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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의 글 _ 평화네트워크 정욱식 대표
다리를 잃은 걸 기념한다고? 1차대전과 2차대전은 하나의 전쟁이다 난 내 이웃을 몰라. 하지만 그들이 미워 전쟁은 피할 수 없는 것 세계의 분할 즐겁게 불행으로 걸어 들어가다 전 세계가 싸우다 잊혀진 전투: 지중해와 알프스 바다, 수만 명의 무덤 완전한 파괴 인간됨의 끝 영웅이란 무엇일까? 전쟁을 통해 사업을 일으키다 전쟁은 언제 끝날까? 세계를 변화시킨 혁명 전망 없는 전투 독일 혁명의 짧은 겨울 위대한 나라에 대한 어리석은 꿈 누구 잘못이었을까? 누가 승리했을까? 마지막 전쟁은 언제였는가? 수수께끼의 해답 연표 지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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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이상하지 않아? 다리를 잃었는데 그날을 축하하고 기념한다니! 아무튼 어릴 적 엄마는 내게 그날이 할아버지가 장애를 입은 것을 축하하는 날이라고 설명해 주셨어. 나는 처음에는 엄마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지. 하지만 나중에 보니 다 이유가 있었어. 이 책은 그 이유를 설명하는 책이야. 그리고 또 여러 가지 답이 나올 수 있는 ‘1차 세계대전은 지금의 우리와 과연 무슨 관계가 있을까?’라는 질문에 관한 책이지.
--- p.11 할머니, 할아버지는 나치 독재 시대에 얼마나 많은 유대인들이 죽임을 당했는지 잘 몰랐을 수도 있어. 하지만 유대인들이 재산을 다 빼앗기고, 직업도 빼앗기고, 살던 지역에서 추방당하는 건 분명히 보았을 텐데……. 할머니, 할아버지는 그것을 나쁘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 틀림없어. 아니 그 반대였지. --- p.37 젊은 영국인 줄리앙 그렌펠의 글을 보면 유럽의 많은 군인들이 얼마나 잘못된 기대를 품고 전쟁에 나갔는지를 알 수 있어. 그는 이렇게 적었어. “나는 전쟁이 좋다. 전쟁은 커다란 소풍과 같다. 하지만 소풍처럼 하찮은 일이 아니다. 나는 너무나 좋았고, 너무나 행복했다.” 그렌펠은 1915년의 어느 봄날 북프랑스 전투에서 중상을 입어 스물일곱의 나이로 숨졌어. --- p.46 유럽 사람들은 아프리카나 아시아 민족들보다 자신들이 더 우월하다고 여겼어. 문명화된 민족이라고 말이야. 런던이나 파리, 베를린의 통치를 받으면 유럽의 발달한 문명이 전해지니까 아프리카나 아시아 사람들에게도 유익이 된다고 말했지. 따라서 식민지의 ‘미개인’들은 고마워해야 한다고 생각했어. --- p.60~61 1914년부터 분명했던 것은 이제 전쟁은 더 이상 군인들만의 싸움이 아니라는 것이었어. 이제 전쟁은 군인과 민간인을 구분하지 않고, 적국 전체, 그리고 적국 국민 모두가 대상이 되는 것이었어. 바로 총력전이 되었던 거야. --- p.124 1차대전 중에는 그 누구도 참전한 군인들이 정신적으로 온전할 수 있을까를 묻지 않았어. 그 반대였어. 군인들은 평화 시라면 아주 병적이다 못해 광적으로 여겨질 만한 태도를 지니도록 훈련받았지. 다른 사람을 가능하면 많이, 수단을 가리지 않고 살육하도록 말이야. 적은 무찔러야만 하는 대상이라고 주입받았어. 전쟁을 하고자 하는 각국 정부는 국민들에게 그런 메시지를 입력했지. --- p.133~134 기관총과 폭탄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리히트호펜 자신이 정확히 알 수 있었다는 것은 확실해. 그는 낮에 작전을 수행했고, 2차대전의 조종사들보다 목표물 위를 훨씬 낮게 날았지. 이런 사람이 영웅이었다고? 영웅이라기보다 킬러였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게다가 리히트호펜은 인종차별주의자였어. 자신이 쏜 기관총에 러시아인들이 혼비백산해서 뿔뿔이 흩어진 것에 대해 “아시아인들처럼 개화가 덜 된 민족들은 교양 있는 영국 사람들보다 겁이 더 많다.”라고 적었지. --- p.148 2003년, 미국의 주도로 이라크전이 시작되었을 때 ‘외과적 타격(surgical strike)’이라는 표현이 등장했어. 이 말은 메스를 든 외과의사처럼 전투기와 로켓포로 정밀 폭격을 가하는 것을 의미하지. 