제”했다고 평가했다. 『아메리칸 파시스트』에는 이처럼 1900년대 초반 미국 내부에서 싹트고 있던 파시즘 세력의 기원을 추적한다. 이들 외에도 가톨릭 사제 신분으로 정당을 만들며 “가장 역동적인 포퓰리스트”라는 평가를 받은 찰스 코플린, 하버드를 졸업하고 국무부 외교관으로 일한 로런드 데니스, 예수 그리스도와 여러 번 만났다고 말하며 스스로 미국의 히틀러가 되려고 한 윌리엄 더들리 펠리, 일루미나티나 신세계질서 등의 음모론을 꾸며 낸 레슬리 프라이 등 미국 내부에서 자생적으로 생겨난 극우 파시즘의 역사를 살핀다. 이들은 극단적 반유대주의와 반공산주의를 주장하며 미국 내부에서부터 서서히 균열을 일으켰다. 미국 한복판에서 울려 퍼진 “하일 히틀러” 총기와 폭탄을 비축하며 무장 봉기를 준비한 이들의 정체 미국의 파시즘 세력은 1939년 제2차세계대전을 전후해 전보다 더 노골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한다. 이들은 “미국은 미국인들에게, 유럽은 유럽인들에게”라는 히틀러의 구호를 퍼뜨리며 미국이 유럽의 전쟁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고립주의 노선을 강조했다. 조지 비어렉의 노력은 마침내 어니스트 런딘이라는 협력자를 만들어 냈다. 미네소타주 상원의원인 그는 비어렉이 미국의 정치권에 처음으로 심은 협력자가 되었다. 런딘은 1917년 하원의원 시절부터 친독일 반개입주의 성향을 강하게 드러낸 정치인이다. 1940년에는 루스벨트 대통령의 제2차세계대전 참전을 강하게 반대하고 방해했다. 미국의 징병제가 노예제나 마찬가지라고 주장한 그는 영국 민주주의와 독일 민주주의 사이에 아무 차이가 없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비어렉의 공작은 계속되었다. 비어렉은 국회의원들의 무료우편 발송 특권을 이용해 나치 선전물을 미국 각 가정에 발송했다. 즉 미국인들이 자신들이 낸 세금으로 나치 선전물을 받아 본 것이다. 비어렉은 런딘 외에도 상원과 하원에 해밀턴 피시(뉴욕)나 로버트 라이트 레이놀즈(노스캐롤라이나)를 같은 고립주의자 의원을 다수 거느리고 그들을 이용해 나치의 선전 활동을 펼쳤다. 한편 미국민족주의자연맹을 창설한 조지 데더리지, 준군사조직인 은색셔츠단을 설립한 윌리엄 더들리 펠리, 미국백인수호대를 조직한 헨리 앨런, 코플린 신부의 창과도 같은 기독교전선 같은 단체가 있었다. 심지어 독일계미국인연맹이라는 단체는 뉴저지 북부에 히틀러청소년캠프를 열기도 했다. 이곳에서는 1만 명이 넘은 군중과 수많은 청소년이 스와스티카 깃발을 내걸고 독일 군복을 입은 채 “하일 히틀러” 경례를 하며 독일에 대한 충성을 서약했다. 1939년 가을에는 존 캐시디라는 브루클린 출신 젊은이가 기독교전선 수장으로 임명된다. 몇 해 전 FBI 특수요원에 지원한 적도 있던 그는 코플린 신부를 만난 뒤 누구보다 앞장서서 ‘십자군전쟁’에 몰두한다. 이제 기독교전선의 수장이 된 캐시디는 단순히 홍보와 집회 활동에 머물지 않고 직접적인 행동에 나서기로 결심한다. 이들은 두 가지 전략을 세웠다. 공산주의 세력 혹은 유대인 단체를 자극해 소요를 유발하고 그에 개입해 정부를 장악하는 것이 첫째 전략이었다. 또 다른 전략은 직접적으로 의원 암살, 유대인 사업체 폭파 등을 벌이는 등 무장봉기를 일으키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작은 총통’ 캐시디는 기독교전선의 조직력을 활용해 총기를 구입하고 탄약을 확보했으며 연방 군대의 무기고에서 무기를 빼돌리거나 사제 폭탄을 제조해 비축하기 시작했다. 1944년 미국을 뒤흔든 파시스트 재판은 왜 좌절되었나 정의가 패배하고 음모가 승리한 순간 미국 민주주의 역사상 가장 치욕스러운 기록 기독교전선의 무장봉기 모의는 다행히 실행 전에 발각돼 관련자들은 FBI에 체포되었다. 미국 내 파시즘 세력의 준동을 관심 있게 지켜본 언론인과 활동가 들은 그들의 음모를 추적하고 폭로했다. 미국 정부기관 역시 이들의 배후를 밝혀내고 사법의 판결대 위에 올렸다. 1941년 미국 법무부는 마침내 핵심 인사들을 식별하고 그들의 배후 수십 명을 연방법원에 기소했다. 이로써 1944년 미국 사상 최대 규모의 반역 재판이 열렸다. 