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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니스나무 … 007작가의 말 … 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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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주하는 세상에서 기어이 역주행을 하는 한 여자표정 없는 세계에서 끝내 얼굴로 남은 한 남자 서로가 서로의 유일한 목적지가 되어 달려나가는애틋하고도 찬란한 계절의 러버스 하이(Lover’s High) 『테니스나무』는 풀코스 마라톤 대회에서 한순간 스쳐지나간 얼굴 때문에 결승선을 고작 1킬로미터 앞두고 돌연 역주행한 전적이 있는 ‘미아’와, 인간 역무원이 거의 사라져버린 지하철 K선 역사에서 일하는 인턴 ‘태오’, 두 사람의 이야기를 따라간다. 둘은 지하철 역사를 달리는 하프코스 러닝 대회 ‘라인런’을 진행하기 위한 거래처 관계로 처음 만난다. 생존배낭을 만드는 회사에서 일하는 미아가 직접 기획한 생존배낭이 라인런의 기념품으로 정해졌기 때문이다. 빠듯한 일정 속에서 분주히 대회를 준비하며 둘은 어느새 서로를 향한 마음이 점점 커져가는 것을 느낀다. 두 사람이 나란히 함께 걷는 길, 눈앞에 펼쳐진 풍경은 이전과 달리 새삼스럽게 다가든다. 열차의 선로는 오선지가 되고, 불 밝힌 창문과 가로등은 음표가 되고, 테니스코트에 자리한 나무 한 그루는 깨물면 상큼한 과즙이 흐르는 라임빛 열매가 열리는 ‘테니스나무’가 된다. 하루치의 움직임을 모두 소진한 테니스코트에서는 전혀 다른 이야기가 시작되고 있었다. 바닥에 떨어져 있는 라임색 테니스공들이 가로등 불빛을 받아 무척 율동적으로 느껴졌다. 그것들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지만, 분명 정물은 아니었다. 나무에서 방금 떨어진 싱그러운 열매들처럼 느껴졌달까. 나는 오른쪽 손끝으로 관자놀이를 가리키며 말했다.“한 입 베어 물면 여기까지 새콤한 맛이 쫙 뻗칠 것 같지 않아요? 저 열매요.” _44쪽 러닝 대회를 무사히 마무리한 뒤, 마침내 ‘거래처 관계’라는 데서 오는 심적 부담과 조심스러움에서 벗어나 서로를 마음껏 사랑할 일만 남아 있던 그때, 예상치 못한 사건이 발생하며 미래는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한다. 사건의 여파는 곧 들불처럼 번져나가고, 되돌릴 수도 멈춰 세울 수도 없는 휘몰아침 속에서 두 사람의 관계에도 균열이 인다. 수화기 너머로 한 여자가 이렇게 말했다. “지금 열차를 갈아타는 중인데요, 어제 이 시간대에도 봤던 사람이 똑같은 벤치에 누워 있어서요. 그 러닝 대회 가방 메고 있거든요? 어제랑 옷도 똑같고 자세도 똑같아서 혹시 긴급한 상황인 게 아닌가 해서 전화를 걸었어요……” _72~73쪽 아닌 걸 알면서도 기꺼이 사로잡히고 싶은 마음인간이기에 가능한 서성임과 바라봄, 되돌아봄에 관하여 몸을 쭉 늘여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공간 너머의 풍경을 슬몃 엿보고, 그렇게 목격한 세계에 기발한 상상력을 더하는 것. 윤고은만이 보여줄 수 있는 이 유연한 “까치발의 감각”은 그의 소설세계를 이끌어나가는 핵심 키다. 『테니스나무』의 태오와 미아가 마주하는 세상 역시 그가 그렇게 까치발로 먼저 넘겨다본 풍경. 아마 우리가 곧 맞닥뜨리게 될, 아니 어쩌면 이미 코앞에 닥쳐 도무지 피할 방도가 없는 미래다. 뒤돌아볼 틈을 주지 않고 앞으로 쾌속 질주하는 세상에서, 태오와 미아 두 사람은 현재진행의 방향과 속도를 (비)의지적으로 무화시키고 그 흐름에서 비껴 선다. 서성이고, 멈추고, 부러 되돌아본다. 사람들이 떨어뜨린 유실물을 찾고, 설명되지 않는 비밀이 녹아든 꿈을 꾸고, 살아본 적 없는 시대를 동경하고, 스스로도 해명하지 못할 이유로 별안간 멈춰 서는 존재들. 그러다 마주앉은 서로를 저도 모르게 한참 바라보다 기어코 풍덩, 어찌할 도리 없이 마음을 쏟고야 마는 순간, 우리는 본다. 두 사람의 세계가 미세하게 진동하는 것을. 매끄럽게 설계된 알고리즘의 세계에 포섭되지 않는 인간다움을. 결코 침범당하지 않는 오롯한 우리의 얼굴과 마음을. 확실한 것은 내 삶으로 누군가 쿵쿵거리며 들어왔다는 것이고, 그게 실낱같은 스침에 불과하더라도 이제 나는 그전과 같을 수 없다는 것이다. _18쪽 승객들에게 “여기 사람이 있다, 당신의 말을 듣고 있다”(26쪽)는 안심을 주는 사람, 태오. 극한의 상황에서 인간이 버틸 수 있게 하는 생존 용품을 고민하는 사람, 미아. 이 한 쌍의 연인에게서 윤고은이 오래도록 소설을 통해 건네온 마음이 겹쳐 보인다. 곁에 있는 이들의 불안을 살피고 더 나은 생존법을 궁리하는 일. 『테니스나무』가 끝내 우리에게 전하는 것도 그 다정한 서성임으로부터 번져나가는 찬란한 파동이다. 이상한 사로잡힘이 시작되었다가 사그라드는 지점, 테니스나무는 한 시절의 지표종처럼 서 있다. 그 모든 여름날을 기억한 채로. _201~20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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