나는 이런 표현으로 전쟁이 마치 무해한 일인 듯한 이미지를 조성하는 건 꽤 위험한 일이라고 생각해. 외과적 타격 역시 사람을 죽이는 거잖아. --- p.241 우리 할아버지와 같은 상황이라면 나는 어떻게 했을까? “하느님이 영국을 벌주시기를.”이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을까? 나는 프랑스 젊은이들, 코르시카와 알제리의 젊은이들과 싸우기 위해 기차에 올랐을까? 아니면 당시에도 이미 있었던 평화주의자 편에 속했을까? 1931년 1차대전에 대해 “군인들은 살인자인가?” 하고 물었던 쿠르트 투콜스키처럼 전쟁을 비판하는 글을 썼을까? 탈영해서 총살당했을까? --- p.250~25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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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8월 24일, 할아버지가 다리를 잃은 날을 기념하는 이유
“우리 외갓집에서는 해마다 8월 24일이면 파티를 했어. 1914년 8월 24일에 우리 외할아버지가 왼쪽 다리를 잃으셨거든. 정말 이상하지 않아? 다리를 잃었는데 그날을 축하하고 기념한다니! 아무튼 어릴 적 엄마는 내게 그날이 할아버지가 장애를 입은 것을 축하하는 날이라고 설명해 주셨어. 나는 처음에는 엄마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지. 하지만 나중에 보니 다 이유가 있었어. 이 책은 그 이유를 설명하는 책이야. 그리고 또 여러 가지 답이 나올 수 있는 질문 ‘1차 세계대전은 지금의 우리와 과연 무슨 관계가 있을까?’에 관한 책이지.” (본문 11쪽) 2014년은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지 100년이 되는 해다. 1차대전은 세계 역사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긴 전쟁으로 기록되어 있다. 산업혁명 이후 급속히 진행된 기술발전과 국제화 그리고 서구 열강들의 탐욕스런 식민지 확대로 인해, 전쟁은 사상 최초로 전면전, 총력전의 형태를 띠었으며, 세계 거의 모든 나라들이 전쟁에 휘말려들게 되었다. 해마다 8월 24일이 되면, 이 책의 저자 니콜라우스 뉘첼의 외가 식구들은 한자리에 모여 외할아버지 아우구스트 뮐러가 다리를 잃은 걸 기념하는 파티를 한다. 원래 목사였던 아우구스트 뮐러는 독일 군인으로 1차대전에 참전했고, 1914년 8월 24일 동프랑스에서 전투 도중 종아리에 포판 파편을 맞았다. 뮐러는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했고, 가스괴저병이 생기면서 결국 한쪽 다리를 절단하게 되었다. 이 책은 저자가 어릴 적 가졌던 ‘왜 할아버지가 다리가 잃은 걸 기념하나?’라는 의문에 대한 답을 찾으려는 시도에서 출발해 ‘1차대전이 지금의 우리와 무슨 관계가 있는지’를 찬찬히 짚어보고 지금 우리에게 전쟁과 평화가 어떤 의미를 갖는지 생각해본다. 평범한 사람들이 왜 ‘기꺼이’ 전쟁터로 달려갔나? 19세기 말 ~ 20세기 초 강대국들은 세계 곳곳에 경쟁적으로 식민지를 늘려가고 있었고, 사회진화론의 영향으로, ‘크고 힘 있는 나라가 되어 다른 나라와의 경쟁에서 이겨야 한다’는 인식이 많은 사람들의 머릿속에 뿌리내리고 있었다. 또한 민족주의의 발흥으로 다민족국가 지배자들의 권력이 위태해지고 있었다. 저자의 할아버지 아우구스트 뮐러는 그렇게 전쟁은 피할 수 없다는 분위기 속에서 자랐다. 식민지 확대를 원하고 각종 자원과 영토를 탐내던 독일 황제와 정부는 그 길에 방해가 되는 영국과 프랑스가 독일을 제압할 것이라고 국민들에게 겁을 주었고, 다른 사람들을 만나거나 신문을 보는 것밖에는 정보를 얻은 길이 없었던 뮐러는 정부의 말을 자연스럽게 믿게 되었다. 역시 평범한 젊은이였던 할머니 마르타 뮐러도 자신의 노트에 전쟁을 독려하는 시들을 잔뜩 적어놓고 있었다. 목사였던 외증조할아버지는 예배 시간에 “하느님이 영국을 벌하시기를.”이라는 말로 설교를 끝맺기도 했다. 전쟁이 시작되고 나서 독일과 다른 여러 나라의 정부는 군인들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살육할 수 있도록,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도록 세뇌시켰고, 일반 국민들에게는 다양한 프로파간다를 통해 군국주의와 외국인 혐오, 인종차별을 심어놓으려고 했다. 