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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는 글 _영주씨에게 배우는 나이 듦 수업
1 자존력(自尊力)_나답게, 냉정하게 지켜 가는 마음의 중심 영주씨는 그 시절을 어떻게 버텼을까? ‘냉정한’ 영주씨의 탄생 영주씨 친구 수동이 영주씨에게 없는 것 영주씨에게 듣기 힘든 말 심플 라이프 저출산 고령화 최고령 시민출자자 영주씨 티키타카 완벽한 아들 | 영주씨의 승리 2 관계력(關係力)_다정한 이웃과 가족이 만드는 삶의 울타리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신사모, 신영주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누가 나의 이웃인가 우리 마을 어르신들 ‘시월드’ 이야기 우리 영주씨가 달라졌어요 사람 살리는 수다 살아 있음은 소통이다 누가 영주씨를 웃게 하는가? 티키타카 살림의 달인 | 나의 의상 코디, 영주씨 | 밀리면 안 돼 | 나도 세금 많이 내고 싶다 3 적응력(適應力)_변화하는 몸과 세상을 유연하게 받아들이는 지혜 내 나이 묻지 마세요 영주씨는 가마니를 싫어해 빨래에 진심인 영주씨 ‘고기 러버’ 영주씨 근력만큼 중요한 저작력 걷기 좋은 계절 내가 체력을 길러야 하는 이유 만병통치약 ‘○○○○○’ 원조 식물집사, 영주씨 노인을 위한 디지털은 어디에? 유튜브에 빠진 영주씨 스마트기기와 뽁뽁이 스마트한 영주씨 급진적인 영주씨 없는 번호 마음으로 드리는 세배 티키타카 아메리카노 좋아 좋아~ | 내가 살을 못 빼는 이유 | 가끔 불량식품도 먹어 줘야 해 | 초보 주부의 B급 요리 | 이거 돈 주고 샀냐? | 감칠맛 나게 맛있는 치킨, 아시는 분~ 4 공생력(共生力)_따로 또 같이, 서로를 돌보는 공동체 주거 늙고 아픈 부모를 돌보는 일 나이 듦, 아픔과 돌봄 영주씨 치매안심센터에 가다 드라이브 마이 실버카 영주씨에게 배우는 노인의 이동권 영주씨 펀드 여행을 떠나요 아내가 나를 고쳤다 브라보 마이 쿱 라이프 소유하지 않아도 부족하지 않은 삶 공동체주택에 없는 것들 이름 있는 집 작은 집 예찬 나 홀로 집에 냉정한 영주씨의 슬기로운 이중생활 코로나 시대 공동체주택의 명절 모습 영주씨 덕분에 교회가 팔렸다 우리 함께 채비하자 티키타카 아들을 향한 잔소리는 영주씨의 힘 | 영주씨의 참교육 | 영주씨의 빈자리 | 아름다운 배신 나가는 글 _나의 소중한 특수관계 동거인, 영주씨 영주씨 이야기 _냉정한 영주씨의 안녕한 하루 추천의 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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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내 눈에 세상은 이해하기 어려운 일들로 가득했다. 자연스럽게 나는 말이 없고 주위에 무심한 아이가 되었다. 영주씨는늘 내 옆에 있었지만, 보이지 않았고 궁금하지 않았다. 내 나이 예순이 넘어 이제야 영주씨가 보인다. 뒤늦게 대화를 나누고 소통하고 있다. 잊었던 그 시절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젊은 영주씨는 그 시절을 어떻게 살았을까?
