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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Ⅰ
오늘 여기_12/빈손_14/유리벽 앞에서_16/솔숲길_18/저물녘의 솔숲_20/산_21/무상無常_22/홀로움_23/시간의 회전의자_24/요즘은 홀로_26/고독의 초상_27/강물이 강을 떠나듯_28/흘러가고 따라가고_29/물에 뜬 달과 별_30/어느 날 강가에서_32/마음의 그늘_34/마음속에 때로는_35/먼 수평선_36/무명無明의 여로_38/눈과 귀가 있어도_39

Ⅱ
겨울 창가에 앉아_42/강설降雪 교향악_44/창밖에 내리는 눈_46/고목 앞에서_47/봄 몸살과 멧새_48/뜨락의 봄 잔치_50/봄비를 맞으며_51/지는 꽃잎을 보며_52/꽃비_53/노신사_54/부활 꽃불_55/장미, 장밋빛_56/이른 아침에_57/배롱꽃 필 무렵_58/가뭄과 가문비나무_60/게릴라성 폭우_62/난세亂世, 난타_64/트라우마_65/폭염, 나무수국_66/늦더위 별곡_67

Ⅲ
깊은 밤, 달빛_70/달빛 소나티네 1_72/달빛 소나티네 2_74/달빛 소나티네 3_76/미리내_77/해후邂逅_78/강물에 뜨는 별_79/향수, 실향_80/고향마을 앞에서_82/고향마을_83/꽃무릇, 그 처녀_84/너와 나_85/주객 양치상_86/두 예술가_88/명수_90/그 사람 보고 싶네_91/뻐꾸기에게_92/는개, 꿈_93/추억, 어린 시절_94/추억, 강가에서_95

Ⅳ
염소와 양 떼_98/향일성向日性 우울증_100/꿈속의 빌런_102/불신의 늪_104/대인 기피증_106/거리두기_107/세태, 각단_108/별 하나 뜬다_110/미명微明_111/주어진 길_112/만나manna_113/칠포 해파랑길_114/모래밭에서_115/쓴소리 친구_116/오랜 친구_118/버릇 타령_119/오늘 쓰는 시는_120/마지막 새날같이_121
|해설| 박진임(문학평론가)_123

저자 소개 1

1947년 경북 의성에서 출생, 1974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했으며, 시집 『그림자의 그늘』, 『우울한 비상의 꿈』, 『물속의 푸른 방』, 『안 보이는 너의 손바닥 위에』, 『꿈속의 사닥다리』, 『그의 집은 둥글다』, 『안동 시편』, 『내 마음의 풍란』, 『이슬방울 또는 얼음꽃』, 『회화나무 그늘』, 『침묵의 푸른 이랑』, 『침묵의 결』, 『따뜻한 적막』, 『거울이 나를 본다』, 『내가 나에게』, 『유리창 이쪽』, 『꿈꾸는 나라로』, 『담박하게 정갈하게』, 『나를 찾아가다』, 『유리벽 안팎』 , 『먼 여로』 , 시선집 『먼 불빛』, 육필시집 『유등 연지』, 시론집 『대구 현대시
1947년 경북 의성에서 출생, 1974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했으며, 시집 『그림자의 그늘』, 『우울한 비상의 꿈』, 『물속의 푸른 방』, 『안 보이는 너의 손바닥 위에』, 『꿈속의 사닥다리』, 『그의 집은 둥글다』, 『안동 시편』, 『내 마음의 풍란』, 『이슬방울 또는 얼음꽃』, 『회화나무 그늘』, 『침묵의 푸른 이랑』, 『침묵의 결』, 『따뜻한 적막』, 『거울이 나를 본다』, 『내가 나에게』, 『유리창 이쪽』, 『꿈꾸는 나라로』, 『담박하게 정갈하게』, 『나를 찾아가다』, 『유리벽 안팎』 , 『먼 여로』 , 시선집 『먼 불빛』, 육필시집 『유등 연지』, 시론집 『대구 현대시의 지형도』, 『여성시의 표정』, 『성찰과 동경』, 『응시와 관조』, 『현실과 초월』, 『예지와 관용』 등을 냈다. 대구시문화상(문학), 동서문학상, 한국가톨릭문학상, 천상병시문학상, 대구예술대상, 상화시인상, 한국시인협회상 등을 수상했으며, 대구 매일신문 논설주간, 대구한의대 겸임교수,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등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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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6년 10월 12일
쪽수, 무게, 크기
168쪽 | 124*208*20mm
ISBN13
9791124702109

