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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사
추천의 글│고통은 정교하고 복잡한 감각 플라나리아∀ 주간 고속도로 건강병 눈사태가 일어날 때 플라나리아∅ 몰입형 어쩌고저쩌고 성장 체험 캠프 지금이 바로 그날 플라나리아∄ 라스베이거스 저자의 말│남은 것이라고는 그저 여생뿐이다 역자의 말│추락하는 탄도 밖에서 건네는 위로 해설│고기 분쇄기로 살아가는 미덕에 대하여 |
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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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 나는 길고 긴 꿈을 꾸었다. 꿈속은 무척이나 밝았다. 마치 역광 때문에 과노출로 찍힌 사진 같았다. 끝없이 이어지는 기다란 복도 위로 나무 그림자가 일렁거렸고, 주변 가득 하얀빛이 모든 공간을 채우고도 계속해서 부풀어 올랐다. 우이샹의 얼굴이 아주 가까이에 있었다. 도시락에서 따뜻한 김이 솟구치며 피어올랐다. 햇빛, 지나치게 눈부신 햇빛이 끊임없이 분열과 증식을 반복하고 있었다.
--- p.22~23 주간 고속도로 제5호선은 곧게 쭉 뻗어 있었다. 정속 주행 기능을 켜두면 핸들을 거의 건드릴 필요가 없을 정도였다. 하늘에서 내려다본다면 어둑하고 빛줄기 하나 없는 광야 사이에 오직 인류만의 전유물인 가늘고 긴 탯줄이 빛을 내며 허공으로 뻗어 나온 것처럼 보일 터였다. 이제 막 밤이 되어 하늘 대부분이 어둑한 와중에 오직 지평선의 작은 틈새 사이로 어두운 보랏빛의 빛무리가 희미하게 새어 나오고 있었다. --- p.56 “돈을 엄청 많이 벌어서 뭘 할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말했다. “난 그저 복수하고 싶을 뿐이야.” --- p.109 “아주 오래전 일일지언정 나는 그게 환상에서 비롯된 가짜 기억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더 어렸을 때는 의형이 열성을 다해 내게 바둑을 가르치던 시기가 분명히 있었다. 그때 의형은 맹기 연습을 반복적으로 시켰다. 우리는 마주 보고 앉아 녹음기에 대고 목소리로 한 수 한 수 대국을 두었다. 처음에 나는 중반도 못 가서 어디에 돌이 있고 어디가 비었는지 헷갈리기 일쑤였다. “왜 안 되지? 왜 안 되는 거야?” --- p.127 내 손끝에 총기 홀스터의 가죽 감촉이 느껴지던 그 순간, 신닝이 내 손을 짓눌렀다. 조금의 인기척도 없이 어느새 내 뒤로 다가와 있었다. 신닝은 내게 몸을 바짝 밀착하면서 팔로 내 오른쪽을 감싼 뒤, 트렁크 속 백팩 안에 있던 내 손목을 꽉 짓눌렀다. 신닝의 뜨거운 숨결이 내 귓가에 닿았고, 손가락이 내 살 속을 하나하나 파고들었다. 우리가 처음 만났던 그날처럼 신닝의 손은 기이할 정도로 뜨거웠다. 마치 캘리포니아 하늘에 매일 드높게 떠오르는 태양처럼. --- p.212 나는 언젠가 청소년이 된 이 가냘픈 몸이 그 유명한 기찻길 위에 엎드려 있는 모습을 상상했다. 기차가 점점 다가올 때의 진동과 열기, 그리고 거대한 소리에 소년은 두려워 벌벌 떨 것이다. 더 이상 누군가의 등 뒤로 숨을 수 없을 것이고, 극한의 외로움과 절망 속에서 기차를 그대로 맞이하다 결국에는 그 아래에 짓눌려 고깃덩어리로 조각나고 말겠지. --- p.243 두 눈을 감고 있는 그 어둠 속에서도 나는 눈앞의 광경이 보이는 것만 같았다. 사막 한가운데에 놓인 도시, 온갖 허황된 인공물이 만들어 낸 황홀경의 한복판에서 오만가지 색채의 조명이 비추고 있다. 눈 깜짝하면 사라져 버릴, 애초에 이곳에 존재해서는 안 되었을 이 액체에 찰나의 형체를 선사하면서. --- p.28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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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주하듯 써 내려가 자본주의의 썩어빠진 심장을 정조준하는 작품. 대담하고도 거침없는 이야기 속에서 억눌러온 자기혐오와 죄책감, 엇나간 욕망과 폭발한다.”
