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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의 말
서문 1부 삶이 시작된 곳 1장 사장너메 해방둥이 가난한 시절, 배부른 기억 | 격랑의 시대 2장 해방공간의 아버지 판결문 속 아버지 | 삐라와 미군정 포고령 2호 | 거기 있으면 너희는 죽어! | 삼팔선이 터졌다 | 행방불명과 월북 사이 3장 겨울을 건너는 사람들1 이수례의 피란길 | 열 식구 | 아버지 없는 아이들 | 칼칼한 직원, 다정한 아빠 2부 절망의 시간 1장 남산 안기부 지하 수사실 | 고문 | 아들까지 죽일 것이냐? | ‘남파간첩’ 박영준 시나리오 | ‘가족간첩단’ 탄생 | ‘월북’ 시나리오 | 증거 날조 2장 그 검사의 수사법 어둠 속의 사탕 봉지 | 고문 뒤의 검사 | 군사정권의 법무참모 | 공소장 | 법정 밖의 여론재판 3장 유죄를 향한 재판 그런 일 없습니다 | 서명·무인은 누구의 것인가 | 지푸라기가 바람에 날리거나 | 고문받은 흔적을 재판장께 보이라 | 피고인 박동운 사형 | ‘공지의 사실’도 국가기밀 | “전 국민의 생존을 위협한 중대한 범죄” 4장 감옥의 나날들 사형장으로 향하는 사형수 | 조작간첩의 사상전향 | 나는 다른 사람이 되어야겠다 | 빨간 수번의 사람들 | 바늘을 훔친 자와 나라를 훔친 자 | 순화교육 | 철창으로 들어온 민주화 | 젊은 아내와 어린아이들 | 온가족이 청와대 앞에서 | 가만히 있으면 잊어버린다 | 준법서약서 3부 진실을 향한 먼 길 1장 가석방, 창살 없는 감옥 재회 | 아무것도 해준 게 없는 아버지 | 보안관찰 | 재심청구는 재범의 우려 2장 재심 준비 문턱도 넘기 어려운 재심 | 끝까지 함께 가보겠습니다 | 국정원발전위와 진실화해위원회 | 풋노물 데쳐논 거맹키로 | 조작의 전모를 밝히는 일 | 재심청구 | 북경댁 3장 재심 재판 재심 개시 | A-3방송 전문가 | 호출부호, 시간, 주파수도 지령과 다르지만 | 일본의 SONY, 한국의 SUNY | 피고인들에게 감사를 드려야 | 딱 그만한 크기로 다시 써주시오 | 동외리의 작은 집 4장 박동운 vs. 대한민국 잃어버린 인생의 값 | 가족에게 남은 것 | 국가폭력의 책임을 묻다 | 덮어놓고 | 사법농단의 비수 | 궤변을 법이론으로 | 5·16과 12·12 | 헌법소원 그리고 부당이득금 | 판결문에 없는 판결 이유 | 43년의 세월, 19번의 재판 4부 진실의 힘 진실의 힘이 태어나다 | 상처 입은 치유자 | 허위자백과 ‘존엄’ | 고통의 연대 | 귀환 에필로그 미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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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 속에서 아버지가 행방불명되고, 1981년 국가안전기획부--- p.안기부)가 온가족을 끌고 가 고문하고 간첩단으로 조작하기까지, ‘박영준’이라는 이름은 오로지 가족관계 서류에만 존재했다. 안기부는 박영준을 ‘남파간첩’으로 단정했지만, 이를 뒷받침하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었다. 오로지 고문으로 짜낸 가족들의 허위자백뿐이었다.