출판사 리뷰

물과 거울을 통한 시간과 존재에 대한 명상
지금이 처음이자 마지막—찰나가 바로 절정

이태수는 1974년 등단 이후 25권의 시집을 간행하며 활발한 시작 활동을 펼친 원로 시인이다. 지난 3월에 낸 『후창』 이후의 시 78편을 담은 이 시집은 시간과 존재에 대한 명상의 기록들이다. 그 명상의 흔적들은 물의 이미지를 통해 드러나기도 하고, 거울의 상징 속에 재현돼 있기도 하다. 다시 물의 이미지는 강물이나 는개의 이미지로 나타나면서 시간에 대한 시인의 사유를 추동한다.

물은 시를 쓰면서 평생을 보낸 시인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는 매체이며, 그의 상상력의 근원이라고도 할 수 있다. 「강물이 강을 떠나듯」에서 보듯, 푸른 산 어느 정수리에서 발원하여 산그늘을 따라 흐르다가 계곡을 이루기도 하고 강물이 되어 흘러온 강물의 일생은 그대로 이태수 시인의 삶 그 자체이고, 마침내 이제 그 물은 강을 떠나 바다에 들 준비도 하는 듯하다.

강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고
강물이 흘러들어 떠나간다
나는 언제나 이 자리에 있고 싶다
그러나 이 자리에 있고 싶은 나도
강물이 흘러와서 가버리듯
가지 않으려 해도 가고 있다

가고 싶은 곳이 아닌 데로만
가는 듯해 멈춰 서고 싶다
강가의 소나무가 나를 내려다보며
말 없는 말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
같은 자리에 선 채 간다고
와서 가지 않을 수는 없다고
―「강물이 강을 떠나듯」 전문

강물은 명상하는 시인의 모습과 그의 내면세계까지 반영하면서 추억과 회한을 안고 흘러가기를 멈추지 않는다. 강물의 이미지 속에서 명상하는 주제도 결국은 존재, 존재의 의미, 시간과 죽음이다. 시인은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면서 그 물에 자신의 모습을 비추어 보며 강물의 경로를 우리 인생의 길과 대비한다.

시인은 강물처럼 흘러가며 인생의 질서를 받아들이는 순응의 자세로 그런 내면의 흐름을 담담히 그려내면서 “나는 언제나 이 자리에 있고 싶다”라고 솔직하게 토로하지만, 다시 마음을 바꾸어 “강물이 흘러와서 가버리듯/가지 않으려 해도 가고 있다”라고 다시 현실을 긍정한다.

흐르는 물이 인생의 비유라면 강가의 소나무는 초월자의 상징으로 보인다. 강가의 소나무는 강에 담겨 흐르는 강물과는 대조를 이루며 강가에 뿌리를 내리고 선 채 강물을 굽어본다.