하지만 피고인들의 극심한 재판 방해와 난동으로 법정은 난장판이 되었다. 미국 국체를 전복하려던 이들은 소수의 비주류 세력이 아니었다. 이들은 실제로 윌리엄 ‘와일드 빌’ 랭어, 버튼 휠러(트루먼 대통령의 오랜 친구)처럼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일부 선출직 공무원들과 대거 연루돼 있었다. 이들은 법 집행을 방해하며 시스템을 조롱하고 무력화했다. 반역재판 피고인들은 재판에 출석하지 않거나(재판 날짜를 잘못 알았다고 했지만 캐나다 국경 부근에서 발견되었다) 배심원의 자격을 시비에 붙여 배심원단 구성에만 한 달이 걸리도록 유도했다. 증인 선정뿐 아니라 검사와 판사에 대한 인신공격도 마다하지 않았다. 전쟁이 끝날 때까지 재판을 연기하라고도 요청했다. 1944년 5월 첫 재판이 열렸을 때 이들은 법정 내에서 난동을 부리며 재판 자체를 방해했다. 이후 위와 같은 과정이 계속 반복되었다. 심지어 판사가 난동을 피해 피신하기도 하는 등 재판은 엉망이 되었다. 그러던 1944년 11월, 재판을 마친 어느 날 밤 담당 판사인 아이허 판사가 사망했다. 향년 65세, 사인은 심장마비. 법무부 장관은 재판 속개와 관련된 결정을 미뤘다. 이 사건을 그만두려 한 듯이 보였다. 그렇게 두 해가 지나 1946년 10월 24일, 해리 트루먼 대통령은 오랜 친구인 버튼 휠러 상원의원과 네 시간에 걸쳐 회의를 했다. 이튿날인 25일, 법무부는 수년 동안 반역 피고인을 추적하고 전후 독일에 건너가 3만 건 이상의 관련 자료까지 확보한 담당 검사를 해임했다. FBI 요원이 어느 날 자정이 넘은 시간 공항에서 검사에게 해고를 통보한 것이다. 당시 검사는 휴가 중이었다. “증거는 명백했지만 아무도 처벌받지 않았다.” 처벌 없는 역사의 비극 2021년 의사당 폭동으로 되살아나다 미국 역사상 가장 대규모의 국가 반역 사건에서 결국 아무도 처벌받지 않았다. 재판이 흐지부지 사라진 것도 전례 없었다. 담당 검사 존 로지는 자신의 수사 기록을 모아 공식 보고서를 작성했다. 독일 전범들을 심문해 미국 의원 24명이 나치 전복 음모에 가담했다는 명백한 증거도 제시했다. 그러나 해리 트루먼 대통령은 이 보고서를 대중에 공개하지 못하도록 전면 은폐했다. 내란에 가담한 인사들에 대해서도 어떠한 처분도 내리지 않았다. 나치를 추동하고 미국을 파시즘 국가로 만들기 위해 국가 전복을 기도한 이들은 아무런 법적 책임도 지지 않은 채 천수를 누렸다. 필립 존슨은 세계적 건축가로 화려하게 살았고 해외 비밀 계좌에 1500만 달러를 숨겨 놓은 찰스 코플린 신부는 여러 주에 다주택을 보유한 부자로 살다 죽었다. ‘작은 총통’ 존 캐시디는 평범한 회계사로 살아갔으며 말년에 변호사 자격증도 되찾았다. 이들 외에도 나치를 추종한 이들은 반공주의의 그늘에 숨어 무탈히 삶을 마감했다. 1940년대의 허위 정보 살포, 의사당 폭동과 유사한 준군사 조직의 움직임, 선거 결과 및 민주주의 시스템에 대한 불신 조장은 오늘날 현대 미국 정치에서 벌어지는 극단적 분열 및 권위주의의 부상과 놀랍도록 똑같다. 저자인 레이철 매도는 과거의 군인·경찰 대상 민병대 모집 방식, 민주주의 시스템 파괴 시도 등이 현대 미국의 오스키퍼스나 프라우드보이스 같은 극우 세력의 행태와 소름 돋을 정도로 닮아 있다고 지적한다. 저자는 시스템이 무너지는 순간에도 진실을 밝히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웠던 언론인, 검사, 평범한 시민 들의 영웅적 노력을 통해 오늘날의 위기를 극복할 단서와 희망을 책을 통해 전달하고자 한다. 따라서 이 책에서 소개된 어두운 역사는 절망만 주는 것이 아니라 미국이 “과거에 파시즘을 이겨냈듯 현재 마주한 위기에도 지혜롭게 승리할 수 있다”라는 강력한 위로와 시사점을 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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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왜 저러는 거예요?” 미국사 전문가로서 요즘 내가 가장 자주 듣는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책 단 한 권을 추천한다면 단연 『아메리칸 파시스트』를 꼽겠다. 