--- p.30~31 전쟁은 극단의 냉전체제를 불러왔고, 남한은 강고한 반공의 기치를 올렸다. 권력은 살아남은 자에게 물었다. 행방불명자는 어디로 갔는가? 죽은 자는 누구의 손에 죽었는가? 이산가족과 행방불명자의 가족은 경계의 선을 넘어간 인물과 관련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이유만으로 사회 안에서 “정치적으로 순수하지 못한 집단으로 간주될 위험”을 안고 살아야 했다. --- p.68~69 남산 안기부 지하 수사실이었다. 박동운과 가족들이 두 달 넘게 갇혀 고문수사를 당할 곳이었다. 그는 앞으로 63일 동안 그 방을 벗어날 수 없었다. 변호인은 물론이고 어느 누구도 만날 수 없었다. 건물 밖으로 혹은 지상으로는 단 1초도 나갈 수 없었다. 그 시간 동안 ‘박동운’은 주어가 될 수 없었다. ‘안기부 수사관’이 주어가 될 것이고 박동운은 그 주어에 포획된 목적어일 뿐이었다. 맹수에 잡혀 오도가도 못하는 가녀린 들짐승이었다. --- p.88 박동운은 앉으라는 그의 말에 바지를 걷어 올려 무릎에 있는 고문의 상처--- p.딱지)와 시퍼런 멍자국을 보여줬다. “안기부에서 이렇게 당했습니다. 아버지를 만난 일이 없습니다.” 큰 용기를 내어 한 말이었지만 목소리는 크지 않았다. 그러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검사의 입에서 으름장이 터져나왔다. “안기부에서는 다 시인해놓고 왜 부인을 해? 다시 갔다 와야 정신을 차리겠어?” 그 순간, 누군가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두 사람으로 기억하는데, 박동운을 고문한 안기부 수사관들이었다. --- p.140 ‘간첩사건’은 중세 서양 사회를 휩쓴 마녀재판과 유사한 현상으로 우리 사회를 휘감았다. … 마녀로 의심받은 이들은 자백하면 마녀라서 죽임을 당했고, 자백하지 않으면 더 악독한 마녀라는 이유로 극심한 고문과 화형을 당했다. 자백하든, 부인하든 죽음은 정해져 있었다. 한국 사회에서 ‘간첩’, ‘빨갱이’는 서양의 마녀와 같은 존재였다. 재판을 시작하기 전에 이미 박동운과 가족들은 ‘고정간첩단’으로 확정됐고, 모든 언론이 소리 높여 저주했다. --- p.157 ‘나는 이제부터 과거와는 다른 사람이 되어야겠다. 밖에 있던 나와는 전혀 다른 사람이 돼서 나갈 것이다.’ 나와 내 가족의 안위만 알던 자신, 역사에 무지했던 자신, 다른 사람들의 고통에 무관심했던 자신, 그는 그런 과거와 전혀 다른 사람이 되겠다고 다짐했다. ‘다른 사람이 되어야겠다.’ 스스로에게 내린 이 단순한 명령은 이후 오랜 감옥살이를 지탱하는 힘이 됐다. --- p.217 감옥은 사람을 고립시키고 사람답게 살기 어렵게 만드는 곳이었다. 그러나 그 안에서도 사람들은 서로 신뢰하고 돌봤다. 서로를 사람으로 대하려 했다. 박동운은 그들과 함께 살아가는 과정에서 자신이 살아온 세상뿐 아니라 자기 자신도 이전과는 다른 눈으로 보기 시작했다. 세상과 완전히 격리된 감옥 안에서 박동운은 오히려 자신이 살아온 세상을 처음으로 ‘발견’하기 시작했다. 몸은 철창 안에 갇혀 있었지만, 그의 세계는 넓어지고 있었다. --- p.234 편지를 읽는 박동운의 마음은 경이로움으로 가득 찼다. 머나먼 외국에서 위로의 편지를 보내다니, 상상도 못해본 일이었다. 그들은 생전 알지 못한 사람들인데도, “당신이 옳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라거나, “힘을 내세요”, “함께합니다”라는 내용의 편지를 써서 보냈다. … 감사합니다. 