개울에 발을 담그고 멍때리듯이 앉아

물살의 느낌을 지그시 받아들인다

나를 스쳐 가는 물은

잠시도 머물지 않고 흘러간다

소슬바람도 옷자락 흔들며 지나가고

하늘엔 구름이 떠서 흘러간다

구름 따라 물길 따라

나도 아래로 먼 데로 가고 있는지

개울에 발을 담근 채 넌지시 바라본다

―「흘러가고 따라가고」 전문

이 시는 유동적인 물의 이미지를 통해 삶을 노래한다. “잠시도 멈추지 않고 흐르는 물”은 시간의 흐름 속에 자신을 맡기고 있는 존재의 그림자에 해당한다. 흐르는 것이 물만이 아니다. 개울에 발을 담긴 시적 화자를 스쳐 가는 물살도 흘러가지만 소슬바람으로 나타난 바람도 옷자락을 흔들며 지나간다. 하늘엔 구름도 흘러간다. 그래서 흘러가는 일이 자연스럽고도 순리에 맞는 것임을 확인하게 한다.

위에 든 두 텍스트가 보여주듯 강물이 추동하는 물의 상상력은 시간에 대한 시인의 명상과 긴밀히 연결되고, 시간을 떠날 수 없는 존재의 속성을 설명하기에 이른다. 물의 이미지를 통한 시간과 존재에 대한 명상은 「어느 날 강가에서」에서 다시 전개된다.

강가에 앉아 눈 감고 있으면
걸어온 길이 물길을 거스르듯 다가옵니다
그 길을 한참 거슬러 오르다 보면
오랜 옛날로 되돌아가는 발길이
머무르는 곳도 더러 있습니다

그럴 때는 잃어버린 그 풍경 속에 깃들어
그리웠던 사람들과 기껍게 만나고
더 가다가는 다른 세상으로 떠난
친구도 만나서 회포를 풉니다

눈을 감아도 흘러가는 강물은
계속 아래로 가는 소리를 냅니다
귀 기울여 그 소리를 듣고 있으면
거슬러 오르던 발길이 다시 되돌려집니다

시간도 강물도 흘러가고 있듯
나도 그 뒤를 따라가고 있습니다
한동안 감고 있던 눈을 뜨고 보면
강가의 나무들이 나를 내려다보는 듯하고
강물은 아래로만 흘러갑니다
―「어느 날 강가에서」 전문

시인은 강물의 흐름 속에서 시간의 흐름을 함께 느끼면서 삶 또한 그러한 흐름과 함께 하는 것이라고 한다. 이 텍스트의 시적 화자는 강물을 따라 하염없이 걷고 있는 산책자의 모습으로 등장한다. 강물이 흐르는 시간을 지시한다고 볼 수 있는 까닭에 강가를 걷는 산책자는 필연적으로 그 시간이 지니는 의미를 탐색하면서 시간과의 관계 속에서 인간 존재의 의미를 스스로 묻고 답하는 철학자가 된다.

이 같은 명상은 현실 속의 삶으로 확장되기도 한다. 물이 강물인 것은 그 물이 강을 통과하는 시간 동안만이듯이 예술가의 몸도 그러하다고 노래한다. 시간의 지배에서 벗어날 수 없는 존재의 유한성이 예술가의 몸을 통해서도 구현됨을 볼 수 있다. 「두 예술가」는 몸과 예술의 관계에 대한 명상이 담긴 텍스트이며, 몸과 예술의 관계는 다시 ‘존재와 시간’이라는 명제와 연결되어 있다.

몸이 악기인 한 예술가가

악기가 낡아 예 같지 않다고 한탄하고

몸으로 말하는 한 예술가는

입으로만 말해야 한다고 아쉬워하네요

저명한 성악가, 무용가도

강한 조명이 차츰 멀어져 가고 있으니

점점 밀릴 수밖에 없겠지요

그래도 ‘예술은 길다’라는 말을 새기며

화려했던 두 분의 무대를

기억의 공간에 소중하게 갈무리합니다

물과 같이 흘러가는 세월을

그 누구인들 잡을 수는 없을 터이므로

두 분 손이나 잡아줍니다
―「두 예술가」 전문

물과 같이 흘러가는 세월을 텍스트의 한 축에, 시간의 힘을 거역할 수 없는, 인간의 몸을 다른 한 축에 배치하면서 시인은 예술가의 몸을 악기라고 명명한다. 악기는 시간의 풍화 작용을 이길 수 없는 까닭에 시간이 지나면서 낡아간다. 사람의 몸이라는 악기도 마찬가지여서 시간의 흐름 속에서 기운을 잃어간다.

