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1. 기대하지도, 원하지도 않았던 새로운 계절이 찾아왔다
Part 1. 믿음이 자라야 할 시간이었다 ― ‘성장’에 대한 잘못된 전제들 내려놓기 2. ‘내 느낌’으로 하나님의 임재를 가늠하고 있었다 3. ‘믿음’으로 걸을 필요가 없는 길을 찾고 있었다 Part 2. 내가 쌓아 올린 영성은 과연 하나님을 향하고 있었는가 ― ‘내’가 주도하는 영성 벗어나기 4. 열정 뒤에 숨어 하나님을 회피하다 “조금만 더 열정을 쏟아부으면 다시 영적 기쁨이 돌아올 거야” 5. 깨어짐을 숨기며 하나님을 회피하다 “이런 모습으로는 하나님께 나아가선 안 돼” Interlude. 복음을 붙든 손이 미끄러질 때 6. 선함에 기대어 하나님을 회피하다 “죄를 지었으면 내가 더 잘해서 만회하면 되지” 7. 헌신 속에서 하나님을 회피하다 “내가 하나님을 위해 하는 것들이 나를 붙들어 줄 거야” 8. 내 힘으로 나를 고치느라 하나님을 회피하다 “하나님이 길을 보여 주셨으니, 이제부터는 내가 해내야지” Part 3. 사랑 안에서 다시 배우는 믿음의 길 ― 있는 모습 그대로 나아가 그분 안에 거하며 9. 영적 성장, 시작도 끝도 하나님 10. 영혼의 모든 계절에 우리는 주님과 함께 걸어간다 감사의 글 주 |
Kyle Strobel
카일 스트로벨의 다른 상품
John Coe
존 코의 다른 상품
강소희의 다른 상품
|
성경을 보면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이 자신들을 이끄시는 방식을 이해하지 못해 번번이 당황하곤 했다. 하나님이 목양하시는 방법은 늘 예상을 빗나간다. 그분은 눈에 보이는 놀라운 능력과 기적으로 백성들을 애굽에서 건져 내시고는 곧바로 그들을 굶주림과 목마름 속으로 몰고 가신다. 자기 백성을 시내산으로 이끄셔서 자신에게 가까이 나아오게 하시고는 정작 그 산 위에서 불 가운데 맹렬하게 임하셔서 거의 죽을 만큼 두려움에 떨게 하신다. 예수님은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후 그분을 따르는 이들에게 결코 떠나지 않으리라 말씀하시고는 정작 떠나가신다. 예수님이 아버지께로 승천하신 뒤, 성령을 받을 때까지 제자들은 그분이 어떻게 자신들과 함께 계시는지 의아해했다.
성경 전반에 걸쳐, 또 역사 속 수많은 형제자매를 통해 우리는 주님과 함께하는 이 혼란스러운 경험들을 헤쳐 나갈 지혜를 발견한다. 또한 하나님과 함께하는 삶이 한 가지 경험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영혼의 다양한 계절을 지난다는 사실도 깨닫는다. 우리 삶에는 기쁨과 설렘이 가득하고 어둠에서 건짐을 받는 풍성한 계절이 있다. 그런가 하면 하나님이 왜 우리를 광야로, 영적인 굶주림과 목마름으로 내모시는지 묻게 되는 계절도 있다. 승리의 왕을 맞이하리라 기대했던 자리에서 십자가를 마주하고 그 혼란과 씨름해야 할 때도 있다. 존과 나(카일)는 이런 영적 경험들을 설명하는 법을 잊어버린 교회에서 자랐다. 우리는 이런 경험들을 스스로 이해해야 했다. 풍성함과 기쁨의 계절, 흔히 “영적 위로”(consolation)라고 부르는 시간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그저 원래 그런 것이려니 여겼다. 정작 혼란스러운 것은 하나님이 함께하시지 않는 듯한 경험이었다. 마른 먼지처럼 바싹 메마른 광야에 서게 되었을 때 우리는 주님이 무엇을 하고 계시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그래서 그곳에서는 주님이 아무 일도 하지 않으신다고 그냥 단정해 버렸다. 그러나 광야보다 더 혼란스러운 것은 주님이 우리를 그분의 부재를 경험하는 곳으로 이끄실 때였다. 흔히 “영적 황폐”(desolation)라고 부르는 시기다. 그곳에서 우리는 실제로 길을 잃은 듯했고, 주님이 우리를 버리셨다고 생각했다. --- p.14~15 광야와 영적 황폐는 우리의 행동과 신실함, 선함을 긍정적인 영적 경험과 연결 짓는 우리 마음속의 깊은 전제를 드러낸다. 그러나 대부분은 이 뿌리 깊은 믿음을 의심조차 하지 않고, 절망에 빠지거나 하나님이 정말 함께 계시기는 한 건지 의문을 품기 시작한다. 우리가 처음 그리스도인이 되어 맛본 영적 위로의 기쁨과 감격은 우리가 성숙해서 주어진 게 아니다. 오직 은혜로 주어졌으며, 전적으로 하나님의 선하심에서 나온 선물이었다. 주님은 우리의 성품이 성숙하기도 전에 이 선물을 거저 주셨지만, 우리는 그것이 우리가 그럴 만한 성품이나 자격을 갖춘 덕분이라고 여겼다. 