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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머리에
프롤로그 1장 인간의 얼굴을 한 제도: 브랜드는 어떻게 감동을 팔았나 박카스-신체검사장의 거짓말과 성실이라는 마취제 영창피아노-포성 속에 울리는 쇼팽, 그 비현실적인 서정의 기만 다시다 손북어국-정성이라는 허울 뒤에 숨은 도구적 가족주의 오리온 초코파이-시베리아의 밤, ‘정’이라는 이름의 달콤한 복종 다음-철조망을 넘은 것은 개구리뿐이었다 삼성생명-아빠의 약속에 가격표가 붙는 순간 갈등의 지형도 2장 새로운 것의 습격: X세대는 정말 자유로웠을까 TTL-신비주의로 포장한 비즈니스적 딜레마 KTF-반란의 언어로 위장된 순응 애니콜 폴더-크기를 접은 자리에 펼쳐진 새로운 구속 LG전자-친숙한 언어로 침투한 낯선 지배자 레간자-상식을 침묵시킨 기술의 오만 마티즈-가짜 상대를 이겨서 진짜 위협을 감추다 신세계백화점-유턴의 자유라는 착각 LG텔레콤-딸이 건넨 사랑, 브랜드가 가로챈 이미지 갈등의 지형도 3장 자본의 생태학: 기술, 자연의 얼굴을 빌려오다 스피드011-기술이 허락하는 고요, 브랜드가 관장하는 자연 아남TV-신기술로 봉합되는 탈자연의 불안 훼미리주스-손으로 까는 오렌지, 천연성이라는 이름의 가상 LG아트비전-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가짜, 그 정교한 함정 대구은행-죽어가는 강을 팔아 살린 이미지의 신탁 KT-우주의 언어를 훔친 자본의 가장 웅장한 거짓말 갈등의 지형도 4장 브랜드, 신이 되다: 신화는 어떻게 모순을 삼키는가 세 전장, 하나의 문법 골드만의 상동구조-사회의 균열이 광고로 흘러드는 방식 가상적 해결의 보수성-자본은 문제의 해결 대신 문제의 지속을 원한다 브랜드, 신이 되다-숨은 신과의 조우 에필로그/보론/후기/추천의 글/주/참고문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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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지금 옛 광고를 다시 읽어야 하는가. 1990년대는 ‘모든 현재의 시작’이며, 오늘 우리의 욕망을 부추기는 문법 대부분이 바로 그 시절에 설계되었기 때문이다. 스마트폰과 알고리즘 그리고 AI가 일상을 재편하는 오늘날에도 자본의 신화 메커니즘은 형태를 바꾸며 여전히 작동하고 있다. 다만 더 깊이 숨고, 더 정교해지고, 더 분산되는 방향으로 진화했을 뿐이다. 소비가 일상이 된 시대에 브랜드의 유혹에서 온전히 자유로운 사람은 없다.
--- p.10 이 책은 ‘대한민국광고대상’ 1회부터 10회(1994~2003년) 수상작 중 대표적인 광고물들에 주목한다. 이 상은 당시 우리나라 최고 권위의 광고상으로 평가받았으며, 수상작이 발표될 때마다 거의 전 일간신문에 보도되는 등 국민적 관심을 끌었다. 이 수상작들은 대체로 제품 위주의 광고가 아니라, 보편적이고 공익적인 가치를 강조하는 이미지 위주의 광고들이었다. 한국인이면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만한 보편적이고 공익적인 주제를 표현해 사회적으로 높은 공감대를 형성했다. 따라서 이 광고물들은 마케팅 효과와는 무관하게 당시 대중이 무엇에 열광하고 무엇에 위로받았는지를 보여주는 증거가 된다. --- p.32 프롤로그에서 살펴보았듯, 광고는 대립하는 두 가치를 통해 갈등을 조성한 다음 브랜드를 그 갈등의 해결자로 내세우는 신화의 문법으로 작동한다. 박카스 광고에서 그 두 가치는 선명하다. ‘안 보여도 군대 가겠다’라는 청년의 의지는 제도를 어기면서까지 실현하고 싶은 인간적인 가치다. 반면 ‘안 보이면 군대 못 간다’라는 규칙은 개인의 희망과 무관하게 작동하는 제도적인 가치다. 이 두 가치의 충돌이 이 광고가 조성하는 갈등의 본질이다. --- p.39 오리온 초코파이 ‘정’ 시리즈 광고가 공전의 히트로 이어진 데는 이유가 있다. 장기 1990년대 한국 사회는 극한의 경쟁과 효율의 논리가 일상 전체를 잠식해 가던 시기였다. 직장에서의 생존, 입시 전쟁, 외환위기 이후의 구조조정. 모든 인간관계가 도구화되어 가는 시대에 ‘정’이라는 단어는 잃어버린 인간성에 대한 집단적 향수를 자극했다. 그러나 이 광고 속 초코파이가 판매한 정은 사실 제도가 허용한 정이었다. 군복 안쪽 주머니에 숨길 수 있을 만큼 작고, 아무도 보지 않는 순간에만 꺼낼 수 있을 만큼 조용하며, 삼키고 나면 다시 굳은 표정으로 경계를 설 수 있을 만큼 일시적인 정. 