그러나 유한한 인생과 달리 예술은 길다. 길면서도 한결같다. 강과 강물에 대해서 시인이 명상한 바에 비추어 보자면 예술은 강이고 예술가는 강물이라고 볼 수 있다. 강물이 강에 흘러들었다가 다시 강을 떠나 흘러갈 수밖에 없듯이 예술가의 몸은 예술의 공간 속에 스미었다가 서서히 그 자리를 떠나갈 수밖에 없는 운명에 놓여 있다.

성악가에게도 무용가에게도 가장 소중한 것이 바로 그들의 몸이다. “몸이 악기인 한 예술가”가 성악가이며 “몸으로 말하는 한 예술가”가 무용가이다. 시간의 법칙 앞에서 유한한 인간의 몸은 쇠약해지고 그 몸은 예술적 표현 도구로서의 기능을 잃어갈 운명에 놓인다. 두 예술가는 “악기가 낡아 예 같지 않다고 한탄하고” “입으로만 말해야 한다고 아쉬워하”는 우울한 모습으로 텍스트에 등장한다.

그러나 시간의 불가역성, 시간의 철학을 긍정하는 까닭에 시적 화자는 그 변화를 긍정하고 위로를 건넬 준비가 되어 있다. “두 분 손이나 잡아줍니다”라는 구절에서 보듯, 시적 화자는 공감과 이해의 손길을 내밀면서 그들의 존재 의미를 긍정한다.

“물과 같이 흘러가는 세월을/그 누구인들 잡을 수는 없을 터이므로”라는 구절에서 보듯, 그런 시적 화자의 목소리는 흘러가는 강물을 내려다보면서 시간의 흐름을 긍정하는 소나무를 떠올리게 한다. “강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고/강물이 흘러들어 떠나간다”라는 구절과 함께 “강물이 흘러와서 가버리듯/가지 않으려 해도 가고 있다”라는 구절을 떠올리게 한다. 시간이라는 강에 실린 강물은 “가지 않으려 해도 가고 있”는 존재라는 점을 다시 한번 일깨운다.

소나무가 말 없는 말을 강물에게 건네듯 시적 화자는 예술가의 두 손을 잡아주면서 지나간 시간의 빛나던 무대를 기억한다. “같은 자리에 선 채 간다고/와서 가지 않을 수는 없다고” 그 소나무는 뇌고 있다. 강과 강물, 그리고 소나무의 모습이 예술과 예술가, 그리고 그를 지켜보는 또 다른 예술가의 모습에 겹쳐 있다.

이태수 시인은 시간과의 관련 속에서 타자의 죽음을 통해 죽음의 본질적 의미에 대해 명상하는 텍스트를 보여준다. 텍스트에서 시간은 배롱꽃 피는 여름이라는 계절의 은유를 통해 나타난다.

이른 봄의 꽃들이 지자 그가 떠나고
꽃피는 배롱나무에서 매미들이 운다
그를 애도하는지 그 소리도 붉다

그를 떠올려보면 애달프기 그지없다
겨우내 홍매화와 수선화를 기다리고
목련, 개나리, 벚꽃을 그리도 좋아하더니
그 꽃들이 지니 미련마저 지웠을까
병마를 끌어안듯이 하늘 품에 든 걸까

그는 왜 이른 봄의 꽃들만 좋아했을까
여름과 가을에 피는 꽃들도 적잖고
겨울에 피는 꽃은 더욱 아름답지 않은지
목숨을 겨우살이같이 부지해야 하고
기생하듯이 살아왔다고 여겼던 건지