내가 만일 출소하면, 나도 당신들처럼, 무도한 공권력에 억울하게 탄압받은 분들을 위해 무언가를 하겠습니다. 그것이 고마운 당신들에게 내가 보답하는 길이고, 또 내가 앞으로 살아가는 길이라 생각합니다. --- p.246 아이들에게 아버지가 감옥에 갇혀 있다는 말은 차마 할 수 없었다. 행여 ‘간첩 자식’이라는 소리를 들을까 두려워 학교와 집, 교회만 오가도록 단단히 단속했다. 남편이 보내오는 ‘교도소’ 소인이 찍힌 봉함엽서는 아이들이 볼까봐 읽는 즉시 버렸다. 그렇게 집에서 ‘아빠’는 차츰 입 밖에 내서는 안 되는 말이 됐다. --- p.249 조용환은 박동운과 김철이 자신을 만나고 싶어한다는 말을 듣는 순간, 결심했다. 길은 아직도 보이지 않았지만 더 이상 피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 “결과를 자신할 수는 없지만, 제가 변호사를 하는 한 끝까지 함께 가보겠습니다.” 낮지만 단단한 목소리였다. 박동운은 결과를 확신할 수 없지만 ‘끝까지 함께 가겠다’는 그의 말에 깊은 신뢰를 느꼈다. 그 말 그대로 조용환은 끝까지 함께 갔고, 그에 대한 박동운의 ‘신뢰’ 또한 변함없이 이어졌다. 다만 그렇게 오랜 기간, 10년을 훌쩍 넘기며 온갖 우여곡절을 거칠 줄은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다. --- p.301 법정 밖으로 나오니 기자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무수한 인파였다. 누군가 “소감 한말씀 부탁드립니다!” 하고 소리쳤다. 가족이 기자들 앞에 섰다. 고 박경준-한등자의 자녀들과 박미심-허현의 자녀들도 함께했다. 허현이 말했다. “1981년 사건이 났을 때 신문마다 우리 식구들이 고정간첩이라고 1면에 썼습니다. 오늘 딱 그만한 크기로 다시 써주시오. 우리는 간첩이 아니라고 말입니다.” --- p.353 마냥 귀엽고 예쁜 아이지만, 태어나자마자 ‘간첩의 딸’이 되어버린 아이를 생각하니, 앞이 캄캄하기만 했습니다. 결국, 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 때 남편과 상의 후 미국에 사는 동생네로 입양하자고 결정을 내렸습니다. 그렇게 결정할 때는 세상이 원망스럽고 내가 무슨 죄가 있어 이런 일을 겪어야 하는지 고통스러웠습니다. 하지만 한국에 사는 한 ‘간첩의 자식’이라는 오명은 벗을 길이 없기에, 차라리 잘 보냈다 여기기로 했습니다. --- p.363 사건이 발생한 지 43년, 박동운이 재심을 결심하고 동분서주하기 시작한 뒤로도 20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다. 그사이 박동운과 가족은 모두 19차례의 재판을 치렀다. 형사재판 세 번, 보안관찰 취소 청구 재판 두 번, 형사 재심 재판 한 번, 형사보상 청구 재판 한 번, 실종선고 심판 한 번, 손해배상 재판 네 번, 민사 재심 재판 두 번, 부당이득금 반환 재판 두 번, 헌법소원 한 번, 소송비용확정 신청 두 번이다. 국민이 위임한 권한과 자원을 이용해 아무런 부담 없이 무제한의 인력과 비용과 시간을 쏟아부으며 괴롭히는 국가권력을 상대로 맨몸으로 부딪쳐 버티고 견딘 결과였다. --- p.413 우리가 고통과 절망의 늪에 빠져 있을 때 누군가가 내민 도움의 손길을 붙잡고 희망을 찾았듯이, 우리는 진실의 힘을 통해서 여전히 진실이 밝혀지지 않고, 또 고문과 감옥살이의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동지들에게, 그리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국가의 폭력으로 고통받는 분들에게 작으나마 위로와 격려의 손길을 내밀겠습니다. --- p.429 인간의 존엄은 결코 무너지지 않는 완전함에 있는 것이 아니다. 