하나님이 영적 위로 가운데 우리에게 기쁨을 듬뿍 부어 주신 것은, 이기적인 욕망의 대상들에서 우리의 시선을 돌려 하나님께로 향하게 하시기 위함이었다. 하나님은 자녀에게 아낌없이 선물을 베푸시는 한없이 좋은 부모시지만, 그와 동시에 훈육하고, 인도하며, 바로잡는 아버지시기도 하다. 그분이 영적 위로를 거두실 때 우리는 특별한 훈련을 받는다. 자신의 인격과 성품의 힘으로 신앙생활을 감당하려 할 때 어떻게 되는지 깨닫는 훈련이다. 이 계절에 하나님은 우리 마음과 인격 안에 늘 있었지만 영적 위로의 물결 아래 감춰져 있던 것들을 드러내신다. 하나님의 영적 위로는 우리의 인격과 성품이 갖추어지기 전에 주어진 것이었고, 이제 그분은 우리의 자기 의존과 믿음 없음을 드러내신다. 결코 더 힘쓰라는 게 아니다. 그러나 흔히 그렇게 오해한다. 이것은 주님 안에 거하라는 초대이며, 우리의 삶이 그분 안에 있음을 알고 우리의 연약함 가운데서 그분의 강함을 알아 가라는 초대다. 더 이상 영적 위로가 느껴지지 않을 때 많은 이들은 이것 또한 하나님이 우리를 성숙으로 이끄시는 과정에서 베푸시는 인자하심의 선물이 아닐까 헤아리기보다, 그분이 우리를 밀어내고 있다고 오해하곤 한다. --- p.61~62 당신은 죄책감과 수치심, 두려움과 불안이라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그러나 그 모든 자리에서 당신을 만나 주시고 자신의 사랑으로 그 모든 것을 변화시키시는 주님께 나아갈 수는 있다. 그럼에도 죄책감을 이용해 자신의 헌신에 불을 붙이거나, 불안을 이용해 자신의 의지를 억지로 끌어올리려 한다면, 겉으로는 대단해 보이는 삶을 이룰 수 있을지 몰라도 실은 사랑의 삶은 아닐 것이다. 당신이 이룬 성취 곁에는 결국 쓴뿌리와 분노, 탈진만 남을 것이다. 자신을 떠받치려고 육신을 도구 삼았기 때문이다. 당신의 삶의 무게를 짊어지실 수 있는 분은 오직 그리스도뿐이시다. 당신의 죄책감과 수치심, 두려움과 불안, 분노와 슬픔까지도 있는 그대로 마주해 주실 분은 오직 그리스도뿐이시다. 그리스도만이 그 크신 사랑으로 우리 안의 가장 깊은 곳을 변화시키실 수 있다. 그리스도만이 우리가 그분을 회피하기 위해 사용하는 전략들을 낱낱이 드러내시는 동시에, 사랑으로 두 팔 벌려 우리를 맞아 주실 수 있다. --- p.134~135 우리 양심을 진리에 따라 다시 훈련하려면, 우리 삶을 있는 그대로 볼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설교를 듣거나 이상적인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보게 될 때 우리 양심은 여전히 우리를 찌를 것이다. 그러나 양심의 가책을 잠재울 방법을 찾거나, 자신의 선함으로 달랠 수 있는 하나님을 찾는 대신 우리는 진실을 마주해야 한다. “주님, 이것을 보소서. 제 마음이 가장 먼저 향하는 곳은 주님과 함께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관리하고 조종하려는 전략입니다. 아버지, 이곳에 주님이 필요합니다. 주님과 함께 있기보다 스스로 선해지려 하는 제 마음에 주님이 필요합니다. 주님 안에 머물기보다 제 안에 머물고 싶어 하는 그 자리에서 저를 만나 주소서. 주님이 맺으시는 열매가 아니라 제 힘으로 열매를 맺으려 하는 모든 자리에 주님이 필요합니다. 주님, 긍휼을 베풀어 주소서.” 양심을 다시 훈련한다는 것은 양심의 방향을 나 자신에게서 하나님께로 돌려놓아 양심이 나를 찌를 때, 그 찔림이 나를 하나님께로 이끌어 나에 관한 진실을 직면하면서 그분 안에 머물게 하는 것이다. 양심은 우리가 궁핍하고 실패하며 죄 가운데 있을 때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이끌도록 주어진 것이다. 물론 이는 쉽지 않은 싸움이다. 양심이 우리를 찌를 때마다 육신은 하나님을 관리하고 조종하려는 각본을 내놓는다. “하나님, 정말 죄송해요. 다시는 그러지 않을게요.” “하나님, 더 나아지겠습니다.” “하나님, 무슨 일이든 할게요.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세요.” 내면을 주의 깊게 살펴보면 이런 기도에 정작 마음이 담겨 있지 않음을 알게 될 것이다. 우리가 이런 기도를 하는 것은 오히려 이 기도의 내용을 직면하지 않기 위해서다. 이 대본들은 하나님이 가까이 오시지 못하게 막는 일종의 연막이다. 아담은 이렇게 말했다. “도망쳐! 어서 숨어!” 우리는 이렇게 기도한다. “하나님, 제가 더 잘하겠습니다.” 하지만 이 둘은 사실상 다르지 않다. 그래서 광야와 영적 황폐의 시기에 자아가 쉬이 지쳐 버리는 것이다. --- p.165~167 신약학자 그랜트 맥애스킬(Grant Macaskill)은 도덕주의가 실제로 얼마나 심각한 문제인지 잘 드러낸다. 