살육을 잘한 사람은 ‘전쟁 영웅’으로 추앙받았고, 전쟁을 막기 위해 노력한 사람에게는 ‘배신자’라는 낙인이 찍혔다. 1차대전은 누구에게 고통을 주었나? 1차대전은 그전의 전쟁과는 달리 총력전의 형태로 진행됐다. 전쟁은 전선에서 군인 사이에서만 벌어진 것이 아니라, 나라와 국민 모두가 전쟁의 위협에 노출되었다. 1차대전의 군인 사망자 수는 900만 명이었고, 민간인 사망자 수도 800만 명이나 되었다. 많은 민간인들은 폭격이나 총격이 아닌 질병과 굶주림으로 사망했다. 전쟁의 위험과 죽음의 위협을 모른 채 1차대전에 참전한 군인들 중 1900만 명은 부상을 당하거나 장애를 입었다. 참전군인들은 신체적 피해만 입은 것이 아니었다. 프로파간다, 군국주의, 인종차별주의, 쇼비니즘으로 얼룩진 분위기에서 자랐던 그들은 이미 전쟁 전부터 건강한 정신 상태가 아니었고, 전쟁 중에는 ‘조국을 위해’ ‘무조건 사람을 죽여야 하는’ 상황을 맞았다. 대학생일 때 참전했던 프란츠 블루멘펠트는 “이곳 사람들 사이에 감도는 믿을 수 없을 정도의 야만성을 견디기가 힘들다”면서 자신의 야만화가 두렵다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 전쟁이 끝난 후, 수년간 살육과 폭력 속에서 지낸 군인들이 돌아오면서 사회에도 영향을 끼쳤다. 1920년대 독일은 시민전쟁에 버금가는 전쟁, 싸움, 정치적 암살로 얼룩졌고, 그 이후 폭력에 기반한 정치적 조류가 우세해졌다. 죽음을 매일같이 경험하고 인간에 대한 고통에 감정적으로 완전히 무디어진 또 다른 참전군인 아돌프 히틀러는 2차대전을 일으켜 전 세계를 유례없는 불행에 빠뜨린 것은 물론, 600만 명의 유대인을 학살하기도 했다. 일반인들의 경제적 고통 또한 심각했다. 많은 독일 국민들은 전쟁 채권을 구입하느라 재산이 바닥났고, 독일 정부의 무리한 화폐 발행으로 일반인들의 재산 가치는 하루하루 떨어져갔다. 1916~1917년 독일인들은 그전까지 동물 먹이로 사용하던 순무로 끼니를 이어갔고, 이 시기 70만 명의 독일인이 굶주림과 영양실조로 사망했다. 그런 와중에 독일 기업 바이엘(Bayer)과 바스프(Basf)는 독일군에 독가스를 납품하고, 폭약 제조 원료도 생산하면서 오늘날 세계적 기업이 되는 발판을 마련했다. 또한 독일의 BMW는 독일군의 제복을 만들었으며, 프랑스의 르노는 프랑스군과 미군에 전차를 대량 납품했다. 전쟁은 대부분의 국민들에게는 고통을 안겨주었지만 어떤 이들에게는 부를 가져다주기도 했다. 전쟁의 얼굴을 바로 보아야 평화가 온다 다리를 잃은 걸 기념합니다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1차대전의 고통만이 아니다. 저자는 아직도 세계 곳곳에서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현실을 지적하며, 사람들이 전쟁의 더럽고 추한 얼굴을 바로 보고 “전쟁을 해야 한다.”라는 말을 중단할 때 전쟁이 끝난다고 주장한다. ‘국익’ ‘위대한 나라’ 등에 대한 잘못된 인식과 핵무기 같은 위험한 무기가 존재하는 한 전쟁을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한다. ‘전쟁을 끝낼 전쟁’이라던 1차대전도, ‘전쟁을 영원히 끝내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었다는 원자폭탄도 전쟁을 끝내지 못한 것처럼 말이다. 최근 동북아시아에서는 각 나라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면서 국가 간 긴장이 점점 고조되고 있다. 동북아 주변국들은 경제발전을 토대로 국방력 강화에 힘쓰고 있으며, 자국의 이익을 위한 치열한 외교전쟁을 벌이고 있다. 특히 북한과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있는 우리나라가 느끼는 긴장감은 더욱 크다고 할 수 있다. 1, 2차 세계대전을 겪은 유럽은 화해와 협력을 통해 통합의 길로 가면서 평화를 정착시키고 있다. 유럽처럼 한반도와 동북아에서도 평화를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전쟁을 바로 보는 일이 필요하다. 이 책이 전쟁의 본모습과 평화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데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