자본은 바로 그 크기의 정을 팔았다. --- p.56 이 광고의 심층에는 ‘새로운 것 대 오래된 것’의 대립이 작동한다. 그런데 이 광고에서 새로운 것과 오래된 것의 대립은 단순히 디지털 대 아날로그의 정면 충돌이 아니다. 불용성에 대한 유용성, 고정성에 대한 이동성, 크고 무거운 것에 대한 작고 가벼운 것, 고정된 상식에 대한 발전한 기술의 대립이 서류 가방이 폴더폰으로 변신하는 그 짧은 순간 안에 압축적으로 담긴다. 크고 무거운 서류 가방은 오래된 것의 기호다. 아날로그 시대의 권위와 성공을 상징하지만, 그것은 동시에 무겁고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기도 하다. 반면 작고 가벼운 폴더폰은 새로운 것의 기호다. 서류 대신 정보를, 고정된 공간 대신 이동성을, 묵직한 권위 대신 민첩한 유용성을 상징한다. --- p.90 이 10편의 광고들이 공유하는 하나의 문법이 있다. 새로운 것은 오래된 것을 일방적으로 파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유를 추구하는 청년은 사장과 악수하고, 디지털은 재래시장 할머니의 웃음을 빌려오며, 작은 마티즈는 어미 코끼리의 등 뒤에 숨고, 유턴하는 새는 언제나 자본의 공간 앞에서 방향을 바꾼다. 새로운 것의 가치는 오래된 것의 가치를 품에 안으면서 등장한다. 그래야만 대중이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 p.120 광고는 극도로 절제되어 있다. 어두운 배경, 두 손 그리고 오렌지. 화면을 가득 채운 것은 복잡한 서사가 아니라 단순한 행위의 연속이다. 두 손이 썬키스트 로고가 새겨진 오렌지를 깐다. 그러고는 오렌지를 반으로 가른다. 곧이어 믹서기가 작동되는데, 갑자기 주스 병으로 바뀐다. 아이가 컵에 담긴 주스를 맛있게 마신다. 다섯 개의 샷, 그게 전부다. 그런데 이 단순한 담화 안에 이 광고의 모든 것이 숨어 있다. 이 광고를 분석하는 핵심 과제는 화면에 드러나지 않은 것, 곧 보이지 않는 대립쌍을 찾아내는 데 있다. --- p.139 이 광고가 방영된 2003년, 한국의 도시에서 별자리를 맨눈으로 볼 수 있는 밤하늘은 빛 공해로 점점 사라져가고 있었다. 역설적으로 KT의 통신 인프라가 확장될수록, 우리가 올려다볼 수 있는 별의 수는 줄어들었다. 자연의 섭리를 계승한다고 선언한 기술이 사실은 그 섭리를 밀어내고 있었던 것이다. 인류가 수천 년 동안 올려다보던 그 하늘의 자리에 이제 KT의 위성이 떠 있다. 별은 여전히 거기 있지만, 우리가 보지 못할 뿐이다. 그리고 그 사실을 가장 잘 아는 것은 우리에게 별자리 대신 위성을 팔았던 자본일 것이다. --- p.158 장기 1990년대 한국 사회가 겪었던 가치 갈등, 곧 인간적인 것과 제도적인 것의 충돌, 새로운 것과 오래된 것의 긴장, 자연적인 것과 인공적인 것의 대립은 광고라는 거울을 통해 고스란히 투사되었다. 그런데 광고는 수동적인 거울이 아니었다. 사회적 갈등을 자신의 내부로 끌어들여 재구성하는 능동적인 담론의 현장이었다. 골드만의 상동구조 개념을 적용하면, 이 책에서 분석한 33편의 광고가 왜 하필 그 시대에 그 형식으로 등장했는지가 설명된다. 성수대교가 무너지고 삼풍백화점이 주저앉던 시대에 영창피아노는 제도의 폭력 앞에서도 인간의 음악이 살아남는다는 환상을 심어주었고, 외환위기의 충격이 개인의 삶을 뒤흔들던 시대에 마티즈는 작아도 강하다는 위안의 서사를 제공했으며, 환경 파괴에 대한 불안이 처음으로 대중의 언어가 되던 시대에 KT는 첨단 기술이 자연의 원시적 섭리를 계승한다는 희망을 펼쳤다. 사회의 균열이 깊어질수록 브랜드의 신화적 중재는 더욱 화려하고 정교해졌다. --- p.175 브랜드라는 신은 여전히 우리 곁에서 매혹적인 미소를 보내고 있다. 이제 화려한 신화의 옷을 벗고 알고리즘과 데이터라는 투명한 얼굴로 다가와 우리를 자신의 시스템 안으로 포섭한다. 형태가 달라졌을 뿐 모순을 소비로 봉합하라는 자본의 명령은 여전히 유효하다. 신은 사라지지 않았다. 다만 더 정교하게 변장했을 뿐이다. 30년 전 나의 광고비평은 ‘그냥’이라는 폭력이 시작되고 미디어가 자본의 권력 앞에 굴복하면서 멈춰 섰다. 그러나 비평은 그 신이 멈춰 선 자리에서 다시 시작되어야 한다. 브랜드가 설계한 화려한 환상을 걷어내고, 우리 삶의 비릿한 실재와 마주할 때 비로소 우리는 진정한 주체로 설 수 있다. --- p.19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