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1 옛 교실의 인골
2 사기꾼 3 일주기 공양제 4 귀갑묘 안에서 5 왜구의 후예 6 노란색 민박집 7 노로 집안의 후손 8 여신의 곶 9 류큐 소나무 위에서 한 약속 10 홀려버린 풋내기 11 둘만의 출정식 12 배우의 등장 13 기묘한 방문객 14 녹색 돌도끼 15 기사회생한 무대 16 투명한 복원상 한국어판에 붙여 | 마타요시 에이키 옮긴이의 말 | 인골은 누구의 역사인가 |
Eiki Matayoshi,またよし えいき,又吉 榮喜
마타요시 에이키의 다른 상품
|
--- p.8
사진 속에는 치열이 고른 하얀 두개골이 검은 흙 속에서 떠오르듯 찍혀 있었다. --- p.44 조상을 알고 싶고, 조상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싶어 하는 마음은 인간의 본능에 가깝다고 메이테쓰는 생각했다. --- p.49 “층이라는 건 다양한 삶의 흔적이 쌓인 ‘시대의 카펫’ 같은 거니까 그 변화를 판별하는 건 매우 중요하거든요.” --- p.54 “‘그렇습니까’가 다 뭐냐. 흉내만으론 죽은 자의 치무를 절대 움직일 수 없어. 그저 겉치레로 할 거면 차라리 안 하는 게 나아. 그렇지 않나?” --- p.113 “어떤 구스쿠와의 전쟁에서 이 신녀는 적의 신녀와 싸우게 됐어. 적군의 전의를 꺾기 위해 서로 저주의 말을 퍼부었는데, 이 신녀의 힘이 다 미치지 못했는지 결국 전쟁에서 패하고 말았지. 구스쿠는 무사했지만, 신녀는 남편인 아지에게 책임을 추궁당해 산 채로 매장됐어. 아지는 신녀를 묻는 조건으로 적에게서 구스쿠의 존속을 약속 받은 거지. ……그런 식으로 나에겐 느껴지는 거야.”. --- p.122 메이지 정부의 류큐 처분 당시, 슈리 성에 있던 여러 문서들이 도쿄로 옮겨졌다. 또 메이지 중기엔 근대 호적 제도가 시행되면서 족보도 자기만족을 위한 기록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메이지 말기에는 몰락한 사족들이 가보를 찾는 골동품상이나 수집가들에게 족보까지 팔아넘기기도 했다. 남아 있던 문중 족보의 대부분은 오키나와 전쟁 때 유실됐다. 도서관에 보관돼 있던 족보 문서도 북부 산악지대인 얀바루로 옮겨졌지만 결국 행방이 묘연해졌다. 문중 사람들 중에는 족보와 위패를 보자기에 싸 들고 끝까지 피난길에 오른 이들도 있었지만 목숨부터 구해야 했기에 결국 동굴에 숨겨야 했다. 그러다 종전 직후에 찾으러 갔을 땐 이미 화염방사기의 불길에 휩쓸려 재가 돼 있었다. --- p.156 “사랑이군요. 사람을 그렇게 참을 수 없게 만드는 게 사랑이니까.” --- p.157-158 사요코는 줄무늬 티셔츠에 하얀색 반바지를 입고 있었다. 매끄러운 팔다리가 눈에 들어오자 메이테쓰의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 인골도 살아 있을 적에는 이런 피부를 지녔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스쳤다. --- p.159 “예전에 비하면 없는 편이지. 사람들이 여기를 떠나게 된 것도 도시의 인공 해변에다 이곳의 모래를 팔아버렸기 때문이야. 예전엔 민박 투숙객들이 일광욕을 하며 누워 있거나 비치발리볼을 하곤 했는데…… 입자가 곱고 사르르 흩어지는 참 좋은 모래였지.” “반대하는 사람은 없었어요?” “마을 사무소에 돈을 잔뜩 뿌렸거든. 처음엔 깊은 바다 속에서 펌프로 모래를 채취하겠다고 했는데, 어느 순간 해변의 모래가 싹 사라졌지.”. --- p.160 “그러니까 해적 따위로 업신여김을 받는 거예요. 저 땅 속에 잠들어 있던 사람은 전차 따위보다 수백 배는 더 귀한 존재예요. 아버지도 온 마음을 다해 공양제를 치르셨잖아요?” --- p.183-185 “문화진흥과 자료실과 똑같은 전시라면 아무 의미가 없어.” 그는 자기 자신에게 다짐하듯 말하며 사요코에게도 말했다. “우리만의 개성을 살리자.” “그래, 개성 넘치는 인골 전시관을 만들자고.” 사요코의 눈동자가 반짝였다. 사요코의 유서 깊은 혈통을 입증할 만한 유물만으로 한정하면 전시할 수 있는 게 거의 없었다. 