---p.18 내가 친구가 없는 영주씨의 새 친구가 되어야겠다. 내가 바라는 친구의 모습을 생각해 본다. 밥 같이 먹고, 실없는 농담 주고받다가 속 깊은 이야기도 나누는 그런 친구. 보고 싶다 부르면 마다하지 않고 와 주는 친구. 술 한잔 같이 하는 친구(영주씨가 술은 안 마셔도 술 상대는 잘함). 햇볕 좋은 날 멋진 곳에서 함께 걷는 친구가 되어야겠다. 그렇게 영주씨 옆을 지키고 싶다. 아들 노릇 제대로 못 했으니 친구 역할이라도 잘하고 싶다. ---p.23 디지털 기술은 노인의 삶의 리듬과 감각, 몸의 속도를 고려하지 않는다. 빠르게 반응하지 못하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키오스크나 복잡한 본인인증 과정을 거쳐야 하는 은행 앱은 배려 없이 설계된 대표적인 예다. 기술의 진보가 사회의 모든 구성원을 포용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진보가 아니라 차별과 배제가 아닐까? ---p.120 한동안 영주씨는 스마트기기에 푹 빠져 지냈다. 태블릿을 이용하여 유튜브도 보고 성경도 봤다. 손 글씨 대신 타이핑을 활용했다. 그 기간이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이제는 손 글씨를 못 쓰겠다고 한다. … 그러던 어느 날, 영주씨가 뽁뽁이를 들고나왔다. 재활용 쓰레기로 분류해 놓았던 것인데, 자세히 보니 공기주머니가 다 터져 있었다. “이걸 터트리고 나니 손에 좀 힘이 생긴다!”며 좋아하신다. 아~ 감동이다. 영주씨, 정말 스마트하다. 이렇게 영주씨는 잠시 친해졌던 스마트기기와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pp. 126~127 과거에 비해 우리의 삶은 풍족해졌을지 몰라도 ‘죽음의 질’은 눈에 띄게 나빠졌다. 의료 기술의 발전은 죽음조차 관리와 치료, 연명의 대상으로 만들었다. 임종 과정이 자연스러운 삶의 마무리가 아니라 차가운 병원 침대 위에서 기계에 둘러싸인 채 끝나는 ‘의료적 사건’이 되어 버린 것이다. 이제 죽음은 우리의 삶과 동네에서 철저히 분리되어, 병원과 요양시설에서 상품과 서비스로 다루어진다. 영주씨를 보며 생각한다. 평생을 살던 익숙한 집을 떠나 차가운 병실에서 무력하게 생을 매듭짓는 것이 영주씨가, 그리고 내가 원하는 존엄한 마무리일까? ---p.225 영주씨를 통해 ‘어디서 누구와 살 것인가?’를 배웠듯, 이제 나는 영주씨와 함께 ‘공동체 안에서 어떻게 잘 죽을 것인가?’라는 새로운 과제를 안고 가려 한다. 우리의 동행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나답게 늙어 가고 존엄하게 떠날 수 있는 따뜻한 동네를 향해, 우리 함께 채비하자. ---p.2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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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순이 넘어서야 어머니가 보이기 시작했다”
저자는 노후 주거와 돌봄을 오래 공부해 온 돌봄주거 활동가다. 하지만 정작 노년의 진짜 얼굴을 마주한 건 영주씨를 통해서였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어머니와 단둘이 지내게 되면서, 그는 자신이 공부한 어떤 이론보다 영주씨의 삶이 훨씬 큰 스승이었음을 깨닫는다. 늘 곁에 있었지만 제대로 바라본 적 없었던 어머니. 큰아들의 사고와 가계의 몰락, 집마저 잃는 힘든 세월을 겪으면서도 슬픔에 매몰되지 않고 모든 것을 담담히 받아들인 사람. 헛된 것에 집착하지 않고, 어쩔 수 없는 것은 냉정하게 받아들이며, 할 수 있는 일을 명랑하게 해내는 사람. ‘냉정한 영주씨’의 내면은 통제할 수 없는 삶의 고통을 온전히 견뎌 낸 사람만이 얻을 수 있는 담담함이 자리하고 있다. 이 책은 뒤늦게 발견한 어머니의 삶에 대한 아들의 기록이자, 어머니에게 바치는 헌사다. “늙음은 상실의 과정이 아니라 새로 생겨나는 힘이다” ‘노인력’은 일본의 작가 아카세가와 겐페이가 만든 말이다. 건망증, 잦은 한숨, 같은 이야기의 반복처럼 흔히 노망으로 낮잡아 온 노화의 징후를, 그는 해학적인 발상의 전환을 통해 유쾌하게 나이 드는 새로운 힘이라고 명명했다. 저자는 그 발상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늙음을 무언가를 잃어 가는 과정이 아니라 나이 들며 새롭게 생겨나는 힘으로 바라보고, 영주씨의 삶에서 그 힘을 네 갈래로 길어 올린다. 삶의 중심을 지키는 자존력, 사람과 사람을 잇는 관계력, 변화를 받아들이는 적응력, 서로 기대어 살아가는 공생력이 그것이다. 그래서 이 책은 영주씨의 일대기 형식이 아니다. 태어나 늙기까지를 순서대로 좇는 대신, 한 사람에게서 발견한 네 가지 힘을 중심으로 자유롭게 오간다. “영주씨가 가진 네 가지 힘” 1부는 영주씨의 ‘냉정함’이 어떻게 삶을 지켜 내는 지혜가 되었는지를 보여 준다. 감당하기 어려운 불행 앞에서도 무너지지 않고 가족의 기둥이 된 영주씨는, 기초노령연금을 아껴 모은 돈으로 청년 공동체주택 기금 ‘터무늬있는 소셜예금’을 들어 최고령 시민출자자가 되었다. 새 침대를 두고 “얼마나 산다고 새것을 사느냐?”며 타박하면서도, 자기보다 젊은 세대의 미래를 위해서는 기꺼이 자기 몫을 보탠다. 