-아넬리즈 첸(《CLAM DOWN》, 《SO MANY OLYMPIC EXERTIONS》의 저자) “인간의 가장 금기시된 욕망과 가장 관습적인 성공의 기준을 한데 엮어내며 끊임없이 예상을 뒤엎는 작품.” -린 킹(2024년 전미도서상 수상자) “이 책은 세계화된 21세기의 삶을 향해 보내는 잔혹한 시다.” -미셸 쿠오(《READING WITH PATRICK》의 저자) “우리는 할 수 있는 게 없어” 성공적인 삶과 자유로운 시대 이면에 자리한 고통 《탄흔》은 타이완과 미국을 배경으로 한다. 소설 속 인물들은 아시아의 작은 섬 타이완에서 학창 시절을 보내고, 더 넓은 세계와 가능성을 찾아 “어둑하고 빛줄기 하나 없는 광야 사이에 오직 인류만의 전유물인 가늘고 긴 탯줄이 빛을 내며 허공으로 뻗어 나온” 것처럼 보이는 거대한 대륙 미국으로 향한다. 그러나 이민자와 성소수자라는 정체성은 또 다른 경계를 만들고 보이지 않는 벽이 되어 그들을 둘러싼다. 타이완대학교를 졸업하고 미국에서 석사 학위를 받은 뒤 구글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작가 데라오 데쓰야는 자신이 경험한 세계를 소설 속에 끌어들이며 성공이라는 이름 아래 가려진 허무와 좌절, 거대한 시스템 속에서 개인이 느끼는 불안과 공허를 보여준다. 존재의 이유를 찾는 제헝, 자신만은 진짜인지 궁금해하는 밍헝, 조각난 자신을 내던지고야 만 샤오화, 현실에 순응하면 살아가기로 선택한 신닝, 그리고 다른 이를 지배하지만 정작 원하는 것은 가질 수 없었던 우이샹까지. 서로 다른 삶을 살아가는 인물들은 모두 자신을 규정하는 환경과 관계 속에서 흔들린다. 그들의 고통은 지극히 개인적이지만, 동시에 한 시대가 공유하는 감정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그 끝에서 발견하는 것은 명쾌한 해답보다는 애써 외면해 온 자신과 마주할 때 찾아오는 해방감일지도 모른다. “그럼, 나는 진짜인 거야?” 욕망과 치욕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간결하고 섬세한 문체 소설 속 인물들은 끊임없이 자신에게 질문한다. 나는 진짜인가, 나는 다른 사람들과 다른가, 지금의 삶은 내가 선택한 것인가. 자신은 특별하다는 믿음과 평범한 존재에 불과하다는 두려움 사이에서 그들은 수없이 흔들린다. 그러나 “별이 무슨 쓰레기처럼 잔뜩 널려 있네”라는 문장이 암시하듯, 자신들 역시 세상에 넘쳐나는 수많은 존재 가운데 하나일 뿐이라는 잔인한 사실과 마주하게 된다. 제헝 역시 예외는 아니다. 거대한 시스템 밖으로 탈출하고자 한 그의 죽음은 누군가에게는 상처로, 누군가에게는 풀리지 않는 의문으로, 누군가에게는 지워지지 않는 고통으로 새겨진다. 데라오 데쓰야는 이들의 삶을 친절하게 설명하거나 판단하지 않는다. 대신 거침없는 욕망과 치욕, 비뚤어진 애정과 성적 욕구까지 숨김없이 눈앞에 펼쳐 보인다. 처음에는 낯설고 충격적으로 느껴지는 인물들의 행동은 이야기가 이어질수록 조금씩 이해의 영역으로 들어온다. 이해할 수 없었던 인물들의 서사가 어느 순간 삶의 이야기가 되고, 동의할 수 없었던 인물들의 감정이 어느 순간 하나의 감각이 된다. 데라오 데쓰야가 그려내는 세계는 허무하지만 끈질기고, 처절하지만 이상하게도 다정하다. 그는 섬세한 손가락으로 상처를 두드리듯, 우리가 이름 붙이지 못한 감정을 건드려 고통에 공감하게 한다. “고통의, 고통의, 고통을 맛보게 해줄게” 서로 엇갈리면서 연결되는 단편이 만드는 하나의 세계 《탄흔》에는 아홉 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제헝을 화자로 삼아 소설의 주제를 이끌어 가는 〈플라나리아〉 연작을 비롯해, 린룽싼 문학상을 받은 작품으로 남겨진 이들의 외로움을 그린 〈주간 고속도로〉, 엘리트 대학생들의 좌절과 실패를 다룬 〈건강병〉, 어린 바둑기사의 천재성과 그로 인해 발생하는 후회와 집착을 그린 〈눈사태가 일어날 때〉, 미국이라는 거대한 대륙에서 복잡한 정체성을 안고 살아가는 이들의 현실을 보여주는 〈몰입형 어쩌고저쩌고 성장 체험 캠프〉, 그리고 얽히고설킨 인물과 사건의 실타래를 풀어내며 소설집을 마무리하는 〈라스베이거스〉까지. 하나의 단편에서 스쳐 지나간 인물이 다른 단편의 주인공으로 다시 등장하며, 독자는 각자의 입장에서 전혀 다른 감정을 마주하게 된다. 이러한 구조는 인물들의 심리를 입체적으로 드러내는 동시에 각각의 단편을 하나의 세계로 엮어낸다. 《탄흔》은 세상이 정한 시스템을 따라갈 것인지, 아니면 그 바깥을 꿈꾸며 고통스러운 질문을 멈추지 않을 것인지를 끊임없이 묻는다. 그러나 어느 하나를 정답으로 제시하지는 않는다. 성공과 실패, 욕망과 치욕, 순응과 저항 사이에서 흔들리는 인물들의 삶을 끝까지 응시할 뿐이다. 그리고 아홉 편의 이야기가 끝난 뒤에도, 그들의 욕망과 고통은 오래도록 독자들을 놓아주지 않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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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성년의 순수한 폭력과 천재들이 겪는 선명한 고통은 흡사 핵 재앙과도 같다. 