오랜 세월 병마와 더불어 산 그는
새 생명력이 약동하는 봄을 기다리고
그 절정의 순간만을 붙잡고 싶었을까
―「배롱꽃 필 무렵」 전문

이 텍스트에서 삶의 유한성과 시간을 넘어설 수 없도록 한계 지어진 존재의 속성에 대한 명상이 타자의 죽음이라는 현상에 대한 명상으로 이어진다. 망자가 더 이상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시간, 망자의 죽음 이후에도 이 세상에 남아 있는 존재로서, 망자가 경험한 삶과 죽음들을 홀로 재구성해 보인다. 이 세상에서 더 이상 들을 수 없는 망자의 목소리를 찾고 상상 속에서 그의 내면을 다시 그려보고 있다.

봄꽃이 망자로 하여금 그의 삶을 지속하게 해 준 존재 이유가 되었던 것처럼, 그 꽃이 지고 계절이 변화할 때, 그런 시간의 흐름 속에서 죽음의 근원을 찾는다. 봄이라는 시간대가 지닌 강렬한 생명의 기운이 망자를 존재하게 해 주었다는 것을 기억하면서 그 망자의 존재와 부재사이에 놓인 것이 결국 시간이었음을 기억한다. 삶도 죽음도 시간과 긴밀히 연관되어 있음을 다시 한 번 일깨우는 텍스트로 보인다.

이태수 시인의 텍스트에서 보듯 이 세상에 살아남은 자는 여전히 그 부재하는 존재와 함께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망자에 대한 기억을 지닌 채 이 세상에 남은 존재는 여전히 타자와 ‘함께 하는 존재’로 남는다. 타자의 죽음에 대해 증언하고 기록하면서 존재와 시간에 대한 명상을 이어가는 일, 그 일은 결국 이 세상에 존재하는 자의 몫일 뿐이다.

존재와 시간에 대한 시인의 명상은 궁극적으로 자신의 존재에 대한 깊은 성찰로 이어진다. 흘러가는 강물이 지닌 유동성이 시간에 대한 재인식을 가능케 하는 질료였다면 금속성의 거울은 존재의 존재 됨을 다시 인식하게 만드는 또 하나의 소재라고 볼 수 있다.

거울 앞에 앉거나 설 때가 잦아지며
마음이 한결 푸근해지는 것 같다

지금의 나와 나를 보는 내가 마주하는데
지난날 나와 다가오는 날의 내가
은근슬쩍 끼어들기 때문에 그런 건지

(나는 거울을 들여다보고
그 속의 나는 나를 본다)

거울 속의 나는 시공도 아랑곳없는지
가거나 올 나를 두루 데리고 와서
지금의 나와 어우러지게 부추기기도 한다

나는 외롭기보다 고독한 것 같고
고독한데도 마음은 되레 푸근해진다
―「고독의 초상」 전문

거울이 반영하는 존재의 모습을 재현한 「고독의 초상」은 거울은 거울 앞에 선 존재의 모습을 되비추어주면서 동시에 그에게 말을 걸어오는 존재이다. 거울 앞에 서서 시적 화자는 거울과 대화를 나눈다. 거울을 사이에 두고 거울을 마주 보는 존재는 한편으로는 현실 속의 자아이지만 동시에 거울로 인하여 현실이 아닌 곳의 또 하나의 자아다. 거울 속의 자아는 시공의 한계를 벗어난 자아 그 자체이면서 동시에 비자아, 즉 자아가 아닌 존재이기도 하다.
그처럼 거울이 매개하는 새로운 공간에서는 시간의 성격도 달라진다. 거울은 가버린 나, 즉 과거 속의 나를 불러들이기도 하고 올 나, 즉 미래의 자아를 내부 공간으로 초대하기도 한다. “두루 데리고 와서” “지금의 나”와 어우러지게 만든다. 그렇다면 거울이 생성하는 공간은 필연적으로 과거, 현재, 미래라는 시간대가 해체된 공간이다. 그 결과 텍스트 속 시적 화자는 “고독한데도 마음은 되레 푸근해진다”고 노래하게 되는 것이다. 시간의 제약을 벗어났거나 벗어나 있다고 느끼게 하는 낯선 체험을 거울이 가능하게 해 주고 있다. 스스로 거울 앞에 서서 거울을 마주 보면서 거울 속에 반영으로서 존재하는 자신과 마주한 시인이 현실로 돌아올 때 시간은 달라진 모습으로 시인에게 다가온다.