그는 많은 복음주의 교회가 성장을 이야기하는 방식에 “실제로는 그리스도가 빠져 있는” 경우가 많다고 말한다. 그의 설명을 들어 보자. “우리가 실제로 그리스도인의 도덕적 활동이나 성장(우리가 흔히 ‘제자도’라 부르는 것)을 생각하는 방식은 실은 그다지 그리스도 중심적이지 않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닮아 간다’고 말하거나, ‘성령의 능력을 의지한다’고 말하면서도, 여전히 그것을 우리가 해내는 무언가로 생각할 수 있다. 성령의 도움을 받아 순종할 때조차 우리는 결국 그저 ‘좀 더 나은 버전의 나’가 될 뿐이다.” 누군가는 이렇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게 뭐가 문제라는 거지?” 우리가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것’은 당연히 좋은 일처럼 보인다. 하지만 성경에서 우리가 발견하는 것은 그보다 훨씬 더 깊은 진실이다. 맥애스킬은 우리의 유일한 소망은 더 나은 내가 되는 것이 아니라 더 나은 분이 우리 안에 거하시는 거라고 설명한다. 바울도 이렇게 말한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갈 2:20). 우리의 소망은 그리스도, 오직 그리스도뿐이다. --- p.168~169 우리가 성장해 갈수록, 주님은 우리 자신이 아니라 그분의 손과 계획에 맡길 때 우리가 가장 안전하다는 사실을 믿도록 이끄신다. 주님은 우리의 두려움과 걱정, 기쁨과 사랑, 그리고 우리가 씨름하는 모든 것을 아신다. 우리가 두려워하는 것들을 그분은 두려워하지 않으신다. 우리가 주님께 가까이 나아가기 어려워하는 모습도 아시고, 너무나 깨어지고 더럽혀지고 거역하는 마음이라 차마 주님께 내보일 수 없다고 느끼는 부분까지도 아신다. 그럼에도 주님은 우리를 가까이 부르신다. 우리 삶의 진실을 있는 그대로 아시면서도 우리의 이름을 불러 주신다. 우리를 그분 안에 거하도록 부르시며, 결코 마르지 않는 샘으로 나아와 마음껏 마시라고 하신다. 특히 우리의 마음이 먼지처럼 바싹 말라 있을 때 더욱 그리하신다. 우리의 경험은 우리에게 이와는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 육신을 따를 때 우리는 정작 우리를 치유하는 길을 오히려 자신을 위협하는 길로 여기고 경계한다. 또한 영적으로 미성숙할 때는, 우리 힘으로 스스로 성장해야 한다고 생각하거나 하나님이 어느 날 갑자기 ‘짠!’ 하고 우리를 성장시켜 주실 때까지 가만히 기다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마찬가지로 어떤 이들은 ‘올바른’ 영적 훈련만 잘 해내면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그들이 원하는 삶을 주실 거라 믿기 시작한다. 이런 방식은 실제로 영적 위로의 계절에는 잘 작동하는 듯 보인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주님은 그들 마음의 진실을 보여 주신다. 그러면 모든 것이 무너지면서 혼란스러워진다. --- p.249~250 |
|
‘영적 성장’에 대한 현대 기독교의 통념을 흔들다!
오늘날 교회가 놓쳐 온 기독교 영성의 유산 예고 없이 찾아온 영적 메마름,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믿음의 신세계가 열리다! 우리는 영적 성장을 점점 더 뜨거워지고, 기쁨과 확신이 커지는 과정으로만 생각한다. 그래서 기쁨과 설렘이 사라지면 자신의 믿음이 잘못되었다고 판단하고 어떻게든 이전 상태를 회복하려 한다. 그러나 의지력과 습관만으로는 영적으로 성장할 수 없다. 하나님은 우리가 의지하던 감각과 확신을 거두시는 듯한 시간을 통해 우리의 왜곡된 욕망과 내면의 깨어짐, 죄를 드러내신다. 이 책은 성경과 오랜 기독교 영성의 전통을 따라, 영적 메마름을 믿음의 실패가 아닌 하나님이 우리를 믿음의 사람으로 빚어 가시는 중대한 과정으로 이해하고, 감정에 의존하던 신앙과 스스로를 변화시키려는 노력을 내려놓도록 이끈다. 지금은 숨을 때도, 영적 훈련을 이용해 억지로 의지와 열정을 쥐어짤 때도 아니다. 자신의 영혼을 정직하게 마주하고 숨김없이 하나님께 나아가, 그분 안에 머물며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더 깊이 알고 사랑의 길을 배우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