미국 민주주의는 세계대전을 거치면서도 파시즘의 도전을 물리치고 살아남았다. 어떻게 가능했을까? 그 답은 『아메리칸 파시스트』가 들려주는 풍성한 에피소드와 흥미진진한 서사 속에서 찾을 수 있다. - 김일년 (이화여자대학교 사학과 조교수, 오하이오주립대학교 역사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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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교과서와 영화를 통해 ‘자유민주주의의 보루’로서 소비해 온 미국의 역사 뒷면에는 차마 공식 역사로 수록되지 못한 채 철저히 음지에 은폐되어 온 서늘한 그림자가 존재한다. 저자는 100년 전 미국 한복판에서 자생했던 파시스트들과 나치 추종 세력들의 내란 공모 시나리오를 집요하고도 유의미하게 추적한다. - 전범선 (가수, 밴드 양반들 리더, 옥스퍼드대학교 역사학 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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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파시즘을 짓부수고 민주주의를 지켜낸 유일무이한 영웅이었다는 국가적 신화를 정면으로 거스르는 책이다. …… 1930~1940년대 미국 내부에서 자생적으로 자라난 극우 파시즘의 어두운 역사와 미국 심장부를 노린 나치의 실체를 끄집어냈다. 위험한 정치적 순간에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다. - 《롤링 스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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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숨에 읽히는 작품이다. 이 책은 권위주의적 사고방식의 실체를 들여다보는 창인 동시에 자칭 애국자들이 어떻게 민주주의를 배신하는 적이 되는지를 보여 준다. 현재의 미국 상황과도 놀라울 정도로 유사하다. - 《뉴욕 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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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생하고 강렬하며 지적 통찰이 돋보이는 역사서다. 미국 정부를 전복하고 파시스트 정권을 수립하려 했던 거대하고 조직적인 사회 운동의 실체를 밝혀냈다. 미국 내 무장 파시즘의 역사를 규명하는 데 지대한 공헌을 했다. - 《워싱턴 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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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실존적 위협들의 기원을 파고드는 저자의 숭고한 연구 역량은 놀라울 정도로 깊이 있다. 이 책은 누구도 발견하지 못한 숨겨진 진실을 샅샅이 파헤친다. - 북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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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미국은 나라 안의 파시즘 세력과 싸워 이겨 낸 경험이 있다. 미국 내부의 적들을 다룬 이 책은 미국이 다시 한번 그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용기를 준다. - 커커스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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