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ephane Kieh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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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을 참는 만큼만 머물 수 있는 곳, 바다
물속은 우리가 오래 머물 수 없는 곳이다. 물에 뛰어들어 잠수했다가도 더 이상 숨을 참기 어려워지면 다시 수면 위로 올라와야 하기 때문이다. 잠수라는 건 그렇게 애초에 시간이 정해진, 유한한 방문일 것이다. 그 짧은 시간 안에 아이는 산호를 청소하는 물고기, 호기심에 곁으로 다가오다 이내 몸을 틀어 달아나는 생물, 천천히 몸을 흔드는 산호의 바닷속 춤을 눈에 담는다. 머물 수 있는 시간이 짧기에 그 풍경은 아이의 마음에 더 선명하게 새겨졌을 것이다. 그러니 우리가 무언가를 온전히 아름답다고 느끼는 순간은 어쩌면 그것을 영영 가질 수 없다는 걸 어렴풋이 알아차릴 때가 아닐까. 그래서인지 아이는 혹등고래에게 마음을 빼앗긴다. 숨을 참은 채 바다 끝, 아주 깊고 깊은 곳까지 헤엄칠 수 있다는 그 고래는 아이가 닿을 수 없는 세계에 자유롭게 드나드는 존재다. 사람들은 말한다. 혹등고래는 아주 오래 헤엄칠 수 있다고. 그 말을 듣고 아이는 다시 물속으로 들어간다. 출렁이는 파도만큼이나 이 바다를 알고 싶은 마음이 컸기 때문일 것이다. 동경이란 늘 그런 식으로 우리를 한 걸음 나아가게 만든다. 나보다 멀리 가는 존재를 바라보다 보면, 어느새 나도 조금 더 깊은 곳까지 가 보고 싶어지는 법이니까. 이 책은 그 동경이 우리를 어디로 데려가는지를 보여 준다. 아이는 고래처럼 오래 숨을 참을 수는 없지만, 고래가 알려 준 방향을 향해 기어이 한번 더 잠수한다. 그리고 그 두 번째 잠수에서 첫 번째에는 미처 보지 못했던 것들과 마주하게 된다. 바다가 감추고 있던 것 파랗고 파란 바다, 페트병, 플라스틱, 그물, 장난감, 살아 있는 것들, 또다시 플라스틱, 속이 빈 껍데기… 두 번째 잠수에서 아이가 본 것을 이 책은 이렇게 나열한다. 아름다운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굳이 나누지 않고, 살아있는 것들 사이에 플라스틱을 슬쩍 끼워 한 호흡으로 읊는다. 위협을 고발하는 듯 크게 외치는 대신 그저 눈앞에 보이는 대로 담담히 늘어놓는 것이다. 그런데 이 담담함이 오히려 마음을 오래 붙든다. 아름다움과 상처가 한자리에 뒤섞여 떠다니는 풍경은 우리가 사는 세상의 실제 모습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아이는 물결에 실려 온 것들이 거품과 뒤엉켜 커다란 덩어리로 떠다니는 모습을 바라본다. 밀려들었다가 빠져나가기를 거듭하는 파도가, 이것들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일러 주는 듯하다고 아이는 느낀다. 아주 머나먼 세상에서 떠내려온 잔해들. 그러니까 그 상처는 바다 스스로 만든 것이 아니라 바다 바깥의 어딘가에서 흘러든 것이다. 내게 위로를 건네고 아름다움을 아낌없이 나누어 주던 바다가 그 온기만큼이나 깊은 상처를 안고 있다는 사실 앞에서 우리는 잠시 멈추게 된다. 그 상처가 실은 누구의 것인지를 묻게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은 죄책감을 앞세우지 않는다. 바다는 묵묵히 제 상처를 지워가지만 우리를 둘러싼 세상이 남긴 기억만은 잊지 않도록 끊임없이 일깨워 준다고 아이는 말한다. 아름다움을 보았다면 그 아름다움이 안고 있는 상처까지 함께 기억하는 일. 그 두 가지의 마음은 결코 떨어져 있지 않다. 돌아오는 것들을 기다리는 마음 혹등고래는 벌써 떠날 채비를 하고 있다. 아이는 묻고 싶은 것이 많았지만, 고래는 지느러미를 크게 한 번 저으며 작별을 건네고는 다음 여정을 향해 힘차게 나아간다. 아이는 아쉬움을 누르며 텅 빈 바다를 향해 손을 흔든다. 만남이 짧을수록 이별은 더 선명하게 남는다. 하지만 이 이별에는 어쩐지 슬픔만 있지는 않다. 혹등고래는 해마다 잊지 않고 이곳을 찾아오는 손님이었으니까. 떠난다는 건 곧 돌아올 것이라는 약속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그래서 아이는 이렇게 다짐한다. 고래가 돌아오는 계절, 나는 언제나 이 바닷가에 남아 있을 거라고. 내 마음을 가져가 버린 혹등고래가 돌아오기를 손꼽아 기다리겠다고. 무언가를 기다린다는 건 그것이 다시 돌아올 세상을 내가 지키겠다는 마음과 맞닿아 있지 않을까. 고래가 돌아올 바다가 여전히 파랗기를 바라는 마음. 그 바다에서 잔해 대신 산호와 물고기와 춤이 남아 있기를 바라는 마음. 기다림은 그렇게 책임의 얼굴을 하기도 한다. 혹등고래는 정말 아이에게 용기를 준 존재였을까. 깊은 곳까지 헤엄쳐 가 아름다움과 상처를 모두 마주할 용기, 그러고도 다시 이 바닷가에 남아 기다릴 용기, 언젠가 파랑과 고래가 정말로 돌아오는 날, 그때 부끄럽지 않을 바다를 내어 줄 용기. 이 푸른 색의 그림책은 그 바람을 우리 마음 깊은 곳에 가만히 내려놓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