방대한 배설 시스템과 여러 영역 간의 교차와 충돌을 통해 데라오 데쓰야는 냉정하게, 때로는 극도의 고통에서 비롯된 초월적인 감각으로 이미 폐기된 원자로에 새롭게 금빛 생명을 불어넣는다. 독특하고도 통쾌하면서 중독성 있는 메타적 섹시함을 지닌 작품이다. - 바이차오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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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위 1퍼센트의 인간만이 이해할 수 있는 심연이 있다. 그 1퍼센트의 격차가 얼마나 거대한지, 아무리 온몸과 마음을 짓이겨 펼쳐놓아도 결코 채울 수 없는 간극인지, 이를 목도한 자들만 아는 심연이다. 《탄흔》은 온몸이 짓이겨지도록 처절하게 쓰인, 나머지 99퍼센트의 책이다. - 주유쉰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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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기와 잔혹은 고독의 발현이며, 간결한 말과 여백은 언어 이면의 절제다. 안팎으로 뻗은 상처는 결국 모두 자기 자신을 베어내고 만다. 데라오 데쓰야의 문장은 절제되어 있지만, 비옥한 흙을 파낸 뒤 그 안에서 꿈틀대는 수천 마리의 토막 난 지렁이처럼 광적으로 자기 재생을 거듭하며 더 많은 은유를 틔워냈다. - 린카이룬 (진심과 순정을 다하는 생선 장수이자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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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흔》은 근래 가장 가학적이면서도 도발적인 작품으로, 동시대 타이완이 겪는 허무를 낱낱이 그려낸다. 책을 읽는 동안, 편안한 즐거움을 넘어 고통과 환희를 동시에 경험할 수 있다. 처음에는 묘한 수치심이 들다가도 이내 더 많은 것을 갈구하게 된다. - 홍밍다오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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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승리자’로 불리는 자들을 해부한 정직한 걸작이다. 그 칼끝이 닿는 곳마다 뼛속까지 시리게 파고든다. - 지다웨이 (타이완국립정치대학교 타이완문학연구소 부교수《동성애 문학사》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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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아름다운 유리로 된 동물원을 들여다보는 것 같다. 그 안에서는 ‘천재’라는 이름의 종種들이 스스로를 학대하고 타인을 짓밟으며, 잔혹하고도 격렬하게 몸부림치고 있다. - 추창팅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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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프란시스코에서 구글 엔지니어로 일했던 경험은 데라오 데쓰야가 관련 분야나 미국에 거주하는 타이완인들을 묘사하는 데 있어 탁월한 실력을 발휘하게 해주었다. 그가 주목받는 이유는 세 가지다. 첫째, 그는 냉철하고 간결하면서도 생동감 넘치는 문체로 독자에게 강렬한 쾌감을 선사한다. 둘째, 이공계 동성애자들이 누리는 풍족한 대우가 곧장 행복한 삶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일반적인 상상을 뒤집는 통찰이다. 그들은 오히려 고압적인 엘리트 환경 속에서 더 깊은 고독을 느꼈을지 모른다. 작품 속에는 자살했거나, 자살을 기도하거나, 혹은 다른 동성애자의 자살에 대한 기억을 품고 살아가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이런 절망감의 묘사는 단순히 감정을 자극하는 장치로 쓰인 것이 아니다. 이를 일종의 ‘애도문’으로 이해할 때 그 의미가 더 깊어질 것이다. 셋째, 동성애적 욕망이 짙게 배어나지만, 이것이 긍정적인 경험을 통해 강화되는 법이 극히 드물다. 성적 각성이나 육체적 만남이 설령 수치심과 좌절, 혹은 공허함을 동반하더라도 그 역시 성적 욕망의 일부로 남는다. 이로써 데라오 데쓰야가 다루는 동성애자는 ‘산산이 부서진 개인’을 끝까지 외면하지 않는 문학적 전통의 계보에 합류하게 되었다. - 장이쉬안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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