무너졌던 자리마저 외면하지 않고 끝내 진실 앞에 자신을 세우는 태도에 있다. 그런 내면의 자세가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질 때마다 그를 다시 일으켜 세우고 과거보다 한 걸음이라도 더 나아가게 만든 힘이 됐다. 박동운은 자신의 삶으로 그 사실을 증명했다. --- p.434~4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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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과 전쟁을 관통한 한 가족의 역사
1981년 봄, 전남 진도에서 농협 직원으로 일하던 박동운(1945년생)은 어머니, 숙부 부부, 동생, 외숙과 이모 등 일가친척 10여 명과 함께 안기부에 끌려가 두 달여간 고문을 당한 끝에 ‘간첩’이 됐다. 1심에서 사형, 항소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어머니는 징역 4년, 숙부는 징역 7년, 동생은 징역 3년 6월, 고모부는 징역 1년에 집행유예 3년의 형을 받았다). 안기부가 이들을 ‘진도가족간첩단’으로 조작하는 데 결정적 빌미로 삼은 것은 6∙25 전쟁 때 행방불명된 박동운의 부친 박영준의 존재였다. 가족들은 그가 사라진 뒤 아무런 소식을 듣지 못했다. 아버지가 어디로 갔는지, 살아 있는지 죽었는지조차 알지 못한 채 성장한 박동운은 수십 년 뒤 안기부에 의해 “월북한 아버지에게 포섭되어 간첩이 된 아들”로 조작됐다. 국가는 전쟁이 남긴 행방불명의 빈칸을 이용해 허구의 간첩 서사를 만들어냈다. 이 책은 기록을 통해 그 빈칸을 다시 채운다. 지은이는 최근 국가기록원을 통해 입수한 기록을 씨줄로, 박동운과 가족들의 기억을 날줄로 삼아 그의 아버지가 어떤 사람이었으며, 6∙25 전쟁 와중에 어떤 일을 겪었는지 추적한다. 얼굴조차 희미하게 남아 있는 한 사람의 삶을 당시의 시대적 풍경 속에서 복원함으로써, 안기부가 창조해낸 ‘월북한 아버지와 간첩이 된 아들’이라는 서사 뒤에 가려져 있던 한 가족의 실제 역사를 되살려낸다. 그를 통해 국가가 한 가족에게 남은 전쟁과 분단의 상처를 수십 년 뒤 어떻게 다시 국가폭력의 재료로 사용했는지 보여준다. 조작의 회로, 사법의 공모 책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이 가족의 비극이 어떻게 하나의 ‘간첩단 사건’으로 만들어졌는지 추적한다. 박동운과 가족들의 진술, 수사기록과 공판기록을 서로 대조하면서 63일 동안 이어진 안기부 수사를 현미경 들이대듯 분석한다. 평범한 수첩과 라디오, 낡은 사진첩, 농협 인사기록카드 같은 일상의 물건들이 어떻게 ‘간첩 증거’로 둔갑했는지, 존재하지 않았던 ‘월북’ 같은 조작이 어떻게 하나의 사건으로 조립되었는지 하나하나 되짚는다. 책은 ‘가족간첩단’ 조작에 당시의 가부장적 가족관이 어떻게 동원됐는지도 살핀다. 안기부는 아버지이자 가장인 박영준의 뜻에 따라 아내와 아들, 동생이 복종했다는 이야기를 만들어, 수십 년간 아무에게도 발각되지 않은 ‘가족간첩단’이라는 허구에 개연성을 부여했다. 