시인은 존재에게 주어진 물리적, 비가역적 시간을 되돌리거나 거슬러 갈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하는 것이 예술이라고 노래한다. 이를테면 음악이 열어 주는 세계는 한정된 시간과 공간 속에 붙들려 있는 존재를 현실계에서 벗어나게 해 주며 제3의 영역으로 데려간다고 이른다.

어제는 맑은 날이었으나
오늘은 눈보라 사납지만 받아들인다
주어진 길로 그냥 가기로 한다

눈보라 치지 않은 겨울이 있었던가
그런 한겨울이 없는 봄이 있었던가

앙상한 나무들은 흔들리면서도
멀지 않아 새잎을 돋우어 낼 태세다
온몸으로 중심을 잡는다

더욱 사나워지는 눈보라
그 틈 사이로 어제도 내일도 보인다
모든 것이 지나가고 다시 온다

창가에 앉아 바깥 광경을 바라보며
비발디의 〈사계〉 중 ‘봄’을 듣는다

몇 해 전에 아내와 함께 듣던
베네치아에서의 그 새소리도 들린다
눈만 감으면 봄날 속이다
―「겨울 창가에 앉아」 전문

비발디의 〈사계〉 중 봄 악장을 겨울에 듣는 일이 시적 화자로 하여금 자연 시간의 흐름에서 벗어나게 해 준다. 「겨울 창가에 앉아」의 시적 화자는 음악을 통해 겨울이라는 시간성을 벗어나 봄의 시간 속으로 이주한다. 시간만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공간도 벗어난다. 행복한 추억의 장소, 베네치아로 잠시 망명한다. 시공간을 벗어나는 그 활주, 그 비행은 눈을 감을 때 더욱 효과적으로 이루어진다.

이 세상에 던져진 존재, 이 유한자로서 무자비한 시간에 맞설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그런 방식으로 자신을 돌보는 일인지도 모른다. 마치도 강물에 실려 가는 나뭇잎처럼 시간의 흐름에 몸을 맡긴 채 흐르는 것도 자연스러운 삶의 모습이려니와 흘러가는 시간 중 소중한 순간들을 한껏 향유하고 그 순간이 주는 기쁨을 맑은 공기처럼 들이마시는 일도 또한 기억할 만하다.

이른 아침에 마지막 날을 맞이하듯
뛰어내리는 햇살을 그러안는다
앞뜰에는 나리꽃들이 막 피어나고
멧새 몇 마리 경쾌하게 포물선을 그린다

내일을 기대하던 지난날과는 달리
지금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게 된 지도 어제오늘이 아니지만
햇빛이 유난히 눈부신 것 같다
마음을 비우고 내려놓아서 그런지

날마다 마지막처럼 살려고 해서 그런지
피어나는 나리꽃도 나는 멧새들도
이 찰나를 절정으로 여기면서
뛰어내리는 햇살을 쟁이는 것 같다
―「이른 아침에」 전문

살아간다는 것은 우주의 에너지를 끌어와 그 안에서 호흡하는 일. 과거와 화해하는 일, 소중한 존재를 오래 기억하는 일, 그리움을 잃지 않는 일…이태수 시인은 “뛰어내리는 햇살을 쟁이는 일”이라고 표현한다. 아침에 새로운 하루의 시간대가 펼쳐질 때 그 순간을 “이른 아침에 마지막 날을 맞이하듯” 한다. 햇살은 시인을 향해 뛰어내리는 햇살로 변하며 그런 햇살을 자연스럽게 그러안는다.