곡옥이나 비녀 정도뿐이었다. (…) 인골 전시관에서 류큐의 고귀함을 이야기할 수 있다면 조금은 마음이 가라앉을 것 같았다. --- p.205 번이 폐지되고 현으로 개편된 이후에 사족들은 평소에 익힌 예능 실력을 살려 생계를 위해 자존심을 버리고 마을 연극 등에 출연하곤 했다. 현재 류큐 무용의 대가 중에는 그런 사족의 후손도 있지만, 마을 연극에 영향을 받은 서민의 후손도 있다 --- p.240-241 “당신도 일본인이죠?” “내 머릿속에는 류큐 왕국 성립 이전의 인골 전시관밖에 없습니다. 당신과 더 이상 논쟁할 시간도 없고…… 오키나와 사람은 오키나와 사람이에요, 아마도. 류큐 처분과 동화 정책으로 일본인이 된 것뿐이죠.” --- p.257 “보통 사람에겐 전혀 보통이 아니죠. 인골은 기도의 대상이 아니라 연구의 대상이에요.” “연구라 해도 상대는 인간이니까 어느 정도는.” “뼈는 뼈일 뿐이죠, 물리적으로 보면.” --- p.261 하지만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이 죽으면 오히려 그 마음이 더 깊어지는 법이라던데요.” 메이테쓰는 자기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사랑은, 죽은 사람보다 살아 있는 사람이 언제나 이겨요.”. --- p.299 복원상의 얼굴은 어딘가 투명하게 비치는 것처럼 느껴졌다. 고립된 사요코를 위해 인골 전시관을 만들었다는 건 사실 내 착각에 지나지 않았던 건 아닐까. 결국 나는 나 자신을 위해, 나 자신을 알기 위해 인골 속에서 오키나와인의 깊은 내면 풍경을 찾고 있었던 건 아닐까. |
|
고귀한 류큐의 신녀인가, 바다를 건너온 외지인인가
인골 한 구를 둘러싼 기묘하고 우스꽝스러운 소동 주인공 메이테쓰는 사기꾼에게 집을 빼앗기고, 어머니마저 돌아가신 뒤 오키나와 나하 외곽의 낡은 아파트에서 살고 있다. 어느 날 묵은 신문 뭉치를 태우려던 메이테쓰는 우연히 옛 구스쿠 유적에서 젊은 여성의 인골이 발굴되었다는 기사를 발견하고 현장 사무실을 찾아간다. 그곳에서 고등학교 동창이자 발굴조사원인 고토노와 재회하고, 발굴지 인근에서 민박집을 운영하는 사요코를 만난다. 고토노는 인골의 체격과 발굴 자료를 근거로 일본 본토에서 건너온 외지인이었을 가능성을 제기한다. 사요코는 정반대다. 인골은 자기 집안과 ‘눈에 보이지 않는 실’로 이어진 조상이며, 구스쿠를 지키기 위해 제물로 바쳐진 고귀한 류큐의 신녀라고 굳게 믿는다. 두 여성의 상반된 주장 사이에서 메이테쓰의 마음은 흔들린다. 더욱이 사요코는 아름답고 신비롭다. 그녀에게 마음을 빼앗긴 그는 민박집 1층을 개조해 ‘인골 전시관’을 만들기로 하고, 어머니가 남긴 생명보험금까지 쏟아붓는다. 하지만 전시관은 사람들의 욕망을 빨아들이며 뜻밖의 모습으로 변해간다. 전쟁 유품과 옛 생활도구가 뒤섞이고, 온갖 사람들이 찾아와 인골에 자신만의 이야기를 덧붙인다. 조상신에서 전쟁 희생자로, 반전의 상징에서 돈벌이의 수단으로, 인골은 사람들의 입을 거칠 때마다 다른 존재가 된다. 전시관이 북적일수록 9백 년 전 여인의 얼굴은 오히려 희미해진다. 마타요시는 이 소동을 능청스러운 웃음으로 끌고 간다. 인물들은 저마다 진지하지만, 한발 물러서서 보면 우스꽝스럽다. 허풍을 떨고, 사랑에 눈이 멀고, 자기 믿음을 고집하고, 돈 앞에서 흔들린다. 그러면서도 어느 누구도 한 가지 얼굴로 굳어지지 않는다. 오키나와의 소설가 오시로 사다토시가 마타요시 문학에서 발견한 ‘인간이 살아가는 모습의 다양성’은 바로 이 어수선한 군상 속에서 빛난다. 천 년의 역사를 품은 인골 곁에서 인간들은 욕망하고 흔들리고 어리석은 선택을 하며, 그 때문에 더욱 생생한 존재가 된다. 한 구의 인골에서 천 년의 시간을 파내다 우라소에의 ‘원풍경’에서 태어난 이야기 이 기묘한 이야기를 거슬러 올라가면 작가가 평생 떠나지 못한 하나의 풍경과 만난다. 마타요시 에이키는 1947년 오키나와 우라소에의 미군 천막촌에서 태어났다. 류큐의 옛 성터인 우라소에 구스쿠가 솟아 있는 곳이자, 불과 2년 전 오키나와 전투에서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은 마에다 고지의 기슭이었다. 종전 후에도 동굴에는 유골이 남아 있었고, 어린 마타요시는 철모와 포탄 파편을 주우며 놀고 방공호를 드나들었다. 