존재하지 않는 사실을 만들어냈던 만큼 수사기록 곳곳에 숱한 모순과 허점이 남았다. 그럼에도 검찰은 수사기록의 모순과 불법수사의 흔적을 따져 묻기보다 안기부가 만들어낸 사건을 기소 논리로 이어받았다. 법원 역시 마찬가지였다. 법정에서 피고인들은 안기부에서 고문당해 허위자백을 했다고 호소했지만, 판사가 피해자들에게 한 첫 질문은 ‘서명과 날인은 피고인의 것이냐’뿐이었다. 유죄의 증거를 확보하기 위한 질문이었다. 기록 곳곳에 피고인들의 호소가 진실한 것임을 드러내고 있었지만 판사는 그에 대해 단 한 번도 캐묻지 않았다. 고문의 상처를 보여주려는 변호인의 행동도 가로막았다. 결국 그 재판에서 박동운은 ‘사형’을 선고받았다. 책은 수사기록과 공판기록, 판결문을 교차 검토하며 안기부가 만들어낸 허구가 검찰의 기소를 거쳐 법원의 판결에 의해 어떻게 ‘사법적 사실’로 굳어졌는지 추적한다. 전쟁이 남긴 빈칸에서 시작된 조작이 수사와 기소, 재판을 거치며 하나의 간첩사건으로 완성되는 과정, 그 국가폭력의 회로 전체를 치밀하게 복원한다. 감옥에서 세운 삶의 의미 평범한 농협 직원이었던 한 사람에게 비극은 예고 없이 들이닥쳤다. 모든 것을 빼앗긴 그 자리에서, 그는 무엇으로 살아갈 수 있었을까? 사형수가 되었다가 무기수가 되어 끝없는 감옥살이를 시작하던 그 순간, 박동운은 뜻밖에도 이렇게 다짐했다. ‘나는 이제부터 과거와는 다른 사람이 되어야겠다.’ 나와 내 가족의 안위만 알던 자신, 다른 사람들의 고통에 무관심했던 자신과 완전히 결별하겠다는 스스로에 대한 이 단순한 명령은 이후 17년 5개월의 감옥살이를 지탱하는 힘이 됐다. 지은이는 바로 이 다짐 하나가 한 사람의 삶 전체를 어떻게 바꾸어놓았는지, 그 여정을 한 걸음 한 걸음 밀착해 따라간다. 실제로 박동운은 끝이 보이지 않는 옥중 시간을 살아내며 자신이 겪은 일이 자신과 가족에게만 닥친 불행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고, 자신을 후원한 외국 시민들의 활동을 접하며 출소 후에는 누군가를 돕겠다고 다짐했다. 지은이는 모든 것을 빼앗긴 장소에서 오히려 자기 삶의 의미를 다시 세워가는 역설적인 과정을 기록하며, 국가가 박동운에게 삶을 빼앗고 ‘간첩’이라는 이름을 씌울 수는 있었지만 어떤 인간으로 살아갈 것인지 결정할 권리까지 가져갈 수 없었음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진실을 향한 먼 길 1998년 8월 15일, 박동운은 17년 5개월 8일 만에 풀려났다. 이후 그는 조용환 변호사와 함께 ‘간첩’이라는 이름을 벗기 위한 형사재심, 국가가 빼앗아간 삶의 책임을 묻는 손해배상 소송을 차례로 이어갔다. 형사재심에서는 무죄를 받아냈고, 국가배상 재판에서도 항소심까지 승소했지만 2014년 대법원이 이른바 ‘사법농단’ 국면에서 판결을 뒤집으며 오히려 부당이득금 반환소송을 당했다. 헌법소원이 받아들여지면서 다시 한 번 위기를 벗어난 그는, 같은 사건의 형사재판과 민사재판을 모두 재심으로 뒤집고 헌법재판까지 거친 사법사상 유일한 사례의 당사자가 됐다. 서른여섯 살에 시작한 재판을 모두 마친 것은 일흔여덟 살이 되어서였다. 책은 이 시간을 ‘43년의 세월, 19번의 재판’으로 기록한다. 진실을 향한 먼 길에 박동운과 변호사 조용환 사이의 깊은 신뢰가 있었다. 조작간첩사건의 재심이 가능할지조차 불투명할 때 조용환은 승소를 장담하는 대신 박동운에게 “끝까지 함께 가겠다”고 약속했다. 