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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물질에서 진리를 찾아
관자재보살 관세음보살의 전생 이야기 / 원효와 마음의 자재 / 관자재보살로 시작하는 이유 / 행심반야바라밀다시 완성된 지혜인 반야 / 지혜의 완성인 반야바라밀 / 조견오온개공 / 금강경과 반야심경의 차이 / ‘무아’라면 어떻게 윤회하는가? / 도일체고액 사리자 원전에는 없는 사족 ‘도일체고액’/ 색불이공 공불이색 물질과 문화 / 한국불교와 물질관 / 이 시대의 수행방법들은 적절한가? / 먼지의 철학 / 물질관의 변화 / 양자론과 반야심경 / 색즉시공 공즉시색 양자론으로 이해하는 빛의 실체 / 양자론으로 이해하는 전자 / 아이고 이래도 모르시겠습니까? / 양자론과 형태장으로 보는 물질 / 물질의 또다른 성질인 동종요법 / 세상의 실감나지 않는 이야기들 / 구사론의 물질관과 색즉시공 / 물질, 우주, 그리고 나 / 공의 이해를 위해 / 있다, 없다, 그리고 공하다 / 1+0 = 1과 0+1 = 1은 같은가? / 현장스님의 '반야심경' 한역의 문제 / 물질은 공에서 나온다 / 수상행식 역부여시 받아들이는 정신작용 / 심리작용의 시작 / 오해가 오해를 만들어 감 / 안다는 것 / 사리자 시제법공상 현장의 불교, 의상의 불교 / 불생불멸 나지도 멸하지도 않는 불생불멸 / 불구부정 더럽지도 않고 깨끗하지도 않는 법 불구부정 / 부증불감 늘어 날 것도 줄어들 것도 없는 법 부증불감 제2장 법에서 수행방법으로 시고 공중무색 눈높이 교육의 귀재 부처님 / 텅 비어 있으면서 가득 찬 공 / 무수상행식 마음의 작용 / 무안이비설신의 집착할 것 없는 눈의 작용 / 집착할 것 없는 귀의 작용 / 집착할 것 없는 코의 작용 / 집착할 것 없는 혀의 작용 / 집착할 것 없는 몸의 작용 / 집착할 것 없는 뜻의 작용 / 무색성향미촉법 여섯 가지 감각의 뿌리와 대상 / 위빠사나 수행이란? / 무안계 내지 무의식계 식과 의식의 차이 / 불법의 마음 중생의 마음 / 가장 겉의 마음 / 제6식인 의식 / 헤아리는 마음인 제7식 / 머금고 저장하는 마음인 제8식과 제9식 / 용수의 중관사상 / 반야심경과 용수의 중론 / 소크라테스에서 프로이드까지 / 융의 정신분석 세계 / 무무명 역무무명진 내지무노사 역무노사진 12연기, 인과법 / 어리석다는 것과 무명 / 깨달은 자만이 무명을 안다 / 어리석음에 이어지는 작용 중 행 / 행에 이어지는 작용인 식 / 식에 의해 이어지는 명색 / 명색에 의해 이어지는 육입 / 육입에서 이어지는 욕망들 / 욕망을 실현시키려는 작용들과 그 결과 / 12연기의 정리 / 무고집멸도 죽음은 슬픔도 아니고 더더욱 끝도 아님 / 불교와 기독교 / 인생은 고통인가? / 고통의 원인과 소멸에 대해 / 고를 여읜 자리와 그 과정 / 바른 견해인 정견/ 바른 생각 정사유에서 / 무지역무득 이무소득고 다시 공성으로 돌아감 / 현장역의 누락분 제3장 수행방법에서 깨달음으로 보리살타 의반야바라밀다 근본불교에서 부파불교에 이르기까지 / 불교 최고의 신도 아소카 왕 / 중생구제의 대승사상과 보살의 의미 / 최상의 지혜인 반야 / ?대품반야경?에서의 공n의 실체 18가지 / 반야심경의 모체격인 대품반야경 / 수행을 처음 발심한 보살 / 수행의 마음을 오래 전에 낸 보살 / 물러서지 않는 경지의 보살 / 부처를 이루기에 한 생만 남은 보살 / 최고의 지혜인 반야바라밀 / 고심무가애무가애 원효와 혜공의 죽었다 깨어난 ‘내 물고기’/ 고무유공포 형이하학적 두려움의 실체 / 형이상학적 두려움의 실체 / 원리전도몽상 꿈과 같은 인생 / 구경열반 가장 수승한 열반 / 삼세제불 의반야바라밀다 고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 고지반야바라밀다 최고의 깨달음도 반야바라밀에 의지 / 시대신주 시대명주 시무상주 시무등등주 주란 무엇인가? / 능제일체고 진실불허 고설반야바라밀다주 모든 고통을 제거하는 반야바라밀 / 진실되고 헛됨이 없는 반야바라밀 / 즉설주왈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 / 반야바라밀의 다라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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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세음보살과 관자재보살은 결국 같은 분 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관자재보살보다 관세음보살에 훨씬 익숙해져있습니다. 그런데 '반야신경'은 우리에게 친숙한 관세음보살이 아니라 관자재보살이라 칭하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숨은 의도가 있습니다. 즉 '반야심경'은 중생을 고통에서 구제하는 '관세음보살'이 아니라 수행자인 '관자재보살'이 설하는 수행에 관한 내용이라는 것을 경의 첫 단어에서부터 명확히 해두자는 의도인 것입니다. 비유하자면 '아버지'가 아닌 '사장'의 자격으로서 말한다는 선언인 셈입니다. 아마 이 '반야심경'만큼 해설서가 많은 경전도 드물 겁니다. 그런데 '반야심경'이 우리에게 익숙하고 친근한 관세음보살이 아니라 관자재보살로 시작하는 이유를 밝혀놓은 책을 저는 여태껏 보질 못했습니다. --- p.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