산속에서 우연히 마주친 이름 모를 두개골은 오랫동안 혼자 간직한 기억으로 남았다. 옛 왕국의 성터와 전쟁의 폐허, 미군기지와 아이들의 놀이터가 한 풍경 안에 포개져 있었다. 마타요시는 우라소에를 중심으로 “반경 2킬로미터의 세계에서 체험한 사건”을 과장하고 변형하고 서로 충돌시키며 평생의 소설 세계를 만들어왔다. 그 깊은 곳에 그가 ‘원풍경’이라 부르는 것이 놓여 있다. 세월이 흐른 뒤 우라소에 구스쿠에서 실제로 젊은 여성의 굴장 인골이 발굴되었다. 마타요시는 그 여인의 뼈를 보며 상상했다. 류큐인이었을까. 일본 본토에서 왔을까. 더 먼 동아시아의 어느 곳에서 바다를 건너왔을까. 아무도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바로 그 알 수 없음 속에서 어린 시절 마주친 두개골과 전쟁의 유골, 류큐의 옛 성터와 바다를 건너온 사람들의 시간이 한꺼번에 되살아났다. 작가는 그 뼈를 통해 “류큐, 곧 오키나와가 걸어온 천 년의 역사와 정신”을 끌어올리고 싶었다고 말한다. “인골이 시간을 초월한 존재이기 때문이 아닐까.” 그에게 인골은 땅속에 묻힌 한 사람의 흔적인 동시에 서로 다른 시대가 겹쳐지는 자리였다. 그렇게 작가의 원풍경에서 출발한 인골은 소설 속으로 들어와 다시 수많은 사람의 기억과 욕망을 불러들인다. 인골은 침묵하고, 산 자들은 역사를 만든다 하지만 소설이 끝을 향할수록 그토록 시끄럽던 목소리들은 하나둘 사라진다. 사요코도, 그녀의 아버지 쇼신도, 고토노도 떠나고, 메이테쓰가 돈과 열정을 쏟아부은 전시관은 텅 비어간다. 남은 것은 관람객 없는 전시관과 정체를 알 수 없는 인골의 복원상, 그리고 그 앞에 홀로 선 메이테쓰다. 그제야 그의 시선은 9백 년 전의 여인에게서 자기 자신에게로 돌아온다. “결국 나는 나 자신을 위해, 나 자신을 알기 위해 인골 속에서 오키나와인의 깊은 내면 풍경을 찾고 있었던 건 아닐까.” 이 순간 메이테쓰의 질문은 작가가 평생 되짚어온 원풍경과 겹쳐진다. 마에다 고지의 흙 속에 남아 있던 뼈와 전쟁의 흔적, 우라소에 구스쿠의 오래된 돌, 미군기지와 바다, 그곳에서 태어나 살아온 사람들의 기억이 한 구의 인골 속에서 포개진다. 시간을 거슬러 파고들수록 더 오래된 시간이 모습을 드러내고, 한 사람의 얼굴을 찾으려 할수록 그 뒤에서 수많은 얼굴이 나타난다. 모든 사람이 떠난 전시관에서 인골은 처음과 똑같이 침묵한다. 그 침묵 때문에 소설도 쉽게 닫히지 않는다. 우리는 오래된 뼈 앞에서 죽은 자의 역사를 기억하고 있는가. 아니면 죽은 자의 침묵을 빌려 우리가 믿고 싶은 역사를 만들고 있는가. 한 구의 인골에서 시작된 우스꽝스러운 인간 희극은 그렇게 천 년의 오키나와를 파내려 가다가, 마침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발밑까지 닿는다. [작가의 말] 나에게 소설이란 곧 원풍경이며, 원체험은 곧 아이덴티티이다. (…) 나는 소설을 쓸 때 언제나 소년 시절의 원체험을 핵심으로 삼아왔다. 그러나 최근에는 내 원체험 속에도 수백 년에 걸친 오키나와의 심층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음을 느낀다. 정신없이 뛰놀던 어린 시절의 ‘원풍경’은 오늘날에도 이어지는 보편성을 품고 있으며, 인간이 안고 있는 근원적인 문제와도 깊이 맞닿아 있다고 생각한다. ― 마타요시 에이키, 「한국어판에 붙여」 중에서 |
|
마타요시 문학에는 인종이나 성별을 막론하고 인간이 살아가는 모습의 다양성을 보여주는 시선과 관용이 있다. 어려운 시절에도 평온한 시절에도 인간은 살아간다. 마타요시 문학은 그렇게 살아가는 인간의 한결같은 모습을, 소중한 생명을 하나하나 길어 올린다. - 오시로 사다토시 (소설가, 시인, 평론가)
|
|
주인공 메이테쓰에게서 모든 것이 빠져나간 채 텅 빈 상태로 이 소설은 막을 내린다. 관람객 하나 없는 허전한 전시관 역시 이러한 공허함을 상징하는 은유이다. 물론 이러한 결말은 메이테쓰 개인의 정체성, 나아가 오키나와의 정체성 자체를 다시 묻는 것이기도 하다. - 오세종 (류큐 대학교 교수, 『오키나와와 조선의 틈새에서』의 저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