사리 분별을 또렷이 하면서 고집과 잔소리를 덜어 낸 ‘심플 라이프’를 통해 영주씨의 자존력을 만난다. 2부는 고립된 아파트살이와 대비되는, 가족과 이웃이 만드는 삶의 울타리를 그린다. 손주들이 영주씨를 두고 벌이는 ‘효도 배틀’, 가족 밴드 ‘신사모(신영주를 사랑하는 모임)’ 이야기, 청력이 약해진 영주씨와 대화하기 위해 식구들이 익힌 정교한 소통의 기술 등이 영주씨의 관계력과 유쾌하게 엮인다. 3부는 노화로 변해 가는 몸과 세상을 유연하게 받아들이는 영주씨의 지혜를 다룬다. 보청기와 틀니를 당당하게 쓰고, 스마트기기를 활용하면서 소근육이 퇴화하자 손 글씨를 쓰고 뽁뽁이를 터뜨리며 근력을 되찾는 적정 기술 적응기가 흥미롭다. 변화를 거부하지도 않고, 그것에 휘둘리지도 않으면서 자기 리듬을 지키는 영주씨의 적응력에 새삼 놀라게 된다. 4부는 ‘소유’보다 ‘공유’를 택한 영주씨의 삶을 통해 함께 사는 일의 가치를 묻는다. 공동체주택 ‘여백’과 딸이 사는 공동체 아파트를 오가는 ‘슬기로운 이중생활’, 문 앞에 조용히 음식을 두고 가는 정겨운 이웃의 모습에서 ‘영주씨 효과’를 엿볼 수 있다. 영주씨의 공생력을 통해 저자는 “어디서 누구와 살 것인가”라는 질문을 넘어 “어디서 어떻게 떠날 것인가”라는 한층 깊은 질문을 던진다. “중장년을 위한 ‘나이 듦의 선행 학습서’” 대한민국은 2025년 초고령사회에 진입했다. 노인 인구가 전체의 20퍼센트를 넘어선 사회에서, 우리는 부모의 장수를 축하하면서도 정작 그 삶을 어떻게 견뎌 왔는지는 잘 묻지 않는다. 이 책은 바로 그 질문을 끝까지 밀고 나간다. 그 끝에서 저자가 찾은 답은 거창한 교훈이 아니다. 밥 한 끼 같이 먹는 일, 실없는 농담을 주고받는 일, 그 사소함의 힘이었다. 『이러다 100살까지 살면 어떡하냐?』는 노인을 돌봄의 대상으로만 보는 시선에 질문을 던진다. 노인은 의존적 존재가 아니라 공동체의 당당한 일원이며, 돌봄은 가족의 희생이나 시설의 서비스에 의존할 일이 아니라 친구 같은 관계와 상호 존중 위에서 이뤄져야 할 일상의 동행이다. 무엇보다 이 책은 노년을 앞둔 5060 세대를 위한 ‘나이 듦의 선행 학습서’다. 영주씨의 일상을 따라가다 보면, 두려움 없이 명랑하게 나이 드는 일이 특별한 사람만의 몫이 아님을 알게 된다. 독자는 수동씨의 시선으로 영주씨를 읽다가, 자기 곁에 있는 사람들을 새롭게 인식하게 된다. 나는 누군가에게 어떤 사람으로 비치고 있는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은 내 안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이것이 이 책이 모두에게 조용히 건네는 물음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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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부모의 장수를 축하하면서도, 그 삶을 어떻게 견뎌왔는지는 잘 묻지 않는다. 저자는 그 질문을 끝까지 밀고 나간다. 그리고 그 끝에서 찾은 건 거창한 교훈이 아니었다. 밥 한 끼 같이 먹는 일. 실없는 농담을 주고받는 일. 그 사소함이었다. - 강원국 (작가, 『대통령의 글쓰기』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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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동씨는 한 사람의 삶을 보여 주었을 뿐인데, 책을 읽고 나서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얼굴이 조금 다르게 보인다. 누군가를 깊이 들여다보는 관심은, 끝내 그 곁의 모든 얼굴을 다시 보게 만든다. 이 책은 바로 그런 힘을 지녔다. - 고병헌 (성공회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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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고서, 복잡한 감정에 좌우되지 않는다는 의미의 냉정함이 우리 영주씨의 경우에는 훨씬 더 많은 미덕을 갖고 있음을 깨달았다. 영주씨에게는 없는 네 가지—죽음의 두려움, 지난 일에 대한 미련, 고집, 그리고 잔소리—를 되새기고 나니, 이것이야말로 내가 되고 싶은 노인의 모습이다. - 신명호 (한살림생협 모심과살림연구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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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장수 시대에 우리가 어떤 관계 속에서 늙어 가야 하는지를 보여 주는 작은 생활 교과서 같다. 돌봄은 누군가를 대신하는 일이 아니라, 그 사람이 끝까지 자기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곁을 내주는 일이라는 사실도 배운다. - 최순옥 (살림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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