박동운이 신뢰한 것도 결과에 대한 확신이 아니라 바로 그 약속이었다. 대법원의 판결로 모든 것이 다시 뒤집히는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그 신뢰는 흔들리지 않았고, 그 신뢰를 바탕으로 조용환은 헌법소원과 민사재심이라는 새로운 길을 찾아 마침내 국가의 배상책임을 이끌어냈다. 첫 만남에서 건넨 약속이 10년이 넘는 ‘법률전쟁Lawfare’을 함께 견디게 한 힘이 되었다. 그리고 그 신뢰와 연대는 더 많은 국가폭력 피해자들과 함께하는 ‘재단법인 진실의 힘’ 설립으로 이어졌다. 『먼 데서 온 봄』, 국가폭력을 넘어 ‘삶’을 기록하다 『먼 데서 온 봄』의 이야기는 무죄판결이나 국가배상에서 끝나지 않는다. 박동운은 조작간첩 피해자들과 함께 국가로부터 받은 형사보상금과 손해배상금 일부를 내놓아 ‘진실의 힘’을 만드는 데 참여했다. 진실의 힘은 박동운 개인의 생애와 과거청산이라는 공적 과제가 만나는 장소가 되었다. 책은 이를 “자신의 상처를 민주주의를 지키는 공적 자산으로 바꾸려는 노력”이라고 설명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 제목의 ‘봄’은 국가가 뒤늦게 돌려준 무죄판결만을 뜻하지 않는다. 빼앗긴 삶을 다시 자기 것으로 만들어가는 시간, 다른 사람에게 받은 손길을 다시 누군가에게 건네는 데까지 이른 한 인간의 긴 귀환 과정이다. 그러나 책은 이 변화를 아름다운 치유의 이야기로만 그려내지 않는다. 무죄판결 뒤에도 박동운에게는 허위자백을 했다는 기억이 남아 있었다. 그는 자신을 고문한 사람들보다 오히려 고문에 못 이겨 하지도 않은 일을 자백한 과거의 자신을 더 엄격하게 돌아보았다. 책은 이를 피해자의 자기 비난으로 해석하지 않는다. 허위자백은 명백히 고문의 결과였지만, 박동운에게 그것은 동시에 ‘진실을 끝까지 지켜야 한다’는 자신의 삶의 기준에 미치지 못한 기억이었다. 국가가 그를 간첩이라고 판단했던 43년의 시간을 끝내고 난 뒤, 그는 이제 국가의 기준이 아니라 자신의 양심과 가치로 자기 삶을 판단하고 있었다. 자신이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 스스로 묻고, 자신의 가치로 삶을 판단하는 것, 그것이 박동운이 지킨 삶의 존엄이었다. 우리는 사라지지 않았다 전쟁과 분단은 아버지를 가족에게서 떼어놓았고, 국가폭력은 ‘가족간첩단’이라는 이름으로 가족 전체를 범죄의 공동체로 만들었다. 그리고 그로 인한 긴 수감생활은 다시 박동운을 아내와 어린 자녀들에게서 떼어놓았다. 그 긴 여정의 끝에서 박동운은 흩어진 조상들의 유골을 한데 모아 진도 벌포 바닷가에 가족묘원을 세웠다. 전두환 정권이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온가족을 간첩단으로 엮어 무너뜨리려 했던 자리에 그는 다시 가족의 이름을 새겨넣었다. “우리는 결코 사라지지 않았다. 우리는 지지 않았다.” 책은 해방과 전쟁 속에서 흩어진 한 가족의 이야기로 시작해, 간첩단이라는 이름으로 국가가 파괴하려 했던 한 가족이 다시 자신의 이름으로 모이는 장면으로 돌아온다. 지은이는 이 가족묘원을 분단과 전쟁, 군사독재가 한 가족에게 남긴 상처를 어루만지는 치유의 자리이자, 국가폭력 앞에서도 끝내 무너지지 않은 인간 존엄의 기념비로 읽어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