그동안 이태수 시인의 시 세계는 꿈의 시간대가 지배하는 공간이었다. 스물네 번째 시집 『후창』에서도 꿈속의 시공간이 시편 전편에 펼쳐졌다. 존재와 시간에 대한 명상으로 특징지어지는 이번 시집에서도 다시 한번 꿈속에서 전개되는 비결정성의 시간을 찾아볼 수 있다.

는개 자욱한 강가의 길을 걷는다
마음은 옛날로 거슬러 오르는지
맞은편에서 옛날의 내가 다가온다

는개 탓인지 알 수 없으나
희미하게 다가오지만 거울로 보거나
사진첩에서 보던 지난날 모습이다

하지만 가까워지다 이내 멀어진다
꿈꾸다 꿈 밖으로 밀려나 버린 걸까
깨게 마련인 게 꿈인 것을,

눈을 떠도 감아도 물러나 버렸다
가면 오지 못하는 게 강물이듯
이 순간도 저 는개 속에 묻힌다
―「는개, 꿈」 전문

이 시에서는 는개가 열어 주는 비현실적인 공간이 먼저 눈에 띈다. 안개도 아니며 아직 비도 아닌 것이 는개이듯, 혹은 어쩌면 안개이면서 동시에 비이기도 한 것이 는개의 속성이듯 산책자로서의 시인은 환상의 공간 속에서 걷고 있는 듯하다. 그 발걸음이 강가의 길을 따라가는 것이니 시인의 산책로는 한편으로는 현실 공간 속의 강과 평행을 이룬다.

앞의 텍스트에서 살펴보았듯 강과 강물이 시간의 불가역성에 대한 상징이라면 는개 속 시인의 산책은 현실에서 벗어나 있는 꿈과 환상의 시간대를 보여주는 듯하다. 시인의 내면세계가 곧 는개 자욱한 강가의 길로 펼쳐져 있다. 그 길을 따라 걸으며 산책하는 시적 화자는 자신만의 고유한 시간대를 산책하는 것으로 보인다.

는개가 표상하는 흐릿하고 불투명한 공간의 특징에 맞게 그곳에서는 시간의 흐름 또한 현실의 시간 흐름과는 달라진 것을 볼 수 있다. 시간도 고유의 선조성을 벗어나 유연하고 더러 굴절된 모습으로 드러난다. 텍스트 내부에서 꿈의 시간과 현실의 시간, 그 경계가 흐려져 있는 것이다.

꿈에서 만난 사람을 현실 속에서 다시 만나게 되는 장면을 보자. 텍스트 속에서 시간이 다시 정의된다. 시간은 정확히 분절되지 않고 마음이 이끄는 대로 다시 해석되면서 휘어지고 구부러진다. 미술이라면 달리의 화폭이 보여주는 구부러진 공간에 비길만하다. 모나고 각진 것들이 문드러져 나타나고 삼차원의 입체적인 물체가 이차원의 대상으로 변환된다. 그러면서 모든 대상은 액상으로 변하여 함께 흐른다. 꿈과 현실이 뫼비우스의 띠처럼 서로 부드럽게 이어져 있는 공간을 형성한다.

우리 현실의 공간이 논리성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층진 공간임에 반하여, 그 층진 공간의 대척점에 놓인 것이 부드러운 공간이다. 그곳에서는 서로가 서로에게 연결되고 이어지는데 그런 부드러운 공간이 이태수 시인의 텍스트에 펼쳐져 있다. 는개는 현실에서의 시간과는 달리 존재하는 시간을 가능하게 해 주는 소재로 보인다. 시인은 는개 속으로 걸어 들어가면서 는개가 매개하는 새로운 시간을 형성한다.

