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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eline Virginia Woolf
버지니아 울프의 다른 상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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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그녀는 모스크바로부터의 퇴각 부분을 읽는 것을 더 좋아했다. 그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다락방이 그녀 방이 되었고 침대는 좁아졌다. 그리고 잠을 잘 잘 수가 없었기 때문에 거기 누워서 책을 읽을 때, 애기를 낳았는데도 보존되어 그녀에게 마치 시트처럼 들러붙어 있는 처녀성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소녀 시절에는 아름다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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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미문학뿐만 아니라 20세기 현대문학의 대표적 모더니스트이며 페미니스트인 버지니어 울프의 문학을 제대로 소개하기 위해 솔출판사에서는 국내의 울프 전공자들로 구성된 ‘울프전집 간행위원회’를 구성하여 울프 전집을 선보이고 있다.
‘울프전집’ 간행의 취지는 그동안 모더니즘이나 혹은 페미니즘이라는 이름으로 부분적이고 피상적으로 이해되어온 버지니어 울프의 깊고 울창한 문학 세계를 바르게 조명하는 것이다. 하나의 논리를 따라 이루어지는 질서정연한 이야기나 소위 할리우드 영화와 같이 잘 짜인 구성을 가진 이야기를 거부하는 버지니어 울프의 문학에는 논리의 연속성을 끊고 그 끊김이 유발하는 의식의 무수한 곁가지를 의도하는 많은 장치가 있다. 바로 그 장치들 때문에 리얼리즘 계열의 페미니스트들은 울프를 페미니스트로 받아들이지 않았으며 소위 전사적인 여권운동가들을 필요로 했던 한국내의 여성운동권에서도 울프는 그 모범으로 받아들여지기 어려웠다. 그러나 일찍이 울프는 그런 단일 논리의 강제성이 결국은 여성성과 남성성의 올바른 공존을 해치며 오히려 여성성/남성성을 인위적으로 나누고 강요해왔음을 인식했다. 텍스트의 의미를 고정시키지 않고 복수 시점을 사용하는 유희적 서술의 글쓰기가 바로 강압적인 남성 논리인 서구 형이상학의 환상, 즉 현존의 형이상학의 거부이었음을 이해할 때 울프 문학세계의 깊이가 새롭게 이해될 것이다. 울프의 문학에 대한 무성한 논의를 한결 깊고 풍부히 할 ‘울프전집’은 그러한 울프의 의도를 그대로 살려 번역함으로써 울프가 궁극적인 목적으로 삼고 있는 인본주의 세계와 인간에 대한 사랑이 그녀의 문학에 어떤 모습으로 스며들어 있는가를 읽을 수 있게 해준다. 1925년도에 발표되었던 장편소설 『댈러웨이 부인』은 1996년 10월 뉴욕타임스 『북리뷰』에서 백주년 기념으로 마련한, 지난 세기에 가장 큰 영향을 준 ‘그레이트 북스’에 들어갈 만큼 울프의 기념비적 작품이며 20세기 현대문학에서 그녀가 차지하는 독보적 위치를 다시 한 번 되새겨주는 작품이다. 이 소설은 울프가 전통적 글쓰기 수법을 탈피, 『제이콥의 방』과 『월요일이나 화요일』 같은 작품에서 선보였던 실험적 기법들이 처음으로 예술적 통일성을 획득한 작품이다. 이 소설은 가부장사회의 제도 안에서 ‘완벽한 안주인’으로서의 소임을 다하여 화목한 가정을 일구는 댈러웨이 부인의 이야기와 참전 후 정신병을 앓고 사회로부터 비정상으로 판정을 받은 셉티머스라는 젊은이가 결국 자살에 이르는 서로 다른 두 이야기로 구성된다. 소설은 댈러웨이 부인이 저녁에 있을 파티를 위해서 꽃을 사러 런던 시내에 나와 산책을 즐기면서 옛날을 회상하는 것으로 시작해서 울프 소설의 특징인 의식의 흐름 기법에 따라, 현재와 옛날의 회상이 한데 어우러진 사유의 단상들로 이어진다. 그러나 얼핏 속물적으로조차 보이는 이 부인의 사적인 감상의 표류는 그 이면에 보다 많은 것을 내포하고 있다. 우선은 개인의 영혼에 대한 독립성의 인정이다. 그녀가 친하게 지냈던 피터와 결혼하지 않고 리처드와 결혼한 유일한 이유는 피터가 가진 제국주의적 성격 때문이다. 옳고 그름의 이분법적 사유가 강요하는 의식의 테러리즘, 정신병을 앓고 있는 셉티머스에게 정신과의사들이 행사하는 강압적인 힘, 그것은 모두 제국주의의 다른 이름들인 것이다. 사회가 요구하는 모범적 균형을 잃은 자를 사회로부터 격리시키려는 그들의 태도에서 울프는 경직된 사유의 횡포를 날카롭게 지적한다. 또한 댈러웨이 부인이 누리는 사적인 자유조차도 영국이 갖고 있는 식민지 인도의 희생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환기시킴으로써 사회에 대한 비판적 시선을 담고 있다. 작품 내내 한 번도 서로 만나지 않던 댈러웨이 부인과 셉티머스는 그녀의 파티가 한창인 순간에 그녀가 그의 자살 소식을 접하면서 유일하게 만난다. 그녀의 파티는 여러 곳에 뿔뿔이 흩어져 있는 사람들을 한곳에 불러 모아 서로를 연결시켜 합일을 이루는 상징이 되었다. 울프는 이러한 삶의 환희의 절정과 죽음을 연결시켜 삶과 죽음, 정상과 비정상의 화해를 보여줌으로써 삶의 단순하지 않은 실제를 보여준다. 이 소설을 통해서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 자체가 이율배반적이며 다중적이라는 것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 보인다. 삶과 죽음, 정상과 비정상이 기묘하게 한자리에 놓여 있는 우리의 삶. 이러한 삶의 진실을 찾아가는 울프의 여정은 아주 새롭다. 그것은 새로운 질서를 찾아가는 긴 여정이면서 동시에 울프만의 독특한 글쓰기의 방식, 가부장 사회 전반에 대해 근본적으로 저항하는 페미스트적 글쓰기의 출구를 마련하는 일인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