는개 속에서 시인은 기억으로의 여행을 떠난다. 선조적 시간대에서 과거라고 규정된 시간, 시적 화자가 잃어버린 과거의 시간에 다가간다. 한편 그 존재는 시인 자신의 옛날 모습이기도 하다. 가까워지다 이내 멀어지는 존재로, 그러므로 꿈꾸다 꿈 밖으로 밀려나는 존재로 나타난다.

기억 속의 자신과 조우하면서도 그 타자화된 자아, 즉 과거의 자신은 결국 현재의 자신으로부터 멀어지고 사라지지지만 어슴프레하게 나타났다가 바로 사라졌다고는 해도 그 낯선 대상과의 한순간의 조우는 큰 여운을 남긴다. 회상 속의 자아, 과거 시간대에 속하는 자아, 지금 여기에서 살아가면서 자신의 영역 밖으로 밀어내어 버렸던 과거의 자아가 시적 화자를 만나기 위해서 다시 찾아온다는 것은 분명히 예사롭지 않은 사건이다.

시인은 예기치 못했던 만남을 경험하고 다시 현실로 되돌아온다. 중요한 것은 그 만남이 미묘한 내적 변화를 시인의 내면세계에 이루어내었다는 점이다. 설명하기 어려운, 그래서 사건이라고 부르기 어려운 미묘한 차이들…어쩌면 모든 중요한 변화는 작은 차이들에서 오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태수 시인의 내면, 그 영혼에 차이를 가져온 것은 빛 한 줄기가 아니라 타자화된 자아의 상이다. 거울이나 옛날 사진첩 속에 존재하는 듯한 자아의 다른 모습은 자기 모습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미 타자가 되어버린 대상이다. 타자화된 자아를 시적 화자가 된 자아가 만나는 장면은 강렬한 상징성을 지닌다. 그 만남은 꿈의 공간 같은 곳에서 이루어진다. 강가로 난 길에서 그를 만나는 까닭에 강물이라는 유동적 이미지가 이미 거울처럼 자아의 모습을 반사할 수 있는 구실을 하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이 몽환적 공간에서 현재의 자아와 과거의 자아가 만난다. 시간이 과거의 자아를 만들었고 시간이 흘러 현재의 자아가 존재한다. 현재의 자아와 그 현재의 자아를 구성하는 데에 기여하고는 사라져 버린 과거의 자아가 서로를 마주 보게 된다. 는개 속에서 현재와 과거 시간 너머에서 서로 만나는 독특한 경험이 텍스트에 그려져 있다.

강, 강물, 거울, 는개…시간에 대한 시인의 명상을 보여주는 대상들이다. 시인은 거울의 상징성 속에서 존재의 의미를 되새겨 보기도 하며, 는개 속에서 시간의 불가역성에 저항하듯 과거의 시간을 불러오기도 한다. 시간에 대한 존재의 명상과는 무관한 방식으로 시간은 전개되고 있다.

그러나 시인은 “찰나를 절정으로” 받아들인다. 시인은 는개 속을 산책하면서 과거의 시간대와 조우하기도 하고 “내일을 기대하던 지난날과는 달리/지금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라고”도 생각한다. “새 생명력이 약동하는 봄을 기다리고/그 절정의 순간만을 붙잡고 싶었을까”하고 사라져간 타자와 함께하는 시간도 보낸다. 겨울날에도 봄의 음악을 들으며 눈 감고 봄의 시간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그의 시편들은 마치 비발디의 〈사계〉처럼 우리를 현실의 시간과는 다른 시간대로 데려갈지 모른다.

[시인의 말]

스물다섯 번째 시집을 낸다.
가듯 말 듯 가는 길을 가기는 간다.
마음과 달리 어디 닿을지 모르지만
꿈꾸면서 나서는